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초심에 관하여
무엇인가 꾸준히 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일을 시작할 때의 에너지와 꾸준히 이어나가는 에너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시작하는 마음, 우린 흔히 초심(初心)이라고 말하는데, 초심을 이어가기란 만만치 않다. 작은 관심으로 시작되는 모든 일에는 유효기간이 있는 것 같다.
취미로 시작한 일, 건강을 위해서 시작한 일,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 타인이 시켜서 하는 일, 어쩔 수 없이 하는 일 등 살면서 많은 일을 하게 된다. 마지못해 하는 일이야 초심을 논할 일이 없다. 본인의 선택으로 시작한 일이라면 시작의 기운은 비교적 강하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여러 가지 일에 도전했다. 기억에 남는 도전 몇 가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첫 째, 수영. 13세 때 난 계곡 물에 빠져서 죽을 뻔한 경험이 있다. 이후에 물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수영을 배워보라는 권유로 구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에 등록을 했다. 기초를 가르치던 수영강사가 젊은 사람 중에 이렇게 실력이 늘지 않는 사람을 처음 봤다고 할 정도로 정말 힘들었다. 물에 들어가면 바로 경직되는 현상은 3개월 정도 지속했다. 수영장 물을 제법 많이 마신 어느 날 '수영장 물을 이 정도 마신다고 죽는 건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힘이 좀 빠졌는지 영법을 조금은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10년 정도를 꾸준히 배웠지만, 물의 공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10년간 꾸준히 했던 수영도 코로나 사태가 터진 후론 못하고 있다. 물을 극복해보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와 10년이 지난 후의 마음은 같지 않았다. 오리발을 끼고 수업을 하던 중 부상을 입었고 그 후론 수영이 재미없어졌다.
둘째, 글쓰기. 서른 살부터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수필, 소설, 동화, 감상문, 기사 등 20년 정도 글을 계속 쓰고 있다. 안타까운 건 오래 쓴다고 해서 글쓰기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이 이미 썼던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야심 차게 글을 쓰다가 비슷한 주제의 영화를 보게 되면 실망감과 함께 글쓰기의 의지가 꺾인다. 첫 책의 교정을 볼 때의 설렘이라던가 소설을 처음 쓰던 날의 기쁨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이젠 글을 쓰는 일이 일종의 의무감처럼 다가올 때도 있다. 초심을 유지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셋째, 탁구. 점심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 회사에 탁구대를 들여놓았다. 그 후로 정말 탁구를 많이 쳤다. 시작할 때엔 탁구를 잘 치겠다는 욕심도 없었고, 대회에 나가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계속 치다 보니 잘 치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장비도 하나 둘 늘었다. 호기심으로 출전한 구청장 배 탁구대회에서는 아주 형편없는 나의 실력을 확인할 뿐이었다. 라켓의 타입을 바꿀 무렵 본격적으로 탁구를 즐기기 시작했다. 15년 정도 탁구를 치고 있지만, 잘 치는 탁구가 아니다. 점심시간 그리고 주말에 한 번씩 치는 걸로 극적인 실력 향상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료가 늘면서 공간 부족으로 탁구대를 치울 수밖에 없었고, 코로나 상황으로 탁구장에 갈 수 없었다. 2년 정도 탁구라켓을 내려놓으니 탁구를 치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변치 않는 마음이야말로 기적이라 할 수 있다.
-몽테뉴 <수상록>
미국 드라마 중 <루시퍼>란 드라마가 있다. 드라마에서 루시퍼가 상대에게 묻는다. "Tell me, what is it that you truly desire (당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봐.)" 극 중에서 질문을 받은 사람은 루시퍼의 강한 눈빛을 보며 마법에 걸린 듯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한다. 드라마를 보며 상상한다. '난 무엇을 원할까?' 시간에 따라 욕망은 변한다. 아니 처한 환경에 따라 욕망이 변한다는 말이 더욱 어울릴 것 같다. 어쩔 때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루시퍼를 만나서 나의 진짜 욕망을 알아보고 싶을 때도 있다. 혹시 내가 상상하는 미래에 나의 모습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타자의 욕망에 길들여지다 보니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실해버린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가장 오랫동안 초심을 잃지 않고 하는 일은 내 직업밖에 없다. 씁쓸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강한 욕망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