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은 언제 발생하는가

수익인식기준, 몸으로 배운 날

by 이대팔

회계감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항목 중 하나가 '수익인식기준'이다.


매출로 인정할 수 있는 시점과 조건을 정하는 기준인데, 단순히 '물건을 넘겼으면 매출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회계해설서에는 4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복잡하고 중요한 기준이다.


재화 판매, 분할 대금 수취, 해외수출이나 해외자회사 매출, 용역·위탁 매출, 건설업의 진행률 기반 매출인식까지 상황마다 적용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20억 매출 중소기업이 22억으로 신고했다면? 회계감사를 받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1,000억 매출 상장사의 실제 매출이 700억이라면? 시장 전체가 흔들린다. 그 회사에 투자한 주식투자자와 회계감사법인, 회사의 회계영역을 총괄했던 CFO 등 여러 이해관계자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회사와 숫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된다.


실제로 2021년, 중소상장사 S사는 금융감독원 감리 결과 약 8개년치 매출이 잘못 인식된 사실이 드러나 이른바 매출 밀어내기의 분식회계로 판정되며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금감원에서 회사의 CFO해고권고와 직무정지 6개월, 과징금등 중징계를 내린 큰 사건이 있었다.


어떤 회사는 국내 대기업에 장비를 납품하는데, 장비인도시점, 90% 세금계산서 발생시점과 대금수취시점, 잔금 10%에 대한 세금계산서 발행시점과 대금수취시점이 모두 다르다 보니 어느 시점이 매출인지에 대해 매우 깊게 검토를 해야 했던 사례가 있다.


지금은 회계상으로, 세무상으로도 모두 '재화인도'기준이 수익인식의 기본 기준이다.


주니어 시절, 그 '수익인식기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으로 배웠던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창고의 김주임님

월마감 때면 밤늦게까지 남아 재고 실사를 도와주던 창고관리 김주임님은,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아 거의 팀장급들과 비슷한 연배였다. 평소 성격이 온순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신망이 두터웠고, 순박한 동네 바보형 같은 느낌이었지만, 상대의 나이가 적다고 말을 놓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비록, PC는 잘 못 다뤘지만, 맡은 바 업무에 성실했고 덩치가 있다 보니 힘이 세서 창고일에 적격이었다.

힘든 창고일을 마치고 함께 소주잔을 기울일 때면 글라스째 들이키는 남성미가 넘쳤지만, 술주정을 하거나 지각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그런 주임님이 어느 날 오후, 창고가 아닌 사무실에 나타났다.

입구를 지나 우리 팀 앞을 거쳐 영업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주임님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지나간 자리마다 술 냄새가 진동했다. 그리고 손에는 '각목'이 들려 있었다.

평소 창고에만 있던, 사무실에 거의 오지 않던, 매우 화가 난 것이 역력한 주임님의 처음 보는 모습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뒤를 쫓아갔다.


영업팀장 자리까지 곧장 걸어간 주임님은 몇 마디를 나누더니, 손에 들고 있던 각목을 영업팀장 책상에 '꽝' 하고 내리쳤다.

사무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얼어붙었다.

나와 영업팀 직원 몇 명이 달려가 주임님을 말리고 사무실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매출 밀어내기

우리 팀장님 지시로 상황을 파악해 보니, 배경에는 영업팀장과 창고 직원들 사이의 오래된 갈등이 있었다.

영업팀장은 평소 창고 직원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자주 했고, 정해진 절차를 어기고 급하게 출고지시를 하거나 이미 요청을 해서 작업 중인데 다시 취소하거나 변경하는 등 창고직원들에게 평판이 안 좋았던 터였다.


지난달 말일에 5톤 트럭 대여섯 대를 갑자기 불러 영업팀장이 긴급 출고를 요청했다.

'오늘까지 출고 안돼서 매출처리가 안되면 모두 창고직원들 책임'이라는 영업팀장의 협박성 멘트에 창고 직원들은 미리 준비할 틈도 없이 자정이 가까운 시각까지 소위 '까대기'를 해야 했다.


그것만으로도 힘든데, 주임님을 진짜 폭발하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말일이 지나고 이틀가량 지나 출근해 보니, 전달 말일에 그토록 급하게 요청을 하고 자정까지 작업해서 내보냈던 제품들이 창고 뒤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무런 사전통지나 협의도 없이.


영업팀 입장에서 매출 기준은 '출고 기준'이었다.

당월 매출이 계획에 못 미치면, 말일에 급하게 출고를 시켜 매출을 잡고 다음 달 초에 슬그머니 반입 처리를 했던 것이었다.

숫자로는 매출을 달성한 것처럼 보고했다.

하지만 제품은 돌아왔고 그 사이에서 창고 직원들만 죽어났던 것이다.

점잖기로 유명했던 창고 김주임님은 그날 아침, 사전 연락도 없이 창고 뒤에 가득 쌓아놓은 몰래 반입된 제품더미를 보고 화가 치밀어 회사 앞 식당으로 가 혼자 깡소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각목을 들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달라진 것들

업무 중 음주와 사무실내 폭력.

착한 성품이었지만 자신의 분노를 올바로 표출할 줄 몰랐던 주임님의 잘못된 행동이 회사전체로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이곳저곳에서 술렁거렸다.

지금도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당시에도 바로 해고가 될 정도의 큰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두어 시간 뒤에 김주임의 진술내용을 전해 들은 회사 사람들의 여론은, 표출방식은 잘못되었지만, 김주임님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당시는 업무프로세스가 명확하지 않았고, ERP가 제대로 구동되지 않던 시절이다 보니 여러 문제가 생기는 중에 내부 직원 간 갈등이나 문제가 종종 발생하곤 하였지만, 이렇게 크게 이슈가 되는 황당한 사건은 처음이었다.


김주임님의 평소 성품을 알고 있던 경영진은 김주임의 진술서를 제출받아 인사위원회를 통해 검토하고 종합적인 고려를 한 후에 경징계를 내렸다. 나와 몇몇 직원들은 성격 좋고 친한 김주임님이 해고에 가까운 중징계를 받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 정상참작이 되어 경징계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매출을 부풀리고 다음 달 초에 임의로 반품 처리를 한 영업팀장은 징계를 안 받을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회사에 피해를 입힌 것으로 판정되어 같이 경징계를 받았다.


회사의 매출 기준이 바뀌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회사의 매출기준이 '출고 기준'에서 '세금계산서 기준'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매월 보고자료에도 매출만이 아닌 재고현황까지 보고하도록 양식이 바뀌었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회계감사에서 매출 인식기준이 회사가 정하는 방식을 따르는 다소 유연한 시절이었다.

이런 사건과 사례들이 쌓이고 쌓여, 오늘날의 엄격한 매출인식의 기준이 만들어졌을 것이리라.


나에게는 '수익인식기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과서가 아닌 현장에서 — 그것도 각목 한 방으로 — 배운 사건이었다.


CFO 실전노트 — 한 줄 정리

매출은 '언제'뿐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다.

기준이 흔들리면, 숫자도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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