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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Nov 26. 2019

산수갑산, 낼모레 서른인데 '아가'소리를 듣다


 을지로에서 유명하다는 순댓국집 산수갑산. 마침 혼자 지나가다가 배가 고파 들르게 되었다. 브레이크 타임은 3시부터. 내가 근처를 기웃거린 시간은 2시 30분. 들어가도 되나 마나 서성이다 사장님께 "지금도 돼요?" 하니까 사장님이 "어~어~ 들어와" 한다. 


 "뭐 먹을 거야? 순댓국~?" 유난히 말의 꼬리가 늘어지는 그는 낮부터 약술을 조금 한 듯했다. 나는 "네 순댓국 보통이요" 했고 그는 주방을 향해 당당하게 "여기 아가 순댓국 보통!"하고 소리쳤다. 주방 이모들은 "지금 정리하던 중이라 나오려면 조금 시간 걸려요~"했다. 


 순댓국이 조금 걸린다는 말에 아재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주방 이모 중 한 명에게 "여기 아가 찬 먼저 갖다 줘~" 한다. 아까부터 초면인데 계속 '아가', '아가'한다. 남이 보면 아는 사이인 줄 알겠다. 다른 테이블에서 힐끔힐끔 나를 쳐다본다. 


 산수갑산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여기서 친절한 서비스를 기대하면 큰 코다친다. 일단 일하시는 분들의 연령대가 전부 높고 식당 자체가 아재력 만렙이다. 고객들은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사장님 친구들이 오면 줄 따위는 무시하고 프리패스로 입장을 시켜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불친절함에 속이 상한 고객들이 남긴 악평은 구글 평점에서 찾아보면 볼 수 있다.


 그런 젊은이에겐 무뚝뚝한 아재가(혹은 할배가) 약주 한잔에 녹아버린 것이다. 나 낼모레 서른인데.

 그 날은 화장도 안 하고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나갔던 날이었다. 그래서 아마 대학생 정도로 오해하셨던 모양이다. 그는 내 뒤편 테이블에 앉아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며 요즘 야채값이 어떻다느니, 날씨가 어떻다느니 한바탕 구시렁구시렁댔다. 그리고는 양파를 사러 나가야 한다며 일어섰다. 그러면서도 잊지를 않았다. 


 여기~ 아가 순댓국 잊지 말고~ 


 나는 정말 숨죽여 웃었다. 그는 내가 고맙다고 인사 할 틈도 주지 않고 그대로 퇴장해버렸다. 약주 한잔에 녹아버린 그의 불친절함이여. 이래서 사람들이 술이 좋다고 하는 건가. 알콜쓰레기인 나는 평생 모를 거다. 


 불친절하다고는 하지만 나는 산수갑산이 좋다. 맛은 내 입맛에 맞다. 무엇보다 6천 원이라는 가격에 푸짐하게 나오는 순댓국밥이 마음에 들고 아재력 만렙 가게면서 카드를 내밀어도 핀잔주지 않아 좋다. 순대나 내장에서 누린내도 안 나고, 반찬도 대여섯 종류는 같이 나와서 좋다.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이 많아도 안에서 느긋하게 술 한잔 하고 있는 손님들에게 나가라는 눈치는 주지 않는다. 빨리빨리 팔아서 돈 벌려고는 안 하는 것이다. 어쩌면 장사할 줄 모르는 식당이다. 그 아재력 때문에 좋다. 


 물론 먼길 와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안에 들어가서 불친절함을 겪는 분들이야 충분히 기분이 나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냥 조금만 봐주셨으면 좋겠다. 안에서 일하는 분들이 전부 '노땅'들이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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