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에 가면 우울증과 불안증 정도를 자가 측정하는 문답이 주어진다.
어느 검사 였는지 기억도 잘 안나고, 어떤 문항이었는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강 적어보면 문항 중 하나는 "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잃고 있지 않다" 였다.
나는 늘 "관심을 잃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나는 친구들과 교류하며 지내고 있고, 때때로 친구들과 놀러나가기도 하니까.
어제는 회사를 그만뒀다. 이직한지 채 100일이 안된 시점에서 단행해버린 사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데 방해가될까봐 퇴사를 온전히 알리지도 않은채, 조용히 경영진과 면담 후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어제부터 오늘까지 내가 가깝다고 느끼지 않았던 직장 동료들의 수많은 톡이 내게 쏟아졌다. 다들 갑작스런 내 사직에 당황했고, 무슨일이 있었느냐고 우려했고, 퇴사는 했어도 꼭 다시 만나자고하며 몇명과는 식사 날짜까지 잡았다.
문득 나는 내 정신과 문답이 떠올랐다. "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잃고 있지 않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사실 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잃고 있었다. 직장 동료가 되었건 누가 되었건 기존 친한 사람이 아니고는 만나자는 약속을 피해왔고, 퇴사하고 이만큼의 관심이 쏟아질 줄은 꿈에도 모를 정도로 다른 사람들이 내게 가진 관심에 무지해왔다.
자가진단은 때로 자기가 자기를 잘 모르기 때문에 실수를 범하게 한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MBTI도 자기가 직접 하기보다는 친구가 대신 해주는 성격이 진짜 자기 성격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혹은 누군가가 자신의 MBTI를 말했을때 '저 사람이?'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듯이.
오늘도 나는 나를 새롭게 하나 더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