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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68호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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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편집위원회 Feb 24. 2024

대학 비건 주절주절

편집위원 나비

  대학생이 되면 먹고 싶은 것만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지방 사람인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게 된다면 본가에서 주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니 논비건인 식품을 굳이 먹을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식재료를 꼼꼼하게 체크해서 사고, 요리도 뚝딱 해내고, 냉장고 관리도 잘하는 그런 환상 속에 그려질 법한 모습을 꿈꿨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었다. 집담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난관이 많았다. 그래서 쪽글을 계기로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데 있어, 지금의 대학이 가진 비거니즘적 문제점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대학이 비거니즘을 실천하기에 더 좋은 환경이 될 수 있을까?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데 있어, 지금의 대학이 가진 비거니즘적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고쳐야 할까?     


  대학교에서 비거니즘을 실천하기 어려운 이유를 아주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접근성이다. 특히 식사를 할 때 그렇다. 대학에서는 보통 학식이나 주변 식당을 통해 끼니를 해결한다. 하지만 학식 혹은 대학가의 식당들에서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기는 매우 힘들다.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아 보이는 음식들도 모든 재료를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먹어도 되는 음식이라는 보장이 없다. 애초에 비건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으니 비거니즘을 실천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연세대학교가 위치하는 서울-신촌 부근의 식당가는 다른 지역보다 비건 음식을 찾아보기 쉬운 편이나, 그 수가 압도적으로 적다.

     

  다른 하나는 사회 분위기이다. 이는 접근성과도 밀접한 문제이다. 사회 분위기가 너무나도 인간중심적이고, 육식중심적이기에 가깝게는 다양한 인간관계 하나하나에서의 비거니즘 실천이 어렵고, 나아가 사회 전체의 비거니즘 친화성이 낮아진다. 비거니즘 실천을 하는 경우 자신이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걸 상대에게 밝혀야 한다는 점 때문에 친구와 식사를 한다거나, 회식 등 특정 공동체의 단체 식사 자리에 가는 일들이 꺼려진다. 악의 섞인 말을 들을까 봐, 공동체의 ‘단합’과 ‘분위기’를 깰까 봐 걱정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비거니즘이 확산되기 어려워, 비거니즘적 실천이 계속해서 힘든 일로 남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물론 모두가 굳은 의지, 충분한 돈, 비거니즘 실천을 가로막는 장벽이 없는 환경 등을 가졌다면 접근성이나 사회 분위기에 구애받지 않고 비거니즘을 실천할 수 있었을 테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한정된 공동체 안에서도 각자가 영위하고 있는 생활과 환경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각자의 환경에 따라 실천 가능한 행동의 범위가 너무나도 달라지기 때문에, 대학에서 비거니즘의 실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 차원에서의 논의가 필수적이다. 


  대학에서 바꾸어나갈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변화는 학식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먼저 학식의 기본이 비건 음식이 되어야 한다. 이미 여러 대학이 이런 시도를 하는 중이다. 영국에서는, 한국에서도 “멸종반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환경 단체인 “Extinction Rebellion”의 활동으로 여러 대학에서 비건 학식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고, 학생 운동이 전개되었다. 켄트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 등 다양한 대학들에서 비건 학식 옵션 제공 혹은 비건 학식을 기본으로 두는 안에 대한 학생 총투표가 이루어졌고 모두 찬성 의견이 높은 비율을 보였다.[1][2] 독일의 경우에도 베를린의 몇 대학이 2021년 10월부터 도시에 분포한 여러 구내식당에서 육류 메뉴가 아닌 식물성 메뉴를 기본 옵션으로 제공하기로 하였다.[3]

    

  이러한 전환은 보통 환경적인 이유로 이루어졌다. 독일 베를린의 경우는 온실 가스 감축을 목적으로 학식을 바꾸었다. 동물성 식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공장식 축산은 산림을 베게 하고, 교통수단과 맞먹는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가축은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메탄가스를 배출한다. 이는 에코페미니스트가 대부분 육류 소비를 지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해외 대학의 경우, 환경적 사유가 대두되기 이전에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할랄 음식(이슬람교도가 먹을 수 있는 음식) 등 채식 옵션을 만들어두는 경우가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선택지로서의 채식 학식조차 잘 시도되지 않는다. 당장 연세대학교만 보아도 외국인 교환학생이나 유학생이 대거 재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학식당에서 할랄 인증과 관련된 표시나 안내를 찾아볼 수 없다.          


  지금 한국의 대학교들이 어떤 학식을 제공하는지 알아보자. 연세대학교의 경우 모든 캠퍼스에서 채식 식단에 대한 명시적인 지원이 없다. 불교 재단이 운영하는 삼육대학교는 종교적 이유로 전면 비건 학식을 제공한다. 동국대학교는 2019년까지 육류를 사용하지 않은 학식 코너를 운영하였다.[4] 서울대학교는 채식 뷔페를 제공하는 감골식당을 운영한다.[5] 이외에도 중앙대학교에서는 2021년 2학기 동안 총학생회의 요구로 비건 학식을 도입하였으나 수요가 적다는 이유로 중단되었다.[6] 이렇듯 몇 군데의, 주로 수도권의 대학교에서만 비건 학식이 제공되고 있고 그마저도 일시적으로만 제공되고 이후에는 중단된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교는 전혀 이러한 제도가 없다.     


  많은 학교가 그랬듯, 환경적인 이유로라도 대형 기관에서 비건 음식을 기본으로 제공할 이유는 충분하다. 다른 대학은 몰라도, 운용할 수 있는 재원이 많은 연세대학교 같은 대학들부터라도 그런 결단을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환경적인 이유나 종교적인 이유에서의 채식 기반 학식 제공은, 내가 꿈꾸는 ‘그저 동물이 죽기 때문에’ 채식을 하게 되는 변화는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학식이 바뀐다면 대학 구성원들은 비건 식사에 익숙해질 것이고, 이런 식사가 영양상의 문제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며, 비거니즘에 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학식의 변화를 위해 동물권에 입각한 사유 및 입각하지 않은 사유 모두로 대학에 연루된 모든 공동체가 함께 노력하고 건의하고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러한 목소리의 바탕이 될 비건들의 공동체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거니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만남의 장을 만들고, 할 수 있는 일들을 논의해 보았으면 좋겠다.    

      

  사실 비거니즘으로의 전환은, 애초에 아예 새로운 생활양식을 권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비거니즘에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혹은 적대적이기까지 한 사람들을 ‘설득’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 끝나지 않는 고민의 주제다. 또한 지금의 비거니즘은 당연히 각자 더 실천하기 쉬운 위치의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어떻게 이 모든 사람들이 더욱 비거니즘적 생활양식을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을까?     


  명확한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그렇기에 비거니즘에 연관된 경험의 확산이 중요하다. 비거니즘에 연관된 경험의 확산은 비거니즘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을 설득하는 데에도, 상대적으로 비거니즘을 실천하기 어려운 환경을 개선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비거니즘이 사회의 보편적인 사상이 된다면, 많은 기관의 식사 및 식문화가 비건 친화적으로 바뀔 것이고, 비건 상품의 종류와 개수가 현재의 논비건 상품의 종류와 개수만큼 많아져 경쟁이 심화되면서 가격도 내려갈 것이다. 물론 이런 간접적인 효과뿐이 아닌, 실질적인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왜 비거니즘을 실천하고 싶어도 못 하는 일들이 발생하는지 알아내고 해결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영향력이 큰 동시에 값싼 제품을 판매하여,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선택되는 여러 프랜차이즈 대기업에서 동물을 사용하지 않은 제품을 활발히 고민하고 출시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이를 위해 정부의 사업이나 권고, 정책이 필요하다. 

         

  언젠가 비인간동물들의 말을 인간의 말로도,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의 말로도 번역할 수 있는 번역기가 등장한다면 모든 인간은 동물들의 말에 미쳐버리고 모든 동물은 서로 규합하여 인간을 말살할 것이라는 대화를 친구들과 한 적이 있다. 너무 비관적인 전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꽤나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비인간동물에 대하여 철저한 억압을 자행하는 명백한 가해자이다. 그래서 비거니즘이 필요하다. 단순히, 동물이 너무나도 뿌리 깊고 심각한 학살과 폭력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당해왔기 때문이다. 이기적으로 인간의 측면에서 바라보아도 비거니즘은 가치가 있다. 비거니즘은 완전한 타자가 겪는, 자신은 평생 겪을 일이 없는 고통에 대해서 연대하고 생각하게 하는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이 보편화되면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단절되어’ 있다고 느끼는 타자와의 연대가 쉬워질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세상도 훨씬 살만해질 것이다.     


  그래서 대학이라는 공동체에서의 고민과 변화가 중요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지만, 지금의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대학을 거쳐간다. 그 말은 즉슨 많은 사람들에게 대학에서의 ‘식사’의 순간이 꼭 찾아온다는 것이다. 식사는 비거니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핵심적인 주제다. 그래서 대학에서부터 학식과 단체 식문화의 변화가 이루어진다면, 꽤 많은 사람들이 바뀔 것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더 큰 사회 변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학에서 동물성이 아닌 식단으로도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할 수 있었던 경험과,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점차 비거니즘이 전체 사회에서 정말로 ‘유효한’ 사상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1] Nicole Axworthy, “Students Vote Meat Off Campus at University of Kent to Save Planet”, VegNews, 2023.07.07., https://vegnews.com/2023/7/kent-university-meat-off-campus 

[2] Nadeem Badshah, “Cambridge University students vote for completely vegan menus”, The Guardian, 2023.02.21., https://www.theguardian.com/education/2023/feb/21/cambridge-university-students-vote-for-completely-vegan-menus 

[3] Phillip Oltermann, “Berlin’s university canteens go almost meat-free as students prioritise climate”, The Guardian, 2021.08.31.,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1/aug/31/berlins-university-canteens-go-almost-meat-free-as-students-prioritise-climate 

[4] 강유리, 나민서, “비건인데 학식 먹을 수 있나요? 채식 학식 도입 어려운 이유는”, 이대학보, 2022.09.15., https://inews.ewha.ac.kr/news/articleView.html?idxno=70331 

[5] 김서은, “채식 학식이 당연한 권리의 보장이 되려면”, 서울대저널, 2022.05.19., http://www.snujn.com/news/56079 

[6] 김주연, “대학 내 비건, 존중받고 있나”, 중대신문, 2023.05.08., http://news.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38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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