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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상인 Dec 05. 2015

두 엄마 이야기 1

나는 '우리 엄마' 딸이다.


‘내 엄마’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우리 엄마’를 만난 그 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나는 비록 유치원도 들어가지 않은 다섯 살 난 꼬맹이였지만 그 날 우리 셋이 왜 커피숍에 마주보고 앉아있었는지 다 알고 있었다.

엄마, 나 아빠한테 보낼 거야?


그럴 리가, 우리 딸래미가 얼마나 예쁜지 자랑하러 가는 거야. 예쁘게 인사하는 거야. 알았지?


  ‘내 엄마’의 손을 놓칠 새라 꽉 잡고 코끼리가 그려진 투피스에 흰색 타이즈를 신고 쁘띠꼬숑 구두까지 매치하여 완벽하게 차려입은 채 ‘우리 엄마’를 만나러 갔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우리 엄마’를 다시 만났다.

  우리 엄마는 그랬다. 지난 10년 동안 오늘을 기다리며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이 한마디를 꼭 해주고 싶었다고. 너는 모르겠지만 난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네가 우리 집에 오는 상상을 매번 해왔어. ‘내 엄마’를 잃고 ‘우리 엄마’를 다시 만난 나는 다섯 살 그 때의 귀여운 꼬마가 아니었고, 누구하나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당장 터질 것 같은 14년산 시한폭탄이었다. 다시 만난 날 말벌처럼 쏘아댄 나의 첫 마디는, 그래서요. 막돼먹은 나의 혓바닥이 사람을 찌르는 무기로 변해있었던 그 땐 ‘내 엄마’를 잃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외할머니 손에 질질 끌려 아빠네 집이라던 낯선 아파트로 데려간 날이었다.


  집안끼리의 싸움과 성격차이라고는 하는데 사연은 궁금하지 않다. 어쨌든 두 남녀는 헤어졌다. 갖은 공방 끝에 수많은 사람들의 염려와 걱정 속에서 죽을 각오로 어렵게 낳은 세 살짜리 딸의 양육권은 여자에게로 돌아갔다. 남자는 몇 년 뒤 새로운 인연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남자가 그의 딸에 대한 상사병으로 앓는 모습을 지켜보던 여인은 크나큰 결심을 한다. 딸을 데려오자. 아니, 이 여인은 지금 제정신인걸까. 자기가 나서서 자기 입으로 엑스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데려오자고?


너도 혼란스럽겠지만 나도 쉽지는 않아. 같이 노력해야 돼. 새엄마 말고 그냥 엄마라고 불러 줘. 어머니 말고 그냥 엄마라고 불러줘.


  그 해 내가 쓴 일기장은 족히 다섯 권은 될 것이다. 아무도 나에게 미움을 준적도, 구박을 한 적도 없었고 오히려 내 평생 열네 살 인생에서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형식의 배려를 받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 그저 서러웠다. 속에서 묵직한게 올라오려고 하면 당장 펜부터 쥐고 일기장을 펼쳤다. 펜으로 울었고, 그 시간은 우주에서 가장 외로웠다. 미역국 간이 입맛에 안 맞아서 울었고, 신김치가 아니라서 울었다.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에 울었고, 어디 아프냐는 말에도 울었다. ‘내 엄마’는 다 알았는데.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았는데 왜 몰라? 나는 바짝 익힌 김치만 먹는단 말이야. 나는 공부보다 책 읽고 글 쓰고 노래 부르고 운동하는 걸 좋아한단 말이야. 내 엄마는 그냥 내버려 뒀는데 왜 공부하라고 그래? 나는 시력이 낮고 난시가 심해서 아홉 살 때부터 안경을 쓰고 다니는 바람에 늘 두통을 달고 사는데 나보고 어디가 아프냐구? 삐딱하다 못해 바닥에 드러눕는 게 나을 만큼 발칙하고 잡란한 나의 행동과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곤 예, 아니오가 전부였던 꼬이고 꼬인 태도에 울컥한 우리 엄마는 자기 가슴을 쥐어뜯으며 말했다.


난 보란 듯이 널 잘 키울 거야. 너의 엄마가 진작에 왜 나한테 보내지 않았나 하늘에서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 거야. 너는 서럽겠지만 난 널 엄하게 키울 거야. 말 안 들으면 때리기도 할 거야. 알겠니?


  우리 엄마의 입에서 내 엄마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나는 괴로워했다. 우리 둘의 14년 세월이 어땠는지나 알아? 우리 둘이 어떤 사이인지 아느냔 말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생색내지마. 난 차라리 고아이고 싶으니까. 내 엄마를 욕하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고 뼛속까지 토해낼 듯 울었다. 한번만 더 그렇게 말하면 집을 나가던지 여기서 뛰어내리던지 할꺼라고 협박을 했다. 괴로웠다. 그녀의 말은 다 사실이었으니까.


이제 내가 니 엄마라고!

그렇게 아파서 자기 딸 고생시켜놓고 결국 자기는 다 키우지도 못하고 떠날꺼였으면서 백년만년 살 것처럼 버티더니 왜 이렇게 네가 다 커버린 후에 우리 셋을 만나게 하고 말이야. 네 아빠, 나, 그리고 너를 이렇게 힘들게 했는지 사과하게 만들 거야.


  아빠는 왜 그랬을까.

  소개 받은 여인과 사랑에 빠져 새 가정을 꾸렸으면서 자기 딸을 데려오기 전까진 둘 사이에서 자식을 낳을 수 없다고 말을 할 때 여인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여자에게도 놓고 온 아들이 있었다. 자식은 아빠 밑에서 자라야 제대로 큰다는 생각에 전남편의 재혼 가정에 자식을 떼어놓고 온 매정한 여자의 역할을 자청하고 아들 앞에서 늘 죄인이 되어 고개 들지 못하는 어미의 길을 택했다. 그런데 이 남자의 전 여자는 시한부 인생과 다를바 없는 삶을 살면서도 딸을 품안에 데리고만 있다. 심지어 혹여나 딸을 데리고 가겠다고 할까봐 남자에게 딸을 자주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렇게 10년 뒤 전 여자는 딸 하나 세상에 남기고 눈을 감았다. 그제 서야 남자는 새 인생을 사는 기분이 든다. 데려온 딸을 위해, 그 동안 기다려 주고 딸을 데려올 수 있게 허락해준 여자를 위해 무엇이든 해보려 한다. 의욕이 과했을까. 운이 없었던 걸까.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회사를 차렸다가 사기를 당해 하루아침에 감당하기 힘든 빚더미에 앉게 된다.


넌 걱정 말고 열심히 공부만 해. 나머지는 나랑 네 아빠가 다 알아서 할게. 네가 엇나가지 않고 우리 곁에서 바르게 자라주기만 한다면 그게 우릴 돕는 거야.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였나보다. 우리 엄마가 한 명의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 여인은 왜 이런 삶을 사는 걸까. 행복하게 다시 시작해보겠다고 한 재혼인데, 숱한 세월 맘고생 시킨 그 얼마나 대단한 남자의 딸은 데려왔더니 시한폭탄처럼 굴기나 하지, 남자는 갑자기 왜 사업을 벌이겠다고 나서서 집안 살림이 탈탈 털리고도 한참은 모자란 빚더미에 앉히질 않나, 세 명의 고모들은 금쪽같은 내 조카 혹여 새엄마 밑에서 구박이라도 받을까 싶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듯 간섭을 해대지. 어느 순간부터인지 우리엄마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버티는 중이라면 그만하라고 말해주고 싶을 만큼. 내 엄마가 우리 엄마에게 남긴 것, 아빠가 우리 엄마에게 남긴 것들을 생각하니 어딘가 나 혼자라도 숨어야겠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한 팀이 되기로 했다. 내 엄마와 발휘한 팀웍만큼은 아닐지라도 이 여인과 같은 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시한폭탄의 스파이크는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애정이라고 표현하기엔 그때까진 거북함이 있긴 했지만 분명히 내 편은 확실했다. 마음이 편했다.


  우리 엄마에게 슬픔이 찾아오면 옆에서 같이 울었다.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신세를 지고 있을 때 병원비를 구하러 친척들에게 손을 벌리러 가는 길에 나도 같이 따라 나섰다. 아니었다면 그날 저녁에 먹은 비빔밥 그릇엔 우리 엄마의 눈물로만 채워졌겠지. 우리 엄마까지 골절 수술로 입원을 했던 날 병실 바닥에 눕혀놓고 머리를 감겨주며 말했다. 머리는 내가 잘 받칠 테니까 목에 힘 좀 빼요. 죽고 싶다더니 머리감다가 죽을까봐 겁나나봐요? 우리 엄마의 아들이 군대를 가던 날, 둘이 노래방에 가서 목청이 터져라 열심히 노래를 불러댔다. 엄마, 걱정마. 군인들이 여고생 편지를 그렇게 좋아한다잖아요. 내가 그 오빠한테 편지 자주 보낼게. 우리 둘은 잘 살고 있으니 오빠는 군생활이나 무사히 잘 마치라고. 푸하하. 약오르겠지? 우리 엄마의 아들이 결혼식을 하던 날, 각자 서울과 부산에서 전화기 하나만 붙잡고 긴 시간 말 없는 통화를 했다.


  어느덧 아무도 모르게 시간은 흘렀고 내 엄마와 함께한 14년의 시간보다 우리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이제는 더 길어졌다. 좋아하는 색깔, 옷 입는 스타일, 싫어하는 사람의 특징, 즐겨먹는 음식, 유독 집착하는 정직, 청소하는 방식을 포함하여 나는 우리 엄마를 빼닮았다. 내가 우리 엄마라고 하는데 굳이 어느 누군가가 너희 ‘새 엄마’라고 말을 하면(가령 친척들이랄까) 벽 집고 공중이회전을 돌아 이단 옆차기를 한 다음 핵주먹 어퍼컷을 날려주고 싶다. 설명을 해봤자 뭘 알겠나 싶어 참는 때가 더 많았지만.


내 소원은 너의 행복이다. 정말이야.

니 아부지랑 나는 소원을 그렇게 정했어.

너만 행복하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괜찮아.

이제 늙어서 해줄꺼라곤 매일 너를 위해 기도하는거야. 그러니 너도 이제 너를 위해 기도해.


나는 우리 엄마의 딸이다.  이상 설명이 필요할까.




‘내 엄마’와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yooatic8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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