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어 알았다고. 너 억울한 거 알겠다고. 그래도 사람들이 그런 얘기 싫어하잖아. 너 혼자만 살아? 오늘 민준이까지 기분 좋자고 만난 건데 분위기 이딴 식으로 만들어서 좋아? 너 많이 취했어. 얼른 집에 가"
밖으로 나온 지석-데이비드가 재홍-올리버를 타박했다. 곧바로 따라 나온 민준-테일러는 흥분한 재홍-올리버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너 왜 벌써 나왔어. 계산은 누가 하고?"
지석-데이비드가 물었다.
"내가 했어..."
민준-테일러가 답했다.
"야 너 요즘 벌이도 별로 없다며. 내가 계산한댔잖아. 이따가 계좌번호를 주던 비트코인 지갑 주소를 보내던 해"
그나마 전자제품 스토어에서 정규직으로 근무 중인 지석-데이비드와는 다르게 민준-테일러는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언론은 전후 재건 사업으로 시중에 풀린 돈과 일자리가 늘고 있다고 떠들어댔지만 현실은 일자리가 간절한 사람이 많아 수요와 공급이 엇박자를 그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 시발. 돈 없이 태어나서 부모한테 팔려 강제로 어른아이되고, 전쟁 나갔다 왔어도 돈은 가족들이 다 가져가고, 시발, 사람들은 살인자 취급하고, 이래도 되는 거냐?"
재홍-올리버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악을 썼다. 그는 이내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래서 내가 말하잖아, 우리도 뭉쳐야 된다고. 그러니까 너네 이번 모임에 꼭 나와라"
지석-데이비드와 민준-테일러에게는 난처한 요구였다. 재홍-올리버는 얼마 전부터 어른아이들의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다. 어른아이들은 모임을 통해 자신들과 참전장병들의 처우 개선 등을 정부에 요구하는 중이다. 당연히 정부는 이 모임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 측에서 스파이를 파견해 모임 구성원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아 그래도 모임은 좀..."
민준-테일러가 난처한 기색을 표하자 재홍-올리버는 더 화를 냈다.
"야! 너 언제까지 겁쟁이로 살 거야! 우리가 우리 권리를 주장 안 하면 누가 하냐고!"
지석-데이비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총탄이 날아드는 전투를 겪으며 그만이 갖게 된 안정을 취하기 위한 버릇이다. 이윽고 눈을 뜬 지석-데이비드는 재홍-올리버를 진정시켰다.
"재홍아, 술 깨고 얘기하자. 일단 집에 들어가. 오늘 만나서 반가웠다. 택시 불러줄게"
"야, 데이비드, 너 어른아이인 거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 거 같냐? 네 여자친구는 그렇다 치고 예비 장인 장모가 알면 뭐라고 할 거 같냐? 우린 이름에서부터 티가 나. 곱게 자란 애들, 부잣집 애들은 한국이름, 영어이름도 비슷하게 짓잖아. 네 여자친구 혜율-헤일리처럼. 근데 우린 뭐냐? 무식한 부모 밑에 태어나서 지석-데이비드, 민준-테일러, 나 재홍-올리버. 이름에 일관성이 없어 일관성이. 시발 내가 이름 바꾼다 진짜 시발. 재홍-제퍼슨!"
여자친구 이야기까지 나오자 지석-데이비드는 더 이상 화를 참을 수 없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지석-데이비드의 주먹이 재홍-올리버의 턱에 꽂혔다.
"말 가려서해 재홍-올리버. 저기 택시 오네. 너 타고 가라"
재홍-올리버를 보내고 집으로 향하는 지석-데이비드, 민준-테일러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분주히 외면해 왔지만 세상과 자신들 사이에는 큰 벽이 있음을 둘 다 모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늘 그 벽을 더욱 실감했다.
수, 일 연재인데 실수로 일찍 올렸습니다. 다음 화는 기존 스케쥴 대로인 5월 22일에 업로드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