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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Oct 11. 2021

<129호> [동물] 물고기를 위한 연못은 없다

수습편집위원 케찹 

파란 바탕색 중간에 흰색 글씨로 제목이 적혀있다. 우측 상단에서 하단으로 이어지는 물고기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일러스트가 있다. 그 움직임의 선 위에 2 마리의 물고기가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 속 주인공 홀든은 자신을 태운 택시 기사에게 이렇게 묻는다. 겨울이 되면 센트럴파크 연못의 오리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있느냐고 말이다. 질문을 받은 기사 호이트씨는 지금 장난하는 거냐며 되묻긴 하지만, 이내 이렇게 답한다. 물고기들은 어찌 되든 겨울이 되어도 연못 안에 그대로 있을 거라고. 오리와 물고기는 다르지 않냐고 홀든이 되묻자, 호이트씨는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물고기라고 응수하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인다. 


“어쨌거나, 대자연이 그들을 보살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나는 이 글에서 홀든과 비슷한 질문을 던져볼 생각이다. 지금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거대하진 않지만, 꽤 시선을 끄는 연못이 하나 있다. 처음 연못 아래 유영하고 있는 많은 수의 물고기들- 비단잉어로 추정된다.-을 발견하고 집을 나설 때면 늘 연못가에 들려 물고기들을 구경했다. 습관이 된 연못 방문에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끼게 된 건 지난겨울의 일이었다. 매일 같이 연못가에 들르기를 반복하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물고기들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왔다- 갔다, 그러니까 있다-없다를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몸을 떨던 작년 겨울, 엘리베이터 한편에는 비단잉어들의 무료 분양 소식이 적힌 공지글이 붙어 있었다. 며칠이 지나 찾아간 연못 아래에는 물고기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봄이 되고 다시 들른 연못 아래에는 물고기들이 있었다. 여름 방학이 찾아오고 폭염으로 밖을 나가기가 두렵던 지난 몇 달간, 물고기들은 또다시 연못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옮기고 채우는 모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쨌든 그게 대자연의 손길은 아니다. 


여기서 홀든의 질문. 

“여름과 겨울이 될 때면, 아파트의 연못 아래 물고기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물고기를 위한 연못은 없다 


 아파트 단지 내에 지금과 같은 생태 연못이 들어선 것은 외환 위기를 전후로 한 일이다. 외환위기 직후, 위축된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시행한 정책 중에는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 정책이 있었다. 해당 정책은 건설사 간의 아파트 고급화 경쟁을 야기했다. 현재 우리가 익히 들어와 알고 있는 건설사의 자체 브랜드가 만들어진 것도 해당 무렵의 일이다. 이때 건설사가 고급화 전략으로 주목한 것이 바로 단지 내 조경이었다. 1층 세대의 보안을 위해 부분적으로 수목을 배치하는 것에 그쳤던 아파트 조경은 외환 위기를 기점으로, 친환경과 웰빙의 유행까지 맞물리며 생태 연못, 벽천, 자연형 계류와 같은 대규모 수공간을 품어 안은 공간으로 변화했다. 


 아파트 단지 안 생태 연못의 등장은 태생부터 시세 상승을 견인하기 위한 마케팅적 측면이 강했다. 따라서 연못의 생태 기능에 대한 고려 없이 연못이 구성되어왔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연못은 흐르지 않는 물이 고여 있는 공간이기에 녹조와 부영양화 현상으로 수질이 오염되기 쉽다. 초기에 연못이 안정적인 생태계를 이룰 수 있도록 조성되어야, 연못 스스로 수질을 유지할 수 있다. 연못이 안정적인 생태계를 이룬다 함은, 수심에 따른 다양한 종의 수생 식물이 서식하고, 물과 육상 간의 연결 또한 부드러워 양서류, 파충류 등의 여러 소생물이 공생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아파트 내의 연못은 안정적인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는 조건이 조성 초기부터 배제된 채 만들어진다. 수심은 단조롭고 연못과 주변 지상과의 경계는 바위를 중심으로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 연못이 자생적인 생태 기능을 가질 때까지 주변 소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이 권장되지만[1] 단지 내의 연못은 만남의 광장처럼 여겨져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길목에 배치된다. 특히 어류 생육을 염두에 둔다면, 수온이 변하더라도 폐사하지 않도록 수심의 깊이를 1M 이상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안전 상의 이유로 아파트 연못의 수심은 사람의 발목을 넘지 않는 수준으로 만들어진다. 연못은 지속되려면 끊임없이 사람의 개입에 필요한 조건 속에 놓인다. 그러나 아파트 내에 조성되는 생태 연못은 정부 차원에서 관리되는 생태 공원에 비해 규모가 작고 전문 관리 인력도 없다. 불완전한 공간에 물고기들이 이주된다. 계절별로 뜰채에 담겨 옮겨진다. 


                                                                          7월 폭염으로 한 없이 더웠던 어느 여름날

6월의 어느 한낮                                                     치어 몇 마리들만이 남아있던 연못의 모습 

좌) 이십여마리의 비단 잉어들이 헤엄치고 있는 연못의 모습 / 우) 치어 한마리가 유영하고 있다. 연못 위로 하늘과 나무의 풍경이 비춰져있다.

다시 홀든의 질문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표정 변화도, 감각할 수 있는 소리도 내지 않는 물고기. 팔딱이는 움직임은 그저 어느 생물의 반사적인 생존 본능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개체 개별성이 포유류만큼 부각되지 않아 우리는 물고기 한 마리, 한 마리의 존재감을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물고기들이 조건적으로 활용되는 데에서도  큰 불편감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물어야 하지 않을까. 아파트 연못 속 물고기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가을이 돌아와 연못 아래 유영하고 있는 물고기는 지난여름 그곳을 떠났던 물고기가 아닐 것이다. 어딘가로부터 와서 잠시 연못에 머물렀다가, 다시 또 어딘가로 사라지는 물고기. 앞으로는 홀든이 던졌던, 그와 비슷한 질문을 던질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오랫동안. 



[1]  전성률. "도시 내 생태연못 조성 방안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서울시립대학교, 2009. 서울, 76-77쪽 





참고문헌  

전성률. "도시 내 생태연못 조성 방안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서울시립대학교, 2009. 서울

연합뉴스, 역대 정부는 어떤 부동산 정책을 폈을까

https://www.yna.co.kr/view/AKR20200619102000005

매경신문, 조경을 선도한 아파트들, 아파트, 환경을 끌어안다

https://www.mk.co.kr/opinion/columnists/view/2009/11/56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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