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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상인 Nov 26. 2015

복실이가 사라졌다.

복실아, 미안하다!


  대문은 열려 있었고 파란지붕 안식처와 깨끗이 닦아먹은 밥그릇도 그대로지만 복실이는 없었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골목마다 이름을 부르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내 나이 여섯 살, 죄책감이 들었다.




  어린이날 핫이슈로 떠오른, 뽀로로와 로보카폴리와는 비교자체가 불가한, 아이들의 워너비 장난감 0순위라던 터닝메카드는 유아기 자녀를 둔 아버지들의 숙원사업이 되어 있었다. 내 친구라고 그 대열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집에 놀러갔을 때 워너비 장난감을 사주지 못한 죄로 뽀로로가 그려진 물총과 주먹이 움직이고 눈에서 불빛이 나오는 아이언맨을 사 주고 나서야 아이의 서러움은 일단락 마무리 되었고, 이로써 아이의 장난감 바구니엔 또 살림이 추가되었다. 수북이 쌓인 장난감과 잔뜩 꽂혀 있는 동화책들을 보면서 꼬맹이가 약간 부럽기도 했지만 보고 있자니 어쩐지 멀미가 나기도 하여 아이의 끊임없는 아이언맨 자랑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 주다 화장실 가는 척 자연스럽게 빠져 나왔다.

어우, 니 아들이랑 같이 못 놀겠어. 맨날 나만 나쁜놈 시켜.


  내 생일은 어린이날이다. 어른이 되었지만 어린이날이 되면 여전히 축하와 선물을 받는다. 이번엔 퇴근 후 돌아온 남자가 케익과 꽃다발을 내밀었다. ‘진짜’ 생일선물은 내일 나가서 쇼핑으로 해결을 보자고 합의가-사실 스스로 정하고 결재한 사항이지만-이루어진 상태라 그정도를 내미는 것으로 1부 행사는 끝났다 예상했는데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주먹만 한 인형을 꺼내 책상 위에 얹어놓는다. 괜히 덤덤한 척 인형을 등지고 나서려는데 책장에 저마다 한자리씩 자리하고 있는 조막만 한 장난감들이 마치 발표경쟁이라도 붙은 양 서로 앞 다투어 손을 들고 내게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남자가 저런 식으로 뜬금없이 사온 장난감들이 ‘내 것’이랍시고 곳곳에 포진되어 있었지만 장난감을 사 모으는 취미는 백만년 전부터 나에겐 있지도 않았다. 문득 궁금해서 물어봤다. 저런 조잡한 것들은 왜 자꾸 사 오는 거야?




   무남독녀 외동딸. 상대방에게 나의 존귀함을 어필하고 싶을 때 굳이 소개의 앞머리에 붙이는 수식어이다. 그러나 장난감 동산에서 자라는 애지중지란 없었기에 혼자서 참 잘 놀았다. 장난감이 없었다는 것, 이것은 엄마가 나에게 준 가장 큰 고문이자 선물이었고, 기억나는 범위에서 아주 어릴 때부터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변하지 않는 원칙이었으며, 심심함을 견디거나 해소하기 위한 일련의 시도들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고모, 이모부, 엄마의 친구들, 그리고 가끔 만나는 아버지가 날 위해 ‘인형의 집’이나 소꿉놀이를 사다 주기라도 하면 며칠 굶은 아이가 정신 못 차리고 밥상으로 달려들 듯 허겁지겁 달려가곤 했었다. '저거 사주세요'라는 말은 가차 없이 거부당한다는 것에 익숙해져 엄마가 설계해 놓은 미로의 목적대로 심심함을 해결할 궁리에 빠지곤 했다.


  그래서 그랬다.

  외삼촌이 큰맘 먹고 엄마에게 선물해준 미놀타 카메라를 가지고 놀다가 실컷 찍어놓은 필름을 다 태워먹은 것도 모자라 보기좋게 고장까지 내버렸고(당시 그 카메라가 얼마나 고급에 속했었는지는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뭔가를 집어넣고 물만 부으면 시커멓게 변하는 신기한 약탕기를 가지고 놀다 영혼과도 같은 유리를 깨먹었으며, 옷장 서랍을 계단으로 만들어 나만의 어드밴쳐 놀이공원을 조성하다가 서랍을 부수고 망가뜨리면서 손에 닿는 대부분의 물체들이 기능을 잃어버리는 현상으로 말미암아 내 손은 ‘마이너스의 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집을 벗어나면 뻔질나게 놀이터를 드나들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골목대장이 되어 각종 놀이를 주도하기도 했고 모래는 웬만큼 다 뒤집어 본 경험 덕에 파보면 동전이 꽤나 많이 나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동네 남자아이들을 모아서 누가 더 용감한지 높은 담장에서 뛰어내리기 놀이를 하다가 나는 멀쩡하게 착지했지만 아랫골목 승원이는 골절을 입어 한동안 다리에 철심을 박고 다녔고, 골목 첫집에 살던 미란이와 미용실 놀이를 하다 내 매소드 연기에 그만 그녀의 헤어스타일을 영구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었다. 가전제품 스치로폼을 발견만 했다하면 놓칠세라 냉큼 수거하여 골목에서 러브하우스를 건설하곤 했는데 한창 고된 작업을 한 뒤엔 온 동네에 하얀 알갱이가 눈꽃처럼 날아다니곤 했었다. 그러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빗자루를 들고 우리집으로 쫓아와 누구엄마 밖에 좀 나와 보라며 외쳤고 그런 날은 엄마 손에 달랑 들려서 혼쭐이 나는 날이기도 했지만 결국 모든 일들이 나의 심심함을 해결하려는 일련의 과정들이었으므로 책임에 있어서는 엄마에게도 지분이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에겐 복실이가 있었다.

  복실이는 2층 주인집에서 키우는 개였지만 항상 우리집 앞마당에 묶여 있었는데, 집에서 나갈 때도 밖에서 들어올 때도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복실이었기에 사실 녀석을 나만의 복실이라 해도 아무도 기분 나빠하진 않았을 것이다.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시간엔 늘 복실이와 놀았다. 어린이 치곤 다소 흥이 많았던 난 녀석 앞에서 곧잘 노래를 불러댔는데 박수 대신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며 열혈청중이 되어 주었고, 그게 무척 신나서 호키포키, 개구쟁이, 풀잎사랑, 박남정 노래에 맞춰 하루 종일 윗도리가 다 젖도록 율동만 한 적도 있었다. 빌려온 ‘씽씽‘에 요구르트병을 끼워 오토바이 놀이를 하면 복실이도 소리를 흉내 냈던 걸까 꼬리를 흔들며 엄청 짖었던 기억이 난다. 그 뿐이던가, 고무줄 한쪽 끝을 나무에 묶고 한쪽 끝은 녀석의 몸에 묶어 고무줄뛰기를 하기도 했고(쉽지 않았다), 봉숭아잎을 따다가 곱게 갈아 요놈의 네 발을 주홍빛으로 물들게 하고 싶었지만 접근을 시도하다가 주인 아주머니께 들켜 실패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아주머니가 말리지만 않았다면 복실이는 내게 기꺼이 발을 내어주며 협조를 해주고도 남을 녀석이었다.


  하루는 동네 어귀에서 신장개업을 한 식당이 시끌시끌하여 호기심에 그 주변을 기웃거리다 간판아래에 설치된 자바라천막의 유혹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홀려 철봉처럼 매달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꽤 사이즈도 알맞아 반동을 주어 위로 올라타며 놀기엔 안성맞춤이었으나 뭐가 그리 부실한지 어린 내가 좀 매달렸다고 천막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화환들은 도미노처럼 쓰러졌고, 추락하며 부딪힌 나는 멀쩡했지만 유리창은 박살이 나버렸다. 우리집은 또 누구엄마 좀 나와 보라는 외침이 울려 퍼졌고, 위험한 행동을 했다는 죄목 하에 그 날 밤 팬티 바람으로 쫓겨나 복실이를 끌어안고 체온을 나눠 받으며 서러운 눈물을 토해내야만 했다. 아마 집이 조금만 더 커서 내가 들어갈만한 사이즈가 되었더라면 복실이는 자기 방을 선뜻 내어주고도 남을 녀석이었다. 복실이는 그런 녀석이었다.


   그랬던 녀석에게 내가 너무했던 것이다.

  우리 사이가 아무리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만큼 죽고 못 사는 사이라 한들 욕심이 지나치면 상대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게 되어 지치게 만들 수도 있던 것이다. 가끔 시끄러운 노래소리와 함께 나타나는 트럭이 목마 놀이기구를 싣고 오는 날이면 동네 아이들은 잘도 타던데 우리 엄마는 왜 그렇게 그마저도 허락을 안 해줬는지 지켜보기만 했던 나는 친구들이 괜히 부럽고 질투가 났다. 나의 몸무게와 키가 자라는 만큼 복실이도 꽤 많이 커졌는데 하루는 가만 훑어보니 이놈이 나와 덩치가 비슷해 보였다. 녀석이 조금만 노력해준다면 나를 태울 수 있을 꺼라 생각하여 이번 기회에 복실이를 잘 훈련시켜 녀석을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아이들에게 너무 너무 자랑이 하고 싶었다. 매일 눈만 뜨면 다짜고짜 등에 올라탔지만 매번 낑낑거리면서 주저앉는 바람에 갖은 구박을 퍼붓기 시작했다. 복실이 힘들어. 말처럼 타고 다니는 동물이 아니야. 아직 너처럼 어린이라서 힘도 없다구. 역시 인생은 인과응보라고 내가 녀석을 구박하면 나도 엄마와 주인 아주머니로부터 쓴소리 구박을 받았다.


  몰래몰래 그리고 더 열심히 올라탔다. 그러나 너무 괴롭혔는지 어느 샌가 날 보고 흔드는 꼬리도 속도가 영 시원찮고,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피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엄마한테 일렀지만 내 편은 없었다. 그제서야 지난날을 반성하니 미안해져 괜히 나도 저를 업어주려 들쳐 매다가 녀석이 하도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시멘트 바닥으로 꽈당 떨어트리고 말았다. 쇳소리로 낑낑 앓는 소리가 무척 아파 보였다. 이러다간 개 명줄이 끊어질 것 같아 걱정이 되었는지 엄마는 당분간 복실이 접촉금지 명령을 하달했지만 하필 정말 본의 아니게 그날 마당에서 낡은 씽씽을 타다 넘어져 녀석의 입 주변에 상처를 내어 얼굴의 하얀 털이 피로 물들게 만들어 버렸다. 개 언어를 알아듣진 못하겠지만 분명 저도 엄마가 보고싶다는 표정으로 서럽게 우는게 느껴졌다. 동물이 피를 흘리는 모습을 처음 봤기에 너무 놀라 숨을 참고 엄마에게 달려갔다. 그 날 밤 엄마는 나한테도 안주던 소세지를 볶아서 복실이 밥그릇에 섞어주며 몇 마디를 건넸고, 나는 창문 틈으로 기웃거리며 수습현장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 복실이가 사라졌다. 비가 무척 쏟아지던 날 독한 감기에 걸려 열이 나고 콜록대며 시름시름 앓던 나의 유언과도 같았던 한 마디는, 엄마 나 옥수수랑 선지국밥이 먹고 싶어요.(어린이 맞습니다.) 예쁜 장화와 비옷으로 차려 입고 유언을 실현하러 시장에 나갈 채비를 마치고 나왔는데, 한낮의 비 내리는 어둑한 앞마당에서 텅 비어있는 개집이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문은 열려 있었고 깨끗이 닦아먹은 밥그릇도 그대로지만 복실이는 없었다. 엄마는 대문이 왜 열려 있냐며 수상하게 여기고 비가 와서 집에 데려갔는지 주인집으로 올라갔지만 내려올 땐 아주머니와 함께였다.


   엄마와 아주머니가 지목한 주된 용의자는 요즘 부쩍 동네에 자주 나타났던 개장수였다. 누구네 집 개도 없어졌다더라부터 훔치는 걸 봤다는 소문까지 이 사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커져갔고, 어른들은 싸잡아 개장수를 범인이라 결론을 내리며 뿔을 냈지만 먼발치에 서서 듣고 있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훔쳐간 게 아니라 괴로워서 떠나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엄마는 아니라고 했지만 이 찢어질 듯한 강렬한 심정을 위로 받을 순 없었다. 내 나이 여섯 살, 죄책감이 들었다.


   보고싶어서 매일 불러댔지만 나타나진 않았다. 저 멀리서 어떤 오빠가 공을 발로 차고 가는 것만 봐도 저 흰 것이 우리 복실인가 싶어 따라 뛰어갔었다. 스케치북에 복실이를 그려서 우리집 대문에도 붙이고, 장사가 잘되는 김밥집 앞에도 붙였더랬다. 그 후로 커가면서 또치, 베키, 뽀야라는 강아지가 날 거쳐 갔지만 우리 복실이를 잊기는 힘들었다.


  복실이는 사라졌다.

  나는 여전히 혼자서도 잘 놀았지만 외동딸에게 필요한 건 수북이 쌓인 장난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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