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질문하기

지식보다 태도의 중요성

by 이대팔

앞선 이야기에서 나는
규정과 숫자를 중시하고
사람을 먼저 의심하던 초급자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절의 나를 움직이게 했던

원동력은 아주 단순했다.


“회사 돈을 한 푼이라도 아껴보자.”

당시 회사 계단과 게시판에는 ‘품질개선’,

‘원가절감’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구호는 거창했지만,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줄여야 하는지는
아무도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회계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물류팀 직원퇴사로 관세환급 업무까지 맡으면서
나는 환급 금액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없는지

회계 마감자료를 꼼꼼히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던 중
물류비용 거래명세서를 검토하다가
눈에 걸리는 항목이 있었다.


‘Container Tax’

Ocean Freight, THC 같은 항목은
검색해 보면 대략적인 의미가 나왔다.
그런데 이 ‘Container Tax’는
이상하게도 설명이 명확하지 않았다.


금액은 크지 않았다.
컨테이너 한 대당 청구되는 금액.
하지만 매월 반복적으로 청구되고 있었다.


사수에게 물어봤다.

“글쎄…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네.”


물류팀 쪽에 물어보니
“예전부터 계속 나오던 거야.”
“물류대행사가 알아서 하는 거겠지.”

몇 년째 관행처럼 처리되던 비용이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걸렸다.

그래서 물류대행사에 전화를 했다.
명확한 답을 못 들었다.

선사 쪽으로 전화를 돌렸다.
다시 다른 담당자로 연결됐다.


앞자리 사수는 짜증을 냈다.

“바빠 죽겠는데 뭐 하냐.
그거 원래 다 그렇게 하는 거야.”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몇 통의 전화를 더 한 끝에
마침내 사실을 알게 됐다.


그 ‘Container Tax’는
부산시에 외지 컨테이너 차량이 많이
드나들면서 부산시의 도로 파손이 잦아
시 조례로 부과되는 비용이었다.


컨테이너 한 대당 1만 원.

그런데 문제는 한시적인 조례로
이미 3년 전에 종료됐다는 점이었다.


물류대행사에 연락하니 본인들도

처음 알았다며 당황했고,

물류팀장도 본인도 몰랐다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선사 쪽에서 단순 실수인지, 아니면

의도적인지 이유야 모르겠지만,

청구해서는 안될 비용을 청구해 온 것이다.


나는 3년 치 전표와 증빙을 뒤지기 시작했다.

세무조사를 받은 후에 서고정리를 하여

깔끔하게 연도별로 정리해 놨고,

이미 서류 뒤지는 건 자신 있었다.


컨테이너 수량을 맞춰보고,
청구 내역을 하나씩 대조했다.


그렇게 찾아낸
3년 치 청구 오류 금액은
약 5백만 원.


결국 선사와 물류대행사와 협의해
환급을 받을 수 있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고,
시상이나 포상이 따르지도 않았다.


다만, 무뚝뚝한 팀장님의
“잘했네.”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그렇지만, 나는 팀막내로서 회사의

비용을 5백만원이나 아낀 것이

개인적으로 너무 뿌듯했다.


그때 나는 분명히 느꼈다.

회계는 숫자를 처리하는 일이 아니라,
숫자에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는 것을.


“원래 그렇게 해왔어”라는 말

"매번 하는 일"이라는 무심한 말과

일처리에 나는 의문을 던지곤 했다.


비슷한 경험은 손익계산서를 만들 때도 있었다.

판매관리비 계정에 분류가 애매한

항목들은 습관처럼 ‘잡이익’으로

처리되고 있었다.


어떤 해에는
그 잡이익이 수천만 원에 달했다.


“왜 이건 잡이익이에요?”
“기준이 있나요?”

사수의 답은 간단했다.


“원래 그렇게 해왔어.”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사수의 양해를 구해
회계감사인과 몇 차례 상의했다.


그 결과, 내 의견이 받아들여져
해당 금액들은 판매관리비 계정의 차감 처리로
정리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의견을 받았다.


처리 방식이 바뀌자
손익 구조도 달라졌다.


영업 외 수익으로 잡히던 금액이
영업이익으로 전환되면서
자연스럽게 영업이익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숫자는 같았다.
하지만
회사를 설명하는 언어는 달라졌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분명 미숙했다.


때로는 과했고,
때로는 고집도 셌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왜?”라는 질문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는 것.


원가절감도,
관세환급도,
손익 구조 개선도
거창한 전략에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그저,

“이 비용이 왜 나가야 하지?”
“이 숫자는 왜 이렇게 분류되지?”

그 질문에서 시작됐다.


회사 돈을 지킨다는 것은
거대한 프로젝트를 만드는 일도

있겠고, TFT 등을 통해 전사적으로

활동할 수도 있겠지만, 일상적으로
작은 숫자 하나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초급자의 경쟁력은
지식의 양뿐만 아니라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라는 것을.


CFO 실전노트 – 한 줄 정리

회계는 숫자를 처리하는 일이 아니라,

숫자에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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