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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Aug 30. 2023

제2부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27)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2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92. 부자들이 갖고 있는 삶의 몇 가지 규칙


인간의 후각은 부호에게서 풍기는 자주적인 느낌, 몸에 달라붙은 명령 습관, 어디서건 자신에게 최선의 것을 선택하는 능력, 세계에 대한 가벼운 경멸감, 막대하고 확실한 소득에서 나오는 책임감 있는 권력의 부드러운 냄새를 즉각 집어낸다.
-133


많은 사람이 부호의 느낌을 알아차릴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신뢰받는 사람과 사기꾼을 구분하는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낯선 친절과 진심이 담긴 까칠함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인간을 어떤 언어로 정의 내리는 것만큼 부적절한 것이 없다. 


그들의 은행 계좌와 신용에 구멍이 생기면 부자는 그저 돈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확인한 순간 바로 시든 꽃이 되고 만다.
-133


자본과 신용은 비례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조작, 사기 등의 이름을 가진 돈은 신용과 거리가 멀지만 그 규모는 작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사실 많은 부자들이 사회주의자처럼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자본이 사회의 자연법 덕분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또한 인간이 소유물에 의미를 부여하지, 소유물이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135


많은 부자들이 사회주의자처럼 생각한다는 말은 잘 모르겠다. 어떤 의미로 한 말일까? 하지만, 인간이 소유물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공감한다. 소유물이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말이다.


사람은 어떤 이유로 경탄받고 사랑받을까? 그건 규명하기 어려운 미스터리가 아닐까? 계란처럼 둥글고 쉽게 부서지는 것이 아닐까? 남자의 콧수염에 반한 사랑이 남자의 멋진 자동차에 반한 사랑보다 더 진실할까? 구릿빛으로 그을린 남국의 남자에게 끌리는 사랑이 막강한 기업가의 아들에게 끌리는 사랑보다 더 인간적일까?
-136


자본주의에 살아가는 우리, 아니 자본주의가 아니더라도 부유하고 풍족한 사람이 인기가 많지 않았을까? 가난한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다. 돈이 많다고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어떤 이유로 경탄받고 사랑받을까?라는 질문에도 한 가지로 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이유가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니까. 자신이 생각하는 호감형과 반대 입장의 비호감형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 인정하지 않고 다투거나 피할 뿐이다.


93. 몸 문화의 길 위에서도 시민 오성은 제어하기 어렵다


슈툼 장군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보시오, 내내 유심히 들었는데, 모든 게 꼭 백전노장인 나한테 하는 말 같소. 음악 이야기만 빼놓고. 저 사람들은 왜 테니스 선수는 천재라고 하면서 장군은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슈툼은 자신의 후원자로부터 디오티마의 집에서 몸 문화로 부딪쳐보라는 조언을 들은 이후, 원초적인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 민간인들의 생각에 어떻게 희망적으로 접속할 수 있을지 여러 번 깊이 고민해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방향에서도 어려움이 무척 크다는 사실만 번번이 느낄 수밖에 없었다.
-139


테니스 선수에 관한 이야기가 오간다. 직관적인 테니스보다 과학적인 테니스를 좋아한다는 의견에 대한 이야기다. 직관적인 스타일의 테니스선수에게 천재라고 말하는 사람과 천재라는 말이 과하다는 사람이 있다. 한 음악가는 스포츠의 천재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천재성을 거론할 수 없는 분야는 과학뿐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은 뇌의 곡예일 뿐이죠!'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토론을 듣고 슈툼 장군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런 토론을 나눈 사람에게 누군가 질문한다. 직관적 테니스선수와 과학적 테니스 선수가 붙으면 누가 이기나요?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94. 디오티마의 밤들


‘순수하게 이성적인 인간이나 유용한 인간은 없어. 모든 인간은 살아 있는 영혼으로 시작해. 하지만 일상이 그 영혼의 길을 모래 더미로 막아서고, 일상의 욕망이 들불처럼 인간의 마음을 흐트러뜨리고, 차가운 세계가 인간의 마음속에 일으킨 냉기 속에서 영혼은 차츰 병들어가고 있어.’
-143


실용주의가 시대의 흐름이 되어버린 후에 영혼이 병들어가는 현상은 백 년 전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비자발적으로 맡은 자리에서 의무를 다하는 것은 별로 생산적이지 못하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아무 목적 없이 쏟지는 않는 법이다.
-144


납득이 가지만,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다. 어느 누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자신이 좋아하던 일이 직업이 되는 순간 고통으로 변하는 상황이 얼마나 많은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돈과 자신의 능력과 시간을 교환하는 사람 또한 그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돈에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쏟고 있지 않은가.


영혼의 싸움에서는 잘못한 사람이 없다!
-147


영혼의 싸움이 말이 되어 세상에 나오면 잘못한 사람이 생긴다.


95. 대저술가, 이면의 생각


세속의 권력이 정계에서 재계의 부호들로 넘어간 것처럼 정신문화의 영역에서 정신적 제후들을 대체한 것이 대저술가다. 제후의 시대에는 정신적 제후들이 어울렸다면 정치적 격변과 대형 백화점의 시대에는 대저술가가 잘 어울렸다.
-149


권력 이동. 정신적인 영역에서 제후들을 대체한 것이 대저술가였다면, 인터넷 세상에서는 유튜버나 언론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 같다.


악의 없이 말하자면, 개들도 고독한 바위보다 분주한 거리 모퉁이를 선호하는 게 타고난 본성일진대, 하물며 자기 이름을 세상에 남기려는 더 높은 갈망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고독한 바위를 택하겠는가?!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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