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뷰 상자

제2부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2)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문학동네

by 유병천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22. 평행운동이 형언할 수 없는 정신적 우아함과 정치적 힘을 가진 한 부인의 모습을 하고 울리히를 집어삼킬 태세를 갖추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치고 그런 것이 실제로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대체 세상의 어떤 특성을 보고 가장 중요하고 위대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상의 모든 것은 그저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위대하고 중요하다거나, 혹은 더 아름답다거나 더 슬프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달리 말해서 세상에는 가치의 위계질서와 상대적 비교만 존재한다. 그러니 최대치나 최상급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것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이런 점을 환기시키면 그 사람은 상대를 감정이 없고 이상적이지 못한 인간으로 의심하괴 된다. 티오티마가 딱 그랬다. 울리히가 그전에 그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143


세상에는 가치의 위계질서와 상대적 비교만 존재한다니. 정말 입을 다물 수 없는 표현이다. 흔히 알고 있는 내용일지라도 로베르트 무질의 표현과 박종대 선생의 번역은 인상적이다. 자주 접하게 되는 '최고의 뭐뭐 중 하나이다.'라는 표현이 난 무척 어색하게 느껴진다. 최고라 함은 하나일 텐데 그중 하나라니. 그리고 그 최고의 기준 역시 상대적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가장 많이 질문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면 마셔본 막걸리 중 가장 맛있는 막걸리는 무엇이냐는 식이다. 상대의 입맛을 알 수 없고 나 또한 컨디션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을 어떻게 최고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제 입맛엔 어느 막걸리가 좋았습니다. 대부분 좋은데 그중에 특히 더 좋았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울리히는 아버지의 권유로 라인스도르프 백작을 만나야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결정한다. 대신 '대단한 사촌 부인' 디오티마를 만나서 평행운동에 관한 대화 한다.



23. 한 위대한 남자의 첫 번째 개입



디오티마도 다양한 분야에서 이름깨나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진지하게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부터 이어져온 깊은 주의력, 한번 배운 것은 잘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력, 그리고 그것들을 적절히 하나로 버무릴 줄 아는 데서 오는 올바른 처신은 저절로 그녀의 정신이 되었다. 그것도 단순한 확장을 통해서 말이다. 이로써 투치 국장의 집은 다들 인정하는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되었다.
-150


울리히가 디오티마를 만난 후 아른하임 박사가 디오티마를 찾아간다. '철의 독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친을 둔 아른하임 박사가 디오티마를 방문한 이유는 그녀의 집이 사교와 정신이 어우러진 살롱으로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디오티마의 성장과정 이야기를 읽으면 교류, 진지함, 깊은 주의력, 기억력, 응용력, 올바른 처신은 명성을 얻기 위한 요소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1부 - 일종의 머리말 (8)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