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문학동네
엄청난 책을 선물로 받았다. 첫 페이지를 읽다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갔다. 집중력을 높여 다시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언론에서는 방금 떠난 것으로 보도할 때가 많았고, 울리히 또한 거의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신문을 통해서만 알게 되는 것이 이 시대의 진실이었다. 울리히가 개인적으로 모스브루거를 알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그전에 그를 실제로 본 것은 심리가 진행될 때 단 한 번 뿐이었다. 이례적인 사건을 신문으로 알게 될 가능성은 그것을 직접 체험할 가능성보다 훨씬 크다. 달리 말해 오늘날 매우 중요한 사건은 추상적인 곳에서 일어나고, 현실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
그런 추상적인 방식으로 울리히가 알게 된 모스브루거의 사연은 대충 이랬다.
모스브루거는 어릴 때부터 불쌍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다. 마을 도로조차 없는 초라한 시골의 양치기 고아였는데, 여자애에게 말을 붙이지 못할 만큼 가난했다. 그래서 여자애들을 늘 바라보기만 했다. 그것은 도제 시절에도, 나중에 장인이 되어 곳곳을 떠돌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빵이나 물처럼 누구나 자연스럽게 갈망하는 것을 항상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면 어떨까? 얼마 뒤에는 당연히 그것을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갈망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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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브루거는 매춘부를 죽인 살인범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짧은 문장을 통해서 추상적으로 모스브루거가 살인범이라고 알게 될 것이다. 특성 없는 남자 울리히가 모스부르거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아마도 가능성감각이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행위에는 어떤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문장이다. 특히 어린 시절의 결핍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이 된다고 프로이트가 이야기했던가? 어떤 사건의 정확한 사실이나 상황을 밝히는 일은 무척 어렵다. 몇 가지 정황이라던가 증거를 가지고 추측한 후 언어로 표현한다. 가능성감각이 뛰어난 울리히는 모스브루거에 관하여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며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열심히 일해온 삶의 경험으로 보건대, 사람은 학문적 사회적 관계를 무시하고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을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 그런 관계야말로 개인의 일에 든든한 밑거름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은 다시 생산적이고 유익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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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아버지가 편지를 통해 아들에게 훈계를 한다. 자본의 커다란 속성인 생산성과 유익성이 등장한다. 울리히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인간관계의 기준 역시 생산성과 유익성이 강조되었던 것 같다.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100년이 흘러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다시 말해 그 전투 당시 우리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후장총을 독일인들이 앞서 개발한 것처럼 그들이 또다시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방식으로 우리를 앞지르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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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전통이 무력에 의해 망가지는 모습을 바라본다면 어떤 생각이 앞서게 될까? 평화를 갈망하는 시대에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무력을 강화하는 모순된 모습이 그려진다. 국력을 보복력이라고 표현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울리히 아버지의 편지를 끝으로 1부 일종의 머리말이 끝난다. 효율성, 유익성, 생산성 등의 자본의 속성이 자주 등장하고, 가능성감각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일깨워준다. 변화의 회오리 속에서 울리히는 어떻게 살아갈지 2부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