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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68호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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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편집위원회 Feb 24. 2024

문우 비거니즘 집담회

정리정돈 아자

참여자  60, 나비, 데어, 아자, 야부, 어푸, 유연



1. 자기소개


나비    안녕하세요. 저는 진행자를 맡은 나비고요. 고등학생 때 비거니즘 관련된 거를 처음 찾아보고 그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자   저는 고1 때 처음 비건을 접한 플렉시테리언 아자입니다. 제가 고1 때 블로그를 했는데, 블로그 이웃이 에코 페미니스트셨어요. 그분의 비건 실천을 보면서 저도 따라서 요리해보던 게 시작이었습니다.

야부    저는 야부입니다. 비거니즘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어서 민망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플렉시테리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데어   저는 데어입니다. 처음 비건을 안 건 고3, 대1, 그사이쯤에 아는 지인이 비건이어서 알게 됐고, 저는 딱히 비건을 엄청 실천하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굳이 횟수를 세어본다면 일주일에 1번 정도.

60   저는 60이에요. 중학교 3학년 때 건강+환경 때문에 처음 관심을 가지고 폴로를 한 1년 정도 하고, 고등학교 때 페스코를 실천하기로 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유연   저는 유연이고요. 중학교 3학년 때 제가 동물실험 토론을 했는데, 그걸 준비하느라고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을 읽었어요.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아서 비건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한 일주일 하고 포기했어요. 왜냐하면 급식을 먹어야 되잖아요. 그 이후로는 별 생각 없이 살다가 대학 들어오고 나서 비건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그러면 나도 다시 해봐야지’라고 생각을 해서, 요즘에는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완전 비건을 실천하지는 못하지만 저는 카페 다니는 걸 좋아해서 비건 카페 찾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푸   저는 어푸입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옥자」를 과제로 봤었어요. 그때 독후감을 쓰면서 동물권에 대한 자료를 엄청 많이 찾아봤는데, (고기를) 먹으면 안 될 이유가 정말 많은데도 살다 보면 먹게 되더라고요. 그런 나를 되돌아보면서만 살다가 다시 학교 다니니까 비거니즘을 도전이라도 하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같이 도칼(‘도토리칼국수’라는 이름의 비건 옵션이 가능한 식당) 정식도 먹고 그러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2. 비거니즘이 어려운 이유


유연   확실히 대학에서 (비거니즘을) 배우고 실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데어   그전에는 급식 먹으니까 (어렵죠).

나비   제가 고등학생 때 비거니즘을 처음 접하고 트위터 같은 데서 완전 깨작깨작 찾아보다가 ‘야 이거 해야겠는데?’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럼 안 먹어야겠다’ 생각을 했는데, 급식을 먹잖아요. 또 저는 야간 자율학습을 했으니까 학교에서 중식 석식 다 먹는데. 당연히 급식에 동물성 음식이 나온단 말이에요. 저는 그때 먹는 거나 배부른 느낌을 되게 안 좋아했고 소화도 잘 안 되니까, (게다가) 굳이 영양소 균형을 맞춰야 될 필요도 못 느껴서 그냥 다 안 먹은 거예요. 그때 건강이 진짜 망했어요. 그런 식으로 실천을 해보고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싶었어요). 어쨌든 인간이 살려면 규칙적으로 식사를 해야 하잖아요. 먹을 때마다 동물성 음식이 있는지를 신경을 써야 된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대학교 와서도, 아직까지 솔직히 조금 힘들어요.

유연   어떤 제도나 무리 안에 있으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가정 내에 있을 때도. 제가 중학생 때 한 일주일간 어떻게든 (비건을) 해보려고 했던 때에, 가족들이랑 같이 수산시장을 갔어요. 그 상황에서 제가 하나도 안 먹겠다고 버틸 수가 없는 거예요. 나한테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 전혀 (거절)할 수가 없어서 먹으면서도 기분이 너무 안 좋았어요. 대학에 올라와서, 혹은 자취를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실천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어떤 공동체나 사회 안에 속하면 비건을) 강하게 밀고 나갈 수가 없으니까. 진짜 맨날 맨날 싸우고 싶지 않으면.

데어   맞아요. 저는 아직 본가 사니까 부엌에 대한 주도권이 없다고 해야 되나? 부엌을 누가 통제하냐가 중요한 요소인데. 왜냐하면 반찬 투정하면 안 되잖아요?

아자   그리고 요리하는 사람의 노고가 있으니까... 요리를 하거나 아니면 식재료를 구매하면서 가족 구성원들이 이걸 잘 먹을 거라는 기대가 있는데 그 기대를 배반하는 거기도 하니까.

데어 비건을 실천하는 건 학교에 다니면서, 그러니까 바깥에서 뭔가를 사 먹을 때인 것 같아요. 집에서 할 때는 아예 못하고.

아자   저는 사실 비거니즘 자체에 대해서 처음 접한 건 중학교 때인데, 아까 고1이라고 얘기를 했던 건 중학생 때는 오로지 다이어트를 위한 비건이었어요. 샐러드만 먹고. 그래서 가족들이 걱정도 많이 하고 반대도 했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고1 때 학업적인 이유로 자퇴를 했거든요. 그때 정규 과정에서 탈락되었다는 그 우울감으로 무기력증이 심하게 왔었는데 비건을 하면서, 그러니까 비건식을 요리하면서 성취감을 많이 얻었고, 그래서 가족들이 제가 비건 하는 걸 비교적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어요. 무엇보다 저희 가족은 어떤 한 사람이 부엌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있지 않거든요.

유연   신기하다.

아자   부엌에 있는 공책에 각자 돌아가면서 (원하는 식재료를) 적으면은 그날 장보는 사람이 장을 봐오고, 각자 요리해 먹고. 그래서 오히려 밖에서보다 집에서 비건을 실천하는 데 큰 무리가 없는 것 같아요. 아직 저는 본가에서 사는데도.

유연   이게 가족 분위기도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희 가족은 ‘뭘 하든 무조건 다 같이, 뭘 하든 무조건 하나로’ 이렇게 생활하는 가족이다 보니까. 하나를 먹을 거면 무조건 같이 먹어야 되고 (그래서 비건 실천에) 어려움이 있어요.

아자   또 다른 분들은 어떤 경험이 있나요?

야부   저도 고등학교 때 엄마랑 같이 「옥자」를 봤는데. 일정 기간만이라도 비건을 실천해 보자, 해서 하다가 결국 흐지부지 되긴 했죠. 그때 엄마랑 비거니즘 관련된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그러다가 유럽에서 랍스터를 살아있는 채로 요리하면 안 된다는 법안 있잖아요. 또 낙지나 문어 같은 생물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능이 높고 고통을 느낀다. 특히 산낙지. 그런 게 굉장히 폭력적인 음식일 수 있다. 이에 대한 기사를 보고 엄마랑 “앞으로 계속 비건은 못해도 그냥 산낙지만은 먹지 말자.” 했던 기억이 나요. 그게 좀 크게 인식했던 경험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그때부터 생물을 산 채로 펄펄 끓는 물에 집어 넣고 이걸 아무렇지 않게 보고 있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나비   고등학교 때 제가 토론 동아리여서 여러 고등학교가 모이는 토론 대회를 나갔었어요. 채식 관련된 책을 읽고 채식(을 주제로) 찬반 토론을 하는 거였어요. 저는 찬성측으로 토론을 하고 끝났는데. 반대측이 “채식을 하면 영양소를 충족하지 못한다. 병에 걸린다. 스님들이 병에 걸리는 거 못 봤냐”라고 얘기를 했어요. 심사가 끝나고 나서, 알고 보니까 심사위원분들 중 한 분이 10년 정도 완전 비건식을 하면서 사셨던 분이었던 거예요. 반대측 학생들한테 “그런 식으로 주장을 했더라, 나는 10년째 그런 걸 안 먹고 있다. 그런데 나 너희가 말한 (것과 달리) 건강에 문제 없고 잘 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서 반대측 학생들이 굉장히 당황했었거든요. 그걸 보면서, 물론 그 친구들이 반대측을 맡아서 어거지로 그걸 말했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을 수 있겠다고 느꼈어요. ‘비건 식단이 무언가 결핍되어 있고 기존의 식단에서 무언가를 차감한 것이라 불안전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겠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 인식을 좀 바꿔야 될 필요가 있어 보여요. 인식을 바꾸는 거는 직접접해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거 비건 음식인데 영양소도 (균형 잡혀) 있고 맛있고, 다른 논비건 음식과 다를 바가 없네. 이걸로도 먹고 살 수 있네’를 느끼게 해주는 여러 경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데어   저는 비건이 아닌 친구들을 모른 척 비건 음식점에 데려갑니다. 어차피 음식점을 정할 때 아무도 확실하게 주장하는 애가 없기 때문에 “그럼 우리 ‘호탕마라탕’ 갈까?” 이렇게.

유연   저도 중학교 때 (만난) 친구들 ‘뉴욕 B&C’ 데려가고 그랬어요.

데어 “얘들아 여기 채수 마라탕인데 깨끗하고 괜찮지 않아?” 이런 식으로 그냥 맛집 데려가듯이. 


    

3. 안녕하세요비건입니다.


아자   저도 이 방법 가끔 쓰는데, 모른 척 데려가서 여기 비건이라고 말하면 보통 생각보다 맛있다는 반응이에요. 비건에 대해 ‘신념을 위해서 맛을 포기한다’라는 식의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저는 제가 숭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사실 저는 거창한 신념을 갖고 있지 않은데…

유연   유독 비건에 대해서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육식 문화가 너무 보편적이라서 (비건 실천이) 더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나는 고기 안 먹어’라고 하면은 ‘왜 너만 착한 척해? 그러면 식물도 안 먹어야 되는 거 아니냐’ 이렇게 되고.

데어   (사람들이) 정치적인 이유에 되게 민감해요. 제가 비위가 약해서, 고기 누린내가 역해서 못 먹는다고 그러면은 제법 잘 이해해줘요. 근데 ‘나는 동물권에 관심이 많아서 육식을 안 한다.’ 아니면 ‘나 환경에 관심이 많아서 육식을 안 한다.’ 이러면 그 부분에 엄청 집요하게 달려드는 반응이 많은 것 같아요.

유연   유독 육식 문화에 대한 저항감을 드러내는 행위에 대해서 더 공격받는다고 느끼는 게, ‘나는 환경 때문에 분리수거 열심히 해’라고 하면 ‘너 진짜 열심히 산다’ 이렇게 되는데 ‘나는 환경 생각해서 고기를 안 먹어’라고 하면 ‘너는 왜 이렇게 유난떠냐’라는 반응이잖아요. 똑같이 환경이라는 이유임에도 불구하고 전자는 조금 더 이해받을 수 있는 영역처럼 여겨진단 말이죠.

아자   육식 문화가 한국에서 어떤 상징을 가지잖아요. 좋은 일이 있거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 고깃집에 가서 거하게 먹는다든지, 아니면 지친 일상을 끝낸 가장이 치킨을 사들고 온다든지. 보상으로 고기를 먹는 듯한 느낌.

유연   육식 문화가 너무 지배적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야부   분리수거나 에어컨 적정 온도 같은 거는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규칙이잖아요. 그래서 잘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분리수거 안 하면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고기를 안 먹으면 규칙을 깨는 사람인 거잖아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규칙. 그 차이인 것 같아요.

데어   (육식 문화가) 일상생활에 엄청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걸로 인식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내가 고기를 못 먹는다고 얘기하면 ‘어떡해’라는 반응이, 안 먹는다 하면 ‘(이 좋은 걸)왜?’라는 식의 반응이 오는 게 답답하죠.

유연   육식중심적인 문화가 만연할 때 막막해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매번 이해받을 수도 없는 거고.

아자   이해받고자 하는 것도 너무 피곤하고.

60   저도 이해시키는 게 너무 피곤해서 (이제는) 그냥 설명하기를 포기했거든요. 어렸을 때는 ‘난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에 못 먹고 앞으로도 먹을 생각이 없다.’라고 열심히 설명했었는데 이제는 ‘그냥 여러 가지 이유로 못 먹어’라고 얼버무려요. 그러면 (다들 제가 먹고 싶은데) 어떤 이유로 못 먹는 줄 알고 ‘불쌍하다. 그렇게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어떡해’ 이런 반응이 돌아와요. 거기에 또 말을 얹지 않고 그냥 넘어갔던 경험이 많아요.

나비   저는 고기를 소화를 잘 못해요. 몸에 안 받아요. 제가 ‘내가 이런 음식들이 몸에 안 받아서 못 먹어’라고 말하면은 훨씬 이해를 해준단 말이에요. (그러면) 갈등 없이 완만하게 넘어갈 수 있는데, 또 그렇게 말을 하자니제가 찜찜한 거예요. 내가 동물성 음식을 최대한 안 먹으려고 하는 이유는 (고기가 몸에 안 받는다는 이유보다) 동물권 등 다른 이유 때문인데. 물론 내가 당장 (동물성 음식을) 안 먹어서 얻는 효과도 있겠지만 ‘내가 비거니즘을 얘기하고 알리고 다녀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내적 갈등이 생겨요. 그렇다고 내가 계속 말하고 다니기에는 깡이 없고 힘들고 귀찮고. 설명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번거롭고 갈등 일으키기도 싫고.

데어   제가 어릴 때는 정말 비위가 약했기 때문에 고기를 못 먹었어요. 가족한테는 비거니즘을 설명하기보다는 “나 이거 이상해. 못 먹겠어, 구역질 나.”라고 둘러대요.

유연   저는 (인간관계를) 자주 보고 또 오래 볼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눠요. 제가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랑은 서로 SNS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어요. 평소에 슬쩍 채식주의 글 공유해서 내가 (직접 비거니즘을) 설명하지 않아도 걔네가 그렇게 정보를 접할 수 있게 해요. (동시에 친구들은) 내가 비거니즘에 관심이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관련된 얘기도 꺼내볼 수 있고요. 이를테면 전에 친구랑 여행 가서 “비건 식당 가볼까?”라고 얘기할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내가 자주 볼 것 같지 않은 사람들한테는,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는 굳이 얘기를 안 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갈등을 만들지 않고.

아자   저도 친밀한 관계에서는 (내가 어떤 이유로 비거니즘에 관심이 있고 왜 실천하려고 하는지를) 상세하게 얘기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굳이 그러지 않는 것 같아요.

유연   저는 엄마 아빠한테 가끔 “요즘 젊은 애들 사이에서는 비건이 유행이야.”라고 말할 때도 있어요. 그러면엄마 아빠가 “요즘 젊은 애들은 그래? 사회가 시대가 변했구나.”라면서 넘어가는 것 같아요. 설명하기 귀찮은데 내가 여기서 말을 안 얹는 건 좀 그럴 때 “요즘에 윤리적 이유 때문에 비건하는 애들 되게 많아. 요즘 비건 유행이야”라고 말해요

아자   또 저는 평소에 비건이 환경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같은 얘기를 흘려요.

나비   비건은 사회성이 필요하군요. 근데 너무 많이 요구되는 것 같아요. 힘들어요. 저희 엄마 아빠한테는 ‘요새 젊은 애들은~’ 화법이 안 먹힌단 말이에요. 본인들이 늙어가고 있고 젊은 세대들에게 밀려날 기성세대라는 것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계세요. 게다가 저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본인들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누리는 새로운 세대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말하는 걸 굉장히 안 좋아하세요. 또 실례가 되는 행동이고?

아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유연   그럴 수도 있겠다.

나비   그래서 어떤 식으로 얘기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제가 엄마 아빠보다 학벌이 좋고 서울에 와서 다른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게 사실이고,  (비거니즘 실천에 계층적 면모가 미치는 영향도 크기 때문에) 엄마 아빠한테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굉장히 껄끄러워요.

야부   가르치는 것처럼 느껴질까봐.

유연   그런데 불교에는 살생하면 안 된다는 교리가 있어서 스님들도 고기를 안 먹잖아요. 이거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비건이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하면은 이상하거나 신기하게 생각하는 게 이유가 뭘까요? 둘 다 똑같은 이유로 고기를 안 먹는데.

나비   아까 야부가 말했던 거랑 비슷한 이유 아닐까요? 규칙, 종교의 자유.

야부   스님은 ‘우리’라고 규정되는 사람들에 속하지 않잖아요. 새벽에 일어나서 수양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으니까...

데어   또 불교는 인간과 동물의 우열을 부정하지는 않잖아요. 왜냐하면 동물은 인간이 전생에 죄지어서 그렇게 된 거니까. 동물권을 생각해서 비건을 하는 사람들은 동물과 인간이 우열 관계에 있지 않고 동등하다고 생각하니까, 이 점이 유독 이해받지 못하는 지점이 아닐까.

유연   그럴 수도 있겠다.

데어   저희 엄마는 집 근처에 농장이 있었고, (동물을 죽이는) 잔인한 장면들을 저보다 훨씬 더 가까이서 생생하게 보셨겠죠. 그래서 엄마 같은 사람한테 잔혹함은 별로 신경 쓸 문제가 아닌 거예요. 왜냐하면 동물은 그래도 괜찮거든요. 인간과 동물이 수직적인 관계라는 인식이 너무 지배적인데 불교는 그거에 태클 걸지 않잖아요.

나비   많은 비건들이 잔인한 도살장 영상 같은 걸 가져와서 “이 영상을 보면 비건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이게 사람마다 먹히는 게 다른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데어가 얘기한 경우처럼. 애초에 인간과 동물의 위치 자체를 다르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물론) 잔인하고 불쌍하긴 한데 우리가 살려면 어쩔 수 없는데’라고 생각을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잔혹함이나 죽음을 강조하는 것도 필요하고 너무 중요한 지점이지만 동물권에서 주창하는 것은 동물과 인간이 별 큰 차이 없다(는 거니까요). 그걸 얘기하는 게 중요한데, 우리가 나눈 아주 많은 이야기처럼 굉장히 이야기하기 힘든 주제예요. 비거니즘이라는 주제를 말할 때 인간의 잘못을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어떻게 비거니즘의 핵심적인 개념을 잘 설명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유연   그게 우리한테 어느 정도의 의무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비건과 관련된 에세이를 읽었는데 ‘주변인들을 최대한 설득해 보라’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런데 너무 막막한 거예요. 어떻게 하면은 “우리 고깃집 말고 딴 데 가면 안 돼? 그래도 재밌을 수 있잖아”라는 말을 관계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할 수 있지?     



4. 비건 유행?


나비   대학교에서 이게 너무 어려웠어요. 저는 부산에서 살았기 때문에 여기에 뿌리 내리고 있는 무언가가 전혀 없었으니까, 새로 들어온 공동체에서 내가 그런 식으로 굴면 절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건 관련해서 무언가를) 시도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제가 문우 같은 공동체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비거니즘에 대해) 아예 생각도 못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비건 옵션이 있는 식당을 찾아본다거나 비건 카페에 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을 것 같아요.

유연   주변인이 비건 실천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연결될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저 이대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이대 다니는 친구가 “이대 앞에 이런 카페가 있는데 비건이래. 그래서 너한테 얘기해 주고 싶어서 연락했어.”라고 하더라고요. 그 때 지지받는 감각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게 되게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요즘 비건에 대한 모종의 적개심 같은 게 잘 형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건 실천을 안 하는 사람이라도, 비거니즘에 관심이 그렇게 없어도 내 친구가 그렇게 한다고 하면 지지해 줄 수 있는 관계가 있는 게 저한테 되게 소중하다고 느껴졌어요.

나비   맞아요.

어푸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비건) 공동체가 필요한 것도 맞는데. 비거니즘을 우리가 대부분 대학에 와서 경험하고 실천하게 된 것이 사실인 것처럼 어느 지역에서 사느냐, 어떤 사회적 계급을 누리면서 사느냐, 어떤 가족 관계를 형성하면서 사느냐에 따라 정말 차이가 많이 나잖아요. 비거니즘을 딱 제안했을 때 아예 다른 인식 체계를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이 가해자로 지명당한 듯한, 놀란 리액션을 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지는 않거든요. 우리가 육식이 당연한 세계에서 자라고 그게 어떤 위치에 이르지 않는 이상 (육식 문화가) 보편원리로 존재하는 세상에 있는데 그것이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지목(당하면 놀랍죠). 우리가 채식하고 싶다고 말을 할 때는 그것이 옳지 않기 때문에 말을 한다는 것이 이미 사회적으로 공유가 되어 있는 상태잖아요.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공동체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공동체가 어떤 것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인지하는 것도 이 비거니즘이라는 운동이 가지는 계급성을 성찰하면서 실천하려면 중요한 것 같아요.

나비   이 계급성을 정말 많이 느껴요. 일단 부산에 살다가 와서 여기 올라와서 보니까 이대 쪽에 보면 비건식당 한 서너 개 있잖아요. 홍대 쪽에 비건 검색하면 (잔뜩) 나오고. 그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부산에서 비건 식당 찾으면 (검색 결과가) 하나도 안 나온단 말이에요. 게다가 저는 개발이 덜 된 동네에 살았어가지고 아예 그런 게 없었어요. 물론 비거니즘이라는 주제 하에서 모든 인간들이 가해자인 건 맞지만 비거니즘을 좀 더 잘 실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있고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비거니즘이라는 걸 접하는 데에 있어서도 그런 계급성이 아주 많은 작용을 했겠죠. 학벌이나 지역, 재력 같은 것들.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을 딱 지목하면서 ‘너도 잘못을 하고 있고 너도 비거니즘을 실천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망설여지는 거예요. 아까 어푸가 얘기했던 것처럼 그 사람이 나와는 다른 인식 체계를 가지고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고, 수많은 다른 점들이 존재하고 있을 거기 때문에. 이 운동의 계급성이 너무나 명확하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되게 힘들어요. (중략) 한편으로는 비거니즘의 계급성에 관한 이야기가 고루하다고 얘기하는 비건들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게 (비건이 듣는 반박 논리의) 주력이 되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예를 들면 ‘비건 음식 너무 비싸서 돈 있는 애들만 비건 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혐오의 논리와 합쳐져서 쓰이는 경우도 꽤 있고요. 그런데도 저는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얘기를 계속했으면 좋겠는데, 어떤 식으로 이걸 풀어나가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접근성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주변에 비건 옵션을 제공하는 식당이나 비건을 실천하는, 혹은 관심 있는 사람이 많아질 테니까 당연히 (실천)하기 쉬워질 텐데, 이건 너무 먼 미래의 일인 것 같고, 너무 큰 단위의 변화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를 못하겠어요. 그래서 힘들어요.    


      

5. 비건 실천에서의 계급성


나비   아까 유연이 얘기했듯이 ‘MZ세대 비건 열풍’ 같은 식으로, 최근에 비건이라는 이름을 단 상품이나 기획 등이 굉장히 많아지고 있는데 그런 트렌드를 환영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유연   또 비건이 건강하고 친환경적이라고 마케팅 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유기농 마케팅하는 것처럼.

나비   그런 식으로 셀링이 되는 게 동물권을 주지했으면 좋겠는 입장에서 조금 불편하면서도, 이렇게라도 해서 사회에 비건 제품에 관해 접근성이 좋아지고 좀 더 알려진다면은 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같이 들어서 기분이 좀...

유연   비건은 정보에 대한 접근 자체가 힘들다고 생각해서 정보적인 면에서 조금 더 장벽이 낮아졌으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기후위기는 다들 공감하고 있잖아요. 학교에서 계속 가르치기도 하고.

나비   교육을 했으면 좋겠긴 한데 저는 교육만능주의도 싫어서 제안을 뚜렷하게 제시를 못하겠어요.

아자   요즘 학교에 채식의 날 있지 않나요?

데어   네, 있어요.

아자   학생들의 선호도가 그렇게 좋지 않다고는 들었지만 채식의 날 지정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아니면 나비가 쓰는 글처럼 대학 식단을 비건으로 한다거나. 아까 우리 처음에 학교 급식 먹는 입장에서는 비건 실천을 할 수가 없다는 얘기를 했었잖아요. 그래서 학교에서 채식의 날을 지정함으로써 고기가 너무 당연했던 일상에서 조금 벗어나는 때를 경험해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 얘기를 했어요. 비건 하면은 샐러드가 너무 주된 것 같아서. 샐러드가 아닌 비건식이 충분히 있잖아요. 근데 학교 비건식이 그렇게 대단하게 나오지는 않더라고요.

나비   맞아요. 이게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비건식이라는 것은 논비건 식단에서 동물성을 뺀 게 아니라 동등한 영양소를 제공할 수 있게끔 꾸려진 그저 동물성 식품이 없는 식단이라고 설명하는 글을 봤거든요. 샐러드 먹는 비건을 지향하자는 것보다는, 우리가 지금까지 충족해왔던 영양소를 동물성 식품 없이 먹자는 거라고 인식해줬으면 좋겠어요.

아자   개인적으로 비건 유행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는 게, 물론 별로인 점이나 한계도 분명 존재하지만, 어쨌든 그동안 비건이 약간 유별난 취급을 받았었는데 오히려 유행이 됨으로써 덜 유별나보이고 왠지 쿨하다는 이미지가 생기잖아요. 그렇게 비건에 한 번 도전해 보는 사람도 몇 명이나마 더 생길 거고.

야부 맞아요.

60   비거니즘이 운동적인 성격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라이프 스타일 중에 하나잖아요. 최근에는 이미지가 라이프 스타일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비거니즘도 하나의 선택이라는 거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조금 많아진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까 수요가 생기면서 아무래도 기업에서 많은 상품을 내는 쪽으로 방향이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많이 느꼈어요. 과거에는 비건을 운동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오히려 거부감도 극렬했던 것 같아요.

유연   근데 그러면서 비건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왜곡되거나 그러는 경우도 많을 것 같아요.

나비   그게 딜레마예요.

데어   오프라인으로는 확실히 거부감이 덜해진 것 같아요. 근데 온라인에서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요즘 샐러드가 아닌 비건식이 많이 나왔잖아요. 그런데 그런 비건식, 특히 대체육을 먹을 때 “너희도 결국 고기 맛이 그리웠던 거 아니야?” (라는 반응이 있어요).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이 숭고해야만 한다고 규정하는 느낌이 들어요. 고행하는 느낌으로 비건을 하는 사람이어야만 내가 인정하겠다는 식의 인식이 좀 있지 않나. 

아자   저는 다이어트 수단으로서 비건을 시작해서 점점 공부하면서 다른 이유들로 더 열심히 하게 된 사람이라, 비건이 유행하거나 소위 ‘패션 비건’이 생겨나는 게 마냥 안 좋게 보이진 않아요. 물론 제가 너무 낙관적일 수도 있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단지 멋있어 보여서 (비건을) 시작한 사람도 ‘왜 해?’라는 질문을 받을 거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비건에 대해 알아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결국 비건에 대해서 더 공부하지 않을까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해요.

나비   저도 동물권을 이유로 비건 수행을 하는 게 아닌 사람들의 경우에도 낙관적이에요. 비거니즘에 관해 찾아보다 보면 (검색해서) 나오는 결과는 다 비슷하단 말이에요. 동물권을 이유로 행동하는 비건들이 보는 거나 그 사람들이 볼 거나 다 비슷할 거거든요. 게다가 인터넷이라는 게 타고 타고 흘러 들어가다 보면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저 사람이 저 사람이고 서로 섞이는 것 같거든요. 온라인에서 접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그들이 식물성 식단을 찾아 먹는 건 똑같기 때문에. 그렇다보니까 저는 이렇게 아자 같은 케이스가 꽤 많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치만 소위 반동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가 그렇게 박하지 않았으면 하고 그런 생각에 대해서 들어보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자신과 다른 의견이라든가 주류 사회와 맞지 않는 의견을 들었을 때 싸우기보다는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강한 공론장이 조성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요. 사실 그렇게 되면은 비건들 스트레스 받을 일도 훨씬 적을 것 같아요.    


 

6. 마무리


나비   더 이야기할 게 있을까요?

데어   어떻게 비건 실천을 잘 해나갈 수 있을지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비   해시태그 ‘나의 비거니즘 일기’ 찾아보기, ‘연두’ 사기.

데어   저는 한 사람이 평생 완전 비건 (실천)하는 것보다 4인 가족이 일주일에 두 번 비건 (실천)하는 게 절대적인 육류 소비량을 줄이는 데에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를 희망으로 삼아요. ‘내가 친구들을 (비건 식당에) 끌고 가면은 어쨌든 이 사람들이 한 끼를 비건식을 먹는 거니까, 내가 하루종일 비건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겠네’라는 미약한 희망을 믿는 것 같아요.

나비   점진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아자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예전에 누가 ‘왜 문우는 단체 식사를 할 때 비건 식당, 혹은 적어도 비건 옵션이 가능한 곳을 가려고 하는지’를 설명할 때 “어차피 딴 데서 단체로 밥 먹을 때 고기 많이 먹잖아요. 이럴 때 아니면 비건식 언제 먹어보겠어요”라고 말했었거든요. 저는 그게 되게 인상 깊었어요.

유연   우리 봄 소풍 때였나?

아자   그랬나요? 아무튼 그 말이 인상 깊어서 가끔 사람들을 비건 식당에 끌고 가고 싶을 때 써먹어요.

데어   한 수업에서 교수님이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요. 당신은 페미니스트로서 그런 생활 양식도 있다는 거를 수업에서는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만약에 수업에서 회식을 한다면 자기는 비건 식당으로 갈 거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나비   또 실천할 수 있는 방안 뭐 있을까요?

아자   요즘에는 비건 냉동식품도 꽤 많잖아요.

나비   요새 풀무원에서 비건 음식 많이 내더라고요. 저는 다 나쁘지 않았어요.

야부   요새 사람들이 코로나 이후로 도시락을 많이 싸서 다니잖아요. 그래서 다 같이 메뉴를 통일해서 먹을 필요도 줄어들고, 내가 지향하는 대로 먹을 수 있고.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기업에서도 이런 트렌드를 따르기 위해서 비건식을 많이 내놓게 되는 것 같아요.

나비   개인적으로 저는 (비거니즘에 대해) 설명을 할 수 있는 자리에서는 (설명)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부담스러운 관계에서가 아니라 친한 친구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조금 얘기를 해봤으면 좋겠다. 

유연   (비건을 실천하는 주변인의) 존재 자체를 알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를테면 아까 아자가 블로그 이웃이 비건 해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아자   어떤 사람과 친해지고 나면 그 사람의 관심사를 알잖아요. 저는 그 사람의 관심사를 비건이랑 엮어서 얘기해보기도 해요.

데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비거니즘에 대한) 거부감이나 적대감을, 나와 그 사람 간의 친밀감으로 뭉개버릴 수 있을 것 같다면 좀 밀어붙여 보기도 하고.

아자   동아리 같은 데서 비건 소모임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 게, 비건 맛집 탐방 소모임 이런 식으로 하면 친목과 엮어서 할 수 있잖아요. 혼자 비건 식당 가보는 것보다 친구랑 만나는데 장소가 비건 식당인 게 심적으로 부담이 덜 하기도 하고. 그리고 소진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비   죄책감을 가지되 탈진하지 않기. 마무리 멘트 어떻게 할까요?

유연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비건들이여. 파이팅하시길.

어푸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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