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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Sep 20. 2023

제2부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32)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2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106. 현대인은 신을 믿는가, 아니면 세계적인 회사의 수장을 믿는가? 아른하임의 망설임


아른하임은 독특한 갈등상태에 빠져 있었다. 도덕적 부유함은 금전적 부유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왜 그런지도 쉽게 알 수 있다. 도덕은 영혼을 논리학으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만일 영혼이 도덕을 갖고 있다면 그 안에 도덕적 문제는 사라지고 오로지 논리적 문제만 남는다. 영혼은 이렇게 자문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행동은 이 계명에 해당할까, 저 계명에 해당할까? 혹은 내 의도는 이렇게 해석될까, 저렇게 해석될까? 비슷한 질문들은 많다.
-274


아른하임은 인간에게 무언가를 규정해주지 못하는 도덕은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도덕과 고유한 특성인 이 반복성은 돈에 가장 크게 달라붙어 있다고 말이다. 돈은 도덕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말하지만, 아른하임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 모두 돈이 있는 것 아니라는 점이 그러하다. 자유로운 영혼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논리로 무장한 자본을 믿어가는 사람들의 선두에 아른하임이 있는 듯하다.


당시 디오티마는 자기 말에 깜짝 놀라 이렇게 말했다. “농담으로 한 말이에요. 유머는 참 멋져요. 온갖 욕망에서 벗어나 모든 현상들 위에 무심하게 떠 있으니까요!”
-281

인간의 심리는 참 미묘하다. 원하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그 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걸 피하는 방법으로 유머를 사용한다. 유머란 인간이 부러지지 않도록 유연성을 부여해 준다. 유머가 없는 인간을 불편해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아른하임은 혼자 확신에 차서 말했다. ‘자기 책임을 분명히 의식하는 남자는 설령 영혼을 저버릴지언정 자본을 희생시켜서는 안 돼! 이자라면 몰라도.’
-282


아른하임은 철저한 자본가인 것 같다. 투자에 대한 확실한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영혼을 저버릴 정도로 자본이 소중하다니. 울리히가 싫어하는 지점도 바로 저 지점이 아닐까. 디오티마는 저런 속내를 가진 남자의 겉모습을 동경하는지도 모르겠다.


107. 라인스도르프 백작이 예상 밖의 정치적 성공을 거두다


백작은 자신의 관심 영역에서 한 중요한 현상에 맞닥뜨렸다. 세상엔 특히 강한 가족 감정이 있는데, 전쟁 전 그 유럽 국가패밀리 내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던 독일에 대한 반감도 그중 하나였다. 어쩌면 독일은 정신적으로 가장 통일성이 적은 나라여서 패밀리 내의 어떤 나라든 혐오할 요소를 발견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독일의 예 문화는 새 시대의 수레바퀴 밑에 가장 먼저 깔렸고, 모조품과 상업의 근사한 선전 문구들로 산산조각 나 버렸다. 게다가 독일은 전쟁광에다 약탈에 눈멀었고, 떠벌리기 좋아하고, 폭도들처럼 위험하다고 할 만큼 책임능력이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모든 건 그저 유럽적일 뿐이었다. 원래 세상에는 인간들이 원치 않는 이미지가 투영된 구체적 대상이 있어야 한다.
-283


독일이 당시에는 다른 나라의 미움을 받고 있었던 것 같다. 독일의 행태가 독일만의 것이 아니라 유럽적인 거라는 말과 인간들이 원치 않는 이미지가 투영된 구체적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때론 마녀사냥을 하고, 정적을 위기로 몰아가고, 끝내 전쟁까지 불사하는 역사를 간과할 수가 없다. 아른하임은 독일인이다. 게르다의 친구들은 독일민족주의를 외치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평행운동을 추구한다. 위험한 분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치 않는 희생양 속에 악을 투사하듯 자신이 원하는 상에 선을 집어넣는다. 자신들은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말이다. 우리는 정작 앉은자리에서 구경만 하면서 남에게는 힘든 재주를 부리게 하는데, 그것이 스포츠다. 우리는 과장을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는 지극히 일방적인 과장을 허용하는데, 그것이 이상주의다. 또한 우리 자신은 악을 흔들어 떨어내면서 그 때문에 악에 더럽혀진 사람들을 보고는 손가락질을 한다. 그것이 희생양이다.
-284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문장이다. 아닌 척 하지만 누구나 뜨끔한 기분이 들 것 같다. 어쩌면 인간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희생양이 되지 않기를 소망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분야에서건 자신이 희생양이 될 거란 두려움이 존재할 것 같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습이라고 부르는 것을 기본적으로 따르려고 하는 이유도 아마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시절에도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힘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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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자연재해가 그러한 것 같다. 다만 최근에는 인재라고 하는 인간의 행동이 원인이 된 재앙까지 더해졌다. 일어나야 하지 말아야 일을 멈추는 일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칸트가 이야기하는 오성을 사용할 용기가 있더라도 말이다.


다 같이 하는 행동에서 배제되는 것이 맨 앞에 서길 거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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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동심리에서 모두가 A를 행하는데, B를 행하기란 무척 어렵다. 왠지 혼자 바보가 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자신의 선택이 정말 잘못되면 어떨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책임이란 단어의 무게도 모두가 지는 책임과 혼자 지는 책임의 무게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상황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이분법처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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