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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May 22. 2021

혼자서도 잘 놀아보기로

창조성을 깨우는 놀이 - 아티스트 데이트

요즘 아티스트 데이트라는 것을 하고 있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이라는 워크북의 미션 중 하나이다. 대표적인 미션이 매일 아침에 일어나 두 페이지의 글을 쓰는 것(모닝 페이지)과, 매주 한 가지 나의 창조성을 깨워줄 행동을 하나 하는 것(아티스트 데이트)이다. 그것도 12주간, 3달 동안 말이다. 모닝 페이지는 대충 이해가 되지만 아티스트 데이트는 뭘까? 아티스트? 창조성?이라고 의아해 할 수 있다.(저자 역시 이 방법이 매우 의심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책에서 도움이 되는 건 시간을 들여 잘해보는 타입이다. 특히 글쓰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해보는데, 이 책을 만났고 의욕은 불탔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일종의 소풍 같은 놀이이다. 내 안에 있는 아티스트와 함께 노는 것이다. 옛날에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놀이를 다시 해보기도 하고, 바쁘다고 그저 흘려보냈던 것들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다. 일주일에 2시간 정도 시간을 내어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해본다. '놀이'이기 때문에 행동이 스트레스받아서는 안된다. 가능한 내가 좋아하는 일로 2시간을 채우는 것이다. 처음엔 아티스트 데이트? 너무 거창한 거 아니야?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일정에 넣었다. 그런 행동으로 인해 무언가를 얻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있었다.  내 시간은 시도하든 안 하든 흘러간다.


해볼 만한 놀이들을 찾아보았다. 글을 쓰는 것 외에 내가 놀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어린 시절 그림 그리는 것을 꽤 좋아했다. 그림일기도 10년 가까이 썼다. 요즘 달리기에도 관심이 생겼다. 집콕 놀이로 유행하는 취미 활동도 보였다. 나는 준비를 했다. 내 속에 숨어있는 어린아이와 같이 놀 준비를 말이다. 






나의 첫 아티스트 데이트는 달리기였다. 달리기라니 놀이와 너무 거리가 멀어보일지도 모르겠다. 놀이는 그저 즐기기 위한 것인데 달리기는 운동 아닌가? 그런데 내가 놀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단순했다. 달리기를 건강 목적이라든지, 해야 하니까? 해보려 한 의무감으로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해보지 않은 일이라 순전히 '호기심'으로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니 산책, 달리기 이런 것도 놀이의 일부로 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아티스트 데이트를 시작한 첫 번째 주, 달리기 앱을 켜고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몇십 년 만에 뛰는 걸까? 초반부터 내 몸은 이게 무슨 일이냐고 격렬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우선은 달리기로 했으니 달렸다.  좀 더 뛰고 나니 숨이 헉헉 차고, 후회가 밀려왔다. '나 이걸 놀이라고 생각한 거 잘한 거 맞나? 아티스트 데이트 맞아?'라고 의구심이 들었다. 결국 중간부터 천천히 속도를 낮추며,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달리면서 보이는 풍경은 익숙한 듯 새로웠다. 집 근처에 유채꽃으로 가득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달리면서 처음 알았다. 그렇게 5km를 처음 채웠다. 첫 달리기 기록이 생겼다. 달리기 어플에는 꽤 상세하게 기록이 적혀있었다. 평균 페이스, 시간, 심박수 등등. 그 기록을 보다 보니, 문득 좀 더 꾸준히 달리면 평균 페이스나 시간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달리기는 하나의 '시간 줄이기 놀이'이자 '새로운 공간 탐험 놀이'가 되었다. 1회성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저 달린다. 건강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기록 깨기 게임처럼 말이다. 3km도 뛰고 가끔은 5km, 10km도 뛴다. 창조성은 글쎄? 달리면서 이런저런 글감도 생기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니 나쁘지 않다.


초반에 비해 기록도 많이 줄었다. 달리기는 건 꽤 재미있다


두 번째 데이트는 오일 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최근에 취미로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된 지 2년이 지났는데, 다시 한번 그리고 싶었다. 특히 파스텔은 크레파스와 닮아서 진짜 아이처럼 즐기면서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120색 되는 오일파스텔을 호기롭게 사고 새 몰스킨 노트를 펼쳤다. 유튜브에서 카페 음악을 찾아 틀어놓은 뒤 커피 한잔도 준비했다. 놀이에도 분위기는 필요한 법이다. 


막상 흰 종이를 만나니 머뭇거려졌다. 그래도 예전에 그림일기로 몰스킨 10권쯤은 채웠는데, 막상 다시 그림을 그려보자니 어색했다. 예시라도 찾아야겠다 싶어 노트북을 켜고 '오일파스텔'이라고 검색을 해봤다. 몇 가지 마음에 드는 풍경이 있었다. 1장을 따라 그렸다.  한 1장을 완성하니 재미가 붙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려보기로 했다. 우주, 사막의 밤하늘, 오로라..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빠져들다 보니 3시간이 흘렀다. 페이지 5장을 채웠다. 뭉툭한 파스텔이지만, 내가 원하는 색감에 따라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게 좋았다. 이 재미있는걸 그동안 왜 안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일파스텔로 그려본 우주, 밤하늘, 오로라


최근에 한 아티스트 데이트는 '페이퍼 플라워' 만들기다.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은 없지만 해볼 만한 놀이라고 생각했다. 종이로 예쁜 꽃을 종이로 만들 수 있다니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페이퍼플라워 재료를 주섬주섬 펴놓고 식탁에 앉았다. 종이를 펼쳐 도안에 맞춰  본을 뜨고 종이로 자르기 시작했다. 내가 만만하게 본 것이 잘못이었을까?  큰 꽃잎 12장, 중간 꽃잎 9장, 작은 꽃잎 12장, 줄기, 수술 작업 등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시간이 3시간 정도 지나고 나니 나는 이내 흥미를 잃고 말았다. 꽃잎 한 올 한 올을 자르고 붙이고 만드는 작업을 쉽게 본 탓이다. 마지막에는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조차 들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렇게 저녁 시간에 가까워질 때쯤, 결과물이 완성되었다. 완성된 꽃은 예뻤다. 하지만 다시 할 생각이 전혀 들진 않았다. 


완성한 페이퍼 플라워, 이쁘긴 이쁘다



이렇게 나는 아티스트 데이트라는 명목으로 나만의 놀이를 하고 있다. 매주 새로운 놀이를 찾아내고 소풍을 떠난 듯 놀고 있다. 8주가 지났는데 이런 놀이가 창조성을 깨우는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삶을 다채로워졌고, 글은 더 쓰고 싶어 졌다.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면 놀이도 해보지 않으면 진짜 맞는지 아닌지 모른다는 것이다. 놀이라고 처음 생각하는 것이 일처럼 느껴질 수도, 일처럼 생각되는 것이 막상 놀이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달리기는 의무처럼 보여도 해보고 나니 나는 '속도 줄이기 놀이'가 되어있었다. 반면 페이퍼 플라워는 놀이처럼 보였는데, 결국에는 일이었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놀이는 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일일 수도 놀이 일 수도 있다. 놀이는 누가 정해주지 않는다. 자신이 찾아야 한다. 그러니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자신만의 놀이를 찾아내는 것 역시 나다움을 찾아가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이다.
문제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떻게 예술가로 남아있느냐는 것이다
- 파블로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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