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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Sep 08. 2023

제2부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29)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2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98. 언어적 결함으로 몰락한 나라


프로이센의 쾨페니크 대위 사건도 수동적 저항의 일면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에게 선명히 각인되어 있는 이 남자는 고물장수에게 구입한 대위 제복으로 장교 행세를 하면서 순찰을 도는 일단의 군인들을 정지시킨 뒤 프로이센 황실군의 복종심을 이용해 이 군인들을 데리고 시의 금고를 털었다. 그러니까 이 사건에도 사람들의 웃음보를 터뜨리게 하는 동시에 반감의 뿌리가 되는 이념들을 말로 표현하고 싶게 은연중에 뒤흔드는 수동적 저항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180


웃을 수만 없는 헤프닝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겉으로 보이는 것을 믿는 경향이 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잘 훈련된 병사일수록 상사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 상관이란 것을 확인할 방법이 있었을까? 인간이 허리케인, 홍수, 화재, 지진 자연재해 앞에서만 약한 것이 아니다. 학습된 이념 앞에서도 한없이 약한 존재일 수도 있다.


어쨌든 세상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그런 사건들을 알아 차렸다. 자신이 직접 관여하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은 의심스럽게 바라보았을 뿐이다.
-181


한 번쯤은 저 많은 사람은 뭘 하고 살까?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 정말 다양한 일들이 일어났고 개인이 인지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가장 많이 알게 되는 일은 자신이 개입한 일이다.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일이 옳다고 믿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운명이 높은 자리에 올려놓은 사람일수록 소수의 단순한 원칙과 확고한 의지, 계획적 행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더욱 똑똑히 깨닫게 되지.” 백작이 늘 하는 말이었다.
-182


불편하지만, 공감이 가는 말이다. 리더에게 요구되는 수칙이기도 하다. 이루고 싶은 일이 많더라도 하나씩 원칙에 입각하여 참모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해서 하나씩 해야 한다. 라인스도르프 백작도 그러한 점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절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진행하는 것도 하나의 장점이 될 수 있다.


말과 똑똑한 머리의 정치에는 기대할 것이 없고 오직 침묵하는 숙고와 행동만이 희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
-182


라인스도르프 백작의 말 중 정치에 관한 말은 이 부분이 가장 공감된다. 말이 많은 것치고 제대로 하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오직 침묵하는 숙고와 행동만이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리더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방향이 잘못되면 그 결과는 그야말로 끔찍하니까.


99. 어중간한 똑똑함과 그 똑똑함의 생산적인 다른 반쪽, 두 시대의 유사성, 사랑스러운 제인 이모, 그리고 새로운 시대라 불리는 허튼 소리에 대하여


인간은 과장한다. 과장을 야기하는 건 부정확함이다.
-189


부정확함이 과장을 야기한다. 반대로 말하면 정확한 것은 과장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 중에도 부정확한 것을 말할 때 과장했다. 듣다보면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던 경우도 있었다. 과장하는 사람은 신뢰감이 떨어진다. 그러다 결국 회피하게 된다.


이모는 이미 오래전에 고령으로 세상을 떠낫고, 대고모도 죽었고, 네포무크 삼촌도 죽었다. 그들은 대체 왜 살았던 것일까? 울리히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바로 지금 제인 이모와 다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았다.
-193


사람이 살다가 죽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개인의 삶의 관점에서 볼 때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 울리히의 이모도 대고모도 삼촌도 죽었다. 그들은 왜 살았나 자문하는 울리히의 심정을 보며 나도 그런 적이 있었나 떠올려본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다가 간 사람은 왜 살았던 것일까?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는 것도 같다. 물론 그 대답 따위는 찾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살았고, 피해를 줬고, 세상을 떠났다. 소중한 사람이나 고마운 사람에겐 왜 살았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이 글을 읽기 전에도 그들에겐 살았던 이유가 충분했던 모양이다. 울리히란 인물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어느 시대건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자기 시대를 새 시대라 불렀다. 이 말은 바람을 잡으려는 아이올로스의 자루와 비슷한데, 사물들에 제 자리를 찾아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항구적인 변명일 뿐이다. 그것은 곧, 사물을 본연의 객관적 질서가 아닌 멋대로 상상한 기형의 관련 속에 짜맞추는 것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 속에는 하나의 고백이 담겨 있다. 세계에 질서를 부여할 사명을 띠고 있다는 확신이 그들의 마음속에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195


새 시대. 인류는 현 시대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 시대를 꿈꾸는 병에 걸린 환자같다. 발전, 혁신, 개발, 발명 등 새로움을 향해 달려가는 불나방같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숨쉬고 있는 새로움에 대한 갈망은 왠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신경과민적인 시대의 자식이었다.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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