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고 반듯한 박스나 신문같은 폐휴지가 생기면 목요일이 분리수거의 날이지만 버리기가 아깝다는 괴팍한 생각이 들어 마치 속고쟁이에 쌈짓돈 접어서 넣어 놓고 준비물 사게 돈 좀 달라해도 절대 안속고 한푼도 내놓지 않던 우리 외할머니 처럼 나는 신문을 쟁여놓고 누군가를 기다린다.
대부분은 바퀴가 두 개 달린, 저마다 다양한 모양의 도구를 끌고,(어떤 분은 전동 휠체어를 타면서 까지) 골목마다 순회하며 폐휴지를 줍는 노인분들이 참 많다.
비가 내리는 날엔 주워 갈만한 종이가 없어 바퀴차 위 종이언덕은 푹 꺼져 있고 더 없이 초라해 보이지만 가끔 쌓여있는 신문을 묶어서 작은 그 종이언덕 위에 보태 드리면 가뜩이나 굽어있는 허리를 더 아래로 숙이며 인사를 하신다. 그러면서 나에게 줄껀 없으실테고 말이라도 보태주시는 한마디는 다음에 헌옷도 있으면 달라고 한다. 헌옷도 모아서 어디다 팔면 돈이 되나보다 싶다.
그런 노인들을 바라볼 때면
어디선가 겪어본 감정인데 도대체 출처가 어디인지 알 수는 없는 그런 식의 마음으로 심장이 막 쪼그라들어 울고싶을 때가 있었다. 그 마음은 맹세코 동정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하다못해 응원도 아니었다.
저 나이가 되어도 '살아감'을 위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 선에선 무슨일이든 해보고 있는, 구구절절한 사연들도 많을 것이고 이유가 어찌 되었건 그래서 각자의 생을 나름의 방법으로 꾸려가고 있는 모습이,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게 따지며 오늘 하루도 한바탕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를 쪼그라들게 만든다.
말을 더 걸어보고 싶지만,
내가 지금 그까짓 신문 몇장 보태줬다고 해서 바쁜 노인을 붙잡고 미주알고주알 말을 걸면 실례가 될까 싶어 다음에(과연 또 언제, 요즘 이 분들 경쟁이 치열하던데..) 또 뵙자고 한마디 정도하고 입을 다물고 돌아섰다.
나는 젊은이, 저 사람은 노인. 그러나 문득 나랑 저 노인이랑 시간적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시간이 더 짧다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죽어가고 있음에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살아가야 하므로 그 짧은 시간을 삶으로 채워 온전히 내 것처럼 여기고 살다가 죽음이 찾아와야 결국 내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어떤것도 손에 쥐고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거겠지..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는 저렇게 폐휴지를 줍느라, 컴퓨터 앞에서 열심히 자판을 두들기느라, 하루종일 전화기 붙잡고 입씨름 하느라, 이러느라 저러느라 미처 알 시간이 없는 게 참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