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에서 유명하다는 순댓국집 산수갑산. 마침 혼자 지나가다가 배가 고파 들르게 되었다. 브레이크 타임은 3시부터. 내가 근처를 기웃거린 시간은 2시 30분. 들어가도 되나 마나 서성이다 사장님께 "지금도 돼요?" 하니까 사장님이 "어~어~ 들어와" 한다.
"뭐 먹을 거야? 순댓국~?" 유난히 말의 꼬리가 늘어지는 그는 낮부터 약술을 조금 한 듯했다. 나는 "네 순댓국 보통이요" 했고 그는 주방을 향해 당당하게 "여기 아가 순댓국 보통!"하고 소리쳤다. 주방 이모들은 "지금 정리하던 중이라 나오려면 조금 시간 걸려요~"했다.
순댓국이 조금 걸린다는 말에 아재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주방 이모 중 한 명에게 "여기 아가 찬 먼저 갖다 줘~" 한다. 아까부터 초면인데 계속 '아가', '아가'한다. 남이 보면 아는 사이인 줄 알겠다. 다른 테이블에서 힐끔힐끔 나를 쳐다본다.
산수갑산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여기서 친절한 서비스를 기대하면 큰 코다친다. 일단 일하시는 분들의 연령대가 전부 높고 식당 자체가 아재력 만렙이다. 고객들은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사장님 친구들이 오면 줄 따위는 무시하고 프리패스로 입장을 시켜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불친절함에 속이 상한 고객들이 남긴 악평은 구글 평점에서 찾아보면 볼 수 있다.
그런 젊은이에겐 무뚝뚝한 아재가(혹은 할배가) 약주 한잔에 녹아버린 것이다. 나 낼모레 서른인데.
그 날은 화장도 안 하고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나갔던 날이었다. 그래서 아마 대학생 정도로 오해하셨던 모양이다. 그는 내 뒤편 테이블에 앉아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며 요즘 야채값이 어떻다느니, 날씨가 어떻다느니 한바탕 구시렁구시렁댔다. 그리고는 양파를 사러 나가야 한다며 일어섰다. 그러면서도 잊지를 않았다.
여기~ 아가 순댓국 잊지 말고~
나는 정말 숨죽여 웃었다. 그는 내가 고맙다고 인사 할 틈도 주지 않고 그대로 퇴장해버렸다. 약주 한잔에 녹아버린 그의 불친절함이여. 이래서 사람들이 술이 좋다고 하는 건가. 알콜쓰레기인 나는 평생 모를 거다.
불친절하다고는 하지만 나는 산수갑산이 좋다. 맛은 내 입맛에 맞다. 무엇보다 6천 원이라는 가격에 푸짐하게 나오는 순댓국밥이 마음에 들고 아재력 만렙 가게면서 카드를 내밀어도 핀잔주지 않아 좋다. 순대나 내장에서 누린내도 안 나고, 반찬도 대여섯 종류는 같이 나와서 좋다.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이 많아도 안에서 느긋하게 술 한잔 하고 있는 손님들에게 나가라는 눈치는 주지 않는다. 빨리빨리 팔아서 돈 벌려고는 안 하는 것이다. 어쩌면 장사할 줄 모르는 식당이다. 그 아재력 때문에 좋다.
물론 먼길 와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안에 들어가서 불친절함을 겪는 분들이야 충분히 기분이 나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냥 조금만 봐주셨으면 좋겠다. 안에서 일하는 분들이 전부 '노땅'들이라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