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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Aug 26. 2023

제2부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25)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2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87. 모스브루거가 춤을 추다


그가 미쳤거나 비정상이어서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고무 밴드가 달아난 것뿐이었다. 모든 사물과 피조물 뒤에는 고무 밴드가 하나씩 있어 다른 존재에 아주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면 팽팽하게 당겨진다.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에 가서는 서로가 서로를 관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고무 밴드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하지 못하게 하는 고무 밴드다. 그런 밴드들이 갑자기 없어진 것이다. 아니면 고무 밴드처럼 뭔가를 저지하는 감정이 사라진 것뿐일까?
-95


거의 모든 인간관계가 밀어냄과 끌어당김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가는 사람에겐 끌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밀어낸다. 감정에 고무 밴드가 있다는 말이 정말 공감된다. 너무 팽창하면 끊어질까 봐 두렵기도 하고, 가만히 두면 느슨해진 상태에서 지루하다. 감정이 폭주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고무 밴드가 끊어져버린 사람이 아닐까.


88. 위대한 것들과의 연결


위대한 것과의 결합만큼 정신에 위험한 일은 없다.
-101


위대한 것과 연결될 때의 위험성은 '정신의 에너지보존법칙'이라고 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위대한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자잘한 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식이다. 큰일을 하는 고위직 인물들의 말은 보통 우리 같은 일반인들의 말보다 알맹이가 없다고 하는 점도 나온다. 하긴 위대한 것에 꽂히게 되면, 위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배제될 테니까.


이 시대에는 존경의 자명한 대상으로 새로 떠오른 ‘결과의 양’과 ‘양의 결과’가 여전히 귀족들이 중요시하는 ‘위대한 질’에 대한 케케묵고 맹목적인 존경과 싸우고 있었다.
-103


이 책의 특성은 정말 많은 비유가 등장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념이 바뀌어가는 시대에서 낡은 정신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위대한 것들과의 연결 위험성에는, 대상은 계속 바뀌어도 위험은 변함없이 존재한다는 몹시 불쾌한 특성이 있다.
-103


어떤 관념을 위대한 것으로 삼는지가 중요하다.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처럼 어떤 관념에는 반대되는 관념이 생겨나고, 그로 인하여 갈등이 빚어진다. 시대마다 공감을 얻은 관념이 다를 수 있고, 장기간 공존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위대하다고 믿는 것에 대한 것은 실로 위험하다. 만화 중 <진격의 거인>을 보면 개인 혹은 공동체가 믿는 신념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 수 있다.


89. 사람은 시대와 함께 걸어가야 한다


“청춘에게는 양보할 수밖에 없지. 그냥 거부만 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아!”
-105


늙음과 젊음의 대립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그것은 변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학습한 내용이 비슷한 시절에는 그나마 그 격차가 적었을 것이다.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학습한 내용이 다른 세대는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변화시키려고 해도 그것은 상당히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서로에게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다. 세월에 장사가 없듯 결국에 젊음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때론 씁쓸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말이다.


비난의 대상은 이 젊은 사람들이 자기 세대의 이념들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젊은 시절에 사랑했던 이념일 때가 많았다. 아른하임은 자신이 젊은 시절 남몰래 동조했던 과거를 하나같이 무차별적으로 조롱하는 젊은이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아니, 섬뜩하다고까지 할 법했다.
-111


시간은 꼰대를 양산한다. 30년 전에 꼰대를 욕하던 젊은이도 늙어서 결국 꼰대 소리를 듣게 된다. 아른하임의 경우 이념보다 겉모습을 보고 열광하는 젊은이가 섬뜩하게 느껴진 모양이다.


그는 그런 순수한 시인들 가운데 몇몇을 의당 그래야 하는 것처럼 기회 닿을 때마다 칭송해 왔고, 어떤 경우에는 금전적 지원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에야 깨달았지만, 그는 원래 그들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의 거들먹거리는 시를 포함해서 말이다. 아름하임은 생각했다. ‘한 번도 스스로 생계를 유지해 본 적이 없는, 그저 시대의 문장 같은 이 인물들은 원칙적으로 마지막 들소나 독수리처럼 자연보호공원에 가두는 게 맞아!’ 지나가버린 저녁이 보여준 것처럼 그들을 후원하는 건 시대에 맞지 않아 보였다. 아른하임의 숙고는 스스로에게 이득이 없지 않게 끝났다.
-113


자본의 시대에 문학이 설 자리가 부족해지는 것을 아른하임의 생각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문학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돈과 이미지가 대세가 되어 버린 세상이라도 시간의 한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혜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이 책을 읽는 것이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상상력에 유연한 힘을 부여해 주는 것은 문학이다.


90. 이성적 지배 권력의 폐위


아른하임에게 몇 년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더라면 분명 다음의 사실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1920년 동안 이어져온 기독교적 도덕, 몸서리치는 전쟁으로 죽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 여성의 수치심에 뿌리를 둔 독일문학의 숲에서는, 어느 날 여자들의 치마와 머리 길이가 짧아지고 유럽의 처녀들이 수천 년의 금기에서 벗어나 바나나 껍질을 벗듯 거의 알몸 상태로 나다니는 날이 오는 걸 결코 막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밖에 그전까지는 불가능하게 여겨온 다른 변화들도 보았을 것이다. 그중 어떤 것이 지속되고 어떤 것이 사라질지는 중요하지 않다. 재단사와 유행, 우연의 길 대신 철학자와 화가, 작가들로 대표되는 정신적 발전의 책임 있는 길로 가도록 생활상의 혁명을 이끌려면 헛수고에 가까운 힘을 얼마나 쏟아부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말이다. 이런 점에서 비생산적인 뇌의 독단과 비교해 삶의 표피에는 어마어마한 창조력이 깃들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른하임은 이것을 뇌, 즉 이성적 지배 권력의 폐위이자, 정신의 주변부로의 이전이자, 시대의 궁극적 문제점으로 느꼈다.
-116


변화하는 시대를 막을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특히 무차별한 발전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 전 인류가 동시에 계몽될 수 있을까? 인간이 만든 핵발전소가 쓰나미에 의해 망가졌다. 몇몇 인간의 욕심에 의해 초동조치에 실패한 후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걸 어떻게 막아야 할까? 나약한 개인의 모습에 한탄하는 것도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결과일까?


‘그래, 이렇듯 모든 게 다 맞아떨어질 수는 없어.’ 아른하임은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힘을 북돋우려는 듯 신중하게 덧붙였다. ‘그래도 사람은 아주 진지한 자세로 자기 시대와 함께 걸어가야 해!’ 그가 보기에, 객관적으로 입증된 공장의 생산 원칙을 삶의 생산에 적용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119


이성이나 오성의 철학이 실용과 합리에 자리를 내어주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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