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영
더 환한 밤이 우리에게
우리는 생략될 때 서로를 읽는다
붙어 있는 페이지와 페이지를 떨어뜨리자
다시 똑같아지는 밤
다시 또 달라지는 밤
그것은 자주 지워졌다
입을 벌리면, 목젖 너머 파묻혀 있던 그것이
고개를 내밀어 공중을 떠다녔다
그것에 대해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골몰했다
왜 생각했지
왜 생각지도 못한 기억들만 기록했지
감춰진 페이지에서 발견한, 푸른 향이 나는 곰팡이
우리 중에 그것은 존재했다 두 사람일 때
하나는 외로워서 나머지를 껴안았다
자주 사용하느라 고독해진 쉼표들과 이미 넘쳐서 고요한 말줄임표들
우리 가운데 잘못 읽어 온 삶처럼 거대해지는 숨이 끼어들고
도로에 싱크홀 같은 밤이 파여 있다
더 환한 밤이 우리에게
참고문헌
김석영, 『밤의 영향권』, 파란,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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