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니 Dec 30. 2023

나비 태우기

파피용이 죽었다. 그의 부고 소식을 알린 건 찬얼이었다. 평소처럼 단순히 술주정을 부리려고 온 전화가 아니었다.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진지한 목소리였으므로 나는 당장 주소를 물었다. 전화를 끊은 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등 뒤에서 아내가 이불을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데?” 

“파피용이 죽었데.”

"갑자기?"

"차 사고가 난 것 같아."

그녀는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나는 침대 밑에 떨어진 팬티를 주워 입고 옷장 문을 열었다. 양복과 셔츠를 꺼내 겉 비닐을 벗겨냈다. 맨 끝 서랍에 검은 넥타이가 있다고 아내가 말했다. 회색 롱코트를 걸치고 방을 나가려고 하자 아내가 모레까지 올 수 있겠냐고 물었다. 

"최대한 빨리 올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절약이 몸에 배어 있던 아내가 마음먹고 거금을 들인 온천 여행이 내일모레였다. 한동안 서로 회사 일이 바빠 연차를 내고 시간을 맞추기조차 쉽지 않았던 탓에 서로 여행에 거는 기대가 컸다. 특히 아내는 며칠에 걸쳐 여행 일정을 정할 정도였다. 적어도 내일 저녁까지만 돌아온다면 문제없이 떠날 수 있을 터였다.

밖을 나오자 새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올해 진눈깨비 눈은 이따금 내렸지만 이렇게 펑펑 내리는 함박눈은 처음이었다. 자동차 앞 유리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시동을 켰다. 히터 온도를 높이자 앞 유리에 김이 서렸다. 와이퍼를 켜고 내비게이션을 검색하니 집에서 장례식장까지는 사십오 분 정도였다. 시계를 봤다. 이미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었다. 파피용의 부고를 알리는 메시지가 왔다.

내리는 눈은 도저히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눈송이는 점점 굵어졌고 라이트를 켜도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도로는 텅 비었지만, 속도가 잘 나지 않았다. 컴컴한 도로를 홀로 운전하는데 신호는 주황색에서 빨간색으로 자주 바뀌어 멈추길 반복했다. 다섯 번째 신호가 연속으로 걸려 답답해진 나는 창문을 열었다. 

갑자기 자동차 앞유리창 너머로 무언가가 반짝거렸다. 그게 무엇인지 뚜렷하게 보이진 않았다. 작고 하얀 것이 선명하게 공중에서 펄럭였다.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주변을 빙 돌았다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적막하고 컴컴한 어둠뿐이었다. 


*


파피용의 장례식장은 지하 2층에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전광판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조문객은 많이 없었다. 빈소에는 파피용의 어머니와 검은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자 한 명이 서 있었다. 젊은 여자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정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치 무용수 같았다. 파피용의 영정 사진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묵례하고 향을 피웠다. 파피용을 향해 절을 했다.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빈소 밖으로 나와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육개장과 편육이 종이 그릇에 담겨 테이블 위에 놓였다.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떼어내어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꽉 잡았다. 찬얼이었다. 그는 이미 취한 듯 볼이 빨개져 있었다. 

"오면 전화를 했어야지. 넌 항상 제 맘대로야."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건너편에 털썩 앉았다. 옆에 놓인 소주병을 들어 종이컵에 가득 부었다. 그는 내 얼굴을 한참 보더니 고개를 떨궜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이렇게 허무하게 간 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믿기지 않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파피용은 어제 한밤중에 어디론가 차를 타고 나가다가 그만 전신주에 부딪혔다. 차에서 금방 불꽃이 일기 시작했고 그는 앞 좌석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앉은 그대로 타버렸다. 마치 화로에 덩그러니 놓인 숯덩이처럼. 맨눈으로 신원확인을 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탔기에 CCTV로 확인한 번호판으로 그라는 걸 확인했다. 화재 원인은 차량 하부 배터리 폭발로 보인다. 그가 빠져나오지 못한 건 차 문이 열리지 않아서인지, 몸을 다쳐 빠져나올 수 없었던 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찬얼은 이 말을 반복했다. 새까맣게 될 때까지 활활 탔데, 모두. 

말없이 술을 마시는 찬얼 얼굴에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개를 드니 빈소에서 본 검은 원피스 여자가 다소곳이 서 있었다. 그녀는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민석 씨 친구분이시죠?"

찬얼은 눈물을 얼른 닦고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의 목소리로 말했다. 

"유페이씨래."

그제야 파피용이 휴대전화로 보여준 여성이라는 걸 깨달았다. 자세히 보니 하얗고 동그란 얼굴형에 웃을 때 입꼬리가 길쭉하게 올라가는 모습이 파피용과 닮았다. 염색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을 것 같은 검은 머리 역시 그를 떠올리게 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신이 없어서 연락을 빨리 못 드렸어요."

"한국어를 정말 잘하시네요."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외국인 특유의 억양이 묻어 나오지 않은 또렷한 목소리였다. 

"부모님과 어렸을 때 한국에서 오래 살았어요.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라 중학교 때까지 여기서 지냈어요."

앉으라는 찬얼의 말에 그녀는 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제 왼쪽에 사람 앉는 걸 안 좋아해서요."

"죄송해요. 쟤가 좀 저래요. 여기 앉으세요."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짓곤 찬얼의 옆으로 앉았다. 

"민석 씨도 그러더라고요."

어릴 적부터 나는 내 옆에 왼쪽에 사람이 앉으면 불안감을 느꼈다. 반대로 파피용은 오른쪽에 사람이 앉는 걸 불편해했다. 그딴 걸 왜 신경 쓰냐고 찬열은 항상 투덜거렸지만 나와 파피용에는 그런 크고 작은 룰이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이 작게 웃음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 부탁이 있어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방에 나비들이 있어요. 박제된 나비들이. 그것들을 처분해 줄 수 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파피용이 나비표본을 수집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찬얼이 민석에게 파피용이라고 이름을 붙인 건 전혀 다른 이유였지만. 우연히도 우리가 자주 먹었던 불량 식품 과자 이름도 파피용이었는데 유독 민석이 좋아했기에 찬얼이 붙인 별명이었다. 나비 모양의 작은 초콜릿이 무지개색으로 담긴 과자였다.

"일주일 전 갑자기 민석 씨가 말했어요. 만약 자신이 이 세상에 없다면 나비들을 꼭 당신이 없애주셨으면 좋겠다고요. 다른 사람이 만지는 게 걱정된다고 해서요."

그녀는 자신의 검지를 다른 손가락으로 꽉 쥐며 말했다.

"왜 내게 부탁한 걸까요?"

"글쎄요. 저에게 맡기고 싶지 않아서인지는 몰라요. 솔직히 그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녀는 나비표본이 있는 방 열쇠를 건네주었다. 그가 항상 몸에 지니던 열쇠였는데, 사고 난 날에만 거실에 있었다고 했다. 

"가능하면 내일 처리해 주실 수 있을까요? 곧바로 없애 달라고 부탁했어요."

나는 휴대전화를 한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열쇠를 건네주며 고개를 숙였다. 긴 머리카락이 앞으로 흘러내렸고 목덜미에 손톱만 한 푸른색 문신이 보였다. 나비 모양이었다. 

"그런데 참 닮았네요. 민석 씨와."

그녀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나는 무언가 들킨 사람처럼 몸이 움츠러들었다. 


*


마지막 파피용의 얼굴을 기억한다. 몇 달 전 찬얼의 고깃집에서였다. 찬얼에게 지금 당장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지금 오지 않으면 평생 연락을 안 하겠다는 으름장에 나는 집에서 50분이나 걸리는 곳까지 택시를 타고 나갔다. 그가 2년 전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고 고깃집을 차린 뒤로 우리는 서로 만나지 못했다. 이직한 지 얼마 되지 바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전공과 전혀 다른 IT 회사에서 프로젝트 관리 일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집에서 잠만 자고 회사로 출근하기만 반복했었다.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찬얼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주방 가까이에 있는 작은 칸막이 쪽으로 다가가 보니 찬얼과 파피용이 작은 테이블에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찬얼은 자신의 아지트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소고기를 집어 불판에 얹으며 말했다. 고깃집을 차리니 마음껏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게 제일 좋다고. 다행히 가게 장사는 잘된다고 했다. 파피용은 해외증권회사에서 근무하다가 막 한국지사로 발령을 받아 돌아온 참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파피용은 여전히 말없이 옅게 웃기만 했다. 눈꼬리는 더 쳐졌는데 여전히 하얬다. 다만 그가 짓는 웃음은 예전보다 더 건조해진 것 같았다.

"나 사실 결혼했어."

그는 이미 홍콩에 약식으로 결혼을 치렀다고 고백했다. 우리 몰래 갑자기 결혼이라니 말도 안 된다며 찬얼은 불같이 화를 냈다. 파피용은 쓴웃음을 지으며 사정이 생겨서 미리 치렀다고 한 달 뒤에 그녀가 한국에 오면 다시 정식으로 소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불만 있는 표정으로 그럼 사진이라도 보여달라 했다. 파피용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근사한 고층 호텔 레스토랑처럼 보이는 곳에서 파피용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의 옆에 흰색 트위드 재킷을 입은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유리창 뒤로 홍콩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가 프러포즈했던 날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자 가게는 손님으로 붐비기 시작했고 주문 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곧이어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울상을 지으며 찾아오자 찬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말없이 고기를 굽다가 입을 열었다. 

"아예 돌아온 거야?"

고개를 끄덕이며 파피용은 말했다.

"이제 한국에서 돌아오려고. 너무 떠나왔잖아."

"너는 결혼에 마음이 없는 줄 알았어."

"나도 그럴 줄 알았어. 그런데 그녀가 너무 나비 같은 여자라서."

"나비 같은?"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금방 어디로 날아갈까 봐"

희미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이상하게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려던 찰나 파피용이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에 걸어놓은 점퍼가 스르륵 미끄러져 주머니에서 작은 물건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허리를 굽혀 그의 물건을 줍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라이터, 마지막으로 주운 건 직사각형의 매끈한 플라스틱 상자였다. 자세히 보니 테두리가 검은 푸른 나비표본이 들어있었다. 나는 전등을 향해 케이스를 가까이 비췄다. 매끈한 날개 표면이 빛이 떨어져 반짝였고, 케이스를 움직이자 색이 다르게 보였다. 

"모르포 나비야."

파피용이 웃으며 말했다. 

“진짜야?”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게 케이스를 건넸다.

"너 아직도 나비를 태우니?"

그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어쩐지 그에게서 탄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눈을 뜨니 아침 일곱 시였다. 찬얼과 어린 시절 파피용과 놀았던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자세히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옆을 보니 찬얼이 몸을 동그랗게 웅크려서 자고 있었다. 나는 오늘 휴가를 써야 할 것 같다고 회사에 연락한 다음 찬얼을 깨웠다. 그는 팅팅 부은 눈을 끔벅이며 나를 쳐다보더니 10분만 나중에 깨워달라고 했다. 

아내에게 오늘 밤늦게 도착할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는 내일 아침 전까지만 와달라고 짧게 답했다. 평소에 자주 보내던 이모티콘은 보이지 않았다. 잠에서 깬 찬얼이 육개장을 양손으로 들고 왔다. 어제와 똑같은 맛이었고 몇 번 더 먹다 수저를 내려놓았다. 화장실에 가서 대충 얼굴을 씻었다. 

나는 유페이가 전해준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나비를 직접 정리하는 일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으나, 그가 나에게 이런 일을 부탁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좀 더 내용을 물어보려 장례식장을 돌아다녔다. 빈소에는 파피용의 어머니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을 뿐 유페이는 보이지 않았다.

찬얼과 장례식장 밖으로 나왔다. 밤새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폭설이 내렸는지 정장 구두가 푹푹 꺼져 무릎까지 박혔다. 볼이 얼얼할 정도로 바람은 매서웠다. 찬얼은 흡연소로 헐레벌떡 뛰어가 나에게 손짓했다. 눈을 밟을 때마다 발이 꽁꽁 얼어 감각이 무뎌진 것 같았다. 찬얼이 담배 한 개비를 꺼내며 불을 붙였다. 연기를 내뿜으며 그는 가게에 잠깐 갔다가 저녁에 다시 장례식장으로 올 거라고 말했다. 

“내일 운구 들 사람이 없데. 이 폭설에 사람도 더 올 것 같지도 않고. 그 자식 한국에 친인척이나 친구도 없었잖아.”

찬얼이 담배를 한 모금 내뱉자 그의 얼굴이 뿌옇게 보였다. 

“내일까지 난 있어야 할 것 같다. 너는 어떡할래?"

우선은 나비를 처분하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는 담뱃불을 끄며 말했다. 

"파피용이 옛날에 나비 수집 같은 걸 했던가? 그나저나 그건 어떻게 버리는 거냐. 쓰레기통인 것도 왠지 꺼림칙하고."

"그런 걸 원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담뱃불을 마지막 한 모금까지 빨아들인 다음 파란 트럭 쪽으로 걸어갔다. 

 새벽 내 꽁꽁 언 자동차 문을 열고 켰다. 자동차 룸미러 속에 비친 눈가가 유난히 푹 꺼져 보였다. 와이퍼를 켜자 앞 유리에 쌓인 눈이 서서히 사라졌다. 

눈은 새벽보다 더 굵게 내리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눈이 툭툭 부딪혔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질척거리는 눈 때문에 바닥이 검게 변해있었다. 나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도로 양옆에 늘어선 나무들의 가지 위에 무겁게 눈이 쌓여있었다. 출근 시간이라서 그런지 차가 점점 막히기 시작했다. 갓길에는 앞 범퍼가 찌그러진 자동차가 제법 눈에 띄었다. 라디오를 틀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다가 DJ의 목소리가 들렸다. 

"벌써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예년보다 눈이 많이 와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주는 시간을 내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따뜻하게 보내는 건 어떨까요?"

이윽고 캐럴 메들리가 이어졌다. 채널을 돌렸다. 경직되고 딱딱한 앵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새벽 강원도 삼척에서 산불이 나 4시간 만에 진화됐습니다. 강풍을 타고 불길이 번지면서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지기도 했는데요."

그러고 보니 저번 주 출근길에 새파란 하늘을 덮을 정도로 짙은 회색 연기가 산 중간에서 번지는 모습을 본 것 같다. 헬리콥터 몇 대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하늘 위를 지나갔다. 퇴근길에 보니 근처 산까지 까맣게 타 있었다. 겨울철이니 산불은 빈번하게 일어났다. 요즘 따라 불이 더 가까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파피용의 집은 장례식장에서 20km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눈 때문인지 두 시간이 지나 겨우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왔다. 구불거리는 길을 천천히 한참 올라가 정상쯤에 보이자 덩그러니 홀로 있는 집 한 채가 보였다. 주소로 보아 그녀가 말한 파피용의 집이었다. 눈이 쌓여있어 어느 쪽이 주차공간인지 알 수가 없어 집과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대고 나왔다. 사람의 발자국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눈밭이 펼쳐져 있었다. 울타리가 크게 쳐져 있고 그 안쪽에도 새하얀 눈으로 가득했다. 아마 넓은 잔디가 깔린 것처럼 보였다. 그의 집은 길고 세모난 지붕이 달린 나무집으로 마치 부유한 사람의 별장 같았다.


*


문을 열자 오래된 나무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거실에는 나무로 된 테이블과 소파와 벽난로가 있었다. 한 면은 나무로 된 책장으로 책이 빽빽하게 놓여있었다. 중문과 영문으로 된 서적이 한국어로 된 책보다 더 많았다. 소파 너머로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정면으로 보였다. 나는 통유리창에 손을 대고 나무를 한동안 바라봤다. 나뭇가지는 잔뜩 올려진 눈 때문에 축 처져 있었다.

생활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정돈된 집이었다. 거실 중앙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오르자 삐걱대는 나무 소리가 발끝이 바닥에서 떨어질 때마다 울렸다. 2층에는 방이 두 칸이 있었다. 하나는 빈방이었고, 다른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방안은 누가 마치 다녀간 듯 불이 켜져 있었다. 어쩌면 파피용이 마지막 순간에 이 방에 있었을지도 몰랐다. 

모든 벽에는 나비표본이 담긴 액자가 빈틈없이 걸려있었다. 작은 방이 아니었음에도 벽에는 빈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물감으로 색칠한 듯 날개가 선명한 나비표본들이 빼곡하게 액자 안에 들어있었다. 

정면에는 동그란 창문이 나 있고 그 아래에 원목 책상이 있었다. 책상 옆에는 아직 나비가 박제되지 않은 빈 액자가 겹겹이 쌓여있었다. 반대편에는 어항처럼 생긴 직사각형 모양의 유리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작은 나뭇잎 사이로 두 마리의 나비가 보였다. 나뭇가지를 위에서 지친 듯 날개를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나비는 몸통까지 새카맸고, 바닥 끝에서 미동 없는 나비는 표백한 듯 새하얬다.

세어보니 액자는 137개였다.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심호흡을 했다. 그가 원하는 건 내가 나비를 처분해 주길 바라는 것이고, 친구를 위해 못 해줄 것도 아니었다. 액자를 하나씩 벽에서 떼기 시작했다. 표면에는 먼지 한 톨도 없었다. 한 개씩 액자를 벽에서 떼어낼 때마다 나는 표본들을 둘러봤다. 샛노란 색에 표범 무늬처럼 검은 점이 박힌 나비도 있었고, 마치 보라색 실크를 둘러싼 듯한 모양의 나비도 있었다. 인공적으로 만든 듯한 연한 초록색의 나비 등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 나비표본 밑에는 반듯하게 쓴 파피용의 글씨가 보였다. Japonica saepestriata, Arhopala Boisduval, Neozephyrus smaragdinus. 발음이 머뭇거려지는 이름들이었다. 액자를 하나 떼어내고 나비를 하나씩 찬찬히 살피고, 그런 다음 다시 액자를 땠다. 수집이라고는 모르는 내가 봐도 그가 얼마나 희귀한 나비들만 수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떼어낸 액자가 허리만큼 쌓였을 때 눈에 익은 액자 하나가 보였다. 그건 어렸을 때 파피용이 우리에게 보여준 액자였다.


*


초등학교 사 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날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던 도중, 찬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집에서 가장 비싼 물건을 몰래 가져오는 거야. 그리고 놀이터에서 모여서 서로 보여주자."

방학에 찬얼은 친할머니가 있는 시골에 내려가고, 파피용 역시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가니 마지막 놀이라고 그는 말했다. 나와 파피용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저녁에 놀이터에서 다시 모이기로 했다. 

집으로 가면서 나는 아버지의 라이터를 떠올렸다. 누나가 일본에서 유학 갔다 돌아올 때 아버지 선물로 면세점에서 사 온 듀퐁 라이터였다. 온통 황금빛으로 빛났고, 얇은 세로 선이 촘촘하게 파인 디자인이었는데 뚜껑을 열면 맑은 소리가 오랫동안 귓가를 울렸다. 나는 아버지가 담뱃불을 붙이던 방법을 눈여겨보고 라이터를 가져와 몰래 따라 했다. 한번 붙은 불은 뚜껑을 닫지 않으면 꺼지지 않았다. 한 번은 종이에 불을 붙여보다가 큰 불이 날 뻔한 적도 있었는데 아버지는 크게 혼을 내곤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겼다. 물론 나는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알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부모님은 없었다. 누나는 방 안에서 컴퓨터를 하느라 내가 집에 들어오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부모님의 옷장 깊숙한 곳에 있는 아버지의 감색 재킷을 찾았다. 평소에 잘 입고 다니지 않는 겉옷이었다. 나는 재킷 안쪽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그리고 라이터를 꽉 손에 쥔 채 밖으로 나왔다. 

놀이터가 노을로 빨갛게 물들 무렵 찬얼이 나타났다. 우리는 파피용을 기다렸다. 가로등이 반짝하고 켜질 때 즈음 멀리서 큼지막한 액자를 들고 있는 파피용이 걸어왔다. 우리는 놀이터 구석에서 둥그렇게 앉았다.

찬얼이 보여준 것은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엄마가 외출할 때 꼭 끼는데 왜 맨날 끼느냐고 물어보니 영원히 변하지 않아서 귀하다고 했다. 나는 듀퐁 라이터를 보여줬다. 연습한 대로 엄지로 뚜껑을 올리고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눈을 반짝이는 찬얼과 파피용의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파피용의 차례가 되자, 그는 품에 있는 액자를 뒤집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진한 참나무 액자 안에는 열여섯 마리의 나비표본이 질서 정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거 진짜야?"

"맞아. 죽은 나비."

"아버지 거라고?" 

파피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찬얼은 액자로 얼굴을 더 가까이 댔다.

"아버지는 저녁마다 매일 액자를 깨끗이 닦고 한참을 바라봐. 나에게는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면서 말이야."

찬얼이 좀 더 가까이서 보자며 파피용이 든 액자를 붙잡았다. 그때 파피용이 힘을 더 주었는지 뒤로 물러나다 넘어졌다. 액자는 아래로 떨어졌다. 

주저앉은 채 얼굴이 사색이 된 파피용을 보고 찬얼이 당황하며 말했다.

"야, 자세히 봐봐. 유리는 안 깨졌어."

그의 말대로 유리는 멀쩡했다. 

"근데 여기"

파피용이 액자의 왼쪽 끝을 가리켰다. 검은 반점이 있는 노랑나비가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찬얼은 안절부절못했다.

"노란 나비를 잡아서 넣으면 되지 않을까?"

내가 말했다.

"공원이나 학교 뒷산에 가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비슷한 걸 잡아놓으면 괜찮을 거야. 일단 해보자"

 동네 놀이터에 붙어있는 작은 공원을 돌아다녔다. 잔디에 들어가 한참을 두리번거려도 나비 날개 한쪽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비닐봉지만 주웠을 뿐이었다.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결국 학교 뒷산으로 향했다. 찬얼이 먼저 숲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뒤를 따르던 나는 어느 순간 액자를 들고 뒤따라오는 파피용이 한참 동안 말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뒤돌아보니 파피용이 보이지 않았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났다. 

나는 찬얼의 어깨를 붙잡았다. 

"야, 파피용이 안 보여"

우리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파피용의 이름을 소리 내어 이름을 불렀지만, 학교 후문에 다다를 때까지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찬얼은 부모님을 불러와야겠다고 학교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운동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덩그러니 혼자 앉아 파피용을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뒷산 입구에서 검은 실루엣이 보였다. 파피용이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투명한 봉지를 들어 올렸다.

"우진아, 이것 봐"

그가 액자를 내려놓고 흙먼지가 묻은 비닐봉지를 보여줬다. 거기엔 작은 나비 한 마리가 있었다. 그가 잡아 온 나비는 색은 조금 달랐지만 크기는 비슷했다. 

"아직 살아있어?"

"응. 하지만 곧 죽을 거야."

우리는 가로등이 비치는 운동장 벤치에 앉아 봉지 안에 든 나비를 응시했다. 힘없이 파닥거리는 날갯짓은 어느새 느려졌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파피용은 미동하지 않는 나비를 조심스럽게 봉투에서 꺼냈다. 나는 액자를 살며시 열었다. 핀에 꽂힌 나비 중 맨 끝에 찢어진 나비의 핀을 완전히 떼어내자 나비가 툭 하고 떨어졌다. 파피용은 핀을 집어 새로 잡은 나비의 몸통 부분을 꿰뚫었다. 그런 다음 액자에 다시 핀을 붙인 뒤 양쪽 날개를 조심스럽게 폈다. 다시 액자를 원래대로 만든 다음 멀리서 액자를 바라보니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았다. 그제야 파피용의 얼굴에서 희미하게 미소가 감돌았다.

"이건 어떡하지?"

그는 손안에 있는 나비의 날개 두 조각을 보이며 내게 물었다. 그때 주머니에 있던 듀퐁 라이터가 생각이 났다.

"태워볼까?"

 나는 나비 날개 한쪽을 손으로 들고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화르르 타오른 나비는 마치 살아서 날갯짓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손끝에 불이 닿아 뜨거워 바닥에 떨어뜨렸다. 나비는 오그라들며 모두 타버렸다.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났다. 

나는 라이터를 파피용에 건넸다.

"너도 태워봐"

우물쭈물하던 파피용은 라이터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비의 날개에 불을 붙였다. 나비는 화르르 타올랐고 푸른빛을 내며 불꽃이 일었다. 파피용이 놀라 라이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불길에 휩싸인 나비는 근처 잎사귀에 떨어졌고, 나는 깜짝 놀라 발로 불이 붙은 부분을 짓이겼다. 그러나 파피용은 몸을 움직이지 않은 채 조용히 불타는 나비를 바라봤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파피용이 앞으로도 나비를 태울지도 모른다고.


*


액자를 벽에서 떼어내다 문득 창문을 보니 하늘이 어둑해졌다. 아내가 떠올라 연락을 하려고 휴대전화를 찾았는데 주머니에 없었다. 액자 사이로 사라진 휴대전화를 찾아다녔다. 한참 뒤에 찾은 휴대전화는 이미 배터리가 꺼져있었다. 자동차로 가서 휴대전화 충전기를 가져왔다.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집 뒤편에 두꺼운 비닐로 꽁꽁 쌓인 나무 목재가 보였다. 걸어가 보니 뒷마당에 작은 소각로가 있었다. 황금색 드럼통 모양의 소각로 위로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원래는 무엇이었는지 모를 재가 수북이 남아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어쩌면 파피용은 나비를 모두 태워주길 원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 안으로 들어와 충전기를 꽂고 휴대전화 전원을 다시 켰다. 아내와 찬얼에게 부재중 통화가 몇 통 와있었다. 아내에게 온 메시지는 없었다. 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연결음 소리만 반복되다 뚝 끊겼다. 찬얼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다시 장례식장에 와있다고 대답했다. 

"입관할 때 녀석 얼굴을 봤는데 보지 말 걸 그랬어.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더라."

그는 화제를 돌려 나비 정리하는 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거의 끝났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어제 유페이씨 말이야. 갑자기 사라진 것 같더라고. 파피용네 어머님이 찾고 다니는데 따로 연락 온 것은 없지?"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쌓인 액자를 두 손으로 들어 소각장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땀이 송골송골 맺혀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 외투를 벗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액자를 옮기고 불을 지피려는 데 유리관에 있던 나비 두 마리가 떠올랐다. 다시 2층 계단을 올라갔다. 검은 나비는 여전히 날개를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뚜껑을 열어 유리관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두 나비를 책상 위에 있던 유리병에 옮겨놓고 소각로로 가져갔다. 

파란 비닐을 벗긴 다음 마른 장작을 소각로에 넣어 불을 지폈다. 붉은 불꽃이 탁하고 튀어 올랐다. 이윽고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장작이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액자 하나씩 틀을 분리했다. 그런 다음 합판에 놓인 핀셋을 하나씩 빼고 나비를 장작불에 던졌다. 나비뭉치는 금세 화르르 타다 사라졌다. 쪼그라드는 나비를 보자니 마치 마른 낙엽 같기도 했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불 속을 바라보다가 정신이 들 때쯤 다시 나비를 액자에서 떼어내고 다시 불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액자는 어렸을 적 파피용이 가져온 것이었다. 액자 틀을 빼고 무릎 위에 합판을 올렸다. 이전에 봤던 나비들보다 지금 보니 평범했다. 나는 나비 몸통에 박힌 핀을 하나씩 떼어냈다. 마지막으로 파피용이 잡은 나비를 손 위에 올렸다. 나비를 반으로 갈라 불길 속으로 한쪽씩 집어던졌다.

자리에 일어서고 돌아서는 데 한쪽에 놔둔 유리병이 보였다. 유리병뚜껑을 열자 검은색 나비가 하늘 위로 올랐다가 눈 위로 떨어졌다. 나는 나비를 조심스럽게 들어 손바닥 위에 놓았다. 나비는 날개를 다시 폈다 접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나비는 내가 더는 볼 수 없는 곳까지 날아갔다. 찬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그제야 나는 배가 고파졌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