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관계에 관하여
"물건은 새것이 좋고, 사람은 옛사람이 좋죠."라는 말을 하곤 했다. 오래 만난 사람은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하지만, 무조건 오래되었다고 설명이 필요 없는 건 아니었다. 자주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사이가 아니고 오랜만에 만난 사이는 다시 설명이 필요했다.
"어떻게 지냈어?"
보통 안부를 묻는 말로 시작한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짧은 시간 안에 살아온 이야기를 모두 나눌 수 없다. 가장 중요했던 일이나 커다란 변화 정도만 나눌 수 있을 뿐이다. 나의 부족한 표현 언어를 생각해보면 겪었던 일이라고 해도 상대에게 얼마나 전해질지 모를 일이다. 혹은 별일 없었다고 짧게 말할 수도 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은 상대를 과거의 모습 그대로 상상한다.
자신보다 형편이 좋았던 상대가 나빠질 수도 있고, 자신보다 형편이 좋지 않았던 상대가 좋아질 수도 있다. 이 두 가지의 경우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형편이 좋다가 나빠진 상대에겐 위로의 말을 하고, 형편이 나쁘다가 좋아진 상대에겐 축하의 말을 할 것이다. 그런데 겉으로 하는 말과 속 마음이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나빠진 경우에 어떤 마음이 들까? 물론 친밀도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이라는 가정이다.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오늘 밥은 내가 사야 하군.'
'허영심 가득하게 살더니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다음부터는 안 만나야겠다.'
'경솔하게 살더니.'
좋아진 경우에는 어떤 마음이 들까?
'못 살던 애가 어떻게?'
'로또라도 맞았나?'
'나보다 공부도 못했는데.'
'오늘 밥값 안 내기만 해봐라.'
'그래도 뭐 잘하는 게 있나 보네.'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과연 사람은 예전부터 알던 사람이 좋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을 만나본 경험에 의하면 자신에 관해서 좋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좋다. 아마도 겉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축하의 말을 하는 것도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의 인상, 몸짓, 분위기 그리고 이야기에 따라서 내면에서는 다양한 그림이 그려진다. 대부분 자신의 경험이나 학습된 내용을 기반으로 그려질 것이다. 잘 나가던 친구가 사업이 어렵다고 돈을 빌려줬다가 받지 못한 사람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사람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보다 사람의 상태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알고 지낸 시간보다 현재의 형편이 더욱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과거에 상대가 자신보다 형편이 좋지 않았는데,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자신보다 훨씬 나이진 상태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자신의 인식 속에 상대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면 말이다. 반가운 마음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의 기억을 갖고 있다. 엄청난 노력 끝에 어려움을 이겨내고 사회적 성과도 이루어 당당하게 옛 친구를 만났지만, 과거의 모습만 이야기한다. "예전에 코 찔찔 흘리면서 초코파이 사주면 엄청 좋아했는데." "너, 엄청 못 생겼는데, 얼굴 좀 폈네." 다시 한번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 좋은지 생각하게 된다. 만나는 모든 사람이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형편이 나아진 상대를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삶에 어느 정도 만족을 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타인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질투심이나 시기심이 있다면, 결코 진심 어린 축복을 할 수 없다. 축하해주는 척하며 마음속으론 자신보다 잘 된 상대에게 미운 감정이 든다.
오래된 사람이 좋다는 생각이 변하는 시점. 만남이 불편한 관계로 변한 시점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혼자 고립된 삶을 살아가기 싫은 사람이라면, 새로운 사람 아니 자신과 소통이 가능한 사람을 찾아 나설 것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을 찾아 나서게 될지도 모른다. 상대의 얼굴에 자존감이 높다는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또 경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시간은 쌓이고 쌓여 지나간 세월로 남는다. 지나간 세월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자신의 가치관과 비슷한 사람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달라진다. 동시에 같은 방향을 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에 했던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다 지치면 결국 혼자 남게 된다. 생각의 고착화. 이야기의 고착화. 움직임이 사라진 상태에 빠져버리면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들은 정신이 큰 변화를 받아서 때로는 한층 큰 완전성으로, 때로는 한층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정념은 우리들에게 기쁨과 슬픔의 감정을 설명해 준다. 그러므로 나는 아래에서 기쁨을 정신이 더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정서로 이해하지만, 슬픔은 정신이 더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정념으로 이해한다. 더 나아가서 나는 정신과 신체에 동시에 관계되는 기쁨의 정서를 쾌감이나 유쾌함이라고 하지만, 슬픔의 정서는 고통이나 우울함이라고 한다.
-스피노자. <에티카>
만남도 결국 완전성의 이동이란 생각이 든다. 인간관계에서 추구하는 것은 한층 큰 완전성의 이행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기분이 나빠지는 만남을 추구하는 사람을 상상하기 힘들다. 관계는 오래 알고 지낸 시기와 비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좋은 이야기만 해주는 사람만을 원하지도 않는다. 자신을 비난하고 비하하는 사람을 기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간은 흐르고, 환경은 급변하고, 좋은 만남의 기회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양보와 희생이 아닌 즐거운 만남이 큰 도전이 되어버린 것 같은 시대에 금융자본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를 한탄할지, 실용성에 익숙해진 자신을 탓할지,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며 관조적인 태도를 취할지,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며 살아야 하는 건지 실행하지 못할 질문을 던지게 된다.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