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영원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8년, 친구가 엄청난 게 있다며 잔뜩 흥분한 채 내게 한 드라마를 보여주었다. 드라마 <포즈 Pose>(2018)였다. <포즈>는 1980년대 미국 뉴욕 등지에서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계 LGBTQ+ 커뮤니티의 일원들이 꾸려 나가는 볼룸씬(Ballroom Scene)을 조명하는 드라마다. 1980년대 뉴욕 할렘가에서는 매주 볼(ball),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무도회가 열렸는데, 이때의 볼은 사회적으로 배제된 존재인 흑인-라틴계-퀴어 당사자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는 공간으로, 중세부터 이어져 온 귀족들이 모여 사교춤을 추기 위한 장인 ‘무도회’와는 엄연히 구별된다. 볼룸 참가자들이 주제에 맞게 한껏 치장하고 모여 드랙(drag) 혹은 보깅(voguing)을 선보이면, 심사위원들로부터 가장 탁월한 평가를 받은 참가자는 1등 트로피를 수여함과 동시에 씬에 영원히 이름을 남길 수 있는 명예를 누렸다.
그 애가 내게 보여준 건 시즌1 1화의 한 장면으로, ‘왕족(royalty)’을 주제로 열린 볼이 한창이었다. 볼룸에서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진짜 주제로 제시된 인물이 되는 것이 중요하기에, 참가자들에게는 주제에 걸맞은 의상과 태도를 갖출 것이 요구된다. 드라마는 1980년대 뉴욕 볼룸씬을 제패한 하우스 오브 어번던스(House of Abundance)가 하우스의 엄마(mother)인 엘렉트라의 아이디어에 따라 마감 직전의 박물관에 잠입해 그곳에서 진짜 왕족들이 입었던 옷을 훔쳐 달아나고, 그렇게 훔친 옷을 차려입고 볼에 참여하는 과정을 비춘다. 이윽고 조명이 켜지고, 런웨이를 걸어 나오는 하우스 오브 어번던스의 멤버들을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윤기가 흐르는 벨벳 재질의 옷과 사람들의 환호를 당연한 것인 양 여기며 심사위원들을 향해 걸어가는 고고한 태도가 왕족이라는 단어 말고는 설명이 안 됐다. 화면 속 볼룸에 참여한 다른 참가자들처럼 무릎을 꿇고 그들을 경배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우스 오브 어번던스가 모든 심사위원으로부터 최고점인 10점을 받은 이날의 볼은 결국 박물관 유물을 절도한 하우스 일원들을 체포해 가고자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끝나게 되지만, 이들은 경찰에게 연행되어 갈 때조차 왕족을 ‘연기’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체포 당하기 직전의 순간에도 경찰에게 끌려가는 모양새가 아니라 감히 저를 체포하는 것을 허하겠다는 듯 양손을 내어주며 캣워크로 런웨이를 빠져나간다. 아, 경찰이 이들을 체포하기는 했지만, 박물관 측에서 “(성소수자들이 박물관에서 난동을 피운 것이) 부끄럽다”는 이유로 사건 종결을 요청했고, 덕분에 하우스 오브 어번던스는 다음날 ‘미국 중산층’을 주제로 열린 볼에 참여해 다시금 1등 트로피를 따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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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7분 남짓 이어지는 이 시퀀스를 오랫동안 자주 떠올렸다. 그건 아마 여기서 내가 전에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을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볼룸에서 유색인종의 퀴어들은 고루한 정체성의 옷을 자유로이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며 하우스 음악에 맞춰 보깅을 춘다. 사회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면, 화려한 건물들의 틈바구니에 오롯이 우리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야심이 빚어낸 볼룸은 존재 자체로 주류 사회에 대한 저항으로 기능한다. 볼룸이 처음 미국에서 만들어졌던 당시에는 드랙을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라고 의심되거나 젠더 규범에 따르지 않는 옷차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모두 체포되었다. 볼룸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놓인 퀴어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이지만, 이곳 역시에서도 불이 켜지고 경찰이 들이닥치면 이들은 체포되지 않기 위해 자신이 퀴어가 아닌 척 연기해야만 했다(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2019).
볼룸은 언제나 문지방에 서 있는 존재인 흑인-퀴어가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감사하게도 난 이 아름다움을 동시대에, 내가 살고 있는 곳인 한국에서도 종종 목격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비록 대중매체를 통해 접한 것이 전부이기는 하나, 2019년에 방송된 Mnet 프로그램 <퀸덤>에서 걸그룹 AOA가 ‘너나 해’ 무대의 댄서로 ‘보그 펨(Vogue Fem)’을 주장르로 하는 보깅 댄서들을 기용한 것을 본방송으로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보고 친구들이랑 벙쪄서 기숙사 올라갈 때까지 그 이야기만 주구장창 했었고, 2021년에 가수 청하가 보깅을 전면에 내세운 싱글 <Stay Tonight>을 발매했을 때는 안무에 매료되어 어떤 안무가가 안무를 짰는지 궁금해 한참을 찾아 헤맸었다.[1]
내가 동시대에 한국에서 전개되는 보깅 댄스의 일부를 볼 수 있었던 것은 2000년대 초중반경부터 스트릿 댄서 중 일부가 대중매체를 통해 접한 해외 보깅 댄서들의 춤을 보고, 제 나름의 방식대로 연습을 이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이예진, 2023). 그러다 2016년, 뉴욕에서 활동하는 전설적인 보깅 댄서 아치 버넷(Archie Burnett)이 국내 왁킹 행사의 저지로 초대받아 한국에 왔을 당시 보깅 워크숍이 열렸고, 이때의 워크숍으로 한국의 보깅 댄서들은 알음알음 영상 속 보깅 댄스를 따라 추는 것 이상으로 보깅을 구성하는 기본 동작들에 무엇이 있는지를 배우고, 19~20세기 사이에 미국 뉴욕에서 자리 잡은 볼룸 문화의 역사적 배경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이예진, 2023). 이듬해인 2017년에는 한국 최초의 볼인 망원 볼이 열린 것을 계기로 러브란을 파운딩 마더(founding mother)로 하는 하우스 오브 러브(House of Love)가 설립되며 볼룸씬의 저변을 넓혔다. 내가 이곳 한국에서 목격한 움직임들은 볼룸 문화가 처음 태동했던 시공간적 맥락과는 분명 떨어져 있지만, 1900년대 뉴욕의 할렘가에 모인 퀴어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써 보깅을 받아들여 볼룸 문화의 일부가 되기를 선택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보깅 댄서들 또한 스스로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볼룸 씬 내에서 환대를 주고받으며 이 문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볼룸 문화는 낯선 언어가 통용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볼룸에 모여든 이들로부터 생겨났고, 자연히 주류 사회와 구별되는 고유한 의례적 실천들을 공유하고 있다. 한편, 볼은 분명 주류 사회에 의해 가장자리로 밀려난 이들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기는 하나 동시에 언제나 볼의 참가자들은 자신을 주변부로 내몬 바로 그 주류 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간절히 갈망해 왔다(Chatzipapatheodoridis, 2017). 이렇듯 볼룸을 둘러싸고 있는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욕망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곳에서 볼룸 씬을 구성하는 이들이 행하고 있는 의례적 실천들을 두고 단순히 ‘(체제) 전복의 미학’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도하게 낭만적인 귀결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전복은 단순히 낮았던 것을 높이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전부 다루기는 어렵겠지만, 나는 볼룸 문화를 두고 전복적이라 칭하려면 과연 누가 이 문화를 전복적이라 호명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호명이 볼의 참가자들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공유하는 제도 안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어떻게 가리고 있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대 위의 보깅 댄서들이 선사하는 스펙터클에 매료되어 아름답다고 말하면서도, 씬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댄서들이 무대 아래에서 일상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혐오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들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나의 한계로 ‘전복적’이라는 호명 아래 볼룸씬 내의 욕망이 어떻게 가려지고 있는지는 이 글에서 다루지 못했다. 다만 나는 이 글에서 이 문화가 어떤 의례적 실천들을 통해 구성된 것인지를 살펴 볼룸씬 안에 어떤 욕망이 존재하는지를 살피고자 했다. 우선은 볼룸 문화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우리 앞에 당도하기 이전에,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시간을 더듬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최초의 볼룸씬은 1869년 뉴욕 할렘가에 위치한 ‘Hamilton Lodge’ - 추후 ‘Rockland Palace’로 이름이 바뀐 – 댄스홀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Lawrence, 2011). 아프리카 혹은 라틴 아메리카 출신의 게이, 드랙 퀸, 트랜스젠더 등 퀴어 커뮤니티 내에 속해 있다고 여겨지는 이들이 지금의 위와 같은 명명을 얻기 전부터, 이들은 자신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Hamilton Lodge를 드나들며 춤을 췄고, 누가 더 아름다운지를 두고 경쟁하기도 했으며, 또 서로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었다(The New York Public Library, 1939). 1920년대 들어 볼룸씬은 같은 시기 일어났던 할렘 르네상스와 맞물리며 크게 부흥하였고, 1928년 2월 Hamilton Lodge에서 열린 볼에는 유색인종, 백인 할 것 없이 대략 5,000명의 사람들이 참가했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탐탁지 않게 본 뉴욕 지역 검찰장은 1937년에 Hamilton Lodge에서 행해지던 볼을 금지하기에 이른다(The New York Public Library, 1939).
비록 뉴욕 당국의 규제로 인해 뉴욕 내에서의 볼룸씬은 주춤하였지만, 맨해튼 등지로 퍼져 나가 그 명맥을 유지하였고, 세계 2차 대전 종전과 동시에 다시 전방인 맨해튼에서 뉴욕으로 돌아온 이들 덕에 뉴욕의 볼룸씬 또한 활기를 되찾았다. 1960년대 뉴욕의 볼룸에는 유색 인종, 백인 할 것 없이 ‘퀴어’라는 소수자성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는데, 그 탓에 흑인 참가자는 볼룸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화이트 워싱, 즉 백인처럼 밝게 화장할 것이 암묵적으로 요구되었다(Lawrence, 2011). 교차하는 정체성 속에서 다시 한번 설 곳을 잃은 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계 퀴어들은 인종 차별적인 볼룸씬을 떠나 오롯이 자신들을 위한 무대를 만든다(Criales-Unzueta , 2023). 이 시기에 등장한 것이 하우스(house)다. 드랙퀸 크리스탈 라베이자(Crystal LaBeija)와 로티 라베이자(Lottie LaBeija)는 최초의 하우스인 하우스 오브 라베이자(House of LaBeija)를 설립하여 매년 자신들을 위한 볼을 개최하였고, 1975년에는 하우스 오브 듀프리(House of Dupree)가, 1980년대 들어서는 아시아의 아름다움과 철학을 선보이기 위해 하우스 오브 닌자(House of Ninja)가 만들어졌다. 나열한 하우스 외에도 60~80년대를 지나며 뉴욕 할렘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하우스들이 많이 만들어졌고, 그 결과 볼이 매주 열릴 정도로 볼룸씬이 크게 부흥하였다(Lawrence, 2011).
그러나 여전히 볼룸 문화는 도시 뒷골목 지하의 볼에서 경찰의 눈을 피해 암암리에 치러지던 행사였다. 볼룸 문화가 도시의 뒷골목을 벗어나 ‘대중’이 볼룸 문화를 인지하게 된 데에는 1990년에 발생한 두 가지의 중요한 사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하나는 마돈나가 음원 <보그(Vogue)>를 발매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제니 리빙스턴의 1980년대 드랙씬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파리는 불타고 있다(Paris Is Burning)>가 개봉했다는 것이다. 마돈나는 대중들로부터 ‘팝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구가 받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보그>는 그녀의 히트곡 중 하나이다. <보그>는 하우스 장르에 바탕을 두고 있고, 마돈나는 함께 무대를 꾸릴 수 있는 사람을 찾고자 볼룸 씬을 찾았다. 그곳에서 그녀는 여러 보깅 댄서들을 만났고, 이들을 백업 댄서로 기용해 여러 무대를 누빈다. 당시 미국에서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였던 음악 채널 MTV에서 몇 주간 1위를 기록할 만큼 <보그>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마돈나의 영향으로 볼룸씬의 댄서들은 일자리를 얻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볼룸 문화가 가지고 있는 스펙타클은 대중들에게 있어 따라 하고 싶은 ‘힙’한 것으로 여겨졌다.
제니 리빙스턴의 1990년 작 <파리는 불타고 있다>는 파리 듀프리(Paris Dupree)가 파운딩 마더로서 이끄는 하우스 오브 듀프리(House of Dupree)에서 1986년에 주최한 파리 볼을 중심으로 1980년대 당시 볼룸씬 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인물들을 고루 조명한다. 리빙스턴의 다큐멘터리는 퀴어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와 벨 훅스로부터 응답을 받으며 소수자 정체성을 차용하여 작품을 제작하는 일의 정당함 등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전개했다. 1990년대는 볼룸 문화가 대중으로부터 응답을 받은 시대였으나, 동시에 에이즈가 볼룸씬을 휩쓸어 씬을 구성하던 수많은 동료가 세상을 떠났던 시기이기도 했다(Criales-Unzueta, 2023). 동료가 세상을 떠나고,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에이즈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볼룸 씬의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긍정하고 또 퀴어 공동체를 축복하는 일은 요원하게만 여겨졌다. 한편 마돈나와 제니 리빙스턴은 볼룸씬이 긴 시간 축적해 온 스펙타클을 차용해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그 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Lawrence, 2011). 마돈나는 <보그> 활동이 종료됨과 동시에 더 이상 볼룸을 찾지 않았고, <파리는 불타고 있다>의 주역 중 한 명인 파리 듀프리는 “제목에 영감을 줬을 뿐 아니라 영화 전반에 나의 볼(파리 볼)이 등장함에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라며 제니 리빙스턴을 상대로 400만 달러의 소송을 제기한다(Green, 1993). 언제는 안 그랬냐 싶지마는 1990년대는 이처럼 볼룸 씬의 유색인종-퀴어들이 여러 방면으로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협받았던 시기였다. 가시화된 위협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공포로 다가왔지만, 에이즈 문제 해결을 위해 조직된 단체인 ACT UP에 참여하는 등 공포와 싸우는 쪽을 택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인터넷이 대중화되며 티비라는 단일한 채널 외에도 유튜브, 페이스북과 같이 제도 내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가 여럿 생겼다. 동시에 티비쇼의 형태로 볼룸씬 내의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는데, 미국의 차세대 드랙퀸을 뽑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1980년대 뉴욕 할렘에서 살아가는 보깅 댄서들의 삶을 조망하는 드라마 <포즈>, HBO에서 런칭한 보깅 리얼리티 서바이벌 프로그램 <Legendary>[2]가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앞서 90년대에 볼룸씬에 쏟아졌던 관심이 사실은 이들 문화를 차용한 제작자들에게 향했던 것과 달리, 2000년대 대중의 관심은 볼룸씬을 지켜왔던 바로 그들이었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볼이 열리는 공간인 볼룸은 알파벳 T자 형태로 생겼다. 대개 6명의 심사위원이 가로로 앉아 심사를 보고, 심사위원들 앞에 놓인 세로로 긴 런웨이가 바로 볼 참가자들의 무대가 된다. 그리고 볼을 관람하러 온 이들이 런웨이 양옆의 공간을 채운다. 그러나 참가자들의 무대가 꼭 런웨이로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참가자들은 디제이가 틀어주는 음악의 분위기, 함께 볼에 선 상대 참가자가 무대를 사용하는 방식을 기민하게 파악해 적극적으로 런웨이 밖의 공간까지 넓게 이용하며 심사위원들의 이목을 끌고자 한다. 때로 이들은 심사대 그 자체를 무대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T자로 제한되어 있는 볼룸 공간을 얼마나 넓고 음악에 잘 어울리는 방식으로 활용하는지 또한 평가 항목이니만큼, 볼 참가자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무대와 객석 혹은 심사석의 경계를 흐릴 수 있는지가 그 자신의 역량이다. 말 그대로 이들이 ‘걷는(walk)’[3] 곳이 곧 볼이 되는 것이다.
모든 볼은 카테고리(Category)를 가진다. 크게 Realness, Beauty, Runway, Fashion, Vogue Performance로 구분되며, 각 카테고리는 참여할 수 있는 이의 젠더 정체성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예컨대 같은 Realness 카테고리라 하더라도, 트랜스여성은 펨퀸(Femme Queen, FQ) 하에서만 출전할 수 있다. 각 카테고리에 여러 개의 세부 카테고리가 있는 만큼 모든 카테고리를 상세히 설명하기는 어려워 후술할 볼룸씬의 의례인 보깅, 드랙과 유관한 카테고리인 Realness와 Vogue에 관해서만 설명하고자 한다. Realness 중 드랙퀸(Drag Queen, DQ)에게만 열려 있는 볼의 경우 시스젠더 남성이 얼마나 완벽히 생물학적 여성으로 패싱되는지가 중요하다. 펨퀸(FQ)의 경우에도 단지 트랜스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이 다를 뿐 마찬가지로 얼마나 진짜 생물학적 여성처럼 보이는지가 중요한 평가 요소이다. Vogue Performance는 크게 올드웨이(Old Way), 뉴웨이(New Way), 보그 펨(Vogue Femme)으로 구분되고, 참가자는 볼이 정해둔 세부 장르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며 런웨이를 걸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보깅 세부 장르별로 존재하는 기본 요소들을 충실히 따르지 않는 이들은 ‘썰리게(chopped)’ 되는데, 평판이 거의 전부인 이 씬에서 동료들에게 썰린다는 것은 이들이 다시 볼에 오르기 어려울 것을 시사한다. 그 때문에 볼에 오른 이들은 제대로 ‘뽐내야(serve)’한다. 여기서 뽐을 낸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흘러나오는 하우스 음악을 느끼며(feel) 당당한 태도로 런웨이 위에 선 찰나의 순간에 임하는 것을 의미한다(Jackson, 2002).
볼에 오른 이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길어야 2분이다. 2분이라는 시간 내에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본인이 준비한 것을 선보여 심사위원들의 눈을 사로잡아야 하고, 동시에 함께 볼 위에 선 경쟁자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한다. 본인들보다 앞서 씬에서 활동했던 이들의 유산을 존중할 것을 요구하고, 존중하지 않을 경우에는 가차없이 ‘썰거나(chop)’, ‘욕하(throw shade)’고[4], 순간을 ‘살아낸(live)’ 이에게는 찬사(turn it)를 보낸다. 이처럼 씬의 일원들은 시간을 거듭하며 쌓인 전설(Legendary Figure)들의 유산을 이어가고자 애쓴다. 그러나 이들은 단지 과거의 유산을 답습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지금도 볼룸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그 자신이 후대에 남겨질 새로운 전설이 되고자 분투하고 있다.
보깅과 드랙은 볼룸에서 행해지는 대표적인 의례들이다. 보깅은 원래는 하이패션 잡지 모델들의 포즈를 따라 한다고 해 포징(posing)이라 불렸는데, 그중에서도 Vogue 잡지 표지 모델의 포즈를 따라 한 것이 그 시작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보깅’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다. 보깅은 크게 올드 웨이, 뉴 웨이, 그리고 보그 펨으로 구분된다. 초기 보깅 댄스인 ‘올드 웨이’는 단순한 포즈와 깔끔한 몸 선을 부각하고, ‘뉴 웨이’는 ‘올드 웨이’의 깔끔함을 벗어나 화려하고 추상적인 요소들을 가미하며, ‘보그 펨’은보다 여성적인 면을 강조하는 장르이다.
볼룸씬의 일원들에게 있어 보깅은 단순한 춤의 양식 그 이상이다. 보깅은 그들 문화의 일부이고, 자유로움을 표출하는 행위이자, 사회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요구하기 위해 시작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It’s a part of culture. The movement of vogue itself represents our freedom, and it was created for us to have a space.”](Criales-Unzueta, 2023). 그렇기 때문에 보깅은 배운다고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모양새를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기는 하겠지만, 결국에 보깅을 한다는 것은 자유로이 움직이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만의 보깅을 정의 내려야 한다. 보깅은 조명 아래 찰나의 순간을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서 살아내는 법을 터득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드랙은 규범적으로 한 사람에게 기대되는 섹스, 젠더와는 반대되는 성별의 스타일을 과장하여 구현하는 퍼포먼스다(손성규, 2018). 화장, 가발, 의상, 몸짓, 어조 등 젠더 고정관념과 유관한 장치들이 동원되어 드랙 퍼포먼스를 이룬다. 드랙 퍼포먼스를 행하는 이들은 허구적 여성성/남성성을 모방해 전통적 젠더 규범을 재생산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들이 젠더 규범을 핍진하게 모방하면서 젠더 정체성이 실재하지 않고 행위에 따라 가변적으로 구성되는 산물임을 폭로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버틀러, 2008[1999]; 손성규, 2018에서 재인용). 그러나 나는 위의 논의들이 드랙퀸의 수행성에만 집중할 뿐 드랙 퍼포먼스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존재, 관객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기존 젠더 규범을 이미 문제 삼고 있는 관객의 경우 이들의 퍼포먼스를 젠더 규범을 전복적으로 전유하고 있다 해석할 수 있겠지만, 젠더 규범을 체화하고 있는 관객이 보기에 드랙 퍼포먼스는 단지 전통적인 젠더 규범을 우스꽝스럽게 모방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드랙퀸이 행하는 ‘폭로’의 유효함은 드랙퀸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떠나 전적으로 해석의 권위를 쥐고 있는 관람객에게 달린 문제인 것이다.
또한 앞선 논의 중 “드랙퀸은 젠더 규범을 핍진하게 모방하며 젠더 정체성이 허상임을 드러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퍼포먼스를 행하는 주체의 욕망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내린 결론이라 지적하고 싶다. 리빙스턴의 다큐멘터리, <파리는 불타고 있다>에 나오는 드랙퀸 비너스는 수술을 통해 완전한 여성이 되어 그녀의 짝이 될 남성을 찾아 교외에 집과 백색 세탁기를 장만해 살기를 바라는데, 이는 곧 당대 미국 백인 중산층 이상의 삶의 전형을 그녀가 동경했음을 의미한다(장혜현, 김종갑, 2020). 버림당하는 일을 반복해 경험하며 이들이 품게 된 ‘진정한 사랑’에 대한 열망은 자주 연구자들이 드랙 퍼포먼스에 기대하는 ‘전복성’과는 동떨어진 채 존재한다.
볼룸씬에는 하우스가 존재한다. 하우스는 씬 안에서 명성을 얻은 엄마[5]가 이제 막 씬에 입성한 아이(children)을 돌보고, 볼에 나갈 준비를 함께하고 또 하우스 주최의 볼을 열기 위해서 만들어진 공동체이다. 하우스에 들어간 이들은 비로소 소속을 가질 수 있게 되고, 하우스의 일원으로 볼에 출전할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나는 이 글에서 마치 1980년대 볼룸씬을 구성하던 퀴어가 단일한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는 양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이들은 인종, 성별/적 정체성의 측면에서 결코 단일한 집단이 아니다. 그 때문에 서로 다른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는 퀴어들 사이에는 모종의 위계가 존재한다. 이 위계는 서로 견제하고 멸시의 시선을 보내는 ‘쉐이드(shade)’라는 행위를 통해 가시화된다. 하우스의 형태로 결집해 볼에 참가하는 것은 1960년대 백인 퀴어 중심의 볼룸에서 흑인이 참여할 수 있는 틈을 마련하는 기반이 되었고, 이후 하우스 오브 엑스트라바간자의 등장으로 히스패닉이, 하우스 오브 닌자의 등장으로 아시안이 볼룸씬을 구성하는 일부로 인정받게 되었다.
하우스는 비단 볼룸씬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고, 자신의 성적/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가족과 속해 있던 커뮤니티에서 버림받아 거리로 나온 이들이 서로를 돌보기 위해 만든 ‘선택된 가족(chosen family)’의 역할을 겸한다. 하우스의 엄마는 단지 볼룸씬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아이들에게 가르칠 뿐 아니라 현실에서 퀴어로서 안전한 삶을 살 방법을 가르친다. 하우스의 일원들은 사랑의 이름으로 서로를 돌보고, 가장 아름다운 자신을 찾아 나서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볼룸 안에서 유색인종 퀴어들은 자신이 되고 싶은 존재가 정말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의 환상이 유효한 것은 어디까지나 볼룸 ‘안에서’라는 사실이다. 볼룸에서의 삶과 현실에서의 삶 사이의 낙차는 볼룸씬을 구성하는 이들의 욕망을 구성하는 근원이 된다. 사랑받고 싶다는 것, 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살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 에이즈에 걸려 죽고 싶지 않다는 것. 이 낙차를 메우는 방식은 개인에 따라 상이하다. 이 욕망에 주목하지 않고서 이들을 무턱대고 전복적인 존재라 칭하는 것이 삶의 구체적인 장면들을 누락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볼룸씬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우리는 바로 이 욕망에서 출발해야 한다.
편집위원 영원(wizjulia@hanmail.net)
[1] 청하의 <Stay Tonight> 안무는 안무가 리안과 보깅 댄서 러브란(Love Ran)이 함께 제작했다.
[2] 한국에서는 본 프로그램을 제작한 방송국 HBO의 콘텐츠를 wavve를 통해 수입된 것에 한해서만 볼 수 있다. <Legendary>의 경우 wavve가 수입을 하지 않았고, 따라서 한국어 제목이 따로 없어 영어 원제로 작성하였다.
[3] ‘walk’는 볼룸에서 행해지는 의례 중 하나인 보깅의 주요 요소 중 하나이다. 고양이처럼 다리를 X자로 교차하며 걷는 캣워크(cat walk), 오리처럼 쭈그리고 앉아 바운스를 이용해 걷는 덕워크(duck walk)로 이루어져있다.
[4] 마돈나에 의해 대중에게 소개된 이후, 보깅의 모양새만 따라하는 것을 두고 ‘Noguing(No와 Voguing의 합성어)’이라 칭하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5] 시스젠더 게이 남성이 하우스를 이끌 경우에는 아빠(father)라고 칭한다. 여기서 ‘엄마’는 트랜스 여성이 하우스를 이끄는 경우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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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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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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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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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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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omburg Center for Research in Black Culture, Manuscripts, Archives and Rare Books Division, The New York Public Library. (1939). &The Hamilton Lodge Ball&. Retrieved from https://digitalcollections.nypl.org/items/16910cf0-7cf4-0133-46b1-00505686d14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