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고추장을 하려고 남겨 놓은 다진 한우를 용기에 담다가 손이 미끄러졌다. 유리가 깨지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깨졌다면 울었을 거다) 갈색 한우 알갱이가 사방으로 튄 하얀 바닥을 보고 있자니, 어깨가 축 처졌다.
쭈그리고 앉아 물티슈로 한우 조각들을 쓸어 모았다. 머릿속에서는 긍정 회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도아 이유식 고기를 흘린 게 아니라 다행이지. 유리 용기 안 깨진 게 어디야. 이참에 바닥도 한 번 깨끗이 닦으면 되니 좋네.’ 하고. 평소 같았으면 쉽게 이러고 잊고 말 일인데 오늘은 좀 달랐다.
물티슈 여러 장으로 바닥을 닦았지만 한우 알갱이들이 뭉개지고 잘 모이지도 않아서일까. ‘아깝다. 비싼 건데. 점심 비빔밥 해 먹으려고 했는데.’라고 시작한 머릿속 잡념이 수도꼭지를 틀 듯 콸콸 쏟아졌다. 방금 전에도 이유식하다 육수를 잘못 붓는 바람에 바닥을 한참 닦았던 탓일까. 마음이 바닥 아래로 푹 꺼져 올라올 기미가 안 보였다.
돌이켜보면 이런 감정을 최근 몇 번 느꼈던 것 같다. 도아가 치는 사소한 사고 때문은 아니었다. 이유식을 시작하고 청소할 거리가 늘어도, 물을 쏟고 숟가락을 던져도 아이니까 당연한 거라고 여겼으니까. 치우면 되는 문제니까. 대수롭게 느끼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가 하는 실수는 이상하게 속상하게 느껴졌다. 도아를 재우고 혼자 집안일을 할 때 특히 그랬다. 내가 나를 도와주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달까. 예전에는 실수에 과하게 관대하다고 생각하던 나인데, 요즘은 왜 그러는 걸까. 이런 내가 괜히 어색하다.
출산 뒤 회복이 더딘 몸일 수도 있고, 적절한 휴식이 없어져서 일지도 모른다. 그걸 괜찮다고 여기면서도 안 괜찮았는지도 모른다. 내 마음을 온전히 다 이해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갑자기 울컥울컥 정체 모를 마음이 튀어나오면, 나는 막막해진다.
바닥이 나 대신 한우를 먹었고 나는 비빔밥 대신 라면을 끓여 먹었다. 배가 부르자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마음속 한켠에는, 바닥에 짓이겨진 한우 조각 같은 이런 기분이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