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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Jan 14. 2020

죽지도, 기죽지도 않겠다


 한국을 떠나기 전, 암스테르담에 가려 맘먹었던 이유는 순전히 죽으려는 이유였다. 


 사는것도 힘들지만 죽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죽고는 싶은데 용기가 한 세 숟갈정도 부족했던 나는 암스테르담에가서 뭐가 됐건 약물을 잔뜩하면 비로소 스스로 생을 마감할 용기의 잔이 가득 찰 것이라고 확신했다. 물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있던 이 자살계획을 꿰뚫어본 어느 언니의 눈물 덕분에 자살 청사진을 지워내버리고 말았지만. 


 어차피 영국에 있던 나는 독일로 다시 한번 가야했다. 고민을 했다. 기차를 탈 예정인데 파리를 거쳐 독일로 갈까, 암스테르담을 거쳐 독일로 갈까. 마침 영국에서 우연히 만나 친해진 카티아가 파리에서 거주중이었으므로 그녀는 무조건 파리로 오라고 내게 수차례 러브콜을 던졌다. 하지만 그녀의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나는 홀린듯 암스테르담으로 경유지를 정했다. 



 그렇게 도착한 암스테르담. 밤이었다. 사실 자살하려는 마음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밤 공기는 시원했고 다음 날 있을 게이 퍼레이드 탓에 도시는 번쩍번쩍 더욱 화려했다. 전날 밤에 나와 카티아 그리고 카티아의 친구는 자정이 넘어서까지 런던의 밤거리를 배회했다. 나는 어둑어둑한 런던의 밤거리가 싫었다. 언제나 화려한 밤거리가 좋다. (그래서 내가 서울을 좋아하는가보다)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마음껏 암스테르담 밤거리를 웃으며 돌아다녔다. 취객이며 약쟁이로 보이는 이들이 킬킬대며 지나가도 무섭지 않았다. 그들 눈엔 나도 취객이자 약쟁이로 보였을테니까. 


 그러다 잠시 커피가 한 잔 하고 싶어 호스텔로 돌아왔다. 호스텔은 자판기에서 파는 싸구려 커피를 제공하고 있었다. 1~2 유로 하는 싸구려 커피 한 잔을 두고 아무도 없는 호스텔 로비에서 나는 글을 썼다. 거기에서 처음으로 유럽 여행기를 써보자는 생각을 굳혔다. 글을 쓰고도 쓰고 참 많이도 썼다. 내가 이렇게 많이 쓸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썼다. 


 그동안은 늘 글을 쓴다는게 부끄러웠다. 어릴적 제법 글을 쓴다고 칭찬도 받아왔지만 늘 내 글쓰기 자존감은 약했다. 주변에서 어딜가든 재미난 에피소드를 몰고다닌다고 이야기해주어도 나는 늘 흘려들어왔다. 하지만 그날 써내려간 글을 읽어보니 내가 읽어도 제법 흥미로웠다. 내게 없던 글쓰기 자존감이라는 것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는 모든 것을 끝내려고 갔던 그 도시 암스테르담에서. 


 유럽 여행을 반추하다보니, 많은 유럽 사람들이 혹은 유럽에서 마주친 여행객들이 나를 미국인이라고 넘겨짚던 일들도 떠올랐다. 나는 영어를 늦게 배웠다. 대학은 한국에서 나왔지만 영어만 쓰는 학과를 나왔다 학교에는 유학파들이 많았고 사실 나는 늘 기가 눌려있었다. 기가 하도 죽어있었기에 캐나다에서, 미국에서 그들이 나를 캐네디언이나 미국인이라고 생각할때면 그저 '내가 북미에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라고 또 스스로를 깎아내렸었다. 그런데 동양인이면 덮어놓고 중국인이라고 먼저 생각하는 이 땅에서 말 하나로 미국인 행세가 가능하다니. 그동안 왜 스스로 그렇게 기가 죽어 있었던지 그때 내 자신이 가여웠다. 



 호스텔 고양이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나타나 내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내게 곁을 주었다. 내게는 무언가 용기를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우스운 일이다. 고양이는 그냥 내게 먹을 것을 요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날 밤은 오직 나만을 위한 밤으로 내가 작정한 밤이었으니까. 내 맘대로 오해했다. 


 모든 것을 끝내려던 도시 암스테르담에서 나는 새로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죽지도 기죽지도 말자. 암스테르담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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