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위에서

편집위원 찌부찌

by 문우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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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는 지금껏 사람들이 은은하게 가지고 있던 인종차별적 정서를 보다 직접적인 혐오 표현으로 탈바꿈시켰다. 우연히도 바이러스의 발원지가 ‘동양’이었기 때문에, 혐오를 주고받는 관계에서 늘 우위에 서던 백인들의 동양인 혐오가 특히 절정에 달했다. 중국인에 대한 혐오는 점차 동양인 전반에 대한 혐오로 확대되었으며, 시간이 갈수록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1]



길에서 마주치는 동양인을 잠정적인 보균자로 취급하여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일은 다반사였다. 인터넷에서는 유럽이나 미국에 거주하는 동양인을 중심으로 길을 지나가다가도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말과 함께 인종차별적인 언행을 들어야 했던 경험이 다수 제보되었다.[2] 환자의 실제 국적이나 출신지와는 무관하게 동양인의 외형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진료를 거부하는 병원의 사례가 보도되었으며,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가해지는 물리적인 폭력도 예외는 아니었다.[3] 인종에 따른 혐오 정서가 ‘안전을 위해’라는 말 한마디만으로 최소한의 거름망도 없이 자꾸만 분출되는 시국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혐오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은 어느새 동아시아 바깥에 거주하는 동양인에게는 보편적인 일이 되어 있었다.



이처럼 동양인에 대한 전반적인 차별 및 혐오 정서가 서구권 국가들에 빠르게 전파된 데에는 바이러스 확산 초기의 언론 보도에도 책임이 있다. 독일의 주간지 ‘슈피겔’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특별 기사의 제목을 ‘Made in China’라고 붙이고 방독면을 쓴 동양인 남성의 사진을 전면에 배치한 바 있으며, 프랑스 신문인 ‘르 쿠리에 피카르’는 같은 주제의 기사를 다루며 1면 가득 마스크를 쓴 동양인 여성의 사진과 함께 ‘황색 조심(alerte jaune)’이라는 문구를 배치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대놓고 ‘차이나 바이러스’라 명명하거나, 중국의 국기에 바이러스 입자를 그려 넣은 일도 있었다.[4]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명성이 세상에 조금씩 드러나던 시점에 발생한 일이었다. 이와 같이 대다수의 언론은 전염병의 근원을 특정하고 그들에 대한 적대 정서를 앞장서서 퍼뜨림으로써 자극적인 기사들을 보도했고, 그 과정에서 보도 대상이 된 집단에 대한 적나라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고 정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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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로 독일 주간지 ‘Der Spiegel’의 2020년 2월 1주 표지와 프랑스 신문 ‘Courrier picard’의 2020년 1월 26일 1면의 사진이다.


이미 바이러스 보균자로 낙인찍힌 동양인에게는 공적 기관들 또한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아니, 도움을 주지 ‘않았다’. 지난 4월, 독일 베를린 지하철에서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한인 유학생 부부에게 ‘해피 코로나’와 같은 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밀치거나 침을 뱉는 등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 있었다. 부부의 신고로 곧 현지 경찰이 출동했지만, 그들은 “코로나라고 비웃는 것은 인종차별이 아니”라며 도리어 가해자들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말한 부부의 행동을 지적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수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일관하던 경찰은 주독 한국대사관 측이 개입하고 나서야 곧바로 사건을 접수했다.[5]



한순간 전 세계를 강타한 ‘무차별적인’ 전염병으로 인해 그 어떤 사람도 병에 걸릴 수 있다는 불안이 곳곳에 감돌았다. 그러나 바이러스의 근원지가 특정되어버린 상황에서, 다른 지역에 거주하기 때문에, 눈으로 보이는 인종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을 탓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떠안아야 하는 불안과 부담은 결코 동등할 수 없었다. 바이러스 확산의 시발점은 어디든 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비난을 받는 집단은 누구든 될 수 있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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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외국에서 전해져오는 이러한 소식들에 분노한다. 그게 어디든, 또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과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부당하게 차별을 받는 일은 달갑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일 누군가 부당한 차별에 대하여 분노한다면, 그 분노의 대상은 ‘차별적인 언행을 한’ 사람이어야 한다. 똑같이 차별을 받는 처지에 놓여있다면 더는 누구도 상처받지 않도록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일련의 사태들을 돌아보았을 때 정말로 우리가 이 마땅한 일을 지켜왔는지는 고민해보아야 할 일이다. 혹시 ‘억울하다’는 이유로 또 다른 집단이나 개인에게 ‘내가’ 겪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불안을 떠넘긴 것은 아닐지.



아시아인 전반에 대한 차별에 공분하던 움직임. 그 이면에는 한국 내에서 타자로 분류되어 버린 이들의 불안이 있었다.



2020년 초, 중국에서 막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존재가 한국의 언론에 보도될 즈음부터 사람들은 새로 등장한 전염병과 중국인을 같은 선상에 놓기 시작했다. 기피 대상이 된 것은 이미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던 중국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얼굴만 보아서는 한국에 들어온 시기를 알 수 없으니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다. 1월 20일, 한국에서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로 중국인을 향한 비난과 기피는 급격하게 심화하였다. 중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즐겨 찾던 식당으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출입을 금지당한다거나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를 통보받는 이주민들의 수가 늘었다.[6] 중국인 입국자를 막아달라는 국민 청원은 76만 명이 넘는 동의를 얻어냈다.[7]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심각했다. ‘혐오’라는 키워드 뒤에는 어느새 ‘중국’이 따라붙고 있었다. 입국 금지 청원이 올라옴과 동시에 중국인들을 낮잡아 부르는 혐오 표현인 ‘짱깨’라는 언어 또한 1주 전에 비해 15.5배인 10,129회가 사용되었다.[8]


3-2.png?type=w800 국민청원 웹사이트에 게시된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이라는 청원글에 761,833명이 참여한 스크린샷 사진이다.
3-1.jpg?type=w800 위의 중국인 입국금지 국민청원이 발생하고 ‘짱깨’라는 표현이 언급되는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이다. 위의 기사.



연세대학교 학내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서도 이러한 말들이 여과 없이 등장했다. 여기서는 중국인 학생들이 연세대학교의 일원으로서 함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코로나 19’를 ‘우한 폐렴’으로 일부러 고쳐 부르거나 혐오 표현을 사용하며 어서 돌아가라는 등 폭력적인 발언을 일삼는 행위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정식 명칭이 확정되기 이전 사용하던 ‘우한 폐렴’이라는 말이 자칫 중국인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언론 대부분이 사용을 지양한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현상이었다. 개강을 준비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은 혹 국적이 드러나면 자신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까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으며,[9] 이주 노동자를 비롯한 이주민들은 당장의 생계를, 또 차별이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하게 일어날 것을 걱정했다.[10] 확산하여가는 바이러스와 함께 확산되는 불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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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를 ‘우한 폐렴’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내 에브리타임 캡쳐


이후 신천지 교단에서 발생한 ‘슈퍼 전파자’로 인해 한동안 대구·경북 일대의 코로나 19 확진자가 급증하는 일이 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언론은 집단감염의 시발점이었던 신천지 교단을 집중적으로 화제의 중심에 올려두는 한편 이미 많은 확진자가 생긴 대구·경북 지역을 두 번째 분리 대상으로 삼았다. 순식간에 비난의 대상은 중국에서 신천지 및 대구로 바뀌었다. “대구 시민들은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아라”, “대구·경북 탈출은 지능순”과 같이 해당 지역을 완전한 타자로 둔갑시켜 깎아내리는 댓글들이 당시 확진 현황을 다룬 기사들에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이전의 ‘우한 폐렴’과 같이 지역 이름을 붙여 코로나 바이러스를 ‘대구 폐렴’이라 부르는 경우도 생겨났다. 일부 여론은 강력하게 해당 지역을 힐난하며 더 이상의 확진자를 내지 않기 위해 지역을 봉쇄해야 한다는 주장을 밀고 나갔다.[11]



보통의 코로나 19 문진표 항목에 ‘대구·경북 지역을 다녀왔는지 아닌지’가 추가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후 점차 신규확진자가 감소하고 확진자 0명을 기록하기도 한 대구·경북이었지만 여론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대구 출신의 10대가 클럽 방문 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자 사람들은 이전 해당 지역에서의 바이러스 확산 건을 들고나오며 ‘역시 대구 사람’이라는, 지역에 대한 반감에 가득 찬 반응을 보였다.[12] 위와 같은 혐오 표현 및 정서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는데,[13] 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온라인상에서의 혐오가 오프라인에서도 공공연하게 나타날 것을 걱정했다. 이전까지는 당연히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대우받아왔는데 출신 지역이라는 요소 하나가 일을 하거나 생활하는 데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커지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코로나 신규확진자가 꾸준히 감소하고 유지 가능한 수준에서 방역을 해나가던 중, 다시 한번 집단감염이 일어났다. 5월 초 서울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자, 당시 같은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이 무더기로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확진자 발생 현황을 지켜보며 머지않아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 기대했던 사람들의 실망은 곧 다시금 바이러스를 전파한 이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가 그날 밤 방문했던 곳은 이태원의 유명한 ‘게이클럽’이었고, 이로 인해 게이를 포함한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가 봇물 터지듯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을 오래도록 받아온 성소수자들이었지만, 코로나19는 기존에 있었던 것보다 더 큰 혐오 정서를 드러낼 수 있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다.



이태원 클럽 확진자의 동선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인터넷상에서 ‘게이’, ‘동성애’, ‘게이클럽’ 등의 키워드가 급격하게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확진자가 다녀간 클럽 중 한 곳은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확진자의 동선에 대한 추측이나 신상 공개는 되도록 삼가 달라고 부탁했지만, 일부 언론은 앞다투어 확진자가 다녀간 곳이 ‘게이클럽’이었다는 점을 부각해 악의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일삼았다. 혐오성 기사와 함께 사실과는 관계없이 성소수자 자체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기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동시에 SNS에서는 해당 클럽의 내부 정경이라고 알려진 영상과 사진을 공유하며 그 공간과, 그 안의 사람들을 추측했다. 동시에 영상 속 사람들 개개인의 성적 지향이나 생활 등을 지어내고, 외모와 함께 평가했다.[14]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보다는 확진 판정을 받은 개인이 속한 집단을 표적으로 삼은 사람들은 이들이 ‘문란해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등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내었다.[15] 클럽 방문 이후 검사를 받기 위해 선별진료소에 가는 일 자체가 곧 자신의 성적 지향을 드러내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주저하는 사람들. 이들의 불안을 대중들은 집단 정체성에 대한 왜곡, 질책으로 숨 쉴 틈 없이 짓눌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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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집단에 대한 무차별한 비난과 조롱은 빠져나올 수 없는 불안을 켜켜이 안겨주었다. 낙인찍힌 집단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자정 없이 쏟아져나오는 판국이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될 공포는 누구에게나 있었지만, 감염된 후에 겪을 고난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았다. 자신 한 사람의 감염 확진이 집단에 불러올 여파를 미리 알고 더욱 두려워하는 이들은 따로 있었다. 더군다나 이들은 실제로 한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피해가 컸다. 국적이, 출신 지역이, 성적 지향이 밝혀지는 순간, 그전까지는 성원으로서 자신을 받아들여 주던 사회가 언제 울타리를 치고 밖으로 자신을 내몰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 낙인이 찍힌 사람들은 마치 그 공간에 있지 않은 것처럼 다루어지기 일쑤였다. 담론에서 아예 배제되거나 자신들 집단에 대한 혐오가 공공연하게 퍼진 사회에서 숨죽여 살아야 했다. ‘그래도 싸지!’ 따위의 말을 들으며.



바이러스의 발생 자체는 불가항력적일 수 있으나 그 전파 경로는 실제로 누군가 확진 판정을 받기 전까지는 추적이 어렵다. 어쩌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이 아닌 어느 나라에서 처음 발생했다가, 한국에 와서는 수도권의 ‘평범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갔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에서 건너와 대구·경북 지역에서 빠른 확산세를 보였고, 이태원 클럽에서 다시 한번 많은 확진자를 발생시켰다. 바이러스가 거쳐 가는 길에는? 혐오가 뒤따랐다. 바이러스 전파자로 규정지어진 집단을 완벽한 타자로 바꾸어 놓는 대중의 혐오였다. 바이러스 감염을 철저히 막으며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우리’라는 울타리를 견고하게 두른 후, 그에 걸맞지 않게 행동한 집단을 바깥으로 내보냈다. 이미 공동의 목표 실현에 해를 끼쳤으니 ‘우리’라고 보기 힘들었으며 그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불안을 위로할 이유도 없었다. 다만 모두가 공감하는 위기 상황 앞에서, 책임을 물을 외부 집단을 상정해 내부의 결속력을 다질 뿐이었다.



울타리는 공간을 안과 밖으로 나눈다. 울타리를 어디에 두르느냐에 따라 어제의 안은 오늘의 밖이 될 수 있고, 오늘의 밖은 또 내일의 안이 될 수 있다. 자신을 중심에 둔 채 울타리 하나를 두르면 그 순간부터 울타리의 안은 나와 거의 같다시피 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동시에 울타리의 밖은 철저하게 외부로 규정되며 경계를 짓기 이전보다도 먼 대상으로 인식된다. 각 사회에도 이러한 울타리가 존재한다. 울타리 안의 사람은 같은 사회, 같은 체계 속에서 권리를 누리고 의무를 행사하는 성원이 된다. 한편 울타리로 만들어진 경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울타리로 인해 내부의 사람들과 확실하게 분리된다. 이들은 내부 성원들의 관점에서 ‘타자’로 분류되며 때로는 외적으로, 때로는 신경 쓸 필요 없는 관심 밖 대상으로 파악되고는 한다.



사람들은 위기가 닥치면, 자신들의 기준보다 조금 ‘열등하거나’ ‘미개하다고’ 느껴지는 다른 대상에게 불안과 공포의 책임을 묻는다고 한다. 그렇게 하는 편이 자신들의 추궁에 정당성을 더욱 부여해 준다고 느끼기 때문이다.[16] 이때 두려움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혐오와 조롱이 사용되는 일 또한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실제로 한국 사람들 사이에는 중국인들이 한국인들보다 미개하다는 인식이 은연중에 퍼져 있다. 중국인들에 대한 우월의식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의 식용 야생동물 판매 시장에서 처음 나타났다는 정보에 대해 ‘역시 미개한 중국인’, ‘역시 비위생적인 중국인’과 같은 편견을 드러낸 바 있다.[17] 이는 곧 열등한 것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고, 그 ‘열등한 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대상을 달리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타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며 경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앞서 설명한 일련의 사태가 이 사실을 방증한다. 한 사회의 성원은 단순히 다른 나라에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타자가 될 수 있다. 물리적으로 다른 사회에 자신을 집어넣지 않더라도, 앞의 예시처럼 자신이 속한 집단에 부정적인 낙인이 찍히는 순간 정말 누구든 울타리 바깥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울타리 안의 사람은 그 안에 있음으로써 얻는 편의를 쉽게 느끼지 못하지만, 울타리 바깥으로 내몰린 사람들은 그로 인한 불편과 불안을 고스란히 느낀다. 마치 한국에서 살 때는 한국 국적을 가진 동양인이라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여겨 왔고 급기야는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 자체를 거의 인식하지 않던 누군가가,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파견되어서는 ‘언제라도 병을 옮길 수 있는 동양인’으로 타자화되면서 매일같이 극심한 불안에 떨게 되는 것처럼.



미국의 정치철학자 S.벤하비브는 국가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자연히 ‘타자’의 문제를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누구나 주어진 상황에 따라 한 사회의 성원이 될 수도, 타자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사실은 곧 현재의 시점에서 자신이 사회의 성원일 경우, 타자 된 사람의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당위로 이어지며 당위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가 주장하는 내용은 정확히는 정치 활동을 하는 중에 ‘민주적인 절차’에서 자연히 배제되는 사람들에게 유동적인 권리를 부여하여 이상적인 담론장의 크기를 더욱 넓히자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크고 작은 ‘타자’가 생겨나는 지금, 우리는 ‘누구나 타자가 될 수 있다’는 전제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 볼 수 있지 않을까.



뺄셈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없다. 사회도, 개인도, 존재도 뺄셈만을 거듭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를 빼야 할 것으로 여기는 사회에 대해 부당하다고 분노하지만, 그 분노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무언가를 도려내는 혐오로 변화한다. 정작 자신이 ‘빼야 할 것’이 되면 누구보다도 억울해 할 것이 분명한데도, ‘빼야 할 것들’을 잘라내 남은 이들끼리 잘 지내면 좋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여태껏 일어난 사건들은 자취로 남아, 분노에서 혐오로 이어지는 궤적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유례없이 강한 전염성을 지닌 바이러스의 창궐에 많은 국가와 사회들은 한동안 속수무책으로 도망 다니기 바빴다. 그 사이에 ‘정당한 혐오’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바탕으로 많은 집단이 울타리 밖으로 낙오되었다.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전염병이 세상에 등장한 지 반년이 넘은 지금, 이제는 확인해 보아야 할 때다. 낙오된 현실에 억울함을 내비치기 전에, 뒤를 돌아 의도적으로 떨구어 버린 ‘타자’가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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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 ‘동양인’에 속하는 사람들의 범주는 크며 이들을 동일한 특성이 있는 한 집단으로 묶기에는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그들이 규정하는 동양인은 엄밀히 말해 ‘서양에 의해 정형화된 동양적 외형을 가진 사람’에 더욱더 가깝다. 본 글에서는 ‘동양인’을 대상으로 한 서양 사람들의 차별을 언급하는 경우 이와 같은 의미로 해당 용어를 사용한다. 한편, ‘동양(Orient)’이라는 단어는 애초에 아시아인들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언어가 아니다. 이 개념은 서구에서 ‘유럽이 아닌’ 곳을 명명하기 위해, 실제 명명 대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하기 시작했기에 언어 자체로 모호성을 지닌다.

[2] 이광빈, 「[특파원 시선] '코로나'라고 부르는게 인종차별이 아니라고요?」, 『연합뉴스』, 2020.04.29., (https://www.yna.co.kr/view/AKR20200429006900082)

[3] 클레어 함, 「코로나19에 놀란 유럽인들 “아시안 저리 가”…피해 속출」, 『시사저널』, 2020.02.17.,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5685)

[4] 왕길환, 「"'신종코로나' 아시아인 차별·혐오 확산…중단해 주세요"」, 『연합뉴스』, 2020.02.08., (https://www.yna.co.kr/view/AKR20200207050600371)

[5] 함민정, 「코로나 폭행당한 韓부부에···베를린 경찰 "비웃음, 차별 아니다"」, 『중앙일보』, 2020.04.27., (https://news.joins.com/article/23763750)

[6] 최용락, 「"중국인 혐오와 차별, 내 아이에 옮아갈까 겁난다"」, 『프레시안』, 2020.03.20.,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84316)

[7] 2020년 8월 9일 기준 76만 1833명. (출처: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4593)

[8] 오연서 외, 「중국 검색하면 감염·공포…‘짱깨’ 혐오표현 사흘만에 31배」, 『한겨레』, 2020.03.10.,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931870.html)

[9] 최원형 외, 「중국 유학생들 “한국 방역조처 받아들이지만…차별 분위기 걱정”」, 『한겨레』, 2020.02.17.,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928613.html)

[10] 최용락, 「"중국인 혐오와 차별, 내 아이에 옮아갈까 겁난다"」, 『프레시안』, 2020.03.20.,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84316)

[11]김정석, 「"대구 사람이라면 치가 떨린다" 코로나보다 무서운 지역 혐오」, 『중앙일보』, 2020.05.01., (https://news.joins.com/article/23767330)

[12] 위의 기사

[13] 오연서 외, 「중국 검색하면 감염·공포…‘짱깨’ 혐오표현 사흘만에 31배」, 『한겨레』, 2020.03.10.,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931870.html)

[14] 선우, 「"이태원에서 혹여 게이인 게 들킬까 봐 무섭다고 했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코로나가 이태원에 남긴 혐오의 흔적」, 『프레시안』, 2020.06.17., (pressian.com/pages/articles/2020061710442844467)

[15] 윤인경, 「코로나19: 혐오로 번진 이태원발 집단감염… 성소수자 김 씨의 이야기」, 『BBC 코리아』, 2020.05.26., (https://www.bbc.com/korean/features-52803935)

[16] 오연서 외, 「중국 검색하면 감염·공포…‘짱깨’ 혐오표현 사흘만에 31배」, 『한겨레』, 2020.03.10.,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931870.html)

[17] 위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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