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뒷모습
우리는 보통 자신의 등보다 남의 등을 많이 보면서 산다. 자신의 몸인데도 몇 번 못 보고 죽는다. 등을 보려면 거울 앞에서 또 하나의 거울이 더 필요하다.
우연히 등을 본 것은 수영장에 있는 파우더 룸이었다. 디귿자 모양으로 벽면에 거울이 붙어 있었다. 벽면 위쪽엔 각각 한 대씩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고, 선반 위에는 헤어드라이어와 머리빗 그리고 면봉 등이 있었다. 거울 앞에서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다가 우연히 옆면에 비친 뒷모습을 봤다. 분명히 내 등이었지만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옆에서 팔을 올리고 머리를 말리던 남자의 등에는 주름 잡힌 근육이 있었다. 거울에 비친 내 등에는 그 남자에게 있는 그것이 없었다. 그 후로 소위 ‘갑바’라고 말하는 가슴 근육보다 등 근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운동하는 사람 중에도 의외로 등 근육이 많은 사람은 흔하지 않았다. 나처럼 많은 사람이 등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 같았다. 수영장 샤워실에서 가슴을 부풀리며 걸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빈약한 내 등을 보기 전에는 '가슴 근육이 참 많은 사람이구나'란 생각을 했지만, 이젠 '등 근육은 별로 없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등 근육 없이 가슴만 부풀린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해보면 난 평생 거울에 비친 앞모습만 보고 살아온 셈이었다. 헤어스타일을 손볼 때도, 얼굴에 난 여드름을 짤 때도, 안경을 고를 때도 앞만 봤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등에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이십 대 초반엔 여자를 소개받을 때도 ‘예쁘냐?’라고 물었다. 등이 예쁘냐던 지 뒤태가 곱냐던 지 묻지 않았다. 당시 친구 한 명이 자신은 여자를 볼 때 허리에서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곡선을 가장 먼저 본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남들이 앞모습에만 관심 가질 때 뒷모습까지 신경 썼던 것 같다. 파우더 룸에서 우연히 본 남자의 등엔 지렁이 수십 마리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가슴 근육만 부자연스럽게 부풀려있지도 않았다. 등에 머무르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 남자에겐 인격이라고도 불리는 아래 뱃살도 없었고 처진 엉덩이 살도 없었다. 남자의 몸을 본 후 자연스럽게 거울에 비친 내 몸을 볼 수밖에 없었다. 좁은 어깨와 인격이라고 우기는 뱃살이 있을 뿐이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옆면에 붙어있는 거울엔 빈약하기 이를 때 없이 구부정한 등과 처진 엉덩이가 있을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부끄러운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리듯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이후, 그러니까 남자의 등을 본 후 운동을 시작했다. 아랫배에 자리하고 있는 중성지방을 제거하기 위하여 줄넘기를 샀다. 매일 십 분씩만 뛰자고 결심했다. 점심을 먹고 줄넘기를 위한 장소를 찾으러 나갔다. 사무실 근처의 공터가 눈에 띄었다. 등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 줄넘기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헬스장 트레이너 출신의 후배의 권고에 따라 일단 뱃살을 빼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줄넘기 첫날 난 자신에 대해 다시 한번 실망했다. 십 분은 고사하고 삼 분도 채 하기 전에 종아리가 당겨왔다. 첫날이라 그런 거라 생각하며 뛰다 멈추다를 반복하여 겨우 십 분을 채웠다. 한 달 정도 지날 무렵 쉬지 않고 오 분정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 분의 기록을 세우고 나는 줄넘기를 접어야 했다. 아킬레스건 쪽의 통증이 심했기 때문이다. 결국 등 근육을 만들어보는 일은 시작도 못했다. 발목의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운동을 할 수 없었다. 가슴 근육을 만드는 것보다 등 근육을 만드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등 근육은 다른 모든 근육을 만든 후에 가장 마지막에 만들 수 있는 근육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