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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Dec 07. 2022

핀란드인들은 왜 첫눈을 기다릴까

파리에서 헬싱키로 이사를 했을 때는 10월 말 경이었다.


이사 즈음해서 며칠간 지속된 파리에서의 비는, 비행기로 거의 세 시간 거리인 헬싱키까지 이어졌다.

다른 점은 헬싱키에서는 우산을 드는 손이 차가워 장갑을 껴야 했다는 것.


그리고 얼마 후 회사에 첫 출근을 했을 때,

핀란드인 동료들은 말했다.


핀란드의 가을은 최악의 계절이야


그리고 10월은 1년 중 '최악의 달'이라 했다.


처음엔 그 말에 갸우뚱했다.

비 오는 파리의 날씨와 헬싱키의 날씨를 비교해보면 난 차라리 후자가 낫다고 생각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파리에는 비가 오면 바람이 동반하고 온도가 급격히 낮아진다. 반면, 주 교통수단인 지하철 안은 북적대는 사람들의 체온과 지하의 습도 때문인지 특히 덥고 눅눅하다.

비가 한두 번 오는 것도 아닌데 도로 여기저기 물이 고이고, 좁은 길에는 자전거, 오토바이, 사람이 뒤엉켜 평소보다 정신을 더 바짝 차려야 한다.

거기에 비 오는 날은 버스고 지하철이고 왜 그리 쾌쾌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많은지.


이에 비하면 핀란드의 비 오는 날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하고 상쾌했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쯤 푸른 숲이 빼곡하게 내려다 보여서였는지, 핀란드의 찬 공기에서 추위보다는 젖은 풀냄새가 향수의 탑노트처럼 가장 먼저 느껴졌다.


이 곳에 산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만난 모든 핀란드인들은 내 동료들과 같은 말을 다. 그 이유는 마치 학교에서 주입식 교육이라도 받은 동일한데,


그들이 가을을 싫어하는 이유는 추위나 비가 아니라 바로, '어둠' 때문.


북극권에 걸쳐있는 핀란드의 여름은 긴 일조량을 자랑하며,  북쪽으로 갈수록 '백야현상'이 짙게 나타난다. 최남단인 헬싱키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자정이 넘어 가 지고 하늘의 색이 검지 않고 푸르르다가 새벽 세시 반경 날이 밝아 오른다.

(핀란드에서는 집집마다 암막커튼이 필수.)


여름의 긴 일조량은 가을이 되면 거의 반으로 급격히 줄어든다. '저녁'이라 불리는 시간보다 훨씬 앞서 어둠이 깔리고 연중 비가 가장 많이 오는 계절.


핀란드어로 10월은 'lokakuu(로까꾸우)',

해석하면 '진흙의 달'이라는 뜻이다.


도심에 사는 나는 그 의미를 실감하기 힘들지만,

나라 면적의 75%가 숲인 핀란드에서, 마치 스머프처럼 숲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에겐 이보다  정직한 해석이 있을까 싶다.


여름의 끝자락까지 산딸기와 야생 버섯, 블루베리를 차례로 피워내는 땅은 가을이 되면 빗물과 섞여 질퍽질퍽한 진흙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위에 내려앉은 어둠.


어서 눈이 왔으면...

이쯤 되면 핀란드인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첫눈을 기다린다.

그 연유는 첫사랑의 속설과 연관되어 로맨틱하지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는 동심이 깃들여 있지도 않다.


눈을 기다리는 핀란드인들의 마음은 그들의 캐릭터만큼이나 밍밍하고 딱딱하다.

바로 새하얀 눈이 어둠을 밝혀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

나라를 덮어버린 눈은 어두운 하늘까지도 하얗게 밝혀줄 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제목 사진 참조)


11월 초 핀란드 북부 끼띨라(Kittilä) 비행을 갔다가 나의 이번 겨울 첫눈을 맞이했다.

10월 말부터 눈이 내렸다고 하니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이미 첫눈이 아니었다.


끼띨라 공항. 펑펑 내리는 나의 첫 눈.


'오, 벌써 눈이 왔네요'

추위를 걱정하며 한 마디 던진 내게,


끼띨라 공항 직원과 승객들은 정반대의 뜻이 담긴 대답을 건넸다.

'네, 다행이죠'

'눈이 와서 행복해요'

'아름답죠?'


우주복처럼 빵빵한 외투를 입고 양 볼은 불그스름한 복숭아 빛을 띄운 채, 

그 말의 톤 과 표정은 너무 낙천적이어서 몸집이 큰 아저씨와 머리카락이 하얗게 샌 할머니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해맑아 보였다


여름이면 백야 현상이 일어나는 핀란드 북부는,

겨울이 되면 반대로 해가 떠 있는 시간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그 기나 긴 겨울을 환하게 밝혀주는 빛과도 같은 눈.

차가운 눈은 핀란드인들의 마음의 온도를 높여 추위를 녹여주는 역할 또한 한다.


일 년의 절 반이 겨울인 핀란드에서,

추위를 두려워하고 눈을 지긋지긋해하는 사람들의 수가 압도적이었다면,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예를, 그것도 여러 차례나 거머쥘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새 12월이 되었다.

12월은 핀란드어로 Joulukuu(요울루꾸우), 그 뜻은 '크리스마스의 달'.


11월부터 내린 눈은 이미 겹겹이 쌓였다.


오늘은 핀란드의 독립기념일이라 작은 행사를 보러 헬싱키 시내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장소에 나가 보았다.

아주 단단히 얼어 아이스링크가 되어버린 땅에 서서 방금 막 구운 소시지를 호호 불어가며, 핀란드의 크리스마스 전통 음료인 '글로기(Glögi)' 마시는 모습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늘상 보이는 풍경.

핀란드인들은 해마다 반복되는 겨울 일상에서 아늑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만끽한다.


바닥이 아주 꽁꽁 얼은 헬싱키 크리스마스 마켓.


얼마 전 코펜하겐 비행을 갔다가, 세 시간 정도 공항 라운지에서 머물러야 했다.

팀 여럿이 다 같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간단한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한 동료는 털실을 꺼내 뜨다 말은 털모자를 이어 뜨기 시작했고 (이 또한 겨울이 되면 자주보이는 동료들의 단상),

또 다른 동료 몇몇은 공항 샵들을 둘러보며 가족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매했다.


코펜하겐 공항. 덴마크의 시나몬 롤은 핀란드나 스웨덴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나는 샵에서 덴마크 소시지와 시나몬 롤을 구입했다.

그리고는 남는 시간에 핸드폰 날씨 앱을 열었는데,


눈, 눈, 눈, 눈.....

일주일 내내,

.


소도시나 외진 숲에 살아 자가용을 이용하는 동료들과 달리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하기에,

눈이 사정없이 내리면 캐리어를 끄는 것도 걱정, 유니폼 장화에 내의까지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날씨 화면을 동료들에게 보여주니,

동료들의 함성과 표정은 역시 나의 마음과 같지 않다.


와~잘됐다!


눈보다는

차라리 어둠이, 비가 더 좋은 나.


빙판길을 걷는 것이 늘 조마조마해,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뒤뚱뒤뚱 걸을 때에면 드는 생각이 있다.


'나도 이곳에서 핀란드인들만큼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 내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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