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뷰 상자

제2부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6)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1 -문학동네

by 유병천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28. 생각에 관한 문제에 특별한 의견이 없는 사람은 얼마든지 건너뛰어도 되는 장(章)


안타깝게도 사유하는 인간만큼 문학작품에서 재현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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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무질 본인의 이야기가 아닐까 상상한다. 사유하는 울리히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쓰고도 마치지 못했던 이유가 아닐까?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하나의 현상을 보고도 수십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 인간을 표현하기란 얼마나 부족한 것이 언어인가.


이런 당혹감을 예전에는 영감이라 불렀는데, 요즘은 많은 사람이 직관이라 부르며 그곳에서 분명 초인적인 무언가를 모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초인적인 것이 아니라 비인격적인 것, 즉 머릿속에 한데 모인 사물들 자체의 친화성과 상관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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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후반에 직관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직감이란 단어를 잘못 표현한 줄 알았다. 직관(直觀) 곧을 직, 볼 관이란 한자어다. 곧바로 본다는 의미는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바로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영단어로는 Intuition이라고 하는데, 사람마다 지식과 경험이 쌓여서 어떤 현상을 보고 바로 판단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런 직관을 로베르트 무질은 '머릿속에 한데 모인 사물들 자체의 친화성과 상관성'이라고 표현한다. 생각할수록 명료한 표현 같다.


이 넓은 세계에서 물처럼 단순한 물질에 대해서조차 똑같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수십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사람들은 오늘과 과거 몇천 년 사이 어딘가에 뿌리를 내린 언어로 물에 대해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정말 무질서한 사회에 빠지게 되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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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에 단어를 하나 적고 30분간 강의를 한다. 수강생이 10명일 때 하나의 단어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는 한 달 후에 질문을 해보면 알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듣는 것을 이해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산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각각이다. 아예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관심사에서 먼 단어는 기억 속에서도 멀리 달아나 버린다. 어떤 책에서 읽은 바로는 그래서 법(法)이 생겨났다고 한다. 물에서 무질서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도 정말 놀랍다.



29. 평범한 의식 상태의 설명과 중단



울리히는 생각했다. '보나데아는 거칠어지면 한층 아름답구나! 그다음에는 또 모든 게 얼마나 기계적으로 끝나던지.' 그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을 뿐 아니라 관능적인 유혹마저 느꼈다. 그런데 지금 모든 게 끝나고 나니 다시금 자신하고는 별 상관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그건 건강한 인간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입에 거품을 문 바보로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실례였다. 그러나 그는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변화란 훨씬 일반적인 무언가의 특수 사례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과 음악회, 예배, 그리고 내면의 표현은 전부 오늘날 이따금 평범한 상태 속에 삽입되는 또 다른 의식 상태의 섬들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빠르게 해체되는 섬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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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식이 얼마나 순식간에 변할 수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알고 있다고 해도 그걸 인정하긴 쉽지 않다. 변덕쟁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보나데아와의 결별을 암시하는 문장 같다.


“울리히는 필요 없다고 여기는 일에만 항상 기를 쓰고 덤벼들지!” 하필 이 순간에 발터의 그 말이 떠올랐다.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일 수도 있겠군.’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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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데아와 함께 있는 동안에 울리히는 어릴 적 친구 발터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상대와 함께 있는 순간에도 그 상대가 연인일지라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발터의 말처럼 울리히는 필요 없다고 여기는 일에 기를 쓰고 덤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발터의 관점이다. 울리히의 내면에서는 필요한 일로 여길 수 있다. 보나데아를 보며 울리히도 발터의 관점을 인정한 것 같다. 이 문장을 볼 때 주변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왜 별것도 아닌 일에 저렇게 열을 내지?'이런 생각과 함께 말이다.


우리가 선과 악의 생성에 대해 아는 것을 토대로 보면 인간은 개인마다 마음의 크기가 다르지만, 운명이 그리 정해 놓으면 어떤 크기든 그 마음속에 굉장히 다양한 옷을 채워 넣을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울리히는 방금 생각한 이것조차 전적으로 무의미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평범하고 비인격적인 착상은 저절로 강화되는 반면에 비일상적인 착상은 차츰 사라져 거의 모든 사람이 점점 평범해지는 것이 기계적 관계에서만큼 확실하다면, 평범한 사람이 왜 자기 앞에 있는 수천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가 설명된다. 또한 어떤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인정을 받는 특출한 사람들의 경우 성공을 부르는 혼합, 즉 약 51퍼센트의 심오함과 49퍼센트의 천박함이 섞여 있다는 사실도 설명된다. 울리히는 오래전부터 이것을 무의미함과 참을 수 없는 슬픔으로 뒤엉킨 문제로 느꼈다. 좀 더 깊게 생각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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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에 밑줄을 긋고 나중에 타이핑을 치면 앞뒤 문장을 다시 읽게 된다. 그러면 도저히 밑줄 친 문장만 가지고 이해할 수 없어서 결국 앞뒤 문장까지 전부 적게 된다. 사실 책 전체가 명문장이라 이렇게 밑줄을 긋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다. 마음의 크기, 다양한 도전, 가능성, 평범함, 무의미함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슬픔. 이 언어 속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철학의 질문이 담겨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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