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닥불이 꺼진 자리에 '온돌'이 데워지는 시간
사랑이 식었다고 착각하는 당신에게 건네는, 심리학적이고 서늘한 위로
결혼 생활을 주제로 글을 쓰다 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작가님 부부는 어떻게 권태기를 극복하셨나요? 저희 부부는 대화도 없고, 스치기만 해도 짜증이 납니다. 사랑이 다 식어버린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조심스럽게 우리의 궤적을 돌아본다. 2011년에 결혼해 어느덧 15년 차에 접어든 우리 부부. 솔직히 고백하건대, 우리에게는 남들이 말하는 그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권태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서로를 보며 가슴이 뛰고, 연애 시절처럼 불타오르는 사랑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다. 우리는 수빈이와 다빈이를 키워내며 전우애로 뭉친 끈끈한 동지이자,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가장 편안한 룸메이트에 가깝다.
많은 부부가 이 '편안함'을 '권태(Boredom)'로 착각하고 절망한다.
예전처럼 가슴이 뛰지 않으니 사랑이 끝났다고 지레짐작하며 우울해한다.
하지만 오늘 나는 심리학과 뇌과학의 전문가적 시선을 빌려, 단호하게 당신의 착각을 깨부수려 한다.
권태기는 사랑의 무덤이 아니다. 그것은 얄팍했던 감정이 가장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 겪어야만 하는, '사랑의 위대한 진화 과정'일 뿐이다.
우리가 연애 초기에 느끼는 그 짜릿한 설렘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영혼의 끌림이기 이전에, 뇌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의 장난이다.
상대방을 보면 가슴이 뛰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현상.
뇌과학자들은 이를 '도파민(Dopamine)'과 '페닐에틸아민'의 과다 분비로 인한 일종의 '가벼운 조증(Mania) 상태'라고 정의한다.
자연의 섭리는 냉정하다.
뇌는 이 흥분 상태를 영원히 유지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인간이 24시간, 365일 내내 가슴이 뛰고 흥분 상태로 살아간다면 심장 마비로 죽거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호르몬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2년에서 3년에 불과하다.
결혼하고 3년쯤 지나 "사랑이 식었다"고 한탄하는 것은,
"왜 내 뇌는 계속 마약에 취해있지 않지?"라고 묻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당신의 배우자가 매력을 잃어서가 아니라, 당신의 뇌가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을 뿐이다. 설렘이 사라졌다는 것은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몸과 마음이 비로소 폭풍우를 지나 '안전지대'에 무사히 착륙했다는 생물학적 증거다.
권태기를 심하게 앓는 부부들의 공통점은 '모닥불의 환상'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랑이란 뻘겋게 타오르는 장작불 같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불길이 조금만 잦아들면 불안해하며, 배우자를 탓하거나 새로운 장작(불륜이나 일탈)을 찾아 헤매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한겨울에 모닥불은 낭만적이고 따뜻하지만, 그 불꽃을 집 안으로 들일 수는 없다. 집 안에서 모닥불을 피우면 매캐한 연기에 질식하거나, 자칫하면 집 전체를 다 태워버리고 말 것이다. 뜨겁고 타오르는 열정만으로는 결코 안정적인 '가정'이라는 건축물을 유지할 수 없다.
결혼 생활에 필요한 사랑은 모닥불이 아니라 '온돌(溫突)'이다. 바닥 아래 숨겨져 있어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겨울 꽁꽁 언 발을 녹여주고 우리가 밤새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은은하게 방 안을 데워주는 온기. 우리 부부가 권태기라는 늪에 빠지지 않았던 이유는, 6살 연하 남편의 그 풋풋했던 모닥불 같은 열정이 식어가는 것을 서운해하지 않고, 기꺼이 우리 가족을 지키는 '온돌'로 자리 잡았음을 감사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권태롭다는 것은, 당신의 방바닥이 데일 정도로 뜨겁지 않다는 불평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은은한 온돌이 꺼졌을 때 닥쳐올 지독한 냉기를 상상한다면, 지금의 이 '심심한 편안함'이 얼마나 거대한 축복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부부 상담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결혼 생활에서 '지루함'을 느낀다면, 당신의 결혼은 아주 성공적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권태기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예측 가능성(Predictability)'이 자리 잡고 있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와 양말을 어디에 벗어둘지, 아내가 화가 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 새로운 자극이 없으니 뇌는 심심해한다.
하지만 인간은 모순적인 동물이다. 머리로는 자극을 원하지만, 영혼은 안전을 갈망한다. 밖에서 낯선 타인들과 부딪히며 긴장 속에 하루를 보낸 우리가, 집으로 돌아와서까지 배우자의 눈치를 살피고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의 기복을 겪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내 배우자의 행동이 100% 예측 가능하다는 것.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다는 것. 이 지루할 정도의 익숙함은 역설적으로 "나는 이 사람 곁에서 어떠한 방어벽도 치지 않아도 된다"는 절대적인 안전함을 의미한다.
나는 소파에 늘어져 있는 남편의 등짝을 보며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대신,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이 '무해한 공기'에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권태는 사랑의 부재가 아니라, 신뢰의 완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적막한 온돌방이 숨 막히게 느껴질 때, 우리가 취해야 할 성숙한 어른의 태도는 무엇일까?
첫째, '함께'라는 강박에서 벗어나라 (적절한 거리 두기)
권태기에 빠진 부부들은 어떻게든 사이를 회복해 보려고 주말마다 억지로 외식을 하고 여행을 간다. 최악의 대처법이다. 숨이 막힐 때는 껴안는 것이 아니라,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해야 한다. 각자의 시간을 가져라. 아내는 친구들과 1박 2일 여행을 가고, 남편은 혼자만의 낚시를 떠나라. 24시간 붙어있던 시야에서 서로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상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백이 생긴다. 그리움은 떨어져 있을 때만 피어나는 꽃이다.
둘째, '명사'의 사랑에서 '동사'의 사랑으로 전환하라
연애 시절의 사랑이 "너는 내 운명이야"라는 '상태(명사)'였다면, 권태기 이후의 사랑은 "내가 너를 위해 청소기를 돌릴게"라는 '행동(동사)'이어야 한다. 가슴 떨리는 고백을 기대하지 마라. 당신이 피곤할 때 배우자가 말없이 끓여주는 찌개, 아이들 목욕을 전담해 주는 그 투박한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치열한 사랑의 증거다. 언어가 아닌 행동으로 사랑을 번역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셋째, 부부라는 이름의 '공동의 프로젝트'를 발굴하라
우리 부부가 권태기 없이 달려올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쉼 없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뛰었기 때문이다. 수빈이와 다빈이를 번듯한 인간으로 키워내기 위한 양육의 프로젝트, 좁은 전셋집에서 시작해 차곡차곡 대출을 갚으며 내 집을 마련했던 자산 증식의 프로젝트. 남녀로서의 설렘이 희미해진 자리에, 우리는 등을 맞대고 세상을 향해 싸우는 '전우(Comrade)'라는 더 강력한 타이틀을 달았다. 전우애로 뭉친 부부는 결코 권태라는 나약한 감정에 잡아먹히지 않는다.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음식, 김치를 생각해 보자. 갓 담근 겉절이는 아삭하고 매콤달콤한 자극적인 맛을 낸다. 연애 시절의 도파민과 같다. 하지만 겉절이는 금방 시들고 오래 보관할 수 없다. 반면 항아리 속에서 오랜 시간 인고의 세월을 견딘 묵은지는 어떠한가. 겉보기엔 색이 바래고 시큼한 냄새가 나지만, 깊고 진한 맛으로 우리의 속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결혼 생활의 권태기란, 겉절이가 묵은지로 변해가는 그 퀴퀴하고 미적지근한 '발효의 시간'이다. 그 시간이 답답하다고 항아리를 깨버리거나 뚜껑을 열어버리면, 그 사랑은 발효되지 못하고 그저 썩어버릴 뿐이다.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참 많이 삭았다. 남편의 얼굴에는 가장의 피로가 묻어있고, 내 몸에는 두 아이를 낳고 기른 세월의 흔적이 훈장처럼 남았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보며 불꽃처럼 타오르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서로의 눈빛만 보아도 오늘 하루의 무게를 가늠하고, 식탁등 아래서 말없이 맥주 캔을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깊은 맛을 내기 시작했다.
권태롭다는 것, 마침내 당신이 나의 '모든 것'이 되었다는 것
어느 늦은 밤,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남편의 뒷모습을 본다. 아주 편안한 티셔츠, 무심하게 리모컨을 돌리는 손가락, 그리고 너무나도 익숙한 그의 체취.
이 지루하고도 평화로운 풍경 앞에서 나는 생각한다.
만약 누군가 "결혼 생활이 권태롭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웃으며 "네, 아주 완벽하게 권태롭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권태로움은 당신이 나에게 어떠한 상처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이며, 우리가 거친 파도를 지나 마침내 호수처럼 잔잔한 안전지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승전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지금 배우자가 지루하게 느껴진다고 슬퍼하지 마라. 모닥불의 낭만이 끝난 자리에서, 당신의 남은 평생을 따뜻하게 지켜줄 위대한 온돌의 역사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을 뿐이니까.
: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라, 뿌리가 깊어지는 중입니다
"남편이랑 한 공간에 숨 쉬는 것도 답답해요." 권태기라는 터널에 갇힌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 답답함의 정체는 상대가 미워서가 아니라, '내가 알던 화려했던 사랑'이 끝났다는 상실감 때문일 테니까요.
하지만 화려한 꽃잎은 져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꽃이 떨어졌다고 나무가 죽은 것이 아닙니다. 꽃을 피우는 데 썼던 에너지를, 이제는 거센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는 데 쓰고 있는 중입니다.
당신의 배우자는 매력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당신을 위해, 그리고 당신의 가족을 위해 화려함을 포기하고 묵묵히 흙투성이가 되어가며 뿌리를 뻗어 내리는 중일 겁니다.
권태기라는 이름표를 떼어내고, '안정기'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붙여보세요. 오늘 저녁, 지루하리만치 똑같은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있는 배우자에게 다가가 조용히 어깨를 주물러 주며 속으로 말해주세요. "이 지루하고도 지독한 평화를 나에게 선물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입니다.
발효된 사랑의 깊은 맛을 즐기고 있는, 유다람 드림
https://litt.ly/yoodaram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