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든 절망, 우리의 일상은 왜 무너졌나

묻지마 살인과 폭행은 왜 생기는 것인가?

by 유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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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턴가, 우리는 스쳐 가는 타인의 어깨를 경계하게 되었다.

붐비는 지하철역, 익숙한 동네 골목, 환하게 불이 켜진 백화점. 한때 우리의 '일상'이라 불렸던 그 모든 공간에, '혹시나' 하는 불안의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이어폰 너머로 들리는 낯선 발소리에 어깨를 움츠리고, 무심코 마주친 눈빛을 황급히 피한다.


'대한민국은 안전하다'는 신화는 이제 산산조각 났다.


'묻지마 살인', 혹은 '이상동기 범죄'.

그 이름이 무엇이든, 이 현상은 우리에게 가장 근원적인 공포를 심어준다. 바로 '무작위성(Randomness)'이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절망의 제물이 될 수 있다는 끔찍한 현실.

이것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우리의 '감정'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감정비망록'의 이번 장은, 이 잔혹한 절망이 왜 하필 칼을 들고 우리의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왔는지, 그 차가운 이유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기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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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포의 해부: 왜 우리는 이토록 두려워하는가


우리는 다양한 범죄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유독 이 '이상동기 범죄'가 우리의 정신을 무너뜨리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가 맺어온 '사회적 신뢰'라는 암묵적인 계약을 정면으로 파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유 없는 폭력은 없을 것'이라 믿으며 타인과 거리를 유지하고, '최소한의 규칙은 지켜질 것'이라 믿으며 공공장소를 활보한다.

하지만 이 범죄는 그 모든 믿음을 배신한다.

아무런 원한 관계도, 금전적 목적도 없다. 오직 '불특정 다수'를 향한 맹목적인 분노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는 피해자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향한 테러다.


"왜 하필 나였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무 이유 없어"일 때, 우리는 속수무책의 무력감에 빠진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모든 공간이 잠재적인 위협의 공간으로 변하고, 우리는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이 공포야말로 범죄자가 사회에 가하는 가장 큰 상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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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칼을 든 손의 초상: 그들은 '괴물'이 아니라 '고립된 자'였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가해자를 '사이코패스', '은둔형 외톨이' 혹은 '악마'라 부르며 우리와 다른 존재로 '타자화'한다. 그것이 가장 마음 편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해 불가능한 괴물의 일탈'로 규정하면, 우리는 이 문제를 사회 시스템의 실패가 아닌 개인의 실패로 축소하고 안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괴물'이라는 단어 뒤에 숨겨진 공통의 패턴이 드러난다.


첫째, 극단적인 '사회적 고립(Social Isolation)'이다.


그들은 가족, 친구, 직장 등 모든 1차적 관계망에서 밀려나거나 스스로를 단절시켰다. 문제는 이 '고립'이 단순한 물리적 혼자가 아니라, '심리적 절연(絶緣)'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세상이 나를 무시했다"는 뒤틀린 피해의식이, 사회 전체를 향한 분노로 자라난다.


둘째, '치료받지 못한 정신적 고통'이다.


상당수의 가해자가 심각한 우울증, 조현병, 편집성 장애 등을 앓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치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신과에 간다'는 것을 '실패'나 '낙인'으로 여기는 강력한 사회적 편견이, 병을 키우고 잠재적 위험을 방치했다. 그들의 고통은 내면에서 곪아 터질 때까지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 '진짜 원인'(가령, 구조적 불평등이나 특정 인물)을 공격할 용기나 논리가 없다. 대신, 가장 손쉬운 방식, 즉 자신보다 약해 보이거나 그저 행복해 보이는 '불특정 타인'을 공격하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든다. 이는 가장 비겁하고 잔인한 방식의 자기 파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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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절망의 공장: 무엇이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나


그렇다면, 왜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고립된 자'들이 유독 '묻지마 범죄'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폭발하는가? 이 문제는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들을 방치하고 조장한 **'구조적 실패'**에 가깝다.


①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이름의 지옥


한국 사회는 숨 막히는 '비교'의 사회다. SNS를 열면, 모두가 화려한 성공과 행복을 전시한다.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초라한 현실은, '절대적 빈곤'보다 더한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준다. "나만 불행하다", "나만 낙오되었다"는 감정은, 건강한 좌절이 아닌 '세상을 향한 원망'으로 변질된다.


② 1인 가구 1천만 시대, '관계의 해체'


경제 구조와 주거 형태의 변화로 '원자화된 개인'은 급증했다. 과거에는 헐거울지언정 존재했던 '공동체'라는 울타리가 사라졌다. 이웃, 친척, 동료는 더 이상 서로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한 개인이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그 기나긴 과정을, 알아채고 손 내밀어 줄 '사회적 눈'이 부재하다.


③ '엄벌주의'에 기댄 안일한 대응


사건이 발생하면, 여론은 "사형시켜라", "더 강하게 처벌하라"라고 들끓는다. 물론 범죄에 대한 합당한 처벌은 필요하다. 하지만 '처벌 강화'는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사후 처리'일뿐, '사전 예방'이 될 수는 없다.

이는 마치 암세포의 근원은 내버려 둔 채, 겉으로 드러난 종기만 도려내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미 칼을 든 손을 어떻게 벌할지만 논의할 뿐, 애초에 그 손에 칼을 쥐여준 '절망'의 정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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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는 어떻게 이 공포를 멈출 수 있는가


이 비극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단기적 처방과 근본적인 처방이 동시에, 그리고 아주 촘촘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단기 처방: 즉각적인 '물리적 안전망']


시민들의 발밑에서 타오르는 공포를 잠재우는 것은 국가의 최우선 책무다.

'가시적 치안'의 확대: 지하철역, 번화가 등 인구 밀집 지역과 범죄 취약 지구에 경찰 인력을 상시 순찰, 배치하여 '범죄 심리' 자체를 위축시켜야 한다.

'지능형 CCTV'의 고도화: 단순히 사후 기록용 카메라가 아니라, AI가 흉기 소지나 이상 행동 패턴을 '사전 감지'하여 관제 센터와 경찰에 즉각 경보하는 '예방적' 시스템으로 전면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중기 처방: 근본적인 '치료적 안전망']


'정신질환=범죄'라는 낙인이 아니라, '방치된 질환=위험'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정신과 문턱'의 파괴적 인하: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듯, 마음이 아프면 누구나 쉽게 정신과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적용을 대폭 확대하고, 전국적인 '심리 응급실'을 구축해야 한다.

'사법 입원·외래치료'의 실효성 강화: 자타해 위험이 명백한 중증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거부할 때, 가족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현행 제도는 한계가 명확하다.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국가가 공정하게 판단하고 강력하게 개입하는 '사법적 치료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장기 처방: 지속 가능한 '사회적 안전망']


이 범죄의 뿌리가 '고립'이라면, 궁극의 해답은 '연결'이다.

'고립 개인'의 발굴 시스템: 1인 가구, 실직자, 은둔형 청년 등 사회적 고립 위험군을 지역 사회(주민센터, 복지관, 보건소)가 먼저 찾아내고 관리하는 '능동적 복지'로 전환해야 한다.

'공동체'의 현대적 복원: '오지랖'이라 불렸던 그 관심이 사실은 가장 강력한 안전망이었다. 지역 커뮤니티 센터, 취미 모임, 종교 단체 등 개인을 다시 사회로 '연결'시킬 수 있는 '중간 지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활성화해야 한다.

'실패해도 괜찮은' 사회로의 전환: 경제적 절망이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촘촘한 고용 안전망과 재교육 시스템을 통해 '실패'가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사회적 믿음을 주어야 한다.



'감정비망록'을 닫으며


이 비망록에 또다시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과, 한 개인의 파괴된 삶을 기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묻지마 범죄'는 그 범행 동기가 '묻지마'일 뿐, 그 원인은 결코 '묻지마'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하고 방치해 온 수많은 '구조적 신호'들의 총합이자, 가장 끔찍한 형태로 터져 나온 '시스템의 경고'다.

CCTV 100대를 늘리는 것보다, 지금 내 옆에서 절망의 신호를 보내는 한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

우리의 무관심이 다음 범죄의 공범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이 잔인한 공포의 시대를 끝내고, 우리의 평온한 일상을 되찾는 유일한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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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끄고 현관문을 잠그는 손에, 혹은 늦은 밤 골목을 걷는 발걸음에,

'혹시나' 하는 두려움이 묻어나는 요즘입니다.

"왜 하필 나일 수도 있었을까?"

한때 가장 안전했던 우리의 '일상'이 이토록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무력감과 분노를 동시에 느낍니다.

이 글은, 그저 한 '괴물'을 비난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닙니다.

'묻지마 살인'

저는 이 끔찍한 현상이, 실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묻지 못한 마음'들의 가장 비극적인 폭발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고립되었는가." "왜 아무도 나의 절망에 대답하지 않는가." "나는 왜 이 사회에서 투명인간이 되었는가."

사회가, 그리고 바로 우리가 제때 대답하지 못하고 방치했던 그 수많은 질문들이 칼이 되어 가장 약한 곳을 향해 돌아온 것입니다.

우리의 무관심은, 다음 비극의 공범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공포의 시대를 끝내는 것은, 더 많은 CCTV나 더 강한 처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고립된 누군가가 '괴물'이 되기 전에, 먼저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괜찮으냐"라고 먼저 '물어주는' 따뜻한 관심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사회적 안전망'이 되어줄 때, 비로소 우리는 두려움 없이 거리를 걷던 그 평온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written by Yood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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