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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상인 Nov 03. 2015

쑥 캐기 대장정에 대한 기억

매일 같은 꿈을 꾸고 싶어요

  봄이면 엄마는 가끔 내게 유치원 땡땡이를 허락하고 보리건빵 한 봉지와 흰 우유 작은 것 하나를 사서 내 유치원 배낭에 넣어주고선 한 손은 내 손을 잡고, 한 손은 돗자리를 들고 동네 뒷산으로 쑥 캐기 대장정을 떠나곤 했다.


  우리는 한 팀이었다.
  엄마는 쑥을 캐고 나는 한량처럼 다리를 꼬고 누워 노래나 부르고 뒹굴거리며 시간을 때우다가 가끔 엄마 옆에 쪼그리고 앉아 오리걸음을 하며 졸졸 따라다니면서 입을 종알종알 거려 시끄럽게 하면 내 역할은 다한 것이었다.

  내 주요 위치는 엄마가 펼쳐놓은 돗자리 위.
돗자리에 앉혀 놓은 나는 우선 일차적으로 그곳에서 행해야 하는 경건한 의식을 치르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건빵과 우유를 먹는 일이다. 별사탕은 먹지 않는다. 그냥 소유하고 있을 뿐, 엄마가 사준 거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린이가 바나나도 달아서 싫어했고, 왜 그랬는지 몰라도 짜장면마저도 달다는 느낌이 들어 늘 갈등 없이 짬뽕을 선택하곤 했었다.)

건빵을 입에 넣고 마치 닭이 알을 품듯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으면 건빵이 따뜻해지면서 표면이 눅눅하게 불려진다. 그 후 어금니로 건방을 반토막 내고 흰 우유를 아주 소량 홀짝거려 건빵과 함께 버무려 씹으면 아주 아주 고소하고 맛난다. 이 순간을 오래오래 느끼고 싶어 삼키기 정말 싫지만 결코 목젖이 얌전히 두지는 않았고 식도로 냉큼 빨아 당기는 힘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냥 그대로 당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웠을까. 유혹을 참을 필요가 없는 것 말이지.

  몸인지 마음인지 어딘가라도 추워지면 나는 자꾸 그때의 하늘이 생각난다.
돗자리에 누워서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손가락으로 가려 봤다가 다리를 들어 발로 가려 봤다가 그것도 귀찮으면 실눈을 뜨고 봤다가 하면서 나뭇잎들이 햇볕에 버무려져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모습을 한동안 쉼 없이 바라보곤 했었다.

  쑥을 뜯는 엄마는 노래를 부른다. 산울림의 노래를. 집에서도 엄마는 늘 노래를 듣는다. 역시나 산울림의 노래를. 그 덕에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미 산울림의 음반에 수록된 모든 곡을 마스터하게 되었다. 게다가 어쩌다 보니 칠갑산은 덤으로 받은 것.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담임은 받아쓰기 시간에 나도 모르게 칠갑산을 흥얼거리고 있던 것을 발견하고선 교무실로 데려가 많은 선생님들 앞에서 칠갑산을 크게 완창 하도록 시키곤 했었다. 그러면 나는 시킨다고 또 얼마나 열창을 해댔는지 모른다. 그때 교무실은 웃음바다가 되었었던가. 몇 번을 더 불려 가서 칠갑산을 불렀던 기억이 나는데. 아무튼.(사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서태지를 좋아해서 매일 '난 알아요'를 부르고 춤을 따라 추곤 했었는데, 어쩌다가 받아쓰기 시간에 칠갑산을 흥얼거렸는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정말.)

  엄마의 흥얼거림 소리가 돗자리에서 작게 들려오면 나는 일어나 엄마를 찾아가 그 근처에 쪼그려 앉는다. 엄마가 옆으로 이동을 할 때마다 나도 같이 오리걸음으로 이동하며 쓸데없는 것들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다.

- 엄마, 한복에 그려진 그 무늬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 뭐라고 부르는데?

- 봉봉이라고 불러.(전혀, 그냥 내가 지어내곤 했다.)

- 그렇구나. 봉황이 그려져 있어서 봉봉인가?

  이쯤 되면 나는 속으로 화들짝 놀란다. 그냥 한번 이름을 지어본 게 다였다. 한복을 입을 일이 있었는데 한복은 옷 부위별로 명칭이 다 있다는 게 참 어려웠다. 저고리, 치마, 버선 이런 것뿐만 아니라 저고리에 달린 긴 천 두 줄은 고름, 옷깃은 동정 뭐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러다 과연 사람들은 한복에 그려져 있는 그 무늬들을 뭐라고 부를까. 한복이니까 뭔가 정성스러운 단어가 필요할 듯하여 그럴듯해 보이는 단어를 골라 주스 이름을 좀 빌려서 아무 말이나 해본 것인데,  봉황이 그려져서 봉봉이라니! 봉황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던 내가 생각해낸 이름에 엄마는 뭔가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된 듯 대답을 해주니 봉봉이란 것이 정말 너무 그럴싸하지 않냔 말이지. 그날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 그러면 엄마, 하늘이 왜 파란 색인 줄 알아?

- 알지. 맞춰보겠어. 하늘이 바다랑 마주 보고 있어서 서로서로 파란 거지 롱.

- 우와, 어떻게 알았어?

  사실은 나는 몰랐다. 하지만 엄마의 대답에 나는 마치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걸 엄마가 맞춰서 참 의외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곤 했다. 쑥 캐기 대장정에서 우리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 었다. 나는 질문을 하고 엄마는 답을 했다. 엄마의 대답들이 그 시절 내 수준에서 봤을 땐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고 쑥을 뜯으면서 무심한 듯 내뱉는 엄마의 대답들은 나에게 빛이요 진리요 생명이었던 것이다.

  마음에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그래서 내 생각들 끝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언제 그 뾰족함이 추락하게 될지 아슬아슬할 때, 가끔 가다 그 고드름이 되려 내 발등이라도 찍는 바람에 질끔 눈을 감고 아프다는 소리도 못 내보고 참아야 할 때, 이 시린 겨울이 다가올 때면 나는 늘 이 장면들을 곱씹고 곱씹으며 추위를 이겨낸다.
  내가 이상하게 질문을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원하는 대답을 해주던 엄마처럼 내 손을 잡고 유치원을 땡땡이치고 어디론가 데려가 줄 누군가는 이제 없지만, 잠 못 드는 밤 속 시끄러운 질문 하나로 대답을 헤매고 있는 그때, 이 기억 하나로 온기를 전해받고 언 몸을 녹이고 나면 나는 다시 평온 해질 테지. 따뜻해질 테지.

  왼편에서 내 손을 잡고 있는 엄마손, 뒷산으로 올라가기 전 마지막 구멍가게, 그곳에서 산 우유와 건빵, 오아시스가 그려진 돗자리, 나뭇잎 사이로 금가루처럼 뿌려지던 햇살, 산울림 노래를 부르는 멀리서 들려오는 콧소리, 쪼그려 앉아서 바라보던 쑥 캐는 엄마의 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던 엄마의 배낭, 그 배낭 위를 무례하게 침범하던 뚱뚱한 개미들.


나는 이대로 잠이 들 테니

오늘 밤 모두 나에게로 찾아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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