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동네방네 소문을 다 내고 있지만 나는 유럽 여행기를 담은 책의 POD 출판을 계획 중에 있다. 여기까지 오는데 브런치의 도움이 참 컸다.
이미 목차까지 다 만들어놨는데 이 글은 책의 마무리 '브런치, 내게 용기를 주다' 목차에 들어갈 글이다. 사실 이 글과 '브런치, 내게 용기를 주다'를 맨 앞에 넣을지 맨 뒤에 넣을지는 아직 고민 중이다. 지혜가 필요하다. 역시 출간 작가가 되는 건 쉽지 않구나.
유럽여행을 마치고, 여행기를 어떤 플랫폼에든 연재하겠다고 마음은 먹어놓고도 망설였던 이유는 '아무도 안 읽을까 봐'였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막상 열심히 써놨는데 반응이 미적지근하면 힘이 빠지는 건 사실이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검색 노출을 노려서 네이버로 갔다. 그리고 알음알음 친구들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내 여행기 블로그를 홍보했다. 그러다가 나의 참 좋은 친구가 브런치를 추천해줬고 내심 브런치에서 붙여주는 '작가'라는 타이틀이 탐났던 나는 어차피 백업글들도 있겠다,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린 것은 2019년 8월 말의 일이다. 역시 조회수는 초라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나를 매료시킨 것은 브런치가 제공하는 POD 서비스였다. 30개의 글만 채우면 책의 출판을 브런치가 도와준다니. 그리고 나의 낮은 자존감과 강한 고집은 나로 하여금 '아무도 안 봐도 나는 쓸거야' (후에 '아무도 안 봐도 저는 쓸거에요'로 조금 예의 바르게 고치기는 했다)라는 작가 소개글을 적어 넣게 함으로써 브런치를 떠나지 않겠노라 다짐하는데 도움을 줬다.
사실 글을 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미 다른 블로그에 적어둔 글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이라곤 그저 퍼오는 일뿐. 대신 퍼오면서 수정은 조금씩 하고.
문제는 백업글들이 떨어지고 난 뒤였다. 나는 조금씩 게을러졌고 글쓰기도 조금씩 귀찮아졌다. 그래도 글쓰기는 나의 거의 유일무이한 스트레스 해소처였으니 글은 계속 썼다. 그러던 중 하나의 사건을 맞는다.
2019년 9월 9일 아침부터 브런치에서 많은 알림을 보내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때 처음 알았다. 조회수가 1000씩 넘어갈 때마다 브런치가 알림을 보내준다는 것을. 그러나 이 갑작스런 브런치 유입 증가의 원인을 몰랐다. 그래서 검색을 거듭한 끝에 내 글이 어딘가에 소개가 되어있음을 추측할 수 있게 되었고 유입의 절대다수가 모바일 다음인 점에 착안해 모바일 다음 페이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바일 다음 페이지에서 내 글을 마주했을 때 내 감정은 참 묘했다. 내 글인 듯 내 글 같은 내 글 같지 않은 너. 그리고 엄청 신기했다. 내가 뭐라고 이런 호사를. 그리 잘 쓴 글 같지도 않은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더 잘 쓸걸. 다른 작가님들의 모바일 다음 메인글을 보니까 글도 훨씬 길고 내용도 알찬데 내 글이 저기 있어도 되나. 하면서 자책도 많이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어떤 이유에선지 많은 분들이 글을 읽어주셔서 저 글이 제법 오랫동안 모바일 다음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꽤 오랫동안 기뻤다. 자랑도 많이 하고.
이때는 굉장히 상승세였다. 추석 때 아예 집에 내려가지 말까도 고민했다. 쓰고 싶은 글이 많았으니까. 그래도 민족의 대명절인데 집에는 가야지, 일단 작가의 서랍에 쓸 글들을 고이 넣어두고 나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문제는 고향에 다녀온 후였다. 고향에서 힘든 일을 겪었다.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었지만 내가 상처를 많이 받았다. 글을 계속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몇 날 며칠을 앓았다.
결과적으로 모바일 다음에 소개되었던 '정말 조그만 비행기를 탔다'는 글은 조회수가 3만뷰정도 나왔었다. 주변에서는 "광고 수익 같은 거 받았냐?"는 질문을 내게 던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브런치 자체가 광고를 달 수 없는 시스템 아닌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침대에만 웅크리고 있는 동안 검색을 해보니 비슷한 이유로 고민하는 작가님들의 글이 보였다.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의 브런치 계속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혹은 그래서 블로그를 두 개씩 운영한다는 작가님들의 글도 목격했다. 고민이 됐다. 돈. 그놈의 돈.
그래도 내가 내린 결론은 계속 브런치에 쓰자였다. 이건 처음부터 내가 나와했던 약속이었거니와 분산을 하자니 내가 너무 어지러울 것 같았다. 그만한 컨텐츠를 내가 갖고 있지도 않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얼마 되진 않지만 나를 구독해주시는 구독자분들도 계셨고 내 글을 기다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여기서 그만두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상태에서 행복했던 시간들을 되새김질하고 글로 적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오히려 행복했던 시간들에 대해 쓰는 게 하나의 치유 활동이라 생각하며 썼다. 당시를 회상하며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유럽에 있던 행복했던 나로 잠깐 동안이나마 돌아갔다 올 수 있으니까.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글이 브런치의 예쁨을 받게 됐다.
이번에는 브런치의 Recommended Articles에 내 글 '우리가 밴쿠버를 떠난 이유'가 올라갔다.
2019년 9월 25일. 내 생일 하루 전날의 사건이었다. 저 글을 쓰며 많이 울었었다. 내가 몇 년을 준비했던 캐나다로의 이민에 대한 실패를 인정하는 글이었으며 우울한 가운데 우울한 주제로 글을 쓰느라 애를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덕분에 생일 하루 전날 귀한 생일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기운도 좀 나서 대인기피증 증상까지 보이던 내가 그다음 날은 생일이라고 밖에 나가 친구도 만나 좋은 이야기 많이 듣고 왔다. 원래 내 생일날 계획은, 방에 처박혀서 나의 탄생을 저주하는 거였는데.
그 후에도 몇 번 브런치 인기글에 가긴 했는데(혹은 간 것 같긴 한데) 굳이 캡처해두거나 찾아보지는 않았다. 계속 찾아보다가는 인기글용 글을 쓰려고 집착하게 될 것 같아서.
하지만 이 점 하나만은 분명히 하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잘 쓴다는 평을 들으며 자라왔지만 막상 내 글에 대한 자신감은 별로 없었다. 나는 항상 내 글이 불만족스러웠고 나의 글에 대한 칭찬이 진짜일지 의심부터 했다. 지금도 좀 그렇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기자 혹은 작가 커리어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라고 할 때도 귀를 닫고 있다가 온라인 신문사의 기자 생활도 돌고 돌아 뒤늦게 시작했다.물론 지금은 그만뒀지만.
그러나 브런치 덕분에 나의 자존감이 많이 회복되었다. 특히 글쓰기 자존감이 많이 회복되었다. 아니 이건 회복이라기보다 거의 죽음에서 건져졌다.
그래도 이정도라면 나도 제법 남들이 읽을만한 글을 쓴다고 위안 삼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생각을 평생에 처음으로 스스로 해보았기 때문이다.
반크 박기태 단장님, 나의 여권노조 권지은(미스권), 노승희, 조희은, 김민성, 연이, 이현지 언니, 이진세 오빠, 김여울, 조준화, 권민정(으리!), 민재, 우기 한진욱오빠, 사진가 봉민오빠, 고성혁 국방부 출입기자님, 생각씨 작가님, 임창동, 보리슬라바 요르다노바, 드라이브 좋아하는 성진쿤, 차수, 가족 중에 처음으로 내가 내 브런치를 소개한 내가 참 아끼는 사촌동생 진희성, 사랑하는 할머니 이인순 권사님, 자랑스러운 나의 할아버지 공군 예비역 이재일 소령님, 지금의 내가 있게 해주신 가족들,
그리고 제 브런치와 매거진의 거의 첫 구독 작가님들이신 어느 사피엔스의 글자욱 작가님, 비열한 백구 작가님. Future Job 작가님 그리고 모든 구독자 여러분들 정말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한 분 한 분 이름을 적지 못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