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뷰 상자

제2부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7)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1 -문학동네

by 유병천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30. 울리히의 귀에 목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그의 생각들이 수축되면서 하나로 모였다. 마치 그 생각들 사이에 생겨난 틈으로 들여다보듯 목수 크리스티안 모스브루거와 판사들이 보였다.
판사가 말하고 있었다. 그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귀에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웃기는 말이었다.
-181


보나데아와 함께 있는 순간에도 울리히는 다른 생각에 빠져있다. 살인자 모스브루거의 재판 장면의 대화가 들린다. 울리히는 판사나 검사의 입장과 다른 관점에서 모스브루거의 살인동기를 생각한다.


31. 당신은 누가 옳다고 생각하는가?


일과 권태로 신경이 과민해진 상태에서는 이처럼 목소리가 들리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나 그게 불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갑자기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에는 천진무구한 두번째 고향이 있지."
-183


사랑의 행각을 원하는 보나데아에게 울리히는 신문을 떠들썩하게 한 살인자 모스브루거를 언급한다. 보나데아는 대화를 피하고 싶지만, 울리히는 집요할 정도로 모스브루거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이렇게 생생하게 들리는 일이 없었다는 울리히는 보나데아에게 누가 옳은지 질문한다.


"그러니까 당신은 항상 희생자 편이고, 행위에는 반대한다는 말이군." 울리히가 말했다.
보나데아는 이 대화가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자 울리히는 곧바로 사과하는 대신 이렇게 답했다. "당신의 판단이 초지일관 행위에 반대하는 쪽이라면 당신의 외도들은 어떻게 변명하겠소, 보나데아?"
-185


울리히는 참으로 고약한 질문으로 보나데아를 침묵으로 이끈다.


32. 잊고 있던, 어느 소령 부인과의 아주 중요한 이야기


스스로 명백한 정신이상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느끼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물론 울리히도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왜 어떤 전문가는 모스브루거가 정신이상자라고 주장하고, 다른 전문가는 아니라고 주장할까?
-186


어떤 사건에서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퍽이나 어렵다. 지나간 과거를 알아내기엔 역부족인 것이 인간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산 자의 입을 통해서 몇몇 증거나 정황에 의거하여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울리히가 모스브루거에게 혹했던 것은 그를 석방시키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의 삶보다 미지의 다른 무엇 때문이었다. 모스브루거는 모든 게 약간 일그러지거나 뒤틀린, 깊은 내면에서 조각조각 떠다니는 어떤 의미를 품은 어두운 시처럼 울리히를 사로잡았다. '괴기스러운 낭만주의!' 울리히는 스스로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186~187


울리히는 생각으로 꽉 찬 사람이다. 아마도 그가 가능성인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에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다른 식으로 발생했다면 어떨지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들이 그를 끊임없이 찾아온다. 보나데아와 함께 있는 장면에서 살인자 모스브루거, 디오티마와의 대화 그리고 자신의 소위 시절에 만났던 소령의 부인을 떠올린다.


어떤 행위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신이 상을 주거나 벌을 주는 그런 행위의 측면을 판단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희한하게도 이것은 루터가 한 말이다.
-187


생각의 흐름 속에서 울리히는 루터, 마키아벨리, 에크하르트까지 소환한다. 이십 대 때 만났던 소령의 아내와의 기억을 피하지 않으며 그녀와 격렬하게 키스까지 나누다가 마지막엔 당혹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고 회상한다. 소령 부인과 너무 젊은 소위의 사랑은 전 과정을 보더라도 짧고 비현실적이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일상적인 주의력의 초점에서 벗어났기에 모든 것이 날카롭게 구분되지 않고, 오히려 약간 산만하고 희미해 보였다. 그럼에도 다른 중심들이 다시 부드러운 확실성과 명확성을 가득 채워주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여기서는 삶의 모든 문제와 사건이 비할 바 없는 부드러움, 연약함, 고요함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동시에 완전히 변화된 의미를 띠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딱정벌레 한 마리가 생각에 빠진 사람의 손을 지나간다면 그것은 접근, 스쳐감, 멀어짐이 아니다. 그것은 딱정벌레와 인간이 아니라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을 감동시키는 사건이었다. 아니, 사건도 아니다. 비록 어떤 일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것은 사건이 아니라 상태라고 해야 마땅하다. 이런 고요한 경험들을 통해 평소 일상적 삶을 이루는 모든 것에 백팔십도 다른 의미가 생겨났다. 그것도 울리히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말이다.
-193~194


울리히의 생각 중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보인다. 바로 '상태'이다.


'위대한 사랑에 따라 사는 것'이란 절약과 점유와 탐식의 영역에 뿌리를 둔 소유나 '내 것이 되라'는 소망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자세히 설명하는 편지였다. 그것이 그가 부친 유일한 편지였다. 그것도 대략 상사병의 절정에 가까운 즈음에 보낸 편지였다. 그 뒤 사랑은 곧 끝났고, 갑작스러운 단절이 이어졌다.
-194


울리히가 젊은 소위 시절 소령의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관한 내용이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란 책이 떠오르는 문장이다. 사랑의 대상에 무언가 바라는 것과 사랑의 대상이 곁에 존재하는 것에 감사하는 것은 비교가 쉽지 않다. 인간은 때론 바라고 갈망하며 때론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상황보다 상대의 상태를 먼저 알아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어쩌면 이런 답을 이미 알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사건이나 현상에 가려져 보이지 않거나 이기적 심성 때문에 보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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