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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캐는 시간

윤혜숙 장편소설 (서해문집 청소년문학012)

by 유병천

언어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많은 것이 언어로 표현된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은 오래 남지 않는다. 식민지를 점령한 침략자들이 그 나라의 언어를 말살하려는 것은 그만큼 언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을 캐는 시간>을 펼쳤을 때 영화 <말모이>가 떠올랐다. 작품을 쓰던 중 영화를 본 작가도 원고를 접어야 하나 갈등했다고 말한다. 사전 편찬이라는 소재는 같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영화 <말모이>는 극장에서 해고된 남자가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소매치기를 하다가 조선어사전 편찬 작업을 돕는 이야기이다. 소설 <말을 캐는 시간>은 한글로 된 교지 복원을 위한 문예부 동아리에서 조선어 편찬 작업을 돕기 위해 힘쓰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투리를 모으는 과정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윤혜숙.jpg <말을 캐는 시간> 윤혜숙, 이미지 : 서해문집


독일 유학을 끝내고 영국 런던대학에서 연구생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으셨대. 그 무렵 우연히 아일랜드를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아일랜드 사람들이 모국어 대신 영어를 쓰고 간판이나 도로표지 등이 모두 영어로 표기된 것을 보고 조선을 떠올리셨다는 거야.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조선도 아일랜드처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선어를 지키는 일에 평생을 바치겠다 마음먹고 고국 행을 서두르셨대. 그 후의 일은 너도 알다시피 조선어학회 안에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를 만드셨고 수장을 맡아 사전 편찬 작업의 기본이 되는 표준어, 맞춤법, 외래어 표기 등을 위해 전국 독회를 여셨고 말이야.
-p109


등장인물의 연심도 이야기를 좀 더 흥미롭게 이끌어준다. 지루함을 느낄 시간이 없이 술술 읽힌다. 일제의 탄압과 출세에 눈이 먼 형사를 피해서 사전 편찬 작업을 돕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나라 사랑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할 수 있다. 영화 <말모이>와 소설 <말을 캐는 시간>을 모두 보는 것을 추천한다. 보는 내내 한글의 우수성과 소중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대를 겪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결국 제 나라 말을 잃고 침략자의 언어를 쓰고 있다. 모국어 대신에 에스파냐어, 프랑스어, 영어 등을 쓰는 여러 나라들이 그렇다. 하지만 혹독한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도 우리는 조선어사전 편찬에 힘을 모았고 끝내 우리말을 지켜냈다.
-작가의 말 중


한글을 일상에서 흔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잊을 수 있다. 무차별하게 사용하는 외래어나 설명을 듣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말줄임이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 한글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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