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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Mar 23. 2022

<130호>  대학에 관한 몇 가지 물음과 상상

편집위원 케찹

옅은 회색 바탕, 말풍선 프레임 안에 도서관 책장 사이를 걷는 누군가의 뒷모습 사진.  왼쪽 사선에는 '대학에 관한 몇 가지 물음과', 아래쪽 사선에는 '상상'이라고 적혀있다.


여는 글  


끝마무리가 가까워지면 우리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그 나름대로 충분했던 시간이었다 말하고는 합니다. 한 때는 괴롭고 힘들었던 경험에도 시간의 더께가 쌓이며 자연스레 추억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졸업이 다가오자 전에 없던 가뿐함이 제 마음을 채우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여느 끝맺음처럼 지난 대학 생활을 추억할 수는 없다는 생각 또한 강하게 들었습니다. 다사다난과 보람이 섞인 한 시절로 기억하기엔, 지난 시간의 우울과 불안, 아쉬움과 답답함이 꽤 컸기 때문입니다. 마주한 끝에서도 그 시간들은 흐릿한 풍경으로 멀어지지 않았고, 계속해서 답을 찾는 질문으로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다르게 할 수는 없었을까?’라는 질문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이전까지 제가 내린 답은 ‘내가 좀 더 달랐더라면’이었습니다. 그러나 질문은 마치 그 설명 이 충분치 않다는 듯 컴퓨터의 오류 창처럼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다른 끝에서 저는 대학이라는 공간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어쩌면 달라야 했던 건 대학이 아니었을 까. 발붙이지 못했던 내가 아니라 발붙여야 했던 공간에 물음표를 던져보기로 한 것이죠. 새로운 질문을 세웠습니다. 대학이 다른 모습일 수는 없었을까. 대학이 다른 모습일 수 있을까.


새롭게 세운 물음에 상상을 더하기 위해 저는 친구 사강의 힘을 빌렸습니다. 사강은 저의 동갑내기 친구로, 대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식순환협동조합(줄여서 지순협)이라는 대안 대학에 진학한 친구입니다. 사강은 3년 전 지순협을 졸업했고, 사강이 졸업 준비로 한창 바쁘던 시기에 저는 사강을 만나 지순협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대안 대학생으로서 사강이 경험한 바를 거울 삼아, 저의 경험과 현재 대학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에 작년 12월 사강에게 대학 생활의 경험을 자세히 듣고 싶다는 부탁을 전했습니다. 사강은 흔쾌히 응해주었고 1월의 첫 번째 일요일에 우리는 다시 만났습니다. 이 글은 대안 대학 생으로서 사강이 경험하고 느낀 바를 저와의 대담 형식으로 정리한 인터뷰 글입니다.


사강이 졸업한 지순협 대안 대학에서의 삶과 공부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대졸 중심 사회에서 비대학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 대안 교육 공동체의 현실적인 조건에 관한 이야기 도 나누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흩어진 이야기에 큰 둘레를 친 모양이 되었지만, 덜어냄 없이 대 부분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유는 점들의 널찍한 연결이 산만함보다는 넉넉한 자리를 만들 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의 물음을 비추어준 사강의 반사광이 여러분이 가 진 물음 한 곳도 비출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1장 대학과 대학

01_ 대학에서 자신과 서로를 알아가는 방식에 관한 물음


사강이 졸업한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 대학은 제도권 대학의 운영과 교육에 문제의식을 공유한 제도권 대학 출신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학교입니다. 2015년 설립된 지순협은 학제 간 연결에 방점을 두고 예술인문, 정치경제, 통합과학 범주로 분류된 강의와 그 밖의 강독 세미나 및 워크숍을 제공합니다. 학술 연구자 및 활동가 양성을 목표로 학생의 연구 소양 증진을 중점적으로 교육하며 졸업 학기에는 1년간 공부한 내용을 종합해 자신의 문제의식을 담은 연구물을 완성해 제출하는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강이 대안대학 지순협에 입학하게 된 과정과 그곳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학업을 이어나가며 졸업 논문을 쓰기까지 지의 과정을 들어보았습니다.


케찹 : 우선 사강 네가 대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안 대학에 입학한 과정이 궁금한데.


사강 :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솔직하게 답하는 편인데, 우선 당시 지원한 미대에 모두 떨어졌었어. 그런데 재수를 하기엔 미대에 대한 열망이 그렇게 크지 않은 거야. 원하는 길이 아닌 것 같은데, 같은 방식의 재수를 하고 싶지 않았어. 그 무렵에 엄마가 지순협을 알게 됐고 나한테 제안을 해줬어. 원래는 들어가서 공부를 하다가 반수나 뭔가를 해볼 생각이었던 것 같아. 근데 학교를 다니면서 끝까지 학기를 마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처음 입학은 우연한 계기였지. 마침 다 떨어졌는데 엄마가 내가 관심을 가질 만한 곳을 알려줬고 졸업에 대한 열망 없이 갔지만 잘 맞아서 끝까지 가게 된 케이스야.  


케찹 : 네가 대안 고등학교를 졸업했더라도 대안 대학을 택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아. 많은 사람이 제도권 대학에 가고 20대 초반에는 대학의 이름으로 그 사람의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문화가 있기도 하잖아. 진학을 망설이게 할 이유는 많았을 것 같은데, ‘졸업까지 가보자’라는 마음을 갖게 된 이유는 뭐였어? 지순협의 학내 문화와 교육과정, 혹은 당장은 미대를 준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중에서?


사강: 일단 친구들과 사이가 좋았고…그냥 그 학교에 다니는 게 되게 재밌었어. 그렇게 한 데에는 아마 셋의 영향이 다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


케찹 : 앞의 학내 문화와 교육과정 얘기를 해보면 될 것 같아.


사강 : 그런데 내가 제도권 대학의 문화를 몰라서 어떻게 비교해야 할지 어렵긴 하다. 지순협의 문화가 가치 있다고 느꼈던 이유는 대안을 말로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앎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공동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 페미니즘을 배우는 동시에 학교 안에서 성평등 문화를 만들자는 노력이 구성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또 수용될 수 있는 공간이었어. 나이주의와 관련해서 예를 들면, 지순협에서는 나이가 드러나는 언니나 오빠 같은 호칭은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도 내가 지순협에서 알게 된 사람 중에는 몇 년간 알고 지냈어도 나이를 모르는 경우가 꽤 많기도 해. 이러한 문화도 학생들이 만들어간 결과였어. 어떤 지향과 생각들이 실천으로 구현될 수 있었던 점이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그곳에서 내가 되게 안전하다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고.


케찹 : 제도권 대학을 경험한 입장에서 나의 이야기를 해보면, 합격 통보를 받고 카톡 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모두가 나이랑 이름을 소개말로 자기소개를 했던 기억이 나.  “안녕하세요. 00 누구누구입니다.”라는 식으로. 와중에 다들 같은 숫자를 말하는데, 숫자가 좀 다르면 그 사람이 입시에 몇 년 더 투자했다는 걸 알게 돼. 드러내서 말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한국에는 무엇이든 어릴수록 이득이라는 인식이 있는 편이잖아. 나이 외에도 자연스럽게 출신 지역과 고등학교를 밝히고, 전공의 입결로 위계를 세우는 문화가 없다고는 말 못 할 것 같아. 나는 일반고 출신에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아니고 수능을 잘 본 편도 아니었어.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타인이 내린 평가로 나를 정의하는 습관에 익숙했다 보니,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자연스레 그런 위계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던 것 같아. 위축이 많이 됐었지.


사강: 물론 지순협에서도 같은 대안 학교에서 함께 입학한 경우에 그들끼리 더 친했던 건 있었어. 그런데 그게 위계로 이어지진 않았던 것 같아. 또 대안학교 출신인 사람들이 많다 보니 다 같이 수도권이 아닌 타 지역 출신으로서의 공통점을 더 공유하기도 했었고.


케찹 : 지순협에도 동기 문화가 있었어?


사강: 응 있었지. 기수가 있으니까.


케찹: 동기의 구성은 어떤 편이었어?


사강: 나는 3기인데, 내가 입학했던 시기에는 20대 초반의 대안 학교 출신들이 많긴 했어. 제도권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도 있었고 휴학생도 있었어. 직장인이랑 3-40대 혹은 그 이상도 있고. 예전에는 대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온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좀 달라졌다고 하더라. 대안 학교 출신으로 지순협을 알고 오는 사람들도 있고, 청소년기에 대안 교육 경험이 전혀 없었는데 나중에 정보를 듣고 온 사람들도 많대. 지금으로서는 특정 집단 출신을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이 오는 걸로 알아.


케찹 : 사실 나는 나이, 본명, 학과 전공으로 나를 소개해왔기 때문에 지순협에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알아갔을지 상상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지순협에서도 입학하면 오티나 새내기 맞이 행사 같은 걸 했었어?


사강: 우리도 있었지. 입학식도 하고.


케찹: 그럼 그 과정에서 어떻게 서로를 소개하고 알아갔던 거야?


사강: 별명이나 활동명을 쓰는 사람들도 꽤 있었어. 본명을 알리고 싶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 이름과 활동명을 같이 소개하면서 ‘이렇게 불러 달라’ 말했던 사람도 있었고. '뭐 좋아하냐’, ‘뭘 공부하고 싶냐’ 같은 질문을 주고받다가 그 과정에서 ‘대안 학교 나오셨냐.’ 이런 얘기를 하기도 하고… 그런데 선후배 문화라고 부를 만한 건 확실히 없었어. 고등학생 때까지는 동기의 나이가 같잖아. 그런데 지순협은 한 기수에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분포되어 있어서 선후관계 같은 게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 같아.


케찹: 제도권 대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 초반에 입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학번이 나이를 드러내는 표지 기능을 하잖아. 재수, 삼수를 한 친구들은 입학 초반에 학번과 자기 나이가 어긋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대학 생활이라는 게 각자 삶의 속도에 맞게 삶의 한 시기를 할애한다는 개념이라기보다, 20대 초반에 해야 하는 단계별 퀘스트?, 최대한 빨리하면 할수록 좋은 미션 같기도 해. 또 사강 네 말을 들으면서 나는 뭘 좋아하냐는 질문을 듣거나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방금 했는데, 대체로 ‘무슨 과야?’라는 질문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갔던 것 같아. ‘무슨 과야? 무슨 학번이야?’ 같은 질문이 잘못된 건 아니지. 그런데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는 데  좀 더 시간을 들일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은 들어.



02_ ‘나'에서 시작되는 논문 쓰기


케찹 : 대안 교육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인성 교육이나 체험 위주의 수업을 하는 대안 중고등학교를 떠올리게 되는데, 지순협은 학업이라는 목적이 명확한 대학교이잖아. 사강 너는 지순협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공부를 해왔는지 궁금해.  


사강: 지금은 전공이 나누어져 있지만 내가 다닐 때에는 전공이 없었어. 말하자면 자율 전공이었고 학점은 있지만, 점수는 없고 이수도 패스 논패스로 결정이 되는. 대신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예 발표회가 있었는데, 그게 일종의 평가 자리인 셈이었어.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에세이나 소논문을 쓰는 사람도 있었고, 음악 작업을 해서 자기가 작곡한 음악을 발표하는 사람도 있었어. 기억에 남는 건 학교가 글쓰기를 꽤 중요시했다는 점이고, 나는 (학예 발표회에서) 꾸준히 글을 써서 발표하는 편이었어. 이전까지 글쓰기는 나한테 숙제 같은 거였는데, 지순협에서 처음으로 글을 매개로 배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배웠던 것 같아. 학예 발표회의 글은 곧 나를 대변하는 작업이었다 보니 글에 대한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지게 됐고. 그 과정은 어려웠지만 재밌었어. 계속 다녀보자는 마음을 먹게 된 이유이기도 했지. 커리큘럼에 관해서는 다양한 수업을 원하는 대로 골라서 들을 수 있었는데, 나는 철학이나 미학 같은 인문학 수업을 주로 들었고 당시에는 관심사가 넓은 편이었어서 과학 수업도 많이 들었어.


케찹 : 근데 사강 너는 기본적으로 인문학에 관심이 깊은 편이고 학구열이 높은 편이라 제도권 대학에 갔더라도 만족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애초에 네가 대학 교육과 잘 맞는 사람인 것인지, 지순협의 교육 과정에서 네가 특별히 만족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었던 건지 궁금한데.


사강 : 지순협의 교육 과정에서 만족감을 느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논문을 썼던 경험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 교수님들은 제도권 대학에서 졸업 논문을 잘 쓰지 않게 된 점을 안타까워하면서 우리한테 논문 쓰기를 항상 강조했었어. 학예 발표회는 한 학기 동안 수업을 듣고 글을 쓰는 단편적인 작업이라면 논문은 2학년 연초부터 주제를 잡고 이후 반년 동안 논문만 쓰게 돼.  6개월의 시간을 들여서 하나의 주제로 글을 썼던 경험은 처음이었고, 관련해서 책을 읽으면서 구조를 만들고 살을 붙이며 내 글을 완성했던 경험은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됐어. 내가 이론적인 공부나 학술적인 글쓰기 분야에 흥미를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됐고, 계속 이러한 공부를 이어나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어. 사실 논문을 쓰는 행위나 기간에는 타 대학과 차이가 없을지도 몰라. 그런데 지순협의 논문은 문제의식이나 주제가 개인의 삶과 이야기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달랐다고 말할 수 있어. 개인의 경험을 사회의 이론적 지식과 연결 짓는 거, 이게 학교에서 늘 강조되는 지점이었는데, 내 논문에도 나의 이야기가 많이 담긴 편이야.     


케찹 :  너의 논문은 어떤 내용이었어?


사강: 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기반으로 나의 우울과 자기혐오의 원인을 추적하는 내용의 논문을 썼어. 제목은 「가상의 인물 X를 통한 자기 분석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기반으로 - 」이야. 분석자와 분석 대상이 같으니까 나를 가상의 인물 X로 두고, 내가 기록해왔던 증상 기록, 꿈 일기를 활용해서 나를 정신 분석학적으로 분석한 글이야.


케찹 : 제도권 대학에서 논문의 의미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소통의 매개, 학술장에 개입한다는 의미가 강하잖아. 학술적으로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도 대개 정해져 있는 편이고. 정밀하게 규명되지 않은 지점이나 현재 담론의 최전선에 있는 것들이 그 예가 되겠지.  연구를 위한 연구랄까. 지순협의 논문은 그것과는 결이 다른 것 같아.


사강 : 확실히 지순협의 논문은 학술적 평가나 목적과 상관없이 자기 화두에서 출발할 수 있는 작업이었고 개인의 경험과 서사에서 출발하는 글이 적극적으로 포용될 수 있었어. 그래서 나도 논문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해.


케찹 : 우리도 대학에 들어가면 필수로 들어야 하는 게 글쓰기 수업이기는 해. 그런데 수업마다 강의자의 접근이 다르고 강조하는 지점도 달라. 나는 에세이 위주로 자기 산문을 쓰는 수업을 들었었어. 그 경험 자체는 되게 좋았지만, 학점을 다 채웠으니까 그 이상 더 해 볼 동기를 가지지 않았던 것 같아. 문과대이기 때문에 글쓰기를 많이 하지만, 대개 정해진 규격과 요구 조건에 맞춰 쓰는 경우가 많고, 학교 글쓰기의 기본 접근은 교수자가 알려준 것을 나의 말로 정리하는 작업에 가까워. 지순협이 학부생에게 1년간의 시간을 할애해서 논문을 완성하라는 과제를 주는 건, 학생의 역량을 믿기 때문인 거잖아. 학생이 충분히 읽고 또 사람들과 피드백을 주고받는다면 타당한 한 편의 논문을 완성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런 과제를 주는 걸 텐데, 제도권 대학은 그런 믿음을 주지 않는 것 같아. 그런 작업은 석사, 박사라는 검증된 자격시험을 통과하고 전공에 맞는 교육 과정을 충분히 밟은 사람만이 쓸 수 있고, 또 써야 한다고 여기는 거지. 그래서 한편으로는, 지순협의 논문에 그런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 정말 학생들이 논문을 쓰냐는... 그런 질문 말이야.


사강 : 에세이의 경우엔 글쓴이가 전문가나 전공자인지의 여부를 묻지 않아. 여부에 따라 글의 자격을 검증하는 태도도 드물고. 그런데 논문이나 학술적 글쓰기는 자격이나 지위를 항상 묻는단 말이야. 물론, 우리가 쓴 논문이 KCI에 등재가 된다거나 학계에 유의미한 발자국을 남긴다, 이런 개념은 아니겠지. 물론 예외는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자기의 화두를 찾아서 이론적인 틀에 따라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경험 자체는 개개인한테 의미가 없을 수 없다고 생각해. 논문 쓰기라는 과제를 주고 그 과정을 학생이 잘 밟아갈 수 있게 도움을 준 게 지순협의 메리트였던 것 같아. 또 평가하는 교수님들도 어쨌든 제도권 소속인데, 논문 발표회에서 어떤 학생은 교수님들로부터 좀 더 발전을 시켜서 출판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었고, 내가 졸업한 이후에 어떤 학생의 글은 교수님 통해서 진보 평론에 실리기도 했었어.


케찹 : 확실히 누구나 자기가 풀어내고 싶은 기억이나 삶에서 이끌리는 화두라고 할 만한 게 있잖아. 아직 명료한 언어로 정리되지 않은 형태의 그것을 언어로 더듬거리면서 다가가고, 또 그걸 이론과 개념으로 풀어보는 경험이 20대에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거든.


사강 : 맞아. 개인의 트라우마나 이런 것도 결국 사회와 연결되어 있는 건데.


케찹 : 응, 그런데 수업에서 할 기회는 사실 없어. 한 학기의 호흡은 짧고 필요는 채워야 할 학점으로 좌우될 때가 많고, 전공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기도 쉽지 않아. 에세이 붐이긴 하지만, 그중에는 사적인 경험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 구조적 분석이랄지, 이론적 해명을 찾고 싶은 사람도 많을 거야. 다만 그 방법이 철저히 막혀 있으니까 에세이라는 창구로만 표출이 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사강 : 자료에 대한 접근성과 관련해서는 그런 생각도 들어. 논문과 학술 자료를 열람하는 데에서부터 접근이 제한되어 있다는 거. DBpia를 쓰려면 돈을 내거나 아이디가 있어야 하는데, 학교에 다닐 때에는 교수님 아이디를 빌려 썼어. 졸업한 지금에도 그런 논문을 읽고 싶지만, 아이디가 없어서 보기가 힘들어. 논문을 쓰는 작업이나 논문 자료 모두 철저히 제도화되어있는데, 지순협의 논문은 제도 바깥에서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는 고졸 또는 학사 수준의 사람들이 논문을 쓰면서 그 경계를 의문에 부치는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2장 경계를 걷는 일에 관하여  

01_학생이세요?라는 질문


케찹 :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20대들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 공통적으로 자기를 설명하는 일에 많은 힘을 쏟게 된다고 말하더라. 사강 너는 어땠어?


사강 : 길거리에서 ‘학생이세요?’라고 물어왔을 때는 사실 어떻게 답하든 상관은 없어. 그런데 어떤 프로젝트에 지원하거나 학생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곳에 입장할 때에는 증명이 필요한데, 나는 그런 게 없으니까…내가 거짓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학생이라는 대답을 일부러 안 했던 것 같아. 그리고 학생이라고 하면 ‘어디 대학을 다니냐’, ‘무슨 전공이냐’ 같은 질문이 따라와. 대부분 대안 대학을 모르고 과도 자율 전공인 듯 아닌 듯하기 때문에 설명이 어려워.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할  때 그렇게까지 궁금해서 하는 질문도 아니야. 거기에 내가 길게 답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하긴 했었어. 난 직장인도 아니고 재수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니야. 그런데 학생이긴 해. 나를 설명할 만한 언어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


케찹 :  활동이나 일자리에 지원할 때 제한을 받았던 경우도 많았을 것 같아.


사강 : 많지. 근데 대학생들 대상의 활동은 애초에 접할 일이 없어. 그런 활동은 제도권 대학 안에서만 공유가 되는 편이니까. 오히려 대졸이 아닌 데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경우가 많아. 작년에는 연구 보조원으로 일한 적이 있어. 학사 이상의 자격이 필요한 자리였는데 지순협 교수님을 통해서 일하게 된 거였어. 앞으로도 나는 학문을 하고 연구 쪽으로 일을 이어나가고 싶지만, 내가 대안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논문을 썼어도 할 수 있는 게 없겠구나, 싶더라. 다른 분야이면 모르겠지만 연구 분야이니까 접근성도 없고 제한이 돼. 지순협 교수님들 통해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케찹 : 지순협의 선생님들은 그 부분에 대해 어떤 입장이야?


사강: 지순협은 목적이 명확한 곳 같아. 공부하기 위한 곳. 졸업 이후의 연결이 안 되긴 해. 선생님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하시고. 사실 어느 대안 공동체이든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 게 공통의 딜레마인 것 같아. 내가 졸업한 대안 고등학교는 아예 제도권 대학 진학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고, 학교 분위기가 달랐던 친구들도 학교가 “꼭 대학을 가지 않아도 돼. 대학은 선택이고 대학을 가지 않는다고 너희가 실패한 것은 아니야.”라고 말하더라도 결국 대학을 가지 않았을 때의 대안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어. 외부에서 보면 나는 그냥 대학 안 나온 고졸이야. 내가 대안 학교에서 무엇을 했든, 딱 고졸, 그 단어만 보여. 선생님들이 도움을 주기는 하셔. 평론에 글을 싣게 해 준다든지 아까 말한 것처럼 연구 보조원 일자리를 소개해 주는 경우도 있고.


케찹 : 그래도 아직은 인맥을 통한 도움인 거고, 제도화된 도움은 없는 거지?


사강: 그치.


케찹 : 초중고 대학을 통틀어도 대안 교육기관의 가짓수가 적고, 학교 정원도 소규모로 운영이 되다 보니까 학교 입장에서도 물적 기반을 다지기 어려운 것 같아. 그래서 대안 교육이 새로운 중심을 만들기보다 제도권 변두리에서 나름대로 꾸준한 수요를 바탕으로 지속되고 있는 게 현재 모습이 아닌가 싶어. 졸업생들은 결국 주류 사회의 질서에 어떤 식으로든 마주하고 적응해야 하고. 이어지는 질문일 것 같은데, 사강 너는 미술 이론 분야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잖아. 대안 안에서 그 길을 찾아보고 싶다고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제도권 대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도 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뭐야?


사강: 나는 아마 제도권 대학에 지원을 할 것 같아. 내가 하고 싶은 미술 이론 분야는 정말 모든 곳에서 학위를 필요로 해. 지순협에서 공부를 하면서 다양했던 관심사가 하나로 좁혀졌고 이제는 그걸 정말 깊이 파고 들어가고 싶어. 대학을 가지 않아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제도권 대학을 생각하게 된 데에는 미술 이론이라는 분야인 게 커. 철학이나 페미니즘은 시민들 대상으로 강좌를 여는 교육 기관들이 꽤 있는 편인데, 미술사나 미학은 학과에 들어가지 않으면 공부를 하기도, 직업을 갖기도 어려워.


케찹:  대안 고등학교를 나와서 대안 대학까지 졸업한 만큼 사강 네 안에는 대안이라는 정체성이 깊이 새겨져 있잖아. 그래서 대안 안에서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을 것 같아. 또 요즘에는 자기를 알릴 수 있는 플랫폼이 워낙 다양해져서 대졸 학위가 반드시 필요한 시대는 아니기도 하고.


사강 : 맞아. 그런데 지금 하고 싶은 미술 이론 공부를 밀도 있게 하려면 제도권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나에게는 공부를 위한 풀이 정말 필요해. 그게 반드시 제도권 대학일 필요는 없어. 그런데 미술 이론이나 연구 분야의 범위를 그리다 보면 그런 결론에 다다라. 지금의 대안 판은 아직까지 좁기도 하고.


케찹 : 미술 이론이 특히 제한이 많은 것 같아. IT 같은 분야라면 학위의 중요성은 확실히 덜할 것 같은데.

사강 : 맞아, 그런 분야는 내 능력만 뛰어나면 될 텐데, 미학이나 미술사는 내 능력을 보기 전에 학위를 필요로 하니까.


케찹 : 창작과는 또 결이 달라서. 당장 갤러리를 차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강: 응, 그렇다 한들 고졸 큐레이터라고 한다면, 누가 그곳에 전시하고 싶어 할까 싶고.



02_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다른 결의 질문 하나를 꺼냈습니다. 대안 교육을 선택하는 것은 불안한 여집합의 경계를 걷는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에, 대안을 선택한다는 건 어쩌면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여력을 만드는 것은 경제적 조건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이 놓인 환경이 조성한 심리적 여건, 혹은 개인이 가진 특유의 성정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제도 교육의 문제를 인식함에도 대안 교육을 가능한 선택지로 떠올리지 않는 이유는, 제도 교육의 안정적인 토대와 그것이 보장하는 삶의 자리를 벗어나는 일이 큰 부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케찹 : 나는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너의 생각은 어때?


사강 : 약간 부유한?


케찹: 응. 위험을 택할 수 있는 여력, 최소한의 경제적, 심리적 안전지대를 가진 사람들. 물론 거기에는 자기의 타고난 성정도 있을 수 있어서, 무 자르듯 말할 수는 없긴 하지만.


사강: 모두가 부유한 건 아니야. 하지만 대안 학교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적인 건 맞아. 비인가 대안학교의 경우 국가 지원금이 없기 때문에 학비 자체가 엄청 비싼 편이야. 그리고 내가 다닌 학교뿐 아니라 다른 대안 학교도 가봤을 때, 장애인 접근성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 많은 대안 학교들이 산 넘고 물 건너야 하는 교외에 있는 편이잖아. 고등학교 때 했던 산악 등반이나 해외 이동수업 같은 활동을 생각해보면 장애인 참여가 쉽지 않은 활동들이 대부분이었어. 또 부모들이 교육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나 신념이 있어야 하는 것 같기도 해. 하지만 그렇다고 대안 학교에 오는 모든 학생들이 화목한 가정과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온 거라 볼 수는 없어. 지순협에 모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부유한 집단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았어. 다만 조건이나 상황이 있기 마련이기에, 대안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뭐랄까, 마냥 본인을 특별하게 여길 수는 없는 것 같아.


케찹 : 나름대로 주류에 있었기 때문에 비주류에 속할 수 있었던 거니까?


사강: 대안 교육을 받느냐 마느냐는 온전히 개인의 역량과 선택이라 보기는 어려운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대안 교육을 받았어, 그래서 뭔가 다르고 깨어있어.’라고 내세울 수 없지 않을까 싶어. 주변 환경과 운이 받쳐주지 않았으면 대안의 삶을 이어나가기 어려운 경우도 분명 있으니까.


케찹 : 사강, 너는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거야?


사강: 어떤 거, 지순협?


케찹 : 응.


사강: 고등학교는 모르겠어. 대안 대학은 갈 것 같아.



닫는 글


사강의 다음 일정으로 우리는 조금 서둘러 카페 밖으로 나왔습니다. 생각보다 가까이에 살고 있었다며 잠시 반가워했고, 곧 또 만나자는 인사를 고하고 반대 방향을 향해 각자 걸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의 걸음이 평소보다 조금 더 활기차게 느껴졌던 건 마냥 기분 탓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다르게 할 수는 없었을까?’라는 자책 어린 질문은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라는 문장으로 바뀌었고, 그것만으로도 일단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에서 20대 청년과 대학생은 동의어처럼 여겨지고는 합니다. 대학이 위기라는 탄식이 반복되지만, 캠퍼스는 정지된 삶의 풍경처럼 뒤로 물러난 채 질문받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저마다 다른 모양의 생채기가 난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확신합니다.


흰 용지에 쓰인 대학이라는 검은 두 글자에 우리 자신이 꼭 들어맞지 않아도 되도록, 그 위에 각자의 방식으로 비뚤고 기울여 쓴 이야기들이 겹쳐 결국 종이가 검게 칠해진 깜지와 같은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덧대어 쓰든 틀린 것도 이상할 것도 없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대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질문에서 출발한 이 인터뷰가 대학 위에 겹쳐 쓴 몇 글자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 상상을 시작하고 가능하게 해 준 사강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편집위원 케찹

(yooangie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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