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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Oct 30. 2019

공짜 시술 한번 받고, 죄인 된 줄 알았다

https://brunch.co.kr/@yonu/108


앞의 내용과 이어진다. 


나는 피부과에서 흉터 제거 시술을 받고 있다. 애초에 의사(보통 의사 선생님 이란 표현을 쓰지만 오늘 그에게는 쓰기 싫어졌다.)가 약속한 시술은 5회. 5회면 흉터가 사라지리라 했다. 나는 "성형외과도 가볼까요?"라고 그에게 물었지만 그는 "아니요 성형외과 갈 필요 없어요, 가면 더 복잡해져요"라며 나를 만류했다. 코디네이터는 원래는 1회 시술당 7만 원인데 5회를 한 번에 계산하고 가면 5만 원에 해주겠다며 5회 25만 원에 여기서 시술받으라고 나를 열심히 꼬드겼다. 원래 5만 원인데 7만 원으로 올려 부르는지는 정가표가 없으니 알 수야 없지만 5회면 된다는 의사의 확신에 찬 말에 나는 그를 믿고 거기서 치료받기로 맘을 먹고 결제했다. 


4회 차까지 흉터 제거는 큰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회차 때는 의사도 급하다고 생각했는지 전보다 더 세게 시술했다. 주사도 더 놓고. 아파 죽는 줄 알았다. 전에 없던 약물까지 처방받았다. 




그리고 오늘, 약속된 5회 차의 시술이 끝났으나 흉터는 내게서 떠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 빨갛게 약간 부어올라 전보다 티가 더 많이 난다. 지난번 시술 후 경과를 보기로 예약이 잡혀있었기에 의사를 보러 갔다. 


흉터 위의 위의 하얀색은 오늘 시술 뒤 바른 약입니다.


병원에서 일을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화가 난 환자가 뛰어들어오는 바람에 그 환자가 내 순서보다 앞에 들어갔다. 간호조무사들은 나에게 그 어떤 양해도 구하지 않았다. 나는 40분을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내 흉터를 본 의사의 눈은 놀란 토끼눈이었다. 


나는 그에게 그가 하라는 대로 병원에서 파는 오천 원짜리 밴드도 사서 계속 붙여왔으며, 약도 다 먹었다고 말했다. 내가 어디 가서 어느 분야의 전문가라고 인정하는 사람에게 절대 공격적으로 말하지 않는 버릇이 있기에 조곤조곤,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선생님, 저는 가망이 없는 건가요?" 그는 말했다.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단 빨갛게 됐기 때문에 바로 추가 레이저 시술은 불가능하고요, 일단 오늘 이걸 가라앉히는 시술을 하겠습니다." 


결국 돈을 내고 추가 시술을 받으라는 소리. 나는 한숨이 나왔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5회면 된다고 해서 선생님 믿고 여기서 치료받았고, 치료비가 한두 푼도 아니고, 수중의 돈도 다 떨어져 갑니다..."


그러자 의사는 "이번 시술은 무료로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래도 이분이 사람다운 분이시구나 했다. 그래요, 무료 시술 한번 부탁드릴게요. 앞으로 또 시술비 제가 엄청 낼 거잖아요. 5회면 된다고 해서 제가 당신을 믿고 이 병원을 선택한 거잖아요. 마음속으로 생각만 했다. 앞으로 또 내야 할 시술비 때문에 여전히 마음이 복잡했거든. 




그리고 나는 시술실에 들어섰다. 또 대기를 해야 했다. 그가 다른 환자의 시술을 하고 와야 했기 때문에. 그 환자의 시술비는 얼마였을까. 


간호조무사가 들어와 "원장님이 조금 늦으세요, 죄송합니다."하고 사과하고 갔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권력과 돈의 힘이다. 그는 사과할 필요가 없다. 그가 월급 주는 간호조무사가 대신 사과한다. 이윽고 그가 나타났다. 그가 내게 말을 걸었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약간 그쪽으로 젖혀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아주 무서운 목소리로 내게 한마디 했다. 


고개 똑바로 하세요. 


이전에는 들어본 적 없는 고압적인 말투였다. 그전까지 그는 늘 시술실에서 내게 다정했다. 비록 아픈 시술이었지만 우리는 제법 웃기도 하고 농담도 주고받았다. 그가 내게 이 정도로 히스테리를 부린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간단한 시술이었는데도 유난히 더욱 아프게 느껴졌다. 


회복실에 누워있는 내내, 설마 공짜 시술을 해준다고 화가 나서 내게 화풀이를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어쩌면 내 피해의식일 수도 있으니 침착하자, 침착하자 했지만 한번 시작된 나쁜 생각은 멈춰지질 않았다. 나도 화가 났다. 앞으로 이 사람에게 몇 번을 더 내 이마를 맡겨야 하는데, 어떡하지. X 같네.


그는 시술은 공짜로 해주는 대신에 진료비 5000원은 내게 청구했다. 5200원이었던가. 그건 결제하라니 결제했다. 여전히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는 족히 8명이 넘었다. 아이고 5200원, 드려야죠.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씩씩거리는 할머니께서 말을 건다. "이 병원 정말 비싸." 할머니는 내가 진료비를 수납하는 동안 내 옆에서 견적을 내고 계셨는데 행복해 보이진 않았다. "왜요, 견적을 어찌 내던가요?"


요 옆 병원은 다 합쳐서 10만 원이면, 여기는 손을 델 때마다 더 내라고 해. 정말 비싸. 


아이고, 내가 병원을 잘 못 골랐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제는 날씨가 추워 옷깃을 단단히 여미는데 전단지를 나눠주는 할머니를 봤다. 



그녀 역시 추위에 중무장을 하고, 손에는 목장갑을 꼈더라. 유난히 그녀의 목장갑에 눈이 갔다. 나는 일부러 길을 틀어 그녀의 전단지 한 장을 받아 들고 왔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내가 그녀에게 해준 거라곤 전단지 한 장 받아준 것뿐인데. 그 전단지 한 장이 그녀에게 50원의 가치는 될까. 내가 전단지 아르바이트할 땐 장당 50원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시대가 최저 시급이나마 올라서 100원은 받으시려나. 그래도 내가 그녀에게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녀는 깍듯하게 내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나이도 내가 훨씬 적은데. 


높고 가진 게 많은 의사 선생님의 불친절과 길거리 목장갑을 낀 전단지 할머니의 겸손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 주책맞은 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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