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유소년기에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나는 키가 크고 싶던 소녀였고 그래서 유독 우유를 많이 마셨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우유가 거의 강매 수준이었다. 머리가 커서 생각해보면 학교와 선생님 그리고 우유회사 간 담합이라도 있었던 것 같다. 분명 돈이 없어서 우유 신청을 못하는 아이들까지 선생님이 들들 볶아 우유 신청을 시켰으니까.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 마시던 우유가 비*우유였다. 더운 여름철, 냉장 보관조차 되지 않은 비*우유를 먹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우유에서 고무 맛이 났다. 어린 초등학생들은 간혹 그 우유를 먹고 토를 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비*우유가 싫다.
가끔씩 학교에 제티를 가져와 타 먹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아쉽게도 우리 집은 제티를 집에 사다 놓을 만큼 경제적 여건이 좋은 집도 아니었고 이빨이 썩는다며 애초에 그런 음식을 우리에게서 멀리하셨다. 살이 찐다는 이유도 있었고.
우유가 싫었던 기억도 있지만 나는 전반적으로는 우유를 좋아했다. 너무 맛있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콜라를 마시면 뼈가 삭고 우유를 마시면 뼈가 튼튼해진다고 했다. 나는 또 머리가 좋아진다길래 아인*타인 우유도 일부러 사서 마시고 그랬다.
청소년기에 나는 우유를 달고 살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부반장이라 학생회 소속이었는데 거기서 알게 된 선도부 3학년 오빠가 자기가 2학년 때까진 키가 작았다가 매일 우유를 한통씩 마셨더니 3학년 때 키가 엄청나게 컸다고 내게 자랑을 했다. 그의 임상실험 결과를 듣고 나는 더욱더 우유를 마시면 키가 큰다는 말을 신봉하게 됐다. 나는 정말로 키가 크고 싶었다. 내가 딱히 외모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그나마 건질 수 있는 건 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연배에 비해서는 큰 키에 속하셨다. 그래서 나는 더욱 나도 큰 키를 소유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런데 결과는 나는 그냥 중키다. 내 또래의 평균 키. 간혹 듣는 소리는 "생각보다 키가 작네요?"라는 소리다. 누군가는 내게 "골격은 키가 클 골격인데 니가 못 큰 거 아니냐?" 하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어쩌면 이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동생은 청소년기 동안 콜라를 참 많이도 마셨다. 나는 걔를 보며 혀를 찼다. 걔는 지금 키가 180 후반이다. 오 주여. 한 배에서 나온 자식이거늘 저는 왜 중키이고 쟤는 왜 저리도 거인인 것입니까. 게다가 나는 우유를, 쟤는 콜라를 마셨는데.
유당불내증
나는 분명 유당불내증에 대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영화에서 봤기 때문이다. 브루스 올마이티와 화이트 칙스를 통해. 하지만 내가 유당불내증일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오히려 유당불내증을 겪는다는 영화 속 그들이 불쌍했다. 이 맛있는 우유를 못 먹는다니.
나는 청소년기에 유독 배앓이를 많이 했다. 병원에 가면 늘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라고만 했다. 그 어떤 의사도 내게 어떤 음식을 먹는지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때 한 명의 의사라도 나의 식단을 체크하고, 유당불내증을 의심이라도 해줬다면 나는 배가 덜 아팠을지도, 키가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럼 스트레스도 덜했을 텐데. 그렇다, 나는 유당불내증이다!
동양인에게 유독 많이 많다는 유당불내증 인자를 지닌 것도 나는 스물일곱인가 먹고 캐나다에서 처음 알았다. 나는 식단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고 처음으로 내가 유당불내증 인자를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을 했다. 그래서 검사를 해봤고, 결과는 내 의심과 맞아떨어졌다. 그 후부터 나는 모든 우유를 Lactose-Free 락토프리로 바꿔먹기 시작했고 카페라떼를 마시면 속이 아프고 화장실을 가야 했던 증상이 현저히 줄었다. (북미나 유럽 국가는 커피숍에서도 라떼를 시키면 우유 종류를 선택할 수 있다.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여전히 화장실을 가끔 가야 하는 건 커피 자체가 아침 위장에 좋은 음식은 아니기에.
우유가 키를 크게 한다는 믿음은 한국과 일본만 갖고 있다.
속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우유가 키 크는데 도움을 준다는 믿음은 한국과 일본만 가지고 있다. 캐나다에서 Nutrition 수업을 듣는데 키가 큰 한국계 캐네디언 교수가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왜 우유를 마시면 키가 큰다고 믿는지 도통 모르겠다.
라고 했다. 그녀는 "나도 동양인 치고 키가 큰 편이지만 클 때 우유 안 마셨다."라고 덧붙였다. 내 볼따구는 억울해서 개구리 왕눈이의 투투처럼 부풀어올랐다. 그때 내게 우유를 마시고 키가 컸다는 3학년 선도부 오빠의 말은 그냥 때가 되서 키가 큰 걸 우유와 연관시킨 것이거나 아니면 사춘기 소년의 허풍이었는지 모른다.
락토프리 우유
(특정 제품 홍보글이 아님을 먼저 밝힌다.)
캐나다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면서 내가 걱정한 것 중 하나는, 우유를 앞으로 어떻게 마실까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도 락토프리 우유가 있었던가? 하며. 그러나 의외로 락토프리 우유는 2005년부터 있었다. 다만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
맛도 내가 아는 우유 그대로다. 유당불내증. 앞서 적었지만 동양인이 많이 가진 증상임에도 의외로 많은 이들이 무관심하다. 마치 간에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는 알코올 인톨러런스 Alcohol Intolerance, 다른 말로는 Asian Flush가 동양인들 사이에 굉장히 흔함에도 많은 이들이 신경 쓰지 않고 술을 들이키는 것처럼. 술을 마시면 얼굴이 금방 붉어지는 사람들이 여기 속하는 부류다. 나 역시 이 부류고 정도가 심해서 아예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당신의 건강을 위해 혹은 자녀의, 부모님의 건강을 위해 한번쯤 유당불내증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마지막으로 괜히 키 크려고 우유 마시다가 속만 버리고 마음만 상한 나처럼 되는 청소년이 없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