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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67호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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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편집위원회 Feb 24. 2024

편집장 서문

편집장 검은

  지난 2022년은 한국에서도, 전 세계적으로도 다사다난한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여느 때보다 기후 변화의 여파는 크게 나타났고, 정세의 변화도 급작스럽고 혼란스러웠죠. 누군가에게는 아수라장에 가까웠을 수많은 수난 속에서 우리는 아프고, 휘청이며 살아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우리로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곁에 존재하는 ‘너’와 함께, 내 손에 쥔 전자기기에서 만나는 ‘너’ 덕분일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인 인터넷에서 물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진 ‘너’를 만나고, ‘너’의 소식을 접하면서 ‘나’와 ‘너’의 이어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숨과 침을 뱉어내면서는 쉽게 말하지 못했을 생각의 덩어리들을 인터넷으로는 가볍게 툭 던지기도 하죠. 하지만 쉽게 ‘너’에게 말을 건낼 수 있을 만큼, ‘나’와 ‘너’의 만남은 쉽게 끊어지기도 합니다. 이번 문우 67호 <ㅇㅇ의 비명>은 다양한 사람들, 생각, 소식, 그리고 일생이 연결되고 단절되는 인터넷 공론장을 주제로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여기서 ‘ㅇㅇ’은 ‘디시인사이드’ 등의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닉네임을 쓰기 귀찮거나 글쓴이를 밝히고 싶지 않을 때 사용하는 유동 닉네임 중 하나입니다. ‘ㅇㅇ’에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점에서, 인터넷을 연결하는 전자기기만 있다면 어디서, 언제든지 나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죠. 반면에 어떤 글자를 쓰든 글쓴이는 익명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글쓴이가 인터넷을 벗어나면 글쓴이—ㅇㅇ의 말은 인터넷에서 잔해로 남아버립니다. 현실에서의 ‘말’조차 되지 못한 언어들이 유령처럼 인터넷을 떠돌게 되죠. 말로써 발화되지 못한 숨들은 단지 발악에 가까운 비명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이번 호에선 편집위원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조차 쉽게 털어내지 못했던 속내부터, 연결의 가능성과 희망을 사유하는 소망이 담겨 있죠. 검은의 「파도를 마주하며」는 트위터와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의 페미니즘 담론 속에서 쉽게 말하지 못한 고민과 의견을 털어내면서, 편집위원들의 이야기로 안내합니다. 그다음 포슬의 「여러분과 우리 사이에, 혹은 우리와 너 사이에」는 스탠드업 코미디 장르를 분석하면서 고통의 말하기와 듣기에서공감과 연결 가능성을 재고합니다. 유연의 「그 능력 여주가 살아남는 법」에서는 웹소설 독자로서, 여성향 로판 웹소설에서 작용하는 클리셰를 통해 독자들이 지닌 욕망과 속마음을 톺아보고 있습니다. 문우의 눈에 실린 글도 이어서 소개하자면, 아자, 야부, 루의 「전쟁에 대한 전쟁: 베트남 전쟁과 마주하기」는 기존의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을 비판하면서 전쟁, 그중에서 베트남 전쟁을 다시 바라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노랑의 「이어지고 싶으니까」는 애니메이션 작품을 통해 단절을 강요받는 세상에서 연결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너’의 소식을 인터넷으로 접하는 것이 더 빠를 때가 많고, 연결과 단절이 연속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나’와 ‘너’의 닿음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지속되기를, ‘너’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에게 전달되기를 소망하며 67호를 독자 여러분께 부칩니다.          


덥고도 추운 겨울을 지나, 편집장 검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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