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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Aug 28. 2023

제2부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26)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2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91. 인간 역사에 대한 정신의 투기. 하락장인가? 상승장인가?


항상 한쪽에서 어떤 것을 하면, 다른 쪽에서는 반대의 것을 했다. 그것도 둘 다 비슷한 이유와 신념에서 말이다. 특이한 사건들이기는 하지만 투치는 그것들의 역사성을 존중해가며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120


<특성 없는 남자>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는 대립이다. 사피엔스의 특성 중 하나인지 누군가 어떤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그것은 싫고 다른 것이 좋다고 말한다. 스마트폰의 경우에도 아이폰과 갤럭시의 유저는 서로 자신이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둘 다 비슷한 이유와 신념에서 말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신념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대립과 갈등이 인류의 속성이라면 슬기롭게 피하는 방법을 습득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외교란 오직 거짓말과 비겁함, 식인 풍습, 다시 말해서 인류의 저급한 속성들을 통해 신뢰할 만한 질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장님의 그 경탄스러운 표현을 다시 한번 빌리자면, 외교는 하락 추세에 기초한 이상주의죠. 이것은 정말 매혹적일 정도로 슬픈 생각입니다. 우리의 고결한 힘들은 본질적으로 믿기 어려운 것이어서 우리를 순수 이성 비판의 길뿐 아니라 식인의 길로도 이끌 수 있음을 전제하기 때문이죠.
-125


외교에 관한 울리히의 관점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락 추세에 기초한 이상주의라는 것이 무엇일까? 기대할 것이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래서 거짓말이 필요하고 비겁한 일이 되는 것일까?


나는 아까 유감스럽게도 지적이고 선한 것이 악하고 물질적인 것의 도움 없이는 장시간 존속할 능력이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내 말에 국장님은 대충 이렇게 대답하셨죠. 정신이 많아질수록 신중함은 더 요구된다고요.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보죠. 인간을 짐승처럼 다룰 수는 있지만, 그 방법으로 만사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 두 방법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두 방법을 섞습니다. 그것이 전체죠.
-126


외교에 관한 사항을 잘 모르더라도 울리히는 대립되는 의견에도 그 취지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투치국장과의 대화에서도 이런 대화가 나온다. "당연하다고요? 그렇다면 국장님은 결국 나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방면에서 정신이 진보할수록 외교가 더 필요해진다는 투치 국장의 의견에서 나온 말이다.


내 말을 야만적이라 여길지는 모르겠지만 할말은 해야겠소. 철학이라는 건 원래 교수들만 하는 것이오! 물론 공인된 위대한 철학자들은 예외로 칩시다. 난 그 철학자들을 아주 높게 평가하고, 책도 다 읽었소.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니까. 돈을 주고 교수를 고용하는 것도 그 때문 아니겠소? 그게 그들 직업이오.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소? 교사가 필요한 것도 그런 일이 사장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일 거요. 하지만 그런 경우들만 빼고는 우리 오스트리아의 옛 원칙이 옳소. 국민은 무엇이든 깊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 말이오. 깊은 생각에서는 쓸 만한 것이 나오기 어렵고, 불손한 것이 담기기 쉬운 법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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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충돌 시 다양성을 인정하면 마치 중심이 없는 사람처럼 비칠 때가 있다. 많은 사람이 한 가지를 선택하고 그것을 믿고 살아간다. 그 의견에 대립하면 싸우면 된다는 식이다. 투치 국장의 이야기에서도 그런 성향이 보인다. 어떤 한 가지 견해를 믿고 그것을 정당화시키는 행위 말이다. 특성 없는 남자 울리히에게 아주 불편한 대화일 것 같다.


국장님은 이천 년 전부터 교회가 신도들에게 사용해왔고 최근에는 사회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매우 현대적인 원칙을 얘기하시는군요.
-127


투치 국장도 울리히의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라고 한다. 이천 년 전부터 교회가 신도들에게 사용해 왔고 사회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현대적인 원칙이란 것이 무엇일까?


요즘 거리에서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많아졌다는 생각을 안 해보셨습니까?
투치는 심드렁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 사람들한테 뭔가 문제가 생긴 겁니다. 자신의 체험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체험할 수 없거나,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남은 것들을 밖으로 내놓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게 분명합니다. 글을 쓰고자 하는 과도한 욕구도 그래서 생기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글쓰기 자체에서는 그게 명확히 드러나지 않을지도 모르죠. 재능과 훈련에 따라서는 글쓰기로 원래의 욕구를 훨씬 뛰어넘는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책읽기에서는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요즘은 거의 누구도 책을 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의 잉여적인 부분을 동의의 형태로든 거부의 형태로든 왜곡된 방식으로 털어버리는 데 작가들을 이용할 뿐입니다.
-130~131


과거에 비해서 너무 많은 정보가 개인에게 들어가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과거에 믿었던 신념이 오늘날에도 믿을 수 있을까?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믿고 살던 시절에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웠던 것처럼. 과학의 발전으로 증명된 사피엔스가 만들어둔 상상의 질서가 거짓임을 알게 되었을 때 개인은 어떤 반응을 하며 살아야 할까?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거를 부정해야 하는 것일까? 일평생 믿어온 신념을 지키며 사실을 부정하며 살아야 할까? 결국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귀결이 되지 않을까. 서로가 선택한 신념은 갈등을 유발하고 상대의 신념을 공격하게 된다. 안타깝지만, 이러한 현상을 막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당신 자신은 글을 쓴 적이 없소?” 투치가 말을 끊으며 물었다.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몹시 불안합니다. 글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행복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조만간 그런 욕구를 느끼지 않는다면 내 속의 비정상적인 기질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스럽기까지 합니다!”
-131


특성 없는 남자 울리히의 대답이 슬프다. 행복한 적이 없었다니. 울리히에게도 글쓰기가 삶의 구원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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