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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Oct 08. 2021

<129호> 빌런도 영웅도 없는 시나리오

편집위원 유자


찢겨진 종이 위로 파란색, 갈색, 하얀색의 지구가 그려져있다. 찢겨진 종이 아래로 '빌런도 영웅도 없는 시나리오'가 적혀있다.




“기록적인 폭염”


경쟁이라도 하듯 ‘기록적인 폭염’이라는 단어는 해를 거듭할 때마다 들려온다. 올해는 더욱 심상치 않았다. 2021년 전 세계에서 극한의 폭염으로 고통을 겪는 지역이 속출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서부에서는 6월 한 달간 섭씨 50도 가까이 기온이 치솟으며 1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폭염으로 목숨을 잃었다.[1] 바다에서는 폭염으로 인해 10억 마리 이상의 해양 생물이 떼죽음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2]


폭염으로 인해 달궈진 공기는 산불을 유발했다. 최고 기온이 49.6도까지 올랐던 캐나다의 리튼은 큰 산불로 인해 마을 대부분이 소실되었다.[3] 미국 서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70여 건에 달한다. 동토의 땅, 러시아와 핀란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스크바는 6월에 34.8도의 기온을 기록하였고, 시베리아에서는 대형 산불이 번졌다. 여름 평균 기온이 10도 안팎인 핀란드는 20도에 가까운 평균 기온을 기록했으며, ‘산타 마을’로 유명한 라플란드는 33.6도까지 온도가 치솟았다.


한국은 7월부터 기온이 크게 오르며 거의 매일같이 폭염 특보가 발효되었다. 밤이 되어도 기온이 25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도 시민들을 괴롭혔다. 8월 9일 기준 서울 폭염일수는 18일, 열대야 일수는 21일이다. 8월 28일 기준 응급실 온열 질환자는 작년보다 1.5배가량 더 많은 1,338명으로 집계됐다.[4] 좁은 공간에 몰아 넣어진 가축도 폭염을 피하지 못했다. 폭염으로 인해 폐사한 가축은 23만여 마리에 달하며, 수백만의 양식장 어류가 사망했다.[5]


그러나 2021년에 찾아온 불청객은 폭염만이 아니었다. 1월에는 북극한파가 중위도 지역을 덮쳤다. 한국은 1월 내내 영하 15도 안팎의 추위를 경험하며 11년 만의 한파를 겪었다. 미국은 강추위로 인해 전력 공급이 끊겨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였다.[6] 6월 초에는 폭우로 인한 홍수로 세계 곳곳이 신음했다. 서유럽은 폭우로 인한 대홍수로 추정되는 최소 사망자가 200여 명에 달한다.[7] 서유럽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또한 폭우와 홍수로 인해 20명가량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한국은 초여름 내내 마치 열대 지방의 스콜처럼 이틀에 한 번꼴로 비가 내렸다.




거주불능 지구[i]


매년 더워지는 여름, 들쑥날쑥한 겨울 날씨,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퍼붓다가도 변덕스럽게 그치는 비는 모두 기분 탓이 아니다. 급격하게 증가한 대기 중 탄소로 인해 기후시스템이 변화하며 맞닥뜨린 현실이다. 인간은 지구가 인간만의 행성인 양 행동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지구온난화의 이미지로는 녹아가는 얼음 위에 놓인 북극곰을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기후위기로 터전을 잃는 것은 극지방에 사는 북극곰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인간이 기어코 기후위기에 적응하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구는 너무나 빠르고 급작스럽게 더워지고 있다. 유엔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i]는 2021년 8월 9일 「IPCC 제6차 평가보고서」를 발표하였다.[8]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지구의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1.09도 상승하였고, 지구 평균 해수면은 0.20m가량 높아졌다. 지난 2000년의 기간과 비교했을 때 1970년 이후 전 지구 지표면 온도는 유래 없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또한 해당 보고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인간의 영향이 명백하다(It is unequivocal...)”고 서술하여, 지구온난화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래프 1> 지난 170년간 전 지구 지표면 온도의 변화

검정 실선은 1850년~1900년 대비 관측된 연평균 지표 온도를 나타낸다. 갈색은 기후 모델로 모의한 1850~1900년 대비 인위적·자연적 인자를 모두 고려한 연평균 지표 온도를, 녹색은 기후모델로 모의한 1850~1900년 대비 자연적 인자(태양, 화산)만을 고려한 연평균 지표 온도를 의미한다. 실선은 다중 모델의 평균값이며, 음영 영역은 모의 결과 중 신뢰도가 매우 높은 범위이다. (출처: IPCC 6차 보고서, 그래프 설명은 기상청 보도자료에서 재인용)[9] 실제로 관측된 온도인 검은 실선은 1950년 0.0~0.5도 사이에서 2020년 1.3도까지 가파르게 상승한다. 자연적 인자만을 고려한 지표 온도인 녹색 실선은 0.0도 근처에서 머물고 있다.


현시점부터 전 지구 인류가 온실가스를 가능한 적게 배출하는 최선의 시나리오로 움직인다면 지구 온도 상승을 1.8도 이내로 지킬 수 있다. 그러나 별다른 조치 없이 현행대로 간다면 2021~2040년 중 1.5도 상승이 예상되며, 21세기가 끝날 무렵 지구 온도는 4도 이상 상승할 수 있다.[9] 1.1도가량 상승한 지구의 온도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21세기가 끝날 무렵, 2도, 4도 등의 표현은 잘 와닿지 않을뿐더러,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앙이 80년 후에 한꺼번에 들이닥칠 일처럼 느껴지도록 만든다. 그러나 지구가 서서히 뜨거워지는 동안 우리는 수도 없이 ‘날씨’의 모습을 한 기후위기를 경험한다.


지구 평균 온도의 상승은 인간이 경험하는 ‘극단’을 변화시킨다. 극한의 폭염이 발생하는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고, 극도의 폭우와 가뭄이 찾아온다. 산업화 이전 시기 50년에 한 번 발생했던 수준의 극한 폭염이 발생할 빈도는 현재 지구 온도 1도 상승으로 인해 4.8배 증가했다. 온도가 1.5도 상승한다면 폭염 발생 빈도는 8.6배 높아진다. 지구 온도 4도 상승은 인류 문명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이상기후의 문제는 폭염만이 아니다. 지구 온도 1도 상승으로 인해 10년에 한 번 찾아올만한 강한 폭우가 쏟아질 확률은 1.3배, 극한의 가뭄 발생 확률은 1.7배 증가했다. 온도가 1.5도 상승한다면 그 빈도는 각각 1.5배와 2.0배로 증가한다. 실제로 2021년 홍수로 큰 피해를 겪은 독일의 경우 평균 온도가 수 십년 사이 2도 가까이 상승했으며, 스콜과 같이 변덕스러운 비구름을 겪은 한국은 해수면의 온도가 평년보다 1.6도 높았다. 전 지구 평균 육지 강수량은 1980년대 이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10] 폭풍과 허리케인 발생 빈도와 강도 또한 커졌다.


폭염과 건조한 공기가 만나면 산불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 전 세계적으로 화재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기간은 지난 40년간 20% 가까이 길어졌다.[11] 얼음으로 뒤덮인 그린란드, 북극권에 속하는 스웨덴의 산림 지역에서도 화재의 발생 빈도가 높아졌다. 산불로 인한 산림 손실은 홍수와 산사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에 다른 재난으로 쉽게 이어진다. 또한 산불은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탄소를 내뿜으며, 만들어진 검은 재가 태양에너지 흡수를 높여 지구온난화를 가속한다.


2019년에는 전 세계 해수 온도가 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모든 인류가 하루종일 전자레인지 100개”를 돌려 만들어진 열이 바다로 흡수된 것과 같다.[12] 바다 온도의 상승은 바닷물의 산도가 강화되는 현상인 ‘해양 산성화’를 초래한다. 문제는 해양 온난화와 해양 산성화가 해양 생태계의 대멸종 사태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자원연구소는 2030년에 전체 산호초의 90%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전 세계 해양 생물의 4분의 1이 산호초에 의존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13] 산호초의 위험은 곧 바다 생태계의 위험을 뜻한다. 지구 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바다와 그 생태계의 위험은 다시 전 지구 생명체의 존립을 향한 위협이 된다.




불평등한 사회의 온도


지구 온난화는 전 인류가 동일하게 경험하는 지구적 차원의 위기이자 재난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과정은 전혀 동일하지도, 동등하지도 않다. 시카고 대학의 공공정책학 교수 아미르 지나는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는 항상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으며[14], 기후변화와 소수 인종간의 관계를 연구한 호너와 로빈슨은 기후변화는 근본적으로 모든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한다고 선언하였다.[15]


폭염과 한파, 폭우와 폭설은 가장 낮고 좁은 곳을 비집고 들어간다. 뉴욕대학교 교수인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저서 『폭염사회』에서 폭염이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폭염의 희생자들이 노인, 빈곤층, 고립된 이 등 대개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16] 재난에 가까운 날씨가 일상이 될 때, 약자들의 사망 또한 일상으로 둔갑한다. 기후위기는 곧 약자의 위기로, ‘자연재해’는 곧 사회적 재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클라이넨버그에 따르면 지역의 빈곤율, 폭력범죄율, 독거노인 비율은 폭염 사망률과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실제로 2018년 여름 한국을 덮친 폭염으로 인해 발생한 저소득층 온열 질환자의 수는 고소득층의 3배 수준이었다.[17] 환기가 어렵거나 공간이 지나치게 좁은 집은 실내온도를 낮추기가 쉽지 않다. 한여름이 되면 몇몇 쪽방촌 주민들은 40도가 넘는 방을 피해 공항이나 지하철 역사에 몸을 뉘인다. 에어컨을 사용할 경제적 여유가 없는 에너지 빈곤층도 폭염에 쉽게 노출된다. 기온이 36도 이상 오르면 신체보다 높은 온도의 바람이 불기 때문에, 부채나 선풍기와 같은 냉방기구의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그러나 냉매 가스를 사용하는 냉방기구는 가격이 비쌀뿐더러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여 요금 부담이 크다. 작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무더위 쉼터나 공공기관의 휴게시설마저 폐쇄되면서 주거취약계층은 살인적인 더위를 맞닥뜨려야 했다.


일터 또한 폭염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건설노동자와 항만노동자는 무더운 날씨에 70도 가까이 올라가는 콘크리트와 철판 위에서 작업을 한다. 현장 기온이 32도 일 때 안전모 안은 40도 가까이 올라가 노동자가 보호구를 착용하기 어렵게 만든다. 뜨거운 도로 위에 맨몸으로 노출되는 배달 노동자, 냉방기구가 없는 좁은 방 안에서 근무하는 경비 노동자 또한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에 노출되기 쉽다. 폭염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대부분은 하청 노동자로, 폭염 시 보호조치 적용을 받기에도 어려운 상황에 있다. 햇빛을 피할 최소한의 휴게 시설조차 보장받지 못하거나, 휴게시설이 있더라도 냉방 기구가 없는 열악한 환경인 경우도 많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6년~2020년) 여름철 온열질환으로 인한 산업재해자는 총 156명이다.[18]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온열질환 재해자가 58명임을 고려해볼 때, 지난 몇 년간 폭염으로 인한 산업재해 건수가 세배 가까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수치 또한 폭염으로 인한 재해자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무더위로 인한 현기증 때문에 노동자가 실족하거나 추락하는 경우, 폭염이 심혈관계 질환이나 기저질환을 악화시키는 경우 등이 집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살인적인 더위로 인해 노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그 비용은 오롯이 노동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불평등한 지구의 온도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은 단지 직접적인 사망자를 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특히 가뭄과 같은 이상기후는 사회의 기초적인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식량 수급에 문제를 일으킨다. 폭우와 폭염은 농작물 생산량에 영향을 미쳐 수급 불균형을 발생시킨다. 당장 올해 여름에도 폭염으로 인해 7월 한 달 동안 잎채소 가격은 평균 30~50% 상승하였다.[19] 농산물 가격의 상승은 일반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iii]을 발생시킬 수 있다. 월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하는 경우 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743원이 증가한다.[20]


더 큰 문제는 식량 수급의 문제가 단순히 가벼운 장바구니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세계 최고의 곡물 산지인 미국 중서부와 호주는 건조지역으로 최근 몇 년간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연속되는 가뭄으로 인해 곡물 생산량이 줄어들면 곡물 가격이 크게 상승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식량 수급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실제로 러시아가 폭염과 가뭄을 겪은 2010년, 밀을 비롯한 곡물 수출을 중단하여 세계 곡물 시장이 크게 요동쳤다.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45.8%, 곡물 자급률은 21.0%로 식량 대부분을 해외 수입에 의존한다.[21] 식량 자급률이 낮다는 말은 곧 세계정세의 변화에 따라 식량안보가 크게 위협받을 수 있음을 뜻한다. 주요 곡물 생산 국가에서 수출을 중단할 경우, 국내의 원활한 식량 수급이 어려울뿐더러 경제 전반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빈곤한 국가의 경우 식량 수급의 문제가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 생산성이 하락함에 따라 경제가 불안해지고, 이는 다시 사회의 불안정과 정치적 분열로 이어진다. 또한 기상재난은 그 자체로 사람이 사는 땅을 황폐화하여 기상 난민을 만든다. 실제로 2020년에 기상재난에 의한 난민의 수는 3천만 명에 달했다.[22] 이와 같은 강제 피난 사태는 또다시 정치적·사회적 불안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Science>의 한 논문은 기온과 강수량을 포함한 기후변수가 변화함에 따라 커지는 분쟁 발생 가능성을 수치화하였다.[23] 기온이 0.5도 상승할 때마다 무력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10~20% 증가한다.


인류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경제 위에서 기후위기를 앞당기며 유래없이 빠른 기술발전을 누렸다. 각국의 기업과 정부는 ‘경제성장’이라는 달콤한 약속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거나, 무시하거나, 심지어는 음모론으로 치부해왔다. 그러나 무섭게 달궈지고 있는 지구 앞에서 경제발전 정책은 무용지물에 가깝다. 더워지는 날씨로 인한 농작물 생산량 감소, 빈번해지는 기상재난으로 인한 피해, 재난을 복구하고 예방하기 위한 사회 인프라 투자 등 기후위기로 인한 손실과 지출은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다. 온난한 기후였던 국가의 기온이 1도 증가하면 경제성장률은 약 1%p 감소한다.[24] 기후 변화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하면 “세계 각국의 1인당 소득은 21세기 말까지 평균 23%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25] 경제성장을 위해 감행한 환경 파괴는 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와 대침체나 대공황을 뛰어넘는 ‘대몰락’을 가져올 수 있다.[26]


우리는 지난 몇 년간 폭염, 산불, 홍수, 가뭄 등의 재난이 도시를 뒤덮는 광경을 목도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작년 여름 대형 산불로 인해 10만 명이 대피했다. 숲이 복구되기도 전에 또다시 올해 폭염으로 인한 산불이 미국 서부를 덮쳤다. 세계 최대의 곡창지대가 빈번한 가뭄과 산불에 의해 황무지가 되었다. 빈번한 침수 피해를 겪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는 이미 도시의 절반 가까이가 해수면보다 낮은 고도에 위치한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해수면이 상승한다면 2050년에는 도시 대부분이 물속에 잠긴다.[27] 지구 온도 상승으로 극한의 폭염이 발생하는 빈도가 증가하면 적도 부근에선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상재난으로 인한 난민, 가뭄으로 인한 농작물 생산량 감소,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혼란은 명백하게 기후위기로 명명되지 않는다. 기후위기로 촉발되는 수많은 문제는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계층과 계층 간의 갈등으로 변모하여 우리 앞에 찾아온다. 우리는 눈앞의 문제를 처리하는 데에 급급하다는 이유로, 그 문제 근간에 자리 잡은 기후위기를 목숨을 걸고 무시하고 있다.




지구는 누구의 책임인가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온실가스는 마치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로 계속해서 인간이 쌓아온 업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대기 중 배출된 탄소의 절반 이상은 지난 30년 사이에 만들어졌으며, 이산화탄소의 87%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방출되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시작된 이후에 발생한 피해가 그 이전의 수천 수백 년간 발생한 피해와 맞먹는다.[28] 지구온난화는 단순히 이전 세대가 대물림한 업보이거나 다음 세대가 겪을 막연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현상이다. 이는 다시 말해 현세대의 활동에 따라 대기 중 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도, 끊임없이 늘릴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현세대는 지나치게 관조적이거나 감상적인 자세로, 이전 세대가 축척한 탄소가 지구온난화의 유일한 원인인 것처럼, 온난화의 결과는 이후 태어날 아이들이 겪을 참상처럼 묘사하곤 했다. 그러나 현세대는 최근 30년간 맹렬하게 탄소를 뿜어대는 동시에 빠르게 달궈지는 지구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동시에 눈앞에서 펼쳐지는 기후위기의 잔혹함을 외면하고자 자연재해를 모두 어찌할 도리 없는 거대한 심판으로 치부하거나, 온난화를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음모론처럼 여기곤 했다. 그러나 최근 급격하게 변한 시스템은 오랜 시간 축적된 역사적 결과도 자연의 흐름도 아닌 인간이 단시간 내에 만들어낸 결과다. 따라서 이를 해결할 열쇠 역시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그래프 2>  탄소배출 시나리오에 따른 1850년~1900년 대비 전 지구 지표면 온도의 변화

SSP1-1.9: 1.5℃ 지구온난화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새롭게 추가된 시나리오. 2100년까지 전지구 지표온도를 1.5℃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사회가 발전되며 온실가스 감축을 잘하고 2100년의 복사강제력을 1.9W/m2 수준으로 제한하는 것을 전제함.

SSP1-2.6: 재생에너지 기술 발달로 화석연료 사용이 최소화되고 친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이룰 것으로 가정하는 경우

SSP2-4.5: 기후변화 완화 및 사회경제 발전 정도가 중간 단계를 가정하는 경우

SSP3-7.0: 기후변화 완화 정책에 소극적이며 기술개발이 늦어 기후변화에 취약한 사회구조를 가정하는 경우

SSP5-8.5: 산업기술의 빠른 발전에 중심을 두어 화석연료 사용이 높고 도시 위주의 무분별한 개발이 확대될 것으로 가정하는 경우


IPCC 제6차 평가보고서는 탄소중립을 통한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만이 온난화를 억제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기후 변화 대비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지구의 미래에 관한 여러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앞으로 인간 활동의 방향에 따라 지구의 온도는 1.5도 상승선에서 안정화될 수도, 4도 이상 상승하며 펄펄 끓는 땅이 될 수도 있다. 4도 상승을 앞둔 지구에서 파괴되는건 지구라는 행성이 아닌 인간이다. 인간이 이 행성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지금부터 온 힘을 다해 대응해야 한다. 국립기상과학원장을 지낸 조천호 박사는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티핑포인트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라 역설했다.[29]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의 연구팀은 탈탄소화를 위한 여섯가지 사회적 티핑 요소를 제시하였다.[30] 첫째, 정부의 화석연료 보조금을 철폐하고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건축과 인프라 구축에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탄소중립 도시를 건설한다. 셋째, 금융시장에서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투자와 보험 지원을 철회한다. 넷째, 화석 연료 사용의 도덕적 의미를 인식한다. 다섯째, 기후 교육을 강화하여 기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다. 여섯째, 제품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 정보를 공개한다.


기후위기의 해결책을 논할 때 정부와 기업 외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도 작게 여겨진다. 그러나 사회적 티핑 요소의 넷째, 다섯째, 여섯째가 개인의 행동양식을 변화시키는 방법임을 주목해야 한다. 적어도 기후위기 문제에선, 개인이 변하지 않는 한 정부와 기업은 현상 유지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에 공감하는 사람이 25%에 이르면 세상은 따라오기 시작한다.[31]




냉소는 지구를 식힐 수 없다.


한국 사회의 ‘친환경’은 지나치게 쓰레기 문제에 집중되어 있어서, 마치 텀블러와 에코백만이 환경보호의 전부인 양 포장되곤 한다. 쓰레기 문제는 분명 간과해서는 안 되는 환경오염 중 하나이지만 총체적인 기후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플라스틱을 비롯한 몇몇 ‘우화’는 거대하고 광범위한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지극히 좁은 범위로 가둬둘 뿐만 아니라, 개인의 실천범위를 실리콘 빨대와 스테인리스 컵으로 제한해버린다.


지구온난화를 체감하는 사람들조차 본인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해 과소평가한다. 개인의 실천으로 작게는 19.9%에서 많게는 36.8%까지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32]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음식물 쓰레기 절감과 채식 지향이다. 이 두 가지 방법으로 개인의 집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여 경감되는 탄소의 3~5배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 그 외에도 집의 전등을 LED로 교체하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절수형 기구를 사용하기 등이 실천의 방법으로 꼽힌다.


개인적 실천 외에도 사회적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정치적 의제에 관심을 두는 일도 필요하다. 소비자가 변화할 때 기업은 반응하고, 표심이 움직일 때 정치권은 행동한다. 실제로 미국 뉴욕의 모든 공립학교에서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채식 급식을 시행하고 있으며, 프랑스 하원도 주 1회 채식 급식 제공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기후복원법안’을 통과시켰다.[33] 화석연료가 아닌 신재생에너지에 정부 보조금이 갈 수 있도록 의견을 내고, 취약계층이 ‘날씨가 되어버린 재난’을 대비할 수 있도록 사회 정책을 정비해야 한다.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닌 기후위기를 인식한 시민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종말은 한순간에 찾아오지 않는다. 대자연의 분노가 만들어내는 ‘심판의 날’ 따윈 없다. 온갖 재난 영화에서 등장하는 파괴적 카타르시스는 재현되지 않는다. 기후위기를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인간은 뜨거워지는 땅 위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끝없는 경쟁을 하도록 내몰리며, 그것이 기후위기에 의해 촉발된 싸움이라고 인지조차 못 하는 것이 기후위기가 가져올 진짜 재난이다.


기후위기의 거대함과 잔혹함을 마주하고 나면 그 무게에 쉬이 압도된다. 어찌할 방도가 없다고 여기는 회의론이나 냉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무기력과 냉소는 지구를 조금도 차갑게 만들지 못한다. 인간은 자연을 개발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 시스템은 변화나 개혁이 불가능한 절대적 진리처럼 여기곤 한다. 화성에 착륙하고, 인공지능을 만들고, 우주를 여행하고, 인간을 소프트웨어와 연결하는 미래를 꿈꾸면서, 고작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없다고 무력해지는 건 얼마나 우스운가. 시나리오의 상영은 이미 시작되었다. 지금, 여기, 우리에게 필요한 건 관성을 벗어나려는 각오뿐이다.




[i] 본 소제목은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의 「2050 거주불능 지구」에서 가져왔다.

[ii] 1988년 11월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각국의 기상학자, 해양학자, 빙하 전문가, 경제학자 등 3천여 명의 전문가로 구성한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체이다. (출처: 기상청 기후정보포털)

[iii] 농업(agriculture) 부문에서의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inflation)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일컫는 용어이다.




[1] "[집중취재M] '얼음 나라' 러시아도 무더위…"코로나 다음은 폭염"", <MBC>, 2021.07.16.

[2] "온갖 기후재앙 한 달 사이 다 겪은 인류", <경향신문>, 2021.07.14.

[3] "최고 49.6도… 폭염에 캐나다 마을의 90%가 불탔다", <BBC>, 2021.07.02

[4] 2021년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신고현황, <질병관리청>, (접속일자: 2021.8.29.)

[5] ““하루에 1,000마리씩 죽었어요”…폭염에 가축 폐사 잇따라”, <KBS>, 2021.07.29.

[6] "미국 4분의 3이 얼었다…한파에 10여명 사망·550만가구 정전", <연합뉴스>, 2021.02.17.

[7] "독일 홍수 실종자 158명…"생존자 발견 가능성 희박"", <뉴시스>, 2021.07.23.

[8] IPCC, "Climate Change 2021 - The Physical Science Basis, Summary for Policymakers" 2021.

[9]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시간, 얼마 남지 않았다", <기상청 보도자료>, 202.08.09.

[10] IPCC, 앞의 자료, p.18.

[11] IPCC, 앞의 자료, p.6.

[12]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2050 거주불능 지구」, 김재경 역, 추수밭(청림출판), 2020, 116~118쪽.

[13] "[날씨학개론] 해수 온도의 상승, 어떤 심각성 초래하나?", <YTN 사이언스>, 2020.02.18.

[14]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앞의 책, 146~153쪽.

[15] “739명 앗아간 사상 최악의 시카고 폭염… 죽음은 평등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2019.07.09.

[16] Hoerner, J. A. and Robinson, N. "A Climate of Change: African Americans, Global Warming, and a Just Climate Policy for the U.S.", Environmental Justice and Climate Change Initiative, 2018, p.1

[17] 에릭 클라이넨버그, 「폭염사회」, 홍경탁 역, 글항아리, 2018, 107쪽

[18] 「2020년 폭염영향 보고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2020.

[19] "일터 폭염 대비 3대 기본수칙(물, 그늘, 휴식) 준수 지도 강화",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2021.05.31.

[20] "폭염에 채소값 50% 급등... 추석 물가 어쩌나", <한국일보>, 2021.07.28.

[21] 「2020년 폭염영향 보고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2020.

[22] "확 쪼그라든 국내 식량자급률", <경향비즈>, 2021.05.18.

[23] "GRID 2021", Internal Displacement Monitoring Centre, 2021, p.7.

[24] Solomon Hsiang et al., "Quantifying the Influence of Climate on Human Conflict", Science, Vol. 341, Issue 6151, 2013.

[25] Solomon Hsiang et al., "Estimating Economic Damage from Climate Change in the United States", Science,  Vol. 356, Issue 6345, 2017, p.1362~1369.

[26] Marshall Burke et al., "Global Non-linear Effect of Temperature on Economic Production", Nature, Vol. 527, 2015, p.235~239, 데이비드 월러스 앞의 책 179쪽에서 재인용.

[27]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앞의 책, 181쪽.

[28]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가라앉고 있는 도시, 자카르타", <BBC>, 2018.08.15.

[29]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앞의 책, 18쪽.

[30] "‘기후위기 도미노’ 임박…25%가 깨달으면 모두가 따라온다", <한겨레>, 2021.07.22.

[31] Ilona M. Otto et al., "Social tipping dynamics for stabilizing Earth’s climate by 2050, PNAS, Vol.117(5), 2020, p.2354~2365, 위의 한겨레 기사에서 재인용.

[32] Damon Centola et al., "Experimental evidence for tipping points in social convention", Science, Vol.360, Issue 6393, 2018, p.1116~1119, 위의 한겨레 기사에서 재인용.

[33] Katie Williamson et al.,"Climate Change Needs Behavior Change", Center For Behavior & The Environment, 2018.

[34] "뉴욕 모든 공립학교서 ‘고기 덜 먹기’ 교육…프랑스는 주 1회 채식 급식", <중앙선데이>, 2021.07.10.




편집위원 유자

zyouz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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