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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20호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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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관 공일오비 Mar 15. 2024

[20호 특집] 금기 팝니다

편집위원 오월

*파일로 읽으시길 권장합니다. 


어서오세요, 우리는 금기를 팝니다. 

세상에서 제일 매혹적이고도 무서운 곳. 

세상에서 제일 도발적이면서도 인기 있는 곳. 

이 곳은 금기를 파는 작은 노점입니다. 


우리는 금기에 대해 말합니다. 금서부터 신성모독까지. 사람들이 분개하고 날뛸 내용들은 다 있습니다. 

물론 그 분개하는 사람이 종교인일지, 독재자일지, 혐오주의자일지는 모릅니다. 우린 그저 금기를 팝니다. 

우리는 금기를 팔지만 금기를 설명하진 않습니다.

 이 책은 왜 금지되었는지, 이 행위는 왜 신성모독적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금기를 만든 권력자가 아닌 동시에 신성모독을 규정하는 신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판매 매출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금기는 언제나 인기있는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뿌린 삐라를 보고 사람들은 홀린듯이 가판대 앞에 찾아오고, 기꺼이 금기를 위해 값을 지불합니다. 

값을 지불하셨다면 이제 붉은 레모네이드 한 컵을 마시고, 가판대에 놓인 책과 종이들을 훑어보세요. 

금기가 아닌 것도 금기가 되면 인기있어집니다. 왜 금기일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금지된 것은 가장 유혹적인 법.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우리의 숙명은 금기에 매혹되는 것입니다. 


우린 왜 금기를 파는 걸까요? 금기를 파는 것이 인기있기 때문도 있지만, 이 행동이 오히려 금기를 없애기 때문입니다. 금기는 겉으로 드러나 금기임이 널리 알려지고 모두가 그것을 ‘금기'라는 이름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금기가 아니게 됩니다. 금지된 대상은 적나라하게 논의되는 대상이 됩니다. 


금기라는 ‘낙인'은 너무 강렬해서 오히려 웬만한 것들은 다 그 이름 앞에 보잘것 없어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의문을 가질테지요. 


이게 왜 금기지?


그러게요. 왜 이것은 금기일까요? 


 왜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금서가 되었을까요?

왜 성경은 과거 조선에서 금서가 되었을까요? 

왜 조선시대의 과부는 자결해야만 했습니까? 

과거의 금기를 바라보고 오늘날의 금지된 것들을 바라봅시다.


왜 장애인은 지하철을 타고 내릴 수 없을까요?

왜 여성의 몸은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섹슈얼(sexual)한 것인가요?

왜 수많은 노동자들은 자신을 노동자 대신 근로자라고 칭합니까?

왜 이슬람의 여성들의 히잡을 쓸 권리와 안 쓸 권리는 모두 침해당합니까? 

왜 퀴어는 자신을 퀴어라 말할 수 없나요?

왜 퀴어는 결혼할 수 없습니까?

왜 무종교 국가에서 특정 종교에 반하는 정책이 금지됩니까? 


왜 대중적인 것은 ‘정치적'이면 안 됩니까?

왜 투쟁하는 것은 불편한 것일까요?

왜 우리는 근현대사에 대해 말하면 안 됩니까?

왜 우리는 대통령에게 소리치고 항의하면 안 되나요?

왜 우리는 도서관에서 아동 성교육 도서를 찾아볼 수 없나요?

왜 우리는 화 내야 하는 일에 화내기보단 분위기를 맞춰가야 합니까?

왜 우리는 ‘사회성'을 위해 분노를 금지당합니까? 


왜 우리의 목소리는 금기입니까? 


과거의 금기를 보며 비웃는 우리는 현재의 금기가 얼마나 우스운지 알고 있을까요? 

우리는 이 모든 질문들의 해답을 드리지 않습니다.  

우린 그저 금기를 팝니다.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가 금기인 것'마저도 상품화했습니다. 


편집위원 오월 (chlsunny@yonsei.ac.kr)

240217 15:52 시작, 16:12 종료

도 움 홍 지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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