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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Nov 20. 2019

예의 없는 세상, 예의 없는 초딩들

다들 잘 살고 있는겨?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야, 이거 니꺼 아니지! 훔친거지! 남의 이름이잖아! 


우리집은 가난했다. 그래서 바자회에서 물건을 사오거나 어디서 물려받은 물품들이 집에 많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가진 물건들은 '내꺼인데 내꺼아닌 내꺼같은 너'였다. 거의 항상 다른 아이의 이름이 먼저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준비물로 탬버린과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를 준비해가는 날이었다. 요즘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탬버린안에 트라이앵글과 캐스터네츠를 넣어서 탬버린 둥그런 상자 안에 다 담겨 들고다닐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 탬버린 상자 앞에는 큼지막하게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나도 모르는 누군가의. 


음악시간 전 내가 탬버린 상자를 꺼내놓자 주변의 짖궂은 남자아이들이 내 탬버린 상자를 보더니 대뜸 


야, 이거 이름이 네 이름이 아니잖아 


라고 말했다. 나는 "응. 이거 물려받은거야" 라고 답했다. 자랑스럽지는 않았지만 다른 설명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러자 다른 남자아이가 끼어들었다. 


아닌데, (탬버린 상자에 적힌 이름을 가리키며) 나 이사람 아는데! 너 이거 훔친거지! 


갑자기 '도둑놈'으로 몰리자 나는 당황했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 아니야! 우리 엄마가 아는 사람꺼 받아온거랬어! 


에이 거짓말치지마 니가 훔친거잖아. 


남자아이들의 집요한 추궁은 계속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장난을 친거였는데 나는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내 반응이 재미있으니 아이들은 나를 더욱 추궁했다. 나는 결국 그날 혼자 눈물을 흘렸다. 내가 울자 남자아이들은 장난을 멈췄고 다행히 내 눈물은 선생님이 보지 못해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 되었다. 선생님이 알았으면 나는 더 창피했을 것이다. 


여러분, 물려받아온 친구의 물건을 가지고 놀리지 마세요~ 


그러면 나는 우리반 공식 가난한 아이가 됐을테니까. 




어이 그때 나 놀리고 울린 놈들... 밥은 먹고 다니냐. 난 정말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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