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뷰 상자

제2부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8)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1 -문학동네

by 유병천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33. 보나데아와의 결별


울리히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그녀의 결심을 어렴풋이 눈치챘기에 마음을 되돌리려 하지 않았다. 보나데아는 거울 앞에서 힘차게 머리를 빗더니 모자를 쓰고 베일을 묶었다. 베일까지 얼굴 앞으로 내려오자 모든 것이 끝났다. 사형선고를 내릴 때나 여행 가방에 자물쇠를 채울 때만큼이나 엄숙했다. 이제 그는 그녀에게 키스할 수 없었다. 아니, 키스할 마지막 기회를 놓친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보나데아는 울리히가 너무 불쌍해서 하마터면 남자의 목을 감싸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을 뻔했다.
-197


보나데아와의 이별을 암시하더니, 결국 헤어지는 것 같다. 보나데아의 이중적인 모습, 그러니까 가장을 위엄 있고 존경스러운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는 가정관과 연인이 남편을 부당하게 몰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 모순 속에서 결국 보나데아는 결별을 결심한다. 울리히가 자신에게 모욕감을 줬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지막에 눈물을 쏟을 뻔했다는 심리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34. 뜨거운 빛줄기와 차가운 벽들



미(美)는 고백했다, 선입견 없이 바라보면 낭창 환자의 얼굴과 나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미의 영역에 속하는 것은 원래 많지 않았다. 겉칠이 벗겨지고, 연상이 해체되고, 습관과 기대와 긴장의 고리가 끊어지고, 감정과 세계의 은밀한 균형이 한순간 흔들렸다. 사람들이 느끼고 행하는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삶을 향하는 쪽’에서 일어난다.
-198


34장은 젊음에 관한 이야기다. 젊음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흔들리고 움직인다.


늦봄 같은 가을날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대기는 발효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물위에 떠가는 거품 같은 것이 어려 있는 듯했다. 지난 며칠간 느낀 사고의 단조로운 긴장이 끝나고 마치 지하 감옥에서 따뜻한 욕조로 장소를 옮긴 기분이었다.
-198


보나데이와 결별 후 산책을 하며 울리히가 느끼는 감정의 표현이다. 심정의 변화가 생기면 많은 것이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이런 순간에는 정말이지, 우리를 이끌고 우리가 영위하는 이 삶이 우리 자신과 내적으로 별 관련이 없다는 말만큼 멀게 느껴지는 것은 없다. 그렇지만 젊을 때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울리히는 십 년 혹은 십오 년 전 이 거리들에서 이런 날이 자기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떠올려 보았다. 그때는 모든 것이 훨씬 근사했다. 그러나 이 끓어오르는 갈망 속에는 ‘붙잡혀 있음’의 고통스러운 예감이 선명했다. 그건 불안한 감정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것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것이 나를 손에 넣은 것이다. 이는 이 세계에서는 개인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시답잖은 가짜 진술이 고유하고 본래적인 진술보다 더 강력한 반향을 얻는다는 뼈아픈 추정이기도 하다. 여기 아름다운 것이 있다. 그것은 무척 아름답다. 하지만 그게 나의 것인가? 혹은 내가 잘 아는 진리가 있다. 하지만 그게 나의 진리인가? 목표, 목소리, 현실, 그리고 우리를 유혹하고 이끌고, 우리가 따르고, 우리가 덮어놓고 달려드는 이 매력적인 것이 모두 진짜 현실일까? 혹시 주어진 현실 속에 손에 잡히지 않는 형태로 고여 있는 숨결에 불과한 건 아닐까?! 불신을 느끼게 하는 건 완결된 분류이고, 삶의 형식들이고, 그와 유사한 것이고, 이전 세대가 만들어놓은 것이고, 이미 존재하는 혀의 언어 및 감성과 감정의 언어들이다.
-199~200


편안함을 느끼며 산책하는 거리도 젊은 날엔 다르게 보였다. 젊음을 상징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코 불안한 감정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본질이 '불안'이라고 말하는 철학자들도 있지만, 인간의 본질을 말하기 전에 젊음은 불안과 가장 가까워 보인다. 젊음이 성취한 많은 것이 본인의 것인지 이전 세대가 만들어 놓은 것인지 당시엔 알 수 없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과거를 돌아볼 때 그때의 나의 모습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우린 타인의 과거는 일부만 기억하거나 추억하지만, 자신의 과거는 온전히 알 수 있다. 과거의 나에게 현재의 나에게 들려줄 말은 "그땐 참 불안정했었지."일 수도 있고 "그때 넌 참 열정이 많았어."일 수도 있다. 이미 존재하는 언어와 감성과 감정의 언어일 뿐이지만 말이다.


이렇듯 세계가 늙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젊은이의 설익은 정신이 어른의 격조 높은 도덕으로 바뀌는 것과 대체로 비슷하다. 그러니까 오랫동안 같잖은 도덕 나부랭이 정도로만 여겨온 것이 어느 날 갑자기 격조 높은 도덕으로 탈바꿈하는 그 과정 말이다.
-200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나이가 더해진다고 어른이 되진 않는다. 그것은 늙음이다. 울리히는 그것을 격조 높은 도덕으로 탈바꿈한다고 이야기한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장이다.


이 세계가 몇몇 개인적인 자잘한 것들만 제쳐두면 이미 전부 완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심적 안정감을 주고 편리하게 느껴질 수 있다. 게다가 사회 전반적으로 고정된 것이 단순히 보수적인 측면을 넘어 모든 진보와 혁명의 토대이기도 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물론 자기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분명 깊고 어두운 불쾌감을 느끼겠지만 말이다.
-201


고정된 것은 움직이는 것에 도전을 받는다.



인간이란 신이 신경써줄 시간조차 없는 하찮은 안개나 미세한 입김에 불과할 정도로 이 세상 모든 것은 이미 완전하고 완성되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순간 울리히는 특성 없는 남자가 되기를 소망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원칙적으로 중년배 중에는 어떻게 지금의 자신에 이르게 되었고, 어떻게 자기만의 행복과 세계관, 여자, 성격, 직업을 찾고 성공을 거두었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제는 많은 것이 바뀔 수 없다는 감정만 남는다. 심지어 자신이 속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 하필 이런 현실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흡족한 이유를 어디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른 현실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찌됐건 사건은 그들 자신에서 출발하고, 대개 갖가지 환경에 좌우된다. 수많은 사람의 삶과 죽음, 기분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적절한 시점에 그들을 향해 서둘러 달려왔다.
-201


50세의 나이가 되어버린 나에게 하는 이야기 같다. 난 어떻게 지금의 자신에 이르게 되었고, 왜 하필 이런 현실이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드는 부고를 보며 수많은 사람의 삶과 죽음과 기분에 관해 생각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을까? 앞으로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무엇을 위해 산다고 해서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허무주의를 경계하라는 철학자의 말을 믿고 하루하루를 만끽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노래 가사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모든 것! 다했어! 그래서! 후회 없을까?' 인생이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면 그 방향도 결국 자신에서 출발한다. 나에게 달려온 사건들에 의해 살아야 하는 것을 운명이라고 부르는 걸까? 울리히처럼 특성 없는 남자가 되길 소망해 볼까.


이렇게 상상하면 간단하다. 바깥쪽에는 혀, 손, 눈 위에 무거운 세계, 즉 흙, 집, 도덕, 그림, 책으로 이루어진 차가운 달이 놓여 있다면, 안쪽에는 오직 손에 잡히지 않는 유연한 안개만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알아보았다고 믿는 표정을 밖으로 내보이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열정적인 사람이 평범한 사람보다 이런 새로운 형태를 먼저 장악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있을까?! 새로운 형태는 그에게 존재의 순간, 즉 내면과 외면, 압착과 분해 사이의 긴장이 균형을 이루는 순간을 선사한다.


-203


울리히는 먹이를 뿌려주면 득달같이 날아오는 참새들처럼 젊은 영혼들도 순식간에 그리로 달려든다고 한다.


새로운 세대, 아버지와 아들, 정신적 변혁, 스타일 변화, 발전, 유행, 혁신이라 불리는 지속적 현상도 결국 다른 토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이런 혁신 열망을 영구기관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불쾌감이다.
-203


주석에 영구기관이란, 외부에서 에너지 공급을 받지 않고 외부에 대해 일을 영구히 해나가는 가상의 기관이라고 한다. 젊음이 원하는 새로움이나 혁신의 원동력이 불쾌감이라고 말한다. 젊은 시절을 돌아보면 불합리와 맞서 싸웠던 것 같다. 젊음이 느끼는 불합리가 불쾌감을 유발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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