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라바토 2회 차 치료를 받았다.
이 글을 검색해서 들어오신 분들이라면 스프라바토가 뭔지 아시겠지만 모를 분들을 위해 아래 스프라바토 소개를 남겨둔다.
나는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고 있고, 매일 약을 먹는다. 처음 스프라바토에 대해 알게 된 것은 1년도 훨씬 전이었으나 치료를 망설인 이유는 "가격" 때문이었다. 스프라바토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1회 치료 가격이 80만 원이다. 여기에 병원 진료비가 붙으면 81~82만 원 정도를 내는 것 같다.
스프라바토 치료 시작 전에는 먼저 혈압을 잰다. 치료 중 혈압이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처음 정상 혈압인 것을 확인하고 치료 중에도 약 15분 간격으로 혈압을 확인한다. 구토 증상이 있을 수 있기에 치료 전 식사를 권장하지 않으나 밥 먹고 가서 받았지만 토한 적은 없다. 물론 어지러움은 발생하기 때문에 심한 경우 구토로 이어질 수 있다는데 동의한다.
1회 치료에는 스프라바토 2통이 사용되며 의사 선생님의 입회하에 사용법을 설명받고 오른쪽과 왼쪽 코를 통해 1통을 2회씩 투여한다. 이때 목으로 약이 넘어가는 느낌을 느낄 수 있고 좀 역할 수 있다. 1통 투여 후에는 약 5분 정도? 뒤에 2번째 투약을 한다. 의사 선생님의 지도하에 전부 내손으로 스스로 투약한다.
여기서부터는 개인의 영역으로 서로 다를 수 있지만 나의 경우 투약 후 몽롱해진다. 늘 나를 짓누르는 걱정거리들이 투약 후에는 먼일처럼 느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을 잃게 된다. 투약 후에 잠을 자도 괜찮다고 들었으나 나는 이동안에 가급적 긍정적 생각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휴대폰을 통해 변하는 생각들, 가치관들을 적어둔다. 다만 몸의 행동이 느려지기 때문에 오타가 엄청난다. 그래도 적는 편이 편하다.
나는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를 사용하는 다중언어 구사자인데, 투약 후에는 영어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내 상태를 확인하러 들어오신 의사 선생님께 영어로 대답하거나 말을 걸기도 했다. 약간 곁다리로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생각하는 사고방식도 바뀔 수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한국어로는 내 약함이나 결함을 받아들이거나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편이다. 아마도 한국어를 배울 때 다소 압박이 있는 환경에서 배워서인듯하다. 반면 영어로는 표현에 조금 더 자신감이 생긴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한 사람은 한국어로 소통할 때는 굉장히 조용조용한 편인데 영어로 대화할 때는 목소리 톤부터 높아지고 말이 많아지기도 한다.)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어지러움이 찾아올 때가 있다. 첫 번째 치료 후에 곧바로 두 번째 치료를 시작하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첫 번째때는 어지러움이 오래 지속됐고 두통약을 먹고 싶을 정도로 두통이 있었으나 두 번째때는 두통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스프라바토는 어쨌든 명상약은 아닐 것이다.
이런 기전으로 작용하기에 투약 후 가만히 있는 동안에도 내 몸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투약 후 잠을 자도 괜찮다고들 하는 모양이다.
이 부분은 첫 번째 투약 후를 토대로 적어본다. 우선 자살 충동이 현저히 줄어든다. 투약 전에는 어떻게든 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투약 후에는 이와 같은 생각이 전혀 들질 않는다. 우울감도 줄어든다. 수면에 문제를 많이 겪어왔는데 아침에 깔끔한 기분으로 일어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가격과 시간이다. 1회당 80만 원이 훅 날아간다. 또 투약 후 해리 등을 겪기 때문에 병원에만 있어야 해 업무와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첫 치료 때는 아직 회사를 다닐 때였고 회사에서 허락을 받아 치료를 받았음에도 '업무시간'이라는 압박이 있었다. 이번 치료 때는 현직 백수이므로 한결 마음은 편했다.
본래 스프라바토 치료는 4주간의 시간을 두고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나 나는 환자의 주머니 사정을 걱정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 덕분에 정기적 치료 대신 비정기적 치료를 받고 있다. 말 그대로 내가 필요하다 싶을 때쯤, 더 이상 견디기 힘들 때쯤, 약빨이 떨어진다 싶을 때쯤 가서 받는 방식이다. '그러면 안 되지 쯧쯧'하고 나를 비난하려거든 내게 800만 원만 주시라.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쓸데없이 자살예방 캠페인에 돈 낭비하지 말고 스프라바토 의료보험이나 해달라고.
감기에 걸리면 약이라는 화학적 치료법을 택하듯 우울증, 자살 충동과 같은 아픔에도 화학적 치료법이 가장 좋은 것 같다.
글을 쓰는 이유는 스프라바토 치료를 망설이고 있는 분들을 위해서다. 다양한 후기들이 있지만 나는 효과를 보았다. 어느 병원에서 "자살하기 전에 한번 해봅시다"라고 스프라바토를 소개했다. 괜찮은 소개 문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