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랑이다: 테레사는 카레닌(그녀의 애완견)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조차 강요하지 않는다. 그녀는 인간의 한 쌍을 괴롭히는 질문을(카레닌에게는) 해본 적이 없다.: 그가 나를 사랑할까? 나보다 다른 누구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사랑을 의심하고 저울질하고 탐색하고 검토하는 이런 모든 의문은 사랑을 그 싹부터 파괴할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무런 요구 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는 다른 무엇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밀란 쿤데라)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우리는 왜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궁금해하는 것일까? 지하철이나 흔들거리는 버스에서 자신의 시력이 나빠지는 것을 모르는 채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최근에는 지하철에서도 책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손 안의 작은 기기들을 보면서 다닌다. 언제인가 지하철을 타는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을 발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만 그런 상상을 한 것이 아닌 지 과거의 상상 속의 기계는 현재 사람들 손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작은 기기로 무엇을 하는지 별로 궁금하진 않지만, 스쳐 지나가는 느낌으로는 '카카오톡', '페이스북', '게임', '동영상'의 비중이 가장 높은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궁금해하는가?
다른 사람들이 써 놓은 글을 읽고, 사진을 시간이 날 때마다 확인한다. ‘나를 알아주는 다른 사람이 없다면, 세상에 나 혼자 뿐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세상에 혼자만 살고 있다면, 위대한 그림도, 아름다운 음악도, 훌륭한 발명품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알 수가 있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혼자라는 사실 자체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그는 생명이 없는 자신의 손자국이 난 배구공에 이름을 붙이고 대화한다. 혼자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울부짖음도 아픔도 기쁨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최근 도시의 생활은 분주한 생활 속에서도 우리가 무인도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생 택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도 비행사를 만난 지구의 사막도 여러 사람들 가운데 살아가는, 복잡한 도시생활 속에서도 의미 없는 소통은 사막과도 같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꽃밭에 있는 많은 장미들 보다 자신이 가꾸는 한 송이의 장미가 소중하다는 것은 관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人間)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궁금해하는 것인가? 통신 수단이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던 때에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했을까? 물론 불특정의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이런 궁금증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만약 다른 사람과 자신의 위치를 비교하기 위해서라면 이는 근심을 가져오는 것이다. 타인의 행복이나 슬픔을 읽고 축하나 위로를 해주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찾아 공감하기 위함인지 나로선 잘 알지 못한다. 의사소통을 단 한 가지의 이유만으로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다른 사람을 궁금해하는 것에 대한 본질은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의 생각 중에서 단지 그들이 표현하는 것만을 알 뿐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뇌)
이러한 말처럼 다른 사람이 표현하는 일부만으로 어느 정도의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많은 의미를 가지고 표현한 이야기가 어떤 사람에게는 단순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니까. 인간과 강아지의 관계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는 다른 점이 있다. 인간은 강아지에게 말을 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기대감이 매우 낮다고 할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길 원한다. 사람은 사랑보다 이해를 바란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소통의 본질적인 목적은 이해라는 것에 도달한다. 앞서 이야기한 다른 사람의 생활을 궁금해하는 것은 이해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