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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Mar 22. 2022

<130호> 차상위계층으로 연세대에서 살아남기

편집위원 유자

파란색 배경 아래에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관이 있다. 건물 위로 '차상위 계층으로 연세대에서 살아남기'가 적혀있다.




드디어 졸업


휴학 1년을 포함한 총 5년간의 대학 생활이 드디어 끝을 맞이했다. 이 글이 발행될 3월이면 재학생도 수료생도 아닌 졸업생으로 연세대학교 전산에 기록될 생각을 하니 신이 난다. 나는 주변 동기들보다 조금 더 치열하게 대학 생활을 보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내가 국가에서 지정한 복지 대상자인 차상위계층이기 때문이었다. 차상위계층이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아니지만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 100분의 50 이하인 계층을 의미한다.[1] 두 번째 이유는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는 다른 배경을 가진 중산층이기 때문이었다.


연세대학교 학생은 대개 돈이 많다. 2018년 1학기 연세대학교 재학생 중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학생은 43%로, 그중 약 40%가 고소득에 속하는 9~10분위 학생이었다.[2] 국가장학금을 신청하지 않은 학생의 대부분이 장학금 지원이 필요 없거나, 본인 가구 소득이 9~10분위에 속한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학생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고소득자의 비율은 훨씬 높아진다. 국가장학금 미신청자를 모두 고소득자라고 가정한다면 연세대학교 내 고소득자의 비율은 75%에 육박한다.[3] 반면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학생 중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차상위계층에 해당하는 학생의 비율은 7%로, 이는 전체 학생 중 약 2.85%에 불과한 수치이다.[4]


거칠게 요약하자면, 연세대학교 학생 두 명 중 한 명은 국가장학금을 신청할 필요가 없다. 국가장학금을 신청하더라도 소득이 높아 장학금 지원을 받지 않는 학생이 그 중 또 반이다. 한국장학재단에서 시행하는 교육을 받기 귀찮다며 투덜대는 나에게 ‘그게 뭔데?’라며 의아한 눈빛을 보냈던 내 주변의 친구들도 연세대에선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다. 이런 연세대를 무사히 졸업하기 위해 나는 생활비 대출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각종 장학금을 얻기 위해 수십 장의 자기소개서를 써왔다. 그 순간을 살아내며 느낀 점과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내용을 이 글에 정리해보았다.




연세대 (급 나누기) 문화


대학에 입학하면 으레 그렇듯 나누는 대화가 있다. 이름, 나이, 살던 지역을 당연하단 듯이 얘기하면 다니던 고등학교 얘기가 나오고, 종종 응시했던 입학 전형부터 수능점수까지 대화의 주제가 된다. 나는 연세대학교에 논술전형으로 합격했다. 수능도 잘 본 편이다. 내 수능 점수를 듣더니 수시납치를 당한 것 아니냐며 호들갑 떠는 동기를 보며, 만약 내가 고른 기회 전형으로 연세대에 합격했다면 그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생각하곤 했다.


입학 초반 나누는 대화에는 입시 결과에 대한 서열과 평가가 은연중에 드러난다. 가장 실력 있고 ‘공정’하다고 인식되는 전형은 순수하게 수능점수로 들어온 정시, 그다음은 수시, 그중에서 가장 나중은 ‘배려’를 받아 들어온 사회배려자 혹은 고른기회전형이다. 학내 커뮤니티에는 전형과 학과 별로 급을 나누고, 사회배려자를 폄하하는 익명 글이 종종 올라왔다.


대학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입시 전형으로 묘하게 급을 나누던 초반의 분위기는 점점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 학생들의 친목과 네트워크가 존재했고, 수도권 출신과 지방 출신의 배경이 나뉘었다. 그마저도 학년이 오르고 각자 나름의 길을 찾아가며 희미해졌지만, 1학년 무렵 동기들과 어울리며 연세대의 ‘정상-주류’에 나는 포함될 수 없음을 알았다. 수도권/특목고/중산층이 연세대 학생의 기본값이고 이에 조금씩 어긋난 사람들은 묘한 소외감을 느낀다.


송도에서는 자사고·특목고 고등학교 졸업생의 연세대 입학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이 그들의 이름과 함께 곳곳에 걸렸다. 오티나 새터와 같은 학기 초 행사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선배나 동기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졸업생들끼리 페이스북 친구를 맺거나 카톡방에 초대하는 등, 연세대라는 학교 안에서도 출신 고등학교에 따라 더 촘촘한 학벌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다행히 나는 낯을 가리지 않는 성격으로 동기·선배와 쉽게 친해졌고 대학 생활에 사소하지만 유용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친밀함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생각보다 높았다. 일정한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며 모두 급식을 먹었던 고등학교 때와 달리, 대학 초반에는 시간과 돈을 내어 동기와의 술자리에 가야만 유지할 수 있는 관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부모님의 용돈을 받는 친구들의 돈 씀씀이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나와 달랐다. 중산층이 대부분인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선 나 또한 소비 규모를 늘릴 수밖에 없었다.


최근 몇 년은 코로나로 인해 새터와 오티를 비롯한 신학기 행사가 취소되고 온라인 수업이 지속되며 연세대 특유의 송도 새내기 문화는 거의 없어졌다. 그러나 20, 21학번의 경험담에 의하면, 코로나가 오히려 출신 고등학교/지역/계층 간의 차이를 강화하고 있는 듯하다.[5] 자사고·특목고 졸업생이 모여있는 카톡방에 초대되거나, 선배나 동기 중 지인이 있는 경우 대학 생활에 필요한 여러 정보를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마땅히 물어볼 사람이 없을 땐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파편적인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그마저도 제한적이다. 학내 여러 단체가 코로나로 인한 네트워크 공백을 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지방 일반고 출신의 학생이 대학의 여러 인프라를 누리기엔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빈곤을 혐오하며 가난을 선망하는 사람들


연세대학교 학생 대부분은 통계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분명한 중산층 혹은 상류층에 속한다. 그러나 내가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본인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본인의 약자성을 강조하곤 했다. 술만 마시면 본인이 ‘흙수저’라며 고충을 토로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부모님은 가진 게 너무 없고, 받는 용돈은 터무니없이 적으며, 좋은 환경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을 볼 때 박탈감을 느낀다고 푸념했다. 나는 그가 나온 자사고의 등록금과 저번 달에 받았다는 용돈의 액수를 셈하며 영혼 없이 그를 위로하곤 했다.


물론 그가 느낀 박탈감이 실체 없는 감정은 아니다. 연세대학교에는 잘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가 나온 자사고에는 지역별·직업별 학부모 모임이 있다고 했다. 판검사, 교수, 의사 등 비슷한 직종을 가진 학부모가 모이고, 서울권 학부모도 강남과 강북이 나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난다. 또 다른 자사고를 나온 친구는 반에서 집값이 싼 지역에 사는 학생을 묘하게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런 고등학교에서 3년을 보내고 용돈을 몇십에서 백 가까이 받는 학생이 가득한 연세대에 진학했다면 본인이 ‘흙수저’라고 느껴져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선 상류층과 중산층도 본인의 삶을 불안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6] 2015년 NH투자증권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중산층의 79.1%, 고소득층의 49.1%가 본인이 빈곤층이라고 생각했다.[7] 7년이 흐른 지금도 한국 사회의 계층 하향인식은 여전히 심각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이 600만 원 이상인 사람의 37.2%는 자신이 중하층에 속한다고 느꼈으며, 38.5%는 자신이 하층에 속한다고 답했다.[8] 최근 불로소득을 향한 과열된 분위기는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갖는 불안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본인을 경제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자신이 가진 불안과 막막함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산층/상류층이 경제적 약자를 점하는 순간 그보다 가난한 이들의 삶은 지워진다. 빈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극단적인 빈자의 모습만을 상상하거나, 빈자를 게으르고 무능력하여 돈을 모으지 못하는 악한 존재로 만드는 등 그 방식은 다양하다.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구체적인 빈곤, 혹은 너무 비슷하고 가까워서 불안을 가중하는 가난에 대해서는 쉬이 말할 수 없다. 경제적 계급은 칼로 무 자르듯 깔끔하게 잘리지 않는 문제이기에 더욱 어렵다.


그와 동시에 일상적으로 발화되는 빈곤 혐오가 있다. 친구들은 소비 지출이 많아질 때마다 ‘이러다 파산하겠다’, ‘너 그러다 파산한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곤 했다. 그들은 ‘돈을 모두 잃고 망하다’라는 뜻으로 썼겠지만, 법적으로 정말 파산한 집안에서 자란 나는 그 단어를 쉽게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는 ‘거지같다’라는 말이 입에서 툭툭 나오곤 했다. 나 또한 복지대상자로 선정된 계층임에도, 빈곤에 내몰린 사람들을 부정적인 상황에 빗대 표현했었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 중 내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의 집안이 여유롭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더라도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는 못했다. 난 대학에 입학하는 동시에 절대 나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돈 없음’은 그들이 공감하는 영역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공감받을 수 있는 ‘돈 없음’은 대략 이런 것이다. 사고 싶은 걸 못 사거나, 용돈이 떨어져서 약속을 잡기 어렵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여행 갈 돈을 모을 수 있는 그런 상황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친구의 여행 제안을 거절하자 ‘아르바이트 좀 빡세게 하면 이 정도는 쉽게 모을 수 있어!’라는 말이나, 갑작스런 병원비 지출에 걱정이 늘자 ‘그 정도면 부모님께 손 벌려보는 건 어때?’라는 조언을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아르바이트한 돈을 부모님께 드리는 상황 같은 건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발화하지 못하는 삶은 사람들의 인식에서 지워진다. 내가 몸담은 사회과학대는 학문 특성상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주제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수업을 몇 번 들으며 깨달은 것은 교수자와 학생 대부분이 그들이 주제로 다루는 ‘빈자’가 수업을 듣고 있으리란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토론에 참여하며, 조별 과제를 함께하며 뭔지 모를 불편함을 계속해서 느꼈다. 차상위계층 혹은 기초생활수급자는 연구 대상으로서 그어진 선 너머에 있었다. 나는 선 안쪽에서, 그들을 완벽하게 타자화하여 나누는 이야기에 끼어들어, 해석되고 가공된 형태로 나의 삶을 바라봐야 했다.




희망을 찾아서


학기 초반 나는 수업도 열심히 듣고 싶고, 교내 활동도 참여하고 싶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비싼 과외를 하며 돈을 번다고 해도 대학 생활을 즐기기엔 시간과 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연세대라는 이름으로 구한 고액과외의 대부분은 가족에게 보내야 했고, 돈을 버느라 학교 일에 소홀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러면 다시 비싼 등록금을 낭비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3월 한 달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냈던 나는 결국 4월에 큰 무기력과 우울함에 빠졌다.


무기력과 우울함의 기저에는 평생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체념이 있었다. 만약 이렇게 살다가 어찌어찌 졸업해도 달라지는 게 별로 없을 것 같았다. 노후 준비가 되지 않은 부모님을 모셔야 하고, 매달 월세도 내가 부담해야 할 텐데. 집도 없고 차도 없고, 하다못해 자취할 보증금조차 없는 상황에서 연세대 졸업하고 취직한다고 해서 극적인 변화가 생길 리 없다.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도무지 시간표를 지킬 자신이 없어 수업 두 개를 철회했다. 과외도 잘린 후에는 송도 기숙사의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곤 했다.


그 시기를 지나올 수 있었던 건 우연한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운이 좋게도 면담 후 교수님의 추천으로 생활비 장학금을 받았다. 교수님께서는 내가 경제적 이유로 너무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과 함께 힘든 시기일수록 일상의 관성을 지켜야 한다고 조언해주셨다. 당시 나는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기에, 무력하게 누워있어도 당장은 쓸 수 있는 돈이 있다는 게 큰 안심이었다.


돈에 쫓기지 않는 기분은 삶에 여러 변화를 가져왔다. 평소에 가지 못했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햇빛 아래 산책하는 시간도 늘었다. 도서관에 붙어있는 포스터의 ‘최우수상 상금 50만원’이란 문구에 이끌려 학교에서 주최하는 프레젠테이션 대회에 친구와 함께 지원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발표하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시작한 활동이라는 감각이 컸다. 최우수상을 받아 팀원과 나눠 가진 상금 25만 원은 들인 시간에 비해선 적은 액수였지만,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당시의 경험으로 대학 생활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엄청난 깨달음을 얻고 고난과 역경을 모두 의연하게 넘긴 건 아니었다. 남은 대학 생활도 순탄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받은 생활비 장학금의 대부분을 부모님께 드리고, 교환학생을 가고 싶어 휴학한 후 아르바이트를 두세 개씩 뛰어 모은 돈을 가족에게 보내야 할 때는 정말 울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은 학원도 가고, 스펙도 쌓고, 여행도 다니는데. 나만 발목이 붙잡힌 것 같았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그저 해야만 하는 일을 했다. 여전히 돈은 없고 일상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래도 괜찮았다. 밝은 미래가 보였다든가, 상황이 변화하리란 믿음이 생긴 건 아니었다. 그냥 괜찮았다. 삶은 불안하고 앞은 막막했지만 살아갈 수 있었다. 변화가 있으리라는 믿음보다는, 이런 나도 어찌어찌 살아간다는 것, 깜깜하기만 했던 시기를 지나왔다는 것, 나에게는 그게 희망이었다.




가난한 연세대생?


연세대학교를 다니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내 경제적 상황에 대해 말할 수조차 없는 가난한 학생이지만, 같은 동네에서 자란 친구들 사이에서는 아니었다.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시급이 높은 과외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고, 금리가 낮고 안전한 한국장학재단 대출을 받을 수 있으며,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명문대’라 불리는 연세대에 입학하여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대학을 가지 않았거나 전문대에 진학한 친구들보다 계층 상승의 기회가 열려있다. 그리고 그 모든 건 단지 나의 노력이나 실력만으로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매번 운이 좋았다. 주변에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많았고 생활비 장학금도 여러 번 받았다. 내 이야기로 차상위계층의 삶이나 ‘가난한 연세대생’의 이야기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기초생활수급자에 속하는 사람들의 대학 생활은 나와 다를 테고,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생활은 또 다를 것이다. 당장 돈이 없어 다음 달의 주거가 불안하고 생활비가 걱정인 이들에게 나의 글은 기만적이거나 편협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도 말해주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마주할 사람에게,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가난은 필연적으로 불행을 불러오는 비극도, 낭만적인 서사도 아니다. 동정이나 동경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삶일 뿐이다. 여러 가지 불안으로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경험을 할지라도 당신의 삶이 계속되길 바란다. 그것이 내가 차상위계층으로 연세대학교에서 5년을 보내며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부록] 연세대에서 살아남기 가이드



이제 내가 대학 생활을 보내며 얻은 몇 가지 팁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여러 이유로 보호자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기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정리했다.



예산 세우기

본인이 모든 생활비와 학비를 스스로 충당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1년 예산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잘하게 나가는 생활비보다 큼직하게 나가는 주거비와 병원비 등이 더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1년 단위로 달마다 빠져나가는 고정비와 생활비를 체크하고, 시기에 맞게 돈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선 학기와 방학의 예산을 다르게 설정하는 것이 좋다. 나는 시간을 많이 낼 수 있는 방학에 기숙사비와 같은 큰 돈을 모으고, 학기 중에는 다달이 빠져나가는 생활비만을 벌었다.



생활비

연 단위 예산을 세워 큰 돈이 빠져나가는 시기를 관리했다면 월 단위 혹은 주 단위로 예산을 구체적으로 세운 후, 매일 가계부를 작성하며 지출을 확인한다. 항목별로 대략적인 지출 목표를 정하고 초과한 지출항목이 무엇인지 확인하며 생활비를 관리하면 도움이 된다. 나는 지출 비율이 높은 식비는 식사비/재료비, 외식비, 간식 등 구체적인 항목으로 나누었으며,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상황이 지속되었을 땐 카페 지출을 따로 떼어 관리했다. 교목실에서 진행하는 점심나눔을 신청하면 식비 절약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교목실 점심나눔은 대략 학기 시작 한 달 전에 신청을 받으며, 온라인 생협 상품권 혹은 생활비 장학금의 형태로 식권을 지급한다.


한국장학재단의 생활비 대출도 고려해볼 만한 선택지이다. 소득분위에 따라 ‘취업 후 상환 대출’이 가능하며 학기당 최대 150만 원을 대출할 수 있다. 예산을 세웠는데 수입보다 필수 지출이 확연히 큰 상황일 때, 아르바이트에서 잘려 갑자기 수입이 끊겼을 때, 갑작스럽게 돈이 필요할 때 이용한다면 큰 도움이 된다. 다만 대출 신청 및 실행 기간이 정해져 있으며 주말과 공휴일에는 신청이 불가하므로 미리 일정을 확인해야 한다.



주거

본가에서 지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통학이 어려워 자취 또는 하숙을 하는 경우 많은 돈을 주거비로 지출하게 된다.나는 코로나로 학기가 비대면으로 전환되기 이전에는 매 학기 기숙사를 신청하였다. 학교 기숙사는 소득분위에 따라 일정 금액을 장학금 형태로 환급해주기도 하며, 보증금이나 관리비가 없기에 경제적 상황이 어려울 때 선택할 수 있는 좋은 옵션이다. 학내 기숙사 외에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기숙사, SH에서 운영하는 공공기숙사 등에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기숙사는 선발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고, 개인 성향에 따라 기숙사의 주거 형태에 큰 불편을 느낄 수도 있다. 이 경우 SH나 LH에서 지원하는 청년 매입임대주택, 전세임대주택, 생활 주택 등의 제도를 고려해보자. 나는 현재 LH 청년전세임대 제도를 통해 서울에 있는 주택을 전세로 임대하여 자취 중이다. 이와 같은 제도를 이용하는 경우 신촌 인근에 방을 구하기 어렵고 더 많은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일반적인 계약보다 훨씬 싼 가격에 방을 얻을 수 있다. 정보를 얻기 어렵다면 연세대학교 주거 상담 플랫폼 집보샘의 상담 서비스를 이용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장학금

내가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장학금이다. 장학금은 한번 받으면 최소 몇십에서 몇백에 가까운 지원을 받을 수 있기에 경제적 상황이 어렵다면 반드시 장학금을 챙겨야 한다. 매주 정해진 요일에 연세대학교 학사지원 페이지의 장학금 목록에 올라온 공지를 확인하며 지원 가능한 장학금을 꼼꼼히 살펴보자. 학과 혹은 단과대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공지도 주기적으로 확인하면 도움이 된다.


종류에 따라 중복수혜가 불가능하거나 수혜 조건이 까다로운 장학금이 있으므로 나름의 지원 기준을 만드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국가장학금으로 등록금 전액을 지불하였기에 생활비 장학금을 위주로 공지를 살펴봤다. 또한 자기소개서만으로 장학생을 선발하는 장학금, 일회성 장학금을 최우선으로 지원하였다. 봉사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내 자치활동이나, 장학금을 주는 대외활동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아르바이트

대학 생활 내내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본인에게 잘 맞는 아르바이트를 찾아야 스트레스가 덜하다. 나는 학교 밖 아르바이트나 과외보단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다. 갑자기 잘리거나 시급이 밀릴 일이 없고, 보통 학교 안이나 캠퍼스 근처에서 일하기 때문에 이동시간도 아낄 수 있다. 교외근로의 경우 시급이 더 높아 돈을 모아야 하는 방학에는 교외근로를 신청했었다. 다만 근로장학금은 비과세 근로소득으로 근로장려금과 같은 혜택을 받기 어렵고, 은행 대출이 필요할 때 소득을 증명하기가 학외 아르바이트보다 더 까다롭다. 여러 가지 조건과 본인의 성향을 고려하여 본인에게 맞는 아르바이트를 찾아보자.



학교 내 서비스 이용

학교 내 여러 기관의 공지를 살펴보고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와 교육을 최대한 활용하자. 학술정보원에서는 도서 구매 신청, 전자책 대여, 동영상 강의 사이트와 함께 각종 프로그램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한다. 학술정보원에 올라오는 공지사항을 자주 확인하고, 홈페이지 하단에 있는 ‘이용자별 서비스’를 꼼꼼히 읽으면 도움이 된다. 그 외에도 상담센터에서 제공하는 상담 및 심리검사나 커리어연세에서 제공하는 각종 취업 관련 컨설팅 등 학교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는 상당히 많다.


자율경비로 보건비를 납부했다면 교내 건강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교내 건강센터는 진료, 건강검사, 예방접종을 교외 의료기관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공한다. 또한 건강공제비를 납부했다면 국민건강보험으로 처리된 의료비를 기간 내 환급 가능하므로, 병원 갈 일이 많은 사람이라면 자율경비 기간에 잊지 말고 신청하도록 하자. 아직 실손의료비 보험이 없다면 가입을 고려해볼 만하다. 그런 일이 없다면 가장 좋겠지만 재학 기간 내에 수술이나 입원을 하게 되었을 때 실비 보험이 있다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교환학생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학생에게 교환학생은 리스크가 분명 큰 선택이다. 나는 운 좋게 교환학생을 다녀왔지만,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만약 교환학생을 가고 싶다면 정말 가고 싶은지, 왜 가고 싶은지, 시간과 금전적 준비에 들어가는 노력이 얼마나 클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교환학생을 가고 싶은 학교와 국가에 따라 준비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기에, 내 경험을 중심으로 설명해보려고 한다.


내가 교환학생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휴학이었다.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토플 학원에 다니고 시험을 봤다. 비록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은 교환학기에 사용할 수 없었지만, 휴학하지 않았다면 준비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 후엔 조금 무모하게도 미래에셋 장학금을 무조건 받는다고 가정하고 교환학생을 준비했다. 생협 생활비 장학금과 삼성 드림클래스 멘토 장학금을 통해 마련한 돈으로 비자 발급, 예방접종, 비행기표 등을 해결하였다. 비자 발급에 필요한 자산 증명은 부모님 친구분께 부탁하여 해결하였다. 다행히 미래에셋 장학금을 받았고 무사히 출국할 수 있었다.


내가 간 대학 지역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머물 수 있는 주거협동조합이 있어 그곳에서 머물렀다. 출국 전 그 국가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꼼꼼히 찾아본 후 가능한 생활비를 아낄 수 있는 옵션을 선택하도록 하자.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있는 동안에는 예산과 지출을 더욱 철저히 관리했다. 계속해서 장학금 공지사항을 통해 교환학생 신분이어도 신청할 수 있는 장학금을 확인했고, 학과에서 지원하는 생활비 장학금을 교환학기 중에 받았다. 교환학생을 가기 전 미리 한국장학재단 생활비 대출을 받아 비상금을 마련해놓기도 했다.


여러모로 무모한 여정이었다. 만약 미래에셋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면 출국 준비로 지출했던 모든 비용이 버려지는 꼴이었지만, 버리면 버린다는 생각으로 과정을 준비했다. 교환학기 중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달러 환율이 치솟아 맘고생을 하기도 했다. 분명 교환학생은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갈 필요는 없다. 생활비가 적게 드는 국가와 학교를 선택하여 1학기만 다녀오거나, 방학 중 교환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것도 방법도 있다.



마음가짐

무엇보다 삶과 시간을 돈으로 치환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시급으로 일을 하면서 모든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하다 보면 생활의 모든 요소를 시급으로 계산하는 사고방식이 생기기 쉽다. 이 일을 하는 건 시간 낭비 같고, 매 순간 가성비를 챙겨야만 하고, 밥을 먹을 때나 여가를 즐길 때도 가격과 손익을 따지게 된다. 그런 사고에서 벗어나는 건 쉽지 않지만 의식적으로라도 지워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나의 경우 명상을 하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스러지면 모든 게 말짱 도루묵’이라는 생각으로 휴식에 너무 각박하게 굴지 말고, 때로는 엄살도 부리자.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




[1]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시행령」 제3조.

[2] "서울·고려·연세대, 고소득층 비율 46% 절반 가까워", <노컷뉴스>, 2019.10.29.

[3] 2018년 1학기 기준 연세대학교 재학생 19,164명 중 국가장학금을 신청하지 않은 학생은 10,985명이다.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학생 8,179명이며 그중 9구간~10구간에 해당하는 학생은 3,209명,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차상위계층인 학생은 548명이다. (자료 출처: 한국장학재단, 김해영 의원실)

[4] "부모 재력이 자녀 학력으로.. 서울·고려·연세대생 고소득층 비율 46%", <미디어내일N>, 2018.10.29.

[5] 연세편집위원회, 『연세』 127호, “[학내기획] 장벽없는 비대면 대학을 위해”, 2021.03.26.

[6] "고소득층 절반 "나도 빈곤층"…사회안전망 부족해 많이 벌어도 불안", <경향신문>, 2015.12.29.

[7] 서동필, 「중산층 vs 고소득층, 삶의 차이 분석」, NH 투자증권 100세시대 연구소, 2015, 9쪽.

[8] “2021년 사회조사 결과”, <통계청>, 2021.11.17.




편집위원 유자

zyouz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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