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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Oct 12. 2021

<129호> [동물] 동물보호법 제22조

편집위원 여름

주황색 배경 위에 하얀 글씨로 '동물보호법 제22조 인도적인 처리 등'이라고 적혀있다. '인도'와 '처리'에는 까만 배경색을 칠하여 강조하고 있다.

동물보호법 제22조(동물의 인도적인 처리 등)


같은 고양이, 다른 모습


 송도와 신촌 캠퍼스의 짧은 생활 속에서 새로이 겪은 사건과 경험은 많지만 가장 낯설었던 점은 사람이 다가가도 피하지 않고 때로는 먼저 다가와 아양을 부리는 고양이였다. 캠퍼스의 고양이는 여기저기를 누비고 사람의 관심과 손길을 즐기는 모습이었지만, 집 근처 고양이는 사람의 그림자라도 보이면 도망을 가 꼬리의 털끝 하나 보기 어려웠다. 학교 근처의 고양이와 집 근처의 고양이가 같은 종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우리 학교에는 길고양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동아리가 있다. 연세대학교 외에 많은 대학 내에도 고양이를 보호하는 동아리가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집단의 존재가 아니라, 그러한 집단이 형성될 수 있을 만한 분위기다. ‘고양이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존재다’라는 인식이 동아리원뿐만 아니라 학생 전반에 퍼져있다. 캠퍼스 내의 고양이뿐만 아니라 학교 근처의 고양이까지 사람의 손을 탔다. 사람에게 길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사람을 피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으며, 사람이 주는 먹이도 곧잘 받아먹곤 한다.

 나는 이런 풍경이 너무 낯설었다. 생각해보니, 고양이를 접한 적은 많지만 그렇게 인간에게 친근한 고양이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집 근처에는 ‘고양이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존재다’라는 인식이 희미하다. 이곳 사람들은 고양이에게 보호나 밥을 제공하기는커녕 위해를 가했을지도 모른다. 같은 고양이지만 인간의 인식과 태도에 따라 각각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고양이에게 주어진 환경이 자연이 아니라 인간 때문에 다른 것에 의문이 들었다. 이전 같으면 동일한 자연환경에서 지냈을 고양이들이지만, 자연환경을 차지한 인간이 고양이에게 어떠한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그들은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동물은 인간에 의해 다르게 살아진다


 같은 고양이가 주변 인간의 인식 때문에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듯 한 동물의 생명과 그 가치가 인간에 의해 좌우되는 일은 많다. 어떤 동물은 먹기 위해 길러지고, 어떤 동물은 부산물을 위해 길러지고, 어떤 동물은 사람의 정서적 안정감을 위해 길러진다. 어떤 동물은 갇히고, 어떤 동물은 죽고, 어떤 동물은 변형된다.

 자연에는 그 잘잘못을 물을 수 없다. 자연재해로 인한 동물의 죽음을 자연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러나 인간으로 인해 동물이 입은 피해는 인간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수많은 동물 착취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 동물이 인간의 손에 단지 인간의 부차적인 욕구를 위해서 죽는다. 어떻게 죽는지 모르는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죽는다는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인간의 생태에는 인간의 효용 말고는 고려되지 않는다. 어째서 어떤 동물은 고기가 되어야 하고 어떤 동물은 인간의 보호 아래에 놓여야 하는 걸까? 동물을 보호하겠다는 사람들의 일념은 동물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지만, 그마저도 인간중심적이다. 보호되는 동물은 인간의 시선에서 선별된다. 특정 종일 수도 있고, 특정 상황일 수도 있고, 특정 조건이 수반되어야 할 수도 있다.


        동물보호법 제22조(동물의 인도적인 처리 등) ① 제15조제1항 및 제4항에 따른 동물보호센터의 장 및 운영자는 제14조제1항에 따라 보호조치 중인 동물에게 질병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인도적인 방법으로 처리하여야 한다. <개정 2013. 3. 23., 2017. 3. 21.>


 동물보호법은 기본적으로 동물 보호를 보장하지만, 인간의 시선에서 합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동물을 ‘처리’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자세한 사유는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인 농림축산식품부령에 명시되어있다. 사유는 수의사가 진단한 경우, 시ㆍ도지사 또는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이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한 경우가 해당된다. ‘처리’의 대부분은 동물보호센터에서 보호하는 동물의 수가 수용 가능한 최대 개체 수를 넘을 경우 안락사라는 이름으로 발생한다. 수의사나 지방자치단체장 등 ‘처리’의 기준을 전문가에게 맡김으로써 객관성을 확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마저도 인간에게 달려있다는 점, 제22조(동물의 인도적인 처리 등)의 어휘에서 알 수 있듯이 동물보호법에서의 보호란, 동물을 보호하는 행위가 인간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의 ‘시혜적인 보호’에 국한된다.

 인간을 위하여 희생당하고 있는 동물이 많다. 단순히 목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환경, 편의, 안정 등 셀 수 없이 많다. 이런 동물을 보호해야하는 것은 동물의 환경을 망쳐놓은 인간에게 당위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보호가 인간중심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 부딪히기도 한다. 인간의 손을 피해 골목으로 숨어든 고양이는 행복했을까? 인간의 손을 타서 캠퍼스에서 먹이를 받는 고양이는 행복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짚을 수도 없는 채로 오늘도 어떤 동물은 인간 탓에 운명을 달리할 것이다.



편집위원 여름

aestivalsumm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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