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여권과 짐을 실은 기차를 눈앞에서 그냥 보내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고 위트레흐트라는 역까지 가서 겨우 소지품들을 되찾은 뒤, 피로에 찌든 몸을 이끌고 다시 돌아온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나는 위트레흐트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오는 내내한숨도 자지 못했다. 혹여나 정차역을 지나칠지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거니와, 누군가 내 짐을 훔쳐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정말 이런 부분에선 우리나라 좋은 나라)
이 날따라 일이 풀리려다 말려다 자꾸 나와 장난을 치는지 숙소 체크인 조차 쉽지 않았다. 수습생으로 보이는 직원이 나의 체크인을 담당했는데 워크인 체크인은 처음 해보는지 온통 혼란스러워했다. 게다가 다른 직원들은 나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그녀를 옆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보통 때 같았으면 나도 인정으로 그냥 "Take your time"하고 기다렸을 텐데 이번에는 나의 참을성도 동이 났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 돈을 내고 서비스를 제공받으러 온 것이지 이 수습직원의 학습 대상이 되러 온건 아니지 않은가. 여기에 잠을 자지 못한 지가 거의 28시간이 되어가자 나도 결국 참지 못했다.
"저기요, 정말 미안한데 내가 오늘 정말 힘든 하루를 보냈거든요, 내가 원하는 건 그냥 체크인하고 목욕하고 한숨 푹 자는 것뿐이에요. 부탁할게요, 얼른 체크인 끝내고 내가 방에 들어가서 쉴 수 있게 해주세요."
말은 정중했지만 내 표정은 일그러져있었다. 정말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너무 힘들었다. 그러자 사태를 파악한 다른 직원이 바로 교대해 체크인을 얼른 끝내주었고 옆으로 물러나 있던 수습직원은 오늘이 자신의 첫날이라서 그렇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나는 그녀에게 "괜찮아요, 당신 잘못이 아닌걸요"라고 조금이나마 웃음을 보이며 말한 뒤 얼른 내 방으로 올라갔다.
일단 따뜻한 물을 받아 몸부터 담갔다. "어~"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대충 씻고 나와 자려고 누웠는데, 아는 분들은 알 거다. 너무 피곤하면 잠도 쉽게 들질 않는다. 게다가 방도 하필 주차장 쪽으로 배정받아서 차 소리가 은근히 시끄러웠다. 그러나 지금 가서 방을 바꿔달라고 요구를 하기에는 내가 너무 피곤했다. 일단은 상황에 적응해 아주 얕은 잠에 살짝 빠져있는데 어디에서 갑자기 요란한 폭죽 소리가 들려서 잠을 깼다.
아니 얘들은 무슨 대낮부터 폭죽놀이를 한단 말인가... 하며 볼따구를 개구리 왕눈이의 투투처럼 부풀리며 깼다.에라이, 이 독일 미친놈들. 하며.
깬 김에 왓츠앱 메시지를 보니 독일인 친구가 약속에 좀 늦겠다는 연락이 와있었다.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조금 더 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친구가 늦는 이유를 듣고 잠이 확 달아났다. 내 숙소 바로 옆인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역에서 총격전이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친구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진짜네?
내가 머무르던 숙소에서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역은 정말 걸어서 5분 거리였다. 이렇게 가까우니 폭죽 소리로 착각했지만 총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
총기가 합법인 나라 북미에서 근 3년을 살고 유랑하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총소리를 독일 땅에서 듣다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좀 아쉽기도 했다. 간발의 차로 총격전 장면을 놓친 것 같아서. 이런 구경은 또 언제 해본단 말인가.
그나저나 은행강도들이라니. 미국 서부시대 얘기도 아니고 21세기 유럽 땅에서 그것도 내 코앞에서 벌어진 사건. 신기하면서도 기가 찼다.
마지막으로 독일 경찰차 사진. 독일에 간다고 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종종 "야, 독일은 진짜 경찰차도 벤츠냐?"라고 묻곤 했다. 이건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정말 경찰차도 벤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