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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상인 Oct 18. 2024

#요가일기, 2024년 5월의 기록(vol. 2)


2024. 05. 20. (월) 아쉬탕가



수리야로 몸을 예열하고 몇 가지 움직임들을 연결했다. 매트 위에서 구르기도 하고 플랭크 자세에서 수평적 움직임도 해보면서 힘을 길렀다. 이후 각자 벽으로 가서 핀챠마유라사나를 연습했고 짝과 함께 잡아주며 연습을 더 이어갔다. 나의 짝은 N. 잘 잡아주고 싶은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돕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힘들어하는 짝을 힘들지 않게끔 잡아주는 것이 돕는 이의 역할인데 키 차이도 있고 나의 힘도 부족하여 N은 계속 아이스크림 마냥 바닥으로 녹아내리고 무너졌다. 옆에서 보다 못한 키 큰 H가 대신 잡아주겠다고 하며 도와주었다. H가 잡으니 안정적인 연습 장면. 역시 돕는 사람의 역할이 무지 중요하다고 느꼈다. 누군가를 돕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들은 거의 매일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이머리를 시작하는데 발가락에 붙은 밴드들이 땀 때문에 벌써 들뜨기 시작했다. 싯팅 전굴 시리즈들을 하면서 발가락과 가까이 마주하니 너덜너덜한 밴드가 계속 눈에 밟히고 자기를 바로 붙여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각이 강력하게 끼어들어 왔다. 관심이 필요한 나의 발. 고작 '이 밴드 하나'는 사실 오늘 내 모든 신체 부위 중 가장 불편하고 아프고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어제에 비하면 근육통들은 많이 달아난 상태지만 다리 힘은 여전히 바들바들 버겁다. 가뜩이나 좌우 불균형이 심한 하체의 힘이 오늘은 차이가 더 확연하게 나면서 오른쪽 다리는 아예 힘을 못쓰는 느낌이 들었다. 스탠딩에서 선생님이 일부 도와주셔서 바로 섰고, 비라바드라도 하체의 지지기반을 튼튼하게 끌어올리지 못해 골반을 열고 유지하는 게 고통스러웠다. 다운독, 파르스바 자세들, 할라아사나 이런 순간들에서는 늘 비틀어진 몸이 잘 느껴진다. 몹시 갑갑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인지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바로잡으려고 꾸역꾸역 거리기보다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해가려는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여기기로 했다.


밴드는 기어이 가만두지 못하고 결국 순식간에, 아주 자연스럽게, 아무도 모르게 뜯어서 매트 옆에 찌그러트려 두었다. 해방감과 약간의 걱정이 뒤섞였지만 뭔가를 했으니 지랄맞음에 대한 욕구는 해결된 것 같다. 할라아사나, 살람바시르반가사나를 하는데 갑자기 목이 몹시 간지러워 기침이 났다. 발작적인 기침이 나려 하는데 그 상태에서 기침을 세게 해버렸다간 디스크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괴기스러운 예감이 들어 기침을 억누르다가 또 눈물이 또르르. 그냥 자세를 풀고 나와서 기침을 했으면 되는 게 아니었을까? 고집스러움. 왜 그랬을까.









2024. 05. 21. (화) 아쉬탕가



2층 아쉬탕가 수업을 얼마 만에 참여하는지 모르겠다. 8시에 맞게 도착하기 위하여 지각을 면하고자 자전거를 과속하여 달려와 계단을 두세 개씩 오르며 매트를 가지러 3층에 올라갔다가 3층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미끄럼틀 타듯 2층으로 내려갔다. 뒤편에 자리를 마련하고 아는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자 바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2층에서의 아쉬탕가 수업이 주는 향수가 있다. 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와 친근한 코칭,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 그에 대한 따뜻한 기억을 가지런히 간직하게 한다. 오랜만에 참여하는 선생님의 수업이지만 엊그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익숙한 기분을 참 좋아한다.


유독 날이 더워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땀이 비 오듯 한다. 수리야 Ax5, Bx3를 하는 동안 이미 옷이 축축해졌다. 그 덕에 말랑해진 나는 복부 힘을 조금 더 내어보며 더 깊은 자세를 시도해 봤다. 전굴과 비틀기는 몸이 뜨끈하고 말랑해지면 더 수월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용기를 갖게 한다. 오늘도 내 정신줄을 앗아가는 발가락 밴드. 또 거기에 신경이 쓰여 발 롤링을 기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비정하게도, 그러다가 점프스루하던 중 발등에 또 상처를 냈다. 오른발등의 찰과상이 피를 뱉어내며 따끔따끔. 말초의 따끔거림들이 성가시게 하긴 했지만 애써 무시하며 집중을 모아보고자 나름 노력했다.


수련 중간에 흐름을 잠시 끊고 우르드바 연습을 했다.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가슴 펴내고 발 밀어내는 것을 조금 더 신경 써서 해보기로 했다. 시퀀스 중에는 여덟 카운트로 세 세트, 연습 중에는 다섯 카운트로 세 세트. 다리가 타들어 가서 두 번째 연습 끝에는 거의 나가떨어지듯이 바닥에 누웠다. 다리와 팔은 아팠지만 앞면은 시원하고 기분은 개운했다. 이것이 바로 우르드바 다누라의 힘인 것 같다.


피니싱 후 사바아사나. 뜨끈뜨끈한 나의 몸. 땀에 젖은 매트를 닦으며 온기와 습기가 가득한 2층의 정취를 느껴보았다. 선생님과 오랜만의 소회를 나누며 기끔 보아요 하는 인사. 그리고 아로마 오일 관련 서적 문의를 하며 선생님께 좀 찝쩍거리며 정보를 얻어내고 기쁘게 굿바이.


마치고 J와 걸어가며 나의 지리산 산행 이야기를 들려주며 무용담처럼 자랑을 했고 맘씨 착한 J는 모범적인 리액션으로 엄지척을 치켜올려 주었다. 우리가 같이 가기로 한 산행코스를 소개하며 수다 타임 끝에 건강과 먹거리, 생활습관과 의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우리의 몸을 존중하는 먹거리와 생활 규칙의 중요성.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믹서기를 구입한 J. 각자의 삶에서 조금씩 진일보하는 의지의 표현. 이렇게 오늘도 야금야금 자랐다.










2024. 05. 22. (수) 아쉬탕가



오랜만에 여유롭게 도착하여 매트도 차분히 펼치고 다리도 풀었다. 하루 종일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다른 이들을 살피고 돌보고 타이르고 안내하느라 고생한 내 다리를 시원하게 스트레칭. 안타까운 사연들로 가득한 오늘의 퇴근길.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지만 긍정적 사고를 끌어당겨 가슴에 품고 마치 새로운 하루를 여는 기분으로 요가원으로 향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헝그리 복서 Y도 만났고 짧게 근황을 나누었다. 요가도 하고 킥복싱도 하는 열정적인 삶 가운데 요가는 일주일에 고작 한 두 번 하면서 요가가 너무 늘지 않는다고 말하고 그러면서도 먼 곳에서 전기 자전거를 타고 이 요가원까지 올만큼 부지런함을 발휘하는 그녀가 어쩐지 몹시 귀여웠다. 누군가가 몹시 귀여운 병에 걸렸나. 요즘엔 세상만사가 꽤 귀엽다. 그 버튼이 내 몸 어딘가에 생겨났는데 위치를 알아차리진 못한 그런 상태랄까.


앉아서 잠깐 호흡명상으로 주의를 가다듬고 팔힘과 코어 힘을 기르는 운동들을 몇 가지 했다. 시작부터 훅 들어오는 강한 움직임에 곳곳에서 마치 유격 훈련장 같은 거친 숨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후는 짝과 함께 핸드스탠딩으로 손바닥 걸음 걷는 것을 연습했다. 잡아주는 사람의 노력도 만만치 않았다. 부들부들 떨면서 걸음마를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들처럼 힘겹지만 용기 있게 열심히 걸었다. 각자 벽에 대고 물구나무도 서고 백밴딩 연습도 하면서 땀을 빼고 다 같이 붉어진 얼굴로 프라이머리를 시작했다.


팔과 어깨 힘을 단련하고 시작했으니 암발란스 움직임이 더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인 태도로 아쉬탕가에 임했다. 미끄덩거리는 몸뚱이를 이리 늘리고 저리 뻗으면서 매 순간이 다시는 오지 않는 것처럼 지나갔다. 지나간 것과는 과감하게 이별하고 다가올 것은 무신경하게, 오로지 지금 현재의 움직임만 생각해야 한다. 오전부터 이어진 나의 불유쾌한 하루 일과도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고 다가올 것에 대한 근심도 지니고 있어봐야 해결될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이 순간 일어나는 나의 호흡만 집중하는 연습이 삶에서도 필요하다.


오랜만에 바퀴 없이 걸어서 온 날이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걸음걸이의 속도를 늦춰 밤의 풍경을 관찰하며 장면과 소리와 냄새를 수집했다. 선명한 감각들의 수집 활동. 걷다가 멈춰서 메모장을 열어 기록하고 걷다가 또 멈춰서 수집 대상을 응큼하게 관찰했다. 메모장에 기록된 크로키 같은 문장들을 언젠가는 이쁘게 다듬어주고 싶다. '이루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게 많은 인생. 언제나 욕구와 현실 사이 타협점에서 마음을 다독이고 다스리는 법을 배워나간다. 이런 과정과 함께 평생을 살게 될 테지. 현재를 살아가다 보면 결국엔 우선순위가 남게 되는 거다.










2024. 05. 23. (목) Yin flow



3층이 밝고 환하게 맞이해주는 yin flow의 날. 6주 만에 참여하는 수업이었다. 달력을 보니 그동안 목요일마다 저녁에 일정이 있어 수업을 가지 못했더니 기간이 벌써 한 달이 넘어버렸지만 스튜디오에 들어서며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니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하셔서 내심 놀랐다. 기억해 주셔서 감사했다.


수업 시작과 함께 오늘은 음과 양에 대한 개념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음과 양의 밸런스를 생각했다. 어떻게 맞춰갈 수 있을지. 요가는 그중 하나의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다 같이 교호 호흡(또 다른 이름이 나디 쇼다나였다)을 했다. 오른쪽과 왼쪽 비강의 숨길이 다른 것도 느꼈다. 오른쪽은 편안하고 왼쪽은 갑갑했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이렇기 때문에 교호 호흡을 하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조금씩 사이좋게 조화를 이루기를. 좀 더 자유로운 몸과 마음을 위해.


양발을 합장으로 모으고 앞에 놓인 볼스터에 기대어 숙여서 골반과 허벅지의 느낌을 느끼며 호흡을 했다. 블럭을 이용해 바닥을 누르며 골반과 허벅지 앞면을 늘리고 하타 수리야나마스카라도 천천히 이어갔다. 가슴을 활짝 열고 손끝은 바닥을 밀어냈고 쇄골을 넓어지고 등과 날개뼈는 뻐근했고 다리는 시원했다. 몇 차례의 수리야 후 볼스터를 아래에 두고 측면을 늘려내는 것들을 하는데 옆으로 누운 자세에서 깜빡 잠이 들 뻔했다. 몸이 움찔하면서 잠들 뻔한 순간에서 급히 빠져나와 생각하니 사람들이 이러면서 잠이 드는구나 싶었다.


사바아사나 때 선생님이 리스토러티브 포지션을 잡아주셨다. 다리 아래 볼스터 2개, 머리 위 담요, 다리를 감싸는 담요로 편안한 상태가 될 수 있게 빚어주셔서 노력 없는 이완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회원님이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바로 잠이 들었다. 숨소리가 예사롭지 않은 게 깊게 잠드는 소리 같았다. 선생님이 싱잉볼을 수차례 울렸다. 그 덕에 내 정신은 점점 또롱해졌는데 아까 그분의 숨소리는 여전히 거칠고 깊었다. 한동안 잠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선생님의 마무리 멘트 중 기억에 남는 말 한마디 기록해둔다.

세상에 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참된 '나'만 존재합니다.









2024. 05. 24. (금) 하타



호흡명상을 15분 정도 유지한 것 같다. 금요일 밤 시끌시끌한 인근 주점의 소음과 오토바이 소리를 의식에서 버리고 깊은 수중으로 가라앉듯 내 호흡으로 잠수를 탔다. 호흡 속으로 프리다이빙. 꼬리뼈부터 정수리까지 차근차근 위로 옮겨가며 의식을 이동시켰다. 곧고 반듯한 에너지 통로를 상상했다. 그리고 나면 이 공간엔 오로지 나만 존재하는 기분이 든다. 명상은 최소 15분은 유지를 해야 그 힘을 발휘한다는 의미에서 금요일 수업 전에는 매번 호흡명상을 15분 정도는 유지하기로 했다. 기분 좋은 명상의 순간을 제공하는 선생님께 감사했다.


비라아사나로 앉아 파르바타를 했다. 깍지 낀 손가락들이 벌어지고 빠져나오려 하여 아슬아슬했다. 어색한 방향의 깍지손은 더 심하게 벌어지려고 하여 팔꿈치를 펴고 있어도 신경은 전부 손바닥을 따라갔다. 갈비뼈가 들어올려질 정도로 척추를 힘껏 위로 뽑아내는 작업. 꼬리뼈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쭉 늘어나는 정렬을 향해서 가는 길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팔도 부들부들, 손목도 부들부들, 허리가 꺾이지 않으려고 복부도 부드부들, 딸려 올라가지 않으려는 다리도 부들부들. 그러는 동안 길쭉해진 기분을 선물로 얻었으니 부들부들의 시간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선 활 자세와 다누라사나, 우르드바다누라사나, 살람바시르반가사나, 한 다리로 서서 균형과 힘을 끌어모으는 자세들을 줄줄이 연결했다. 집중이 잠깐이라도 다른 길로 새어 나가기만 해도 몸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며 균형이 흐트러졌다. 금요일 하타 때는 힘들어도 땀이 난 적이 많이 없는데 오늘은 뜨끈뜨끈 땀이 흘렀다. 그런 계절이 온 것인가. 내가 무지 애를 쓴 것인가.









2024. 05. 25. (토) 하타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9시 CP부터 참여하고 싶었지만 자제력을 발휘하여 집안일에 시간을 할애했다. 늦은 아침식사의 상차림과 빨래까지 널고 난 후 오늘 분량을 일정부분 해뒀으니 하타는 꼭 가야겠다 싶어서 살림살이로 분주했던 토요 아침의 루틴에게 작별을 고하고 얼른 요가원으로 향했다. 역할. 나는 이 역할로 인해 늘 지각의 위기를 맞닥뜨렸고, 오늘도 그러했고 발 빠르게 페달을 밟아 이동하는데 신호등 앞에서 Y를 만났다. 매일 부지런하게 아침부터 수업을 듣더니 오늘은 어쩐 일로 늦잠을 잤다고 한다. 늦잠. 내 늦잠은 언제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늦잠이나 낮잠. 이런 경험이 내 생활에서 멸종될 위기에 처해있다.


수업 시작은 테니스볼로 몸을 좀 풀겠다고 하셔서 너무 반가웠다. 수업 전에 몸을 풀 기회가 생기게 되어 다행이었다. 테니스볼로 엉덩이와 골반 주변부를 마사지하고 지압하며 고요하게 풀어냈다. 셀프 마사지인 격인데 무척 시원하다. 이어서 땅콩볼로 견갑골 사이를 아래에서 상방으로 훑으며 잘근잘근 눌러내는데 시원함과 고통스러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구역이라 짧은 비명과 심호흡들이 오고 갔다. 중독성 있는 통증 카테고리. 사서 하는 고생 내지는 변태적인 쾌감이랄까. 누가 그만하라고 알려주기 전까지는 계속 누르고 있을 것 같다.


동작으로 들어가 하체 기반을 잡고 기반 위로 흉부를 끌어올려 점진적 후굴을 만들어갔다. 중간에 들린 차투랑가와 단다의 슬로우 모션 셔틀. 이어서 런지에서 상하 움직임으로 허벅지를 불태운 뒤 안자네야로 진입하고, 좀 더 깊게 팔을 뒤로 돌려 내리고 굽히며 아쉬와산찰라로 연결했다. 흐름 중에 선생님이 목의 움직임과 쓰임에 대해 설명하셨다. 명치와 흉골의 점진적 상승과 함께 각도가 변하는 목의 움직임. 평소 수련 때에 나도 그 부분을 잘 지켜내려고 나름은 노력하는 편인데 힘들어서 목을 뒤로 휘리릭 넘겨버리면 기도가 눌려져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이 강조하는 공간 만들기 작업 기억하기. 끄덕끄덕. 힘없는 모가지를 토닥토닥.


토끼 자세로 정수리를 마사지하며 목과 등을 풀다가 시르사도 잠시 들리고 구르기도 하다가 할라아사나 들러서 살람바시르반가사나도 다녀왔다. 건너뛰면 서운한 세트들. 90분이 이렇게 속절없이 흘러버리다니. 하마터면 집에 안 갈래요 하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마치고 Y와 짧은 티타임을 가지며 두루두루 이야기. 짧은 시간 재밌는 수다를 가미한 오늘의 애프터 요가.








2024. 05. 27. (월) 아쉬탕가



저녁시간 살림 루틴을 후다닥 해결하고 열심히 달려갔다. 직장에서 퇴근하여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주부, 선생의 껍질을 벗고 엄마로 변신한 오후의 삶에서 요가를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소중하고 감사하다. 내가 시간이 많고 내 몸만 챙기면 되는 싱글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수련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봤다. 아마도 싱글이었어도 성격상 열심히 했을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경험하기 전까진 겪어보지 않았던 삶의 패턴이라 겉모양은 같았을지라도 질감은 확실히 다를 거다. 요가원에 4분 전에 도착했지만 빠른 손놀림으로 대충 머리도 땋는 데에 성공을 했다. 만족.


얼마 전 원장님의 공지에 따르면 아쉬탕가 가이드 수업에서 암발란스 관련 훈련을 조금씩 한다고 했는데 오늘은 그 공지가 있은 후 첫 번째 수업이었다. 블럭 두 개를 준비하고 누워서도 앉아서도 코어와 팔힘을 기르는 동작들을 몇 호흡 유지하고 시르사2도 잠시 들렀다가 파트너와 물구나무 연습을 했다. 나의 짝은 Y였다. 이런 연습이 원장님 수업에서는 자주 있는 패턴이라 나는 익숙했지만 오랜만에 참여한 Y에게는 버거운 상황이었을 것 같다.


서로 다리를 잡아주면서 몸통의 힘을 잘 쓸 수 있도록 돕는 활동. 블럭 하나를 잡고 서는 것과 맨땅에 그냥 서는 것을 서로 도우면서 복부에 힘을 주며 곧게 뻗어나가는 것을 했다. 혼자서는 넘어질까 두렵지만 누군가 잡아주면 과감하게 용기를 낼 수 있다. Y도 처음엔 꽥꽥거리며 흐느적거렸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 끝에 마지막엔 물구나무를 바르게 서기에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구나무 연습 후에 시간이 많이 지난 상태라 스탠딩 쭉 연결하고 싯팅은 과감히 점프하여 피니싱을 천천히 이어갔다. 우르드바 파드마, 파드마, 우트플루티히 등 연꽃이 된 나의 몸은 여러 방향으로 뿌리를 내리며 차분하고도 호젓한 호흡의 시간을 느껴보았다. 오늘의 저녁 리추얼도 이렇게 흘러갔다. 나는 요가의 아쉬탕가를 삶에 잘 반영하고 있는가를 잠시 생각했다. 그 반대인 것 같다. 내 삶의 아쉬탕가를 요가에 데려온 것 같았다. 이제는 어느 지점에서 조화로운 어떤 컬러가 형성되기를 조금은 희망하게 된다. 어느 한쪽의 고집으로 치우치기보다는 어떤 형태로 변모해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겠지만 나는 조금씩 크고 있다. 이걸 늙는다고 말하는 걸까.


마치고 Y와 집까지 함께 걸으며 다양한 주제가 스쳐 지나갔다. 고양이로 시작해서 어느 순간엔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별. 나이 차이가 꽤 나지만 재잘재잘 떠들 땐 그냥 인간 두 명이다. 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 기록해둔다. '수련'이라는 단어처럼 수련을 해보라는 것. 선생님의 말과 내 생각에 싱크가 잘 맞아떨어지는 날이 많다. 그래서 내가 원장님 수업을 좋아하나 보다. 이런 수업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행운에 가깝다.









2024. 05. 29. (수) 아쉬탕가



요 며칠 연일 날씨가 좋다. 공기도 깨끗하고 하늘도 맑고 저녁에는 바람마저 선선하다. 걸어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자전거를 타고 요가원으로 달려갔다. 수업 시작 전에 선생님이 새로 준비한 도구를 보여주시며 두 개식 챙기라고 하셨다. 우드 소재의 패럴렛바였다. 손으로 쥐고 푸시업도 하고 몸도 들어보았다. 특히 점프백에서 몸 드는 연습을 하기에 좋은 도구였다. 손의 위치를 바꿔가면서 푸시업을 여러 차례 했다. 팔과 어깨가 힘들었지만 이 푸쉬업이 의미 없는 고생이 되지 않기 위해 천천히 내려가고 천천히 올라오려고 애쓰면서 호흡을 길게 가져갔다.


선생님의 시범을 보며 바를 붙잡고 몸을 들고 무게 중심을 서서히 이동시키는 것을 따라 했다. 차투랑가 단다를 시도한 뒤 다시 몸을 띄워 돌아왔다. 짝과 함께 바를 잡고서, 그리고 맨손으로 물구나무를 섰다. 나의 짝이 된 J와 함께 꽥꽥거리며 꽤 웃었다. J는 수업 중에도 자주 꽥꽥거린다. 투명하고 천진한 사람.


아쉬탕가 시퀀스는 스탠딩 전체와 싯팅 일부 전굴시리즈를 후루룩 진행하여 우르드바 다누라사나부터 피니싱을 쭉 연결했다. 턱 밑에 땀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시작 때 패럴렛바에 아킬레스건 주변을 풀어서 그런지 왼발목의 어떤 지점에 자극이 강했는지 발끝을 뻗는 동작에서 통증이 생겼다. 발 뒤꿈치 쪽 수축이 잘 안되었다. 예전에 밸런틱으로 마사지를 했을 때도 같은 증상을 겪었는데 왼쪽 아킬레스건은 자극을 세게 주면 안 될 것 같다. 늘어나는 건 전혀 힘들지 않은데 지압이 문제인듯하다.


몸이 뜨근해서 말랑해진 덕분인지 요가 무드라 때 몸이 술러덩 내려갔다. 턱을 대고 잠시 머무는 동안 숨을 천천히 쉬었다. 등이 부풀고 배가 부풀면서 결박된 나의 팔과 다리를 밀어낸다. 우트플루티히 하는 동안 무릎과 가슴 사이 그 짧은 거리를 좁히는 것이 무지하게 힘들다. 몸에 붙이는 힘. 고작 나의 다리를 드는 것이 천근을 들어 올리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J와 그렝블레 앞에서 또 30분 넘게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다.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점, 놓치는 점, 본질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노력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책 추천으로 마무리했다.










2024. 05. 30. (목) Yin flow



날씨가 좋아 다들 놀러 간 것인지 오늘은 두 명만 수업에 모였다. 수련하기 좋은 계절이지만 마음 먹은 어떤 것들을 추진하기에도 좋은 계절인 것 같다. 요가원 밖 사람들은 지금쯤 어디선가 어떠한 일들로 분주하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나도 잡지사의 원고 청탁 메일을 두고 고민에 빠진 상황이라 생각이 많아지게 되어 속이 조금 시끄러웠다. yin으로 잘 흘러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감사한 마음만 챙겨 매트를 펼쳤다.


오늘 수업에 쓰일 도구들을 한가득 챙겨 매트 옆에 푸짐하게 차려놓고 무중력 자세에 머무르는 것부터 시작하여 앞으로 엎드려 볼스터에 기대어 있는데 어쩐지 숨 쉬는 게 불편했다. 처음엔 눌러진 코 때문인가 했는데 아까 무중력 자세에서부터 심계항진 상태였던 것 같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이 크게 뛰는 게 느껴졌는데 엎드려서도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불편하여 당장 발라당 뒤로 누워버리고 싶었지만 잠시 침착하게 상태를 관찰해 보기로 했다. 몇년 전 어렵게 헤어진 갑상선 항진증이 또 찾아온 것은 아닌지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옆으로 누워 기대기도 하고 아기 자세로도 머물기도 하는데 안경이 모든 자세에서 정말 성가시게 사사건건 참견을 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바람에 날름 벗어서 저만치 보내버렸다. 그러다가 자세가 바뀌면 냉큼 일어나 앉아서 언제 버렸냐는 듯 바로 손을 더듬어 안경을 찾아 썼다. 가만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집착은 안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항상 잘 안 보인다는 전제로 살아가며 약간의 불안과 의심이 깔려있는 내 시선. 그래서 더 정확하게 보고자 애쓰는 마음. 그 시선을 좀 더 편안하고 부드럽게 안심시켜 주기도 하는, 불편함이기도 안정감이기도 한 나의 안경. 평생 함께 해야 할 내 몸의 일부분.


마지막 사바아사나는 옆으로 누워 다리와 팔 사이에 각각 볼스터를 끼워 받쳐주면 선생님이 돌아다니며 섬세한 포지셔닝을 손봐 주셨다. 손등이나 발 복사뼈가 땅에 닿아 불편할까 봐 아래에 쿠션 역할을 할만한 도구도 받쳐주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다른 사람과 함께 쓰는 도구에 몸을 갖다 대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심했는데 내가 다른 사람의 피부가 닿은 볼스터에 기대고 끌어안고 다른 사람의 체취가 남아있는 담요를 머리에 대고 덮고 그러고 있다.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를 바라본다면 어째서 그게 가능하냐고 공격적으로 질문을 해댔겠지만 지금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딱히 이유가 있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그런 부분들에 무던해진 것 같다. 아마도 아이를 낳고 길러내는 동안 훈련된 부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편안했다. 의식은 깨어있었지만 몸은 수면모드였을까 불수의적인 말초의 까딱거림. 이 상태에서 잠이 들면 이후는 어떻게 되는 걸까 잠시 궁금했다. yin으로 흘러들어간 사이 심장의 요동도 수그러들었고 예민함도 잠잠해졌다. 오로지 지금은 그냥 생선처럼 누워있는 나만 존재할 뿐이었다.









2024. 05. 31. (금) 하타



오늘 저녁은 어쩌다 보니 살림 파업의 날이 되어 집에서 누워 지내다가 요가원으로 향했다. 특별한 메뉴를 섭취한 게 없었는데 오후 내내 속이 쓰리고 아리고 욱신거려 저녁을 먹기도 못하겠고 차리지도 못했다. 요가원 도착하자마자 밸런틱을 꺼내 열심히 발을 지압했다. 괜히 최근의 폭력적인 식습관도 돌아보게 된다. 피곤함을 퇴치하고자 마셔댄 커피가 가장 선두에서 폭력을 선동하고 있었다. 몸에 대한 존중은 어디로 갔는지.


밸런틱으로 발을 지압하며 나아져라 나아져라 기도를 했다. 앉아서 선생님과 함께 교호 호흡을 했다. 왼쪽 비강은 너무 비좁아 숨이 드나들 때 조금 버거웠지만 차츰 편안함을 찾아가게 되었다. balance. 균형이라는 것은 이렇게 미세한 곳에서 뜻밖의 차이에서도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자누시르사로 앉아 전굴 하면서 움직임을 시작하고 측굴과 골반 작업을 했다. 겨드랑이부터 갈비뼈를 지나 옆구리가 질기고 거칠게 늘어나는 감각을 느끼고 호흡을 통해 달래기도 했다.


비라바드라와 연결하여 극락조 자세까지 이었다. 오른 다리 들어 올리고 무릎 쫙 펼 때 왼 다리가 잘 버텨주었다. 다리 내린 후 기분 좋은 마음 때문인지 반대쪽 비라바드라에서 흥분된 어깨. 선생님이 어깨를 내려주셨다. 왼 다리 들어 올릴 땐 워낙 오른 다리 근력이 약하니 잘 버틸 수 있을까 싶지만 오늘은 의심하지 않고 상체 힘으로 들어 올렸다. 아르다찬드라. 비라바드라2에서 아르다찬드라, 다시 비라바드라에서 극작조로 이어진 하나의 연결이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집중하고자 노력했다.


부장가에서 상하체가 이상하게 분리된 느낌. 다리가 대각선으로 놓인 기분이라 불편하여 뒤로 돌아보며 자꾸 다리 위치를 조정했는데도 쉬이 불편함이 가라앉지를 앉는다. 그 상태에서 라자카포타를 하는데 허벅지 뒷면에 쥐가 났다. 아마도 아까 비라바드라와 연결된 일련의 하체 움직임으로 수축된 허벅지가 늘어남에 대한 저항을 하는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 몸은 나를 닮았다. 착하지만 예민하고 긍정적이지만 다소 까칠하고 엄격한 나의 성격을 닮았다.


사바아사나 하는데 선생님이 티슈 위에 아로마 오일 에센스 스프레이를 뿌려서 나눠주셨다. 티슈를 눈 위에 얹어놓으니 향이 코로 솔솔 흘러 들어온다. 라벤더, 레몬, 로즈마리, 마조람. 블렌딩을 알려주셨다. 배는 더이상 아프지 않았다. 5월의 마지막 날이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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